종로를 다녀왔다. 이제 촛불시위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고요한 정적만이 감도는 종로를 걸었다. 시청 앞 광장은 여전히 전경들이 가득하고, 상권이 마비되어버린 가게들은 저마다의 긴 한숨 속에 말을 잃은 듯 했다. 빗속에 새벽을 지센 젊은이들의 지친 숨결도 저 멀찌감치 사라진 듯 고요하다.
새 정부의 출범이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흔들었던 아니 지금도 어느 한편에선 요동치고 있는 촛불시위의 현재 모습이다. 요즘 이 사회의 이슈가 미국의 독도 분쟁지역표시로 넘어가버린 상황에서, 촛불시위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은 어쩌면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궁금하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종로 한 복판으로 뛰쳐나와야 했던 국민적인 시위가 지금 우리에게 준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이제 시끄러운 사건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제 조용하다 못해 힘겨운 숨결을 이어가고 있는 종로처럼 천천히 촛불시위를 돌아보고 싶어진다.
한미관계
졸속협상에 의한 굴복. 우리 새 정부가 미국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촛불집회 세력의 주장이다.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미국 쇠고기를 어떻게 한 나라의 대표가 무책임하게 들여올 수 있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했다.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에 세력은 점점 늘어만 갔고,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날로 상승했다. 이는 IMF때 금 모으기 운동처럼 나라의 위기에 국민이 직접 나선다는 애국에서 나온 정치참여라는 점에서, 최악의 투표율을 보였던 대선 투표율과는 상반된 국민의 태도여서 크게 고무적인 집회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방향이 점점 극단적인 성격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정권퇴진
촛불시위에 논란이 가중된 것은 바로 이 정권퇴진에 대한 문제다. 이 시점에서 정치세력의 배후문제가 공론화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보수 극우파들의 시위 저지가 시작됐다. 평화적 시위의 명목아래 시작된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정권을 부정하는 상황에 이르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점은 더 이상 한 나라의 정부를 비판해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아닌 손 저으며 부정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가진 울타리에 대고 외쳐대던 고함이 이제는 뻔히 있는 울타리 자체를 부정함으로서 포기의 상태로 이른다. 이때부터 시작된 전보단체와 보수 세력의 싸움은 정부와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재협상 여부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져 감정을 상하게 하는 폭력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특히 중고생들의 정부에 대한 부정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열반 문제로 시작된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감을 가진 아이들은 더욱 강하게 촛불시위를 폭력으로 물들게 했고, 종로는 핏빛 고함이 끊이질 않았다.
위기와 포기
6,70년대와 IMF때의 한국은 국민들의 애국심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와 국민들의 열기로 한국은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나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국민의 모습은 지속되는 경제침체로 지쳐버린 국민들의 자포자기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물론, 현 정부가 괜한 질타를 받는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결을 위한 시위가 아닌 쿠데타의 명목으로 변질된 촛불시위를 보면서, 적극적인 정치참여로의 발전이 아닌, 감정적 대응만이 가득 찬 우리 국민들의 태도에 마음이 아프다. 정부와 국민간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이라 하기에는 벌어지는 상황 자체가 정치적이기 보단 감정적 대응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더 큰 쓰라림은 더 이상 이 문제가 공론화되는 데에는 심각함이 없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그냥 잊었다.
쓸쓸한 종로의 풍경
이제 촛불시위도 100일이 지나 퇴락의 길을 걷는다. 우리가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 그 뜨거운 외침은 온데간데없다. 마치 급속도로 변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패션 트렌드처럼 이제 관심 밖의 사건이 되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촛불집회이기에 아쉬워 말아야 할까? 종로 지하철에는 많은 젊은 노숙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 속에 무심코 지나치려 하지만, 젊은 청년들의 식어버린 어깨에는 힘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이제 지쳐버린 것일까? 쓸쓸한 종로에는 활기라곤 찾을 수 없다. 그 고요한 적막감에 맥이 풀린다. 전경과 학생들의 개싸움 속에 진정 우리가 얻은 것은 하나라도 있을까? 촛불집회는 눈에 선하지만, 불씨의 행방불명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도 없이 넘어가버린 화두의 실종은 한 나라가 급격하게 눈앞에서 무너져 내려도 꿈쩍도 않고, 서로의 의견을 대치시키던 우리의 열정적인 모습과는 상반되어 마음을 시리게 할 뿐이다.
독도는 우리땅을 아무리 외쳐봤자, 지금 느껴지는 이 균열감에는 그 어떤 것도 채워지지 않는다.
촛불이 사라진 종로에는..
