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7월28일자 칼럼-";대마도는 우리땅"; 교육

최민호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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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월 한국을 향한 일본 사회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을 제압할 아무런 외교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 연합군 최고 사령부 맥아더 장군에 접수 됐기 때문이다.

 

"대마도(對馬島)는 역사적으로 명백한 우리 영토다. 섬 어디를 파보든지 조선과 관련한 유물이 나온다. 곧 미점령 군사령부(GHQ)에 반환을 요청하겟다." 그 해 1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경악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너무나 다급해 GHQ로 맥아더 사령관을 찾아가 "우리가 아무리 패전국이라고 한국이 이럴 수 있는가"라

고 호소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실효 지배하는 대마도가 자기네 땅이라니... 외무성은 산하 기관을 총동원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역사, 고고, 인류학회 등 일본의 5대 학회는 잇달아 조사 보고서를 올리는 한편 2~3년간 집중적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49년 '일본역사' 19호에 발표된 '쓰시마의 역사적 위치' , 51년 '조선학보' 창간호의 '대마문제' 등이 그 사례다.

 

당시 이승만의 발언 배경은 대일청구권협상을 유리하게 하고. 동해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의도된 발언으로 분석됐다. 실제 이 선언이 기폭제가 돼 52년 국제사회에 독도 영유권을 확정 지었고 대마도 주변 수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사건만 놓고 보자면 이승만의 외교적 승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명백한 우리 영토'라는 사실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교육과정에서 배우지 않았을 뿐이다.

수업시간에 '세종 대마도 정벌'을 배운 것이 고작이다.

 

'환단고기'는 "삼한(三韓)이 다스렸다"고 했고, '삼국사기'의 신라본기는 "왜인들이 대마도에 영(營)을 설치해 격파했다"고 적었다.

'고려사' '세종,세조,성종실록' '동국여지승람' '조선방역지도' 등 수만은 자료는 우리가 실효 지배하는 조공섬, 경상도 속주 등임을 입증한다. 성종18년 대마도주는 서계를 통해 "영원토록 귀국의 번병의 신하로 칭하여 충절을 다할 것입니다"고 고했다. 영조 36년 제작된 '여지도서' ,'순조22년의 '경상도읍지' 등에는 대마도를 동래부 도서조(島嶼條)에 수록했다. 13세기 일본 사서 '진대(塵垈)' 등 일본 자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선 영조 39년 통신정사 조엄의 기록에 "(대마도가) 근자에 와서 접대하고 수응하는 예절이 점차 전일과 같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일본 막부의 힘이 세지면서 경상도 속주에서 벗어남을 알 수 있다. 조엄은 특히 대마도를 조선의 외복지(外服地), 즉 국경 밖에 있으면서 복속하는 번(藩)으로 칭해 이전보다 영유 의식이 약화도니 표현을 썼다.

 

하우봉 전북대 교수 등 우리 역사학자들은 '대마 고토(古土) 의식'이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다고 말했다. 만주, 간도와 함께 실지(失地)회복 의식 속에 포함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 독도와 비교해 시기적 연원도 깊고, 자료도 풍부한 것이 대마도 문제이다.

 

이제 우리도 학교에서 대마도의 '역사적 사실' 자체만이라도 가르쳐야 한다. 독도에 대한 감정 대응으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식민사관 역사교육 방식에 익숙해 아직도 남의 역사로 알고 '놓쳐버린' 사실(史實)을 되찾자는 것이다. 최근 뉴라이트교사연합이 '대마도는 우리 땅'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나 매번 결기만 세우는 것보다 시작이 중요하다고 본다.

 

독도문제로 복잡한 요즘에 대마도에 대한 것으로 칼럼이 실리네요

이 칼럼에서 말한바와 같다면 대마도도  만주, 간도와 마찬가지로 실지 인듯하네요.

앞으로 독도문제를 지혜롭게 잘해결햇으면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