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재주도 없는놈이 리뷰를 쓸라카이까는 환장하겠다 ㅎㅎ 정훈희 리뷰가 없는게 너무 놀라운 나머지...전문적인 리뷰보다는 그냥 편하게 적어보기로 하고 자판을 두들겨보겠다 ㅎ
나는 정훈희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불과 몇달전까지...)
다만 14살때부터 라디오를 자주들어 알게된 정훈희의 꽃밭에서,무인도는 녹음까지하면서 자주들었기에 어떤목소리를 가진사람이라는건 알고있었지만 사실 얼굴은 불과 몇달전에 확인했다...OTL 사진보고 윽수러 놀랬다! 젊었을때 사진을 보니 와.... 정말 미인이셨다 지금도 미인이시다 ^ㅡ^
16살 여름방학 아주 무더운여름날 공업탑에서 5-1번을 타고 (지금은 127번으로 변경) 자리에 앉자 잠시뒤 라디오에서 무인도가 흘러나왔다 버스소음이 심해 제목을 못들어서 음악 끝난뒤 멘트에서 정훈희라는걸 알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한류 가수 정훈희
글재주도 없는놈이 리뷰를 쓸라카이까는 환장하겠다 ㅎㅎ
정훈희 리뷰가 없는게 너무 놀라운 나머지...전문적인 리뷰보다는 그냥 편하게 적어보기로 하고 자판을 두들겨보겠다 ㅎ
나는 정훈희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불과 몇달전까지...)
다만 14살때부터 라디오를 자주들어 알게된 정훈희의 꽃밭에서,무인도는 녹음까지하면서 자주들었기에
어떤목소리를 가진사람이라는건 알고있었지만 사실 얼굴은 불과 몇달전에 확인했다...OTL
사진보고 윽수러 놀랬다! 젊었을때 사진을 보니 와.... 정말 미인이셨다 지금도 미인이시다 ^ㅡ^
16살 여름방학 아주 무더운여름날 공업탑에서 5-1번을 타고 (지금은 127번으로 변경) 자리에 앉자 잠시뒤 라디오에서
무인도가 흘러나왔다 버스소음이 심해 제목을 못들어서 음악 끝난뒤 멘트에서 정훈희라는걸 알았다
꽃밭에서 - 정훈희
무인도 (1992, Golden Hits ver.) - 정훈희
이건 뭐 말로 표현할수없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는 외쳤다 "와~~ 시x끄 직이네~" 나는 말할때 감탄사와욕을빼면 말을 하기 힘들다 ...ㅎ
그당시 우리집에는 거실에 전축 내방에는 시디카세트가 있었다
전축은 라디오 주파수가 잘잡히지않았다 ( 울엄마의 뽕짝전용전축 ㅋㅋ)
혹시나 라디오에서 무인도가 흘러나올까 싶어서 학교 퇴근하면 집까지 존나이 뛰어가서 라디오부터 일단 켜놓고 밥뭇다
ㅡ.ㅡ 근데 라디오에서 무인도 안나오드라 ㅎㅎㅎㅎ
그래가꼬 동네 레코드가게가서 테이프에 녹음좀 시키달라꼬 해서 잘듣고 댕겼다 ~
지금 음주상태이다 ㅎㅎㅎ 무더운여름+시원한맥주+좋은음악=나는행복한놈 ㅎㅎ 더이상 뭐가 필요하노~ 작살~
귀에 헤드셋 낑꾸고 듣는 무인도 작살~이다 역시 음악은 헤드셋을 낑구고 들어야 제맛이다
정훈희
내나름대로 여기저기 디비면서 알게된 짧은지식을 적어보겠다
정훈희... 1951년 6월 8일 피아니스트인 부친 정근수씨의 5남1녀 중 외동딸로
부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밴드마스터였던 삼촌 근도씨, 큰오빠 운택씨 등
네 명의 오빠가 모두 밴드에 소속돼 색소폰이나 기타 등을 연주했던 대중음악가 집안이었다.
당연히 음악속에서 자랐었다...
그녀는 또 부산 미아 초등학교 시절 배구부 주장을 맡는 등 모든 면에서 적극적이었고
부산여중 때 최희준, 현미, 패티 김, 이미자의 히트 곡과 낸시 윌슨, 레이 찰스,
프랭크 시나트라 등 60년대의 스타가수들 노래를 들으며 꿈을 키웠다.
부산여상에 진학한 67년 5월 어느 날, 노래를 부르고 싶어 무작정 상경을 해 밤무대에 섰다.
그때 부른 노래는 모두 외국 팝송이었다 한다
당시 오빠 운택씨의 소개로 그녀의 출연업소를 찾았던 이봉조씨는
“정훈희는 기성가수들 노래의 모방을 넘어 독창적인 자신의 음색으로
노래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데뷔 곡이자 대표 곡인 ‘안개’는
처음엔 가사도 없이 쟈니 브라더스의 허밍만이 들어간 연주곡으로
발표되었던 이봉조의 미완성 곡이었다
17세의 어린 정훈희에게 가능성을 발견한 이봉조는 당시 mbc라디오 박진현 음악PD에게
가사를 의뢰해 그녀에게 주었다. 67년 mbc라디오를 통해 첫 전파를 탄 ‘안개’는
그 날부터 팬들의 신청곡 요청이 쇄도했다.
안개 - 정훈희
데뷔 앨범 이 나오자 몇 차례에 걸쳐 재 발매를 할 만큼 팔려나갔다.
단숨에 신인유망주로 떠오른 정훈희는 데뷔 4개월만에 서울신문의 무궁화상,
대구ㆍ대전 MBC의 10대가수상, 국제신보, 영남일보의 신인상 등 5개의 상을
연거푸 수상하는 초고속 인기행진을 벌였다.
68년 말 신세기에서 지구로 전속을 옮긴 뒤 가수, MC, 탤런트라는 1인 3역의 재능을 뽐내기도 하였다
TBC 드라마 거북이에 단역 연기자로, MBC 크라운 쇼에서는 곽규석과 함께 사회를 보며
활발한 연예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이봉조와 헤어지면서 가수로서는 슬럼프를 맞고 있었다.
재기를 위해 그녀는 오아시스로 또다시 옮겼다.
70년 11월 20일 38개국 44개 팀이 경연을 벌인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
국내가수로는 최초로 정훈희는 ‘안개’를 열창해 월드 베스트10에 입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단숨에 국제가요제 첫 참가, 입상자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그녀는 산레모 등
유럽의 유명 가요제에 초청설이 나돌며 주가를 더욱 높였다.
1972년 '송 오브 올림피아드'로 명명된 제5회 그리스 국제가요제가 아테네에서 열렸다.
정훈희는 이봉조 작곡의 '너'를 불러 장려상과 더불어 참가 아시아 가수들 중 유일하게
베스트 7에 진입, 4위에 입상을 했다.
그 해 10월엔 이봉조 작곡 '좋아서 만났지요'로 동경국제가요제 본선에 다시 진출,
특별 가수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이때 작곡가 이봉조는 베스트11 작곡가상을 동반 수상하며
환상의 콤비라는 명성을 드높였다.
당시 한복을 입고 출전한 정훈희의 의상은 '한국 고유의 이미지를 잘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었다.
적어도 정훈희씨는 이런 가수다... 더 적을려면 끝도없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여성 뮤지션 ‘정훈희’
‘한국의 다이애나로스’라 불리며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가요제에서 최고 가수상을 수상하고 이후, 6회 이상의 국제 가요제에서 수상을 하며 누구나 인정하는 최초의 한류 가수가 된
정훈희
말이 필요없다
일단 들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