촛불이 사라진 종로에는..
종로를 다녀왔다. 이제 촛불시위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고요한 정적만이 감도는 종로를 걸었다. 시청 앞 광장은 여전히 전경들이 가득하고, 상권이 마비되어버린 가게들은 저마다의 긴 한숨 속에 말을 잃은 듯 했다. 빗속에 새벽을 지센 젊은이들의 지친 숨결도 저 멀찌감치 사라진 듯 고요하다.
새 정부의 출범이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흔들었던 아니 지금도 어느 한편에선 요동치고 있는 촛불시위의 현재 모습이다. 요즘 이 사회의 이슈가 미국의 독도 분쟁지역표시로 넘어가버린 상황에서, 촛불시위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은 어쩌면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궁금하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종로 한 복판으로 뛰쳐나와야 했던 국민적인 시위가 지금 우리에게 준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이제 시끄러운 사건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제 조용하다 못해 힘겨운 숨결을 이어가고 있는 종로처럼 천천히 촛불시위를 돌아보고 싶어진다.
한미관계
졸속협상에 의한 굴복. 우리 새 정부가 미국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촛불집회 세력의 주장이다.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미국 쇠고기를 어떻게 한 나라의 대표가 무책임하게 들여올 수 있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했다.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에 세력은 점점 늘어만 갔고,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날로 상승했다. 이는 IMF때 금 모으기 운동처럼 나라의 위기에 국민이 직접 나선다는 애국에서 나온 정치참여라는 점에서, 최악의 투표율을 보였던 대선 투표율과는 상반된 국민의 태도여서 크게 고무적인 집회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방향이 점점 극단적인 성격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정권퇴진
촛불시위에 논란이 가중된 것은 바로 이 정권퇴진에 대한 문제다. 이 시점에서 정치세력의 배후문제가 공론화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보수 극우파들의 시위 저지가 시작됐다. 평화적 시위의 명목아래 시작된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정권을 부정하는 상황에 이르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점은 더 이상 한 나라의 정부를 비판해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아닌 손 저으며 부정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가진 울타리에 대고 외쳐대던 고함이 이제는 뻔히 있는 울타리 자체를 부정함으로서 포기의 상태로 이른다. 이때부터 시작된 전보단체와 보수 세력의 싸움은 정부와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재협상 여부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져 감정을 상하게 하는 폭력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특히 중고생들의 정부에 대한 부정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열반 문제로 시작된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감을 가진 아이들은 더욱 강하게 촛불시위를 폭력으로 물들게 했고, 종로는 핏빛 고함이 끊이질 않았다.
위기와 포기
6,70년대와 IMF때의 한국은 국민들의 애국심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와 국민들의 열기로 한국은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나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국민의 모습은 지속되는 경제침체로 지쳐버린 국민들의 자포자기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물론, 현 정부가 괜한 질타를 받는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결을 위한 시위가 아닌 쿠데타의 명목으로 변질된 촛불시위를 보면서, 적극적인 정치참여로의 발전이 아닌, 감정적 대응만이 가득 찬 우리 국민들의 태도에 마음이 아프다. 정부와 국민간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이라 하기에는 벌어지는 상황 자체가 정치적이기 보단 감정적 대응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더 큰 쓰라림은 더 이상 이 문제가 공론화되는 데에는 심각함이 없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그냥 잊었다.
쓸쓸한 종로의 풍경
이제 촛불시위도 100일이 지나 퇴락의 길을 걷는다. 우리가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 그 뜨거운 외침은 온데간데없다. 마치 급속도로 변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패션 트렌드처럼 이제 관심 밖의 사건이 되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촛불집회이기에 아쉬워 말아야 할까? 종로 지하철에는 많은 젊은 노숙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 속에 무심코 지나치려 하지만, 젊은 청년들의 식어버린 어깨에는 힘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이제 지쳐버린 것일까? 쓸쓸한 종로에는 활기라곤 찾을 수 없다. 그 고요한 적막감에 맥이 풀린다. 전경과 학생들의 개싸움 속에 진정 우리가 얻은 것은 하나라도 있을까? 촛불집회는 눈에 선하지만, 불씨의 행방불명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도 없이 넘어가버린 화두의 실종은 한 나라가 급격하게 눈앞에서 무너져 내려도 꿈쩍도 않고, 서로의 의견을 대치시키던 우리의 열정적인 모습과는 상반되어 마음을 시리게 할 뿐이다.
독도는 우리땅을 아무리 외쳐봤자, 지금 느껴지는 이 균열감에는 그 어떤 것도 채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