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병약한 자들이 내 사람

박철영200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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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병약한 자들이 내 사람

“가난하고 병약한 자들이 내 사람” 강증산 성지 김제 ‘동곡약방’ 이 골짜기에 웬 약방인가. 전북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금평못을 지나 들어간 마을 안길이다. 문지방에 광제국(廣濟局)이라는 이름을 아울러 내붙이고 있는 동곡약방(銅谷藥房). ▲열린 대문 안쪽으로 보이는 방이 강증산이 병든 사람들을 돌보던 ‘광제국’. 반나마 열린 나무 대문을 삐긋이 밀고 들어간다. 수선화가 노랗게 핀 뜨락에 떠도는 건 서향 향기다. 토방엔 아이 신발이 놓여 있고 양지바른 뜨락 한쪽엔 ‘똘똘이 별장’이라는 옥호를 건, 나무판자로 지은 개집이 눈길을 끈다. 시골 고샅길 어느 대문을 밀고 들어가도 만나질 것 같은 이무롭고 소박한 풍경이다. 이곳은 증산교를 열었던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이 만국의 병든 중생을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광제국이라는 약국을 열었던 증산성지. 하지만 어느 한 구석 화려하지도 권위적이지도 않은 외양을 두르고 있는 성지는 외가집에라도 놀러온 듯 마음을 풀어놓는다. 마당 안쪽 오른쪽에 붙은 방 한 칸이 강증산이 1901년부터 39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9년간 신도들의 병을 고쳐주었다는 약방이다. 그 옆으로 걸터앉고 싶게 친근한 작은 쪽마루가 붙어 있다. “게 누구인고 어디가 아프신가” 누군가 문을 열고 그렇게 물어 올 것 같은 온기가 전해진다. ▲ 강증산이 병든 사람들을 치유했다는 우물물. 지금도 물을 길어 먹는다. 막 뒤안을 돌아나오는 어르신은 시집온 이래 50년간을 ‘성지’에서 살림살이를 해 온 김향림(71)씨. 증산교 일파인 보천교 신도로 이 집을 지켜온 최금봉씨의 부인으로 지금은 아들 최동의씨가 이 집을 지키고 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우물물이 ‘약물’이라 한다. “이 우물물로 여기 찾아온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치료하셨다고 해요. 성지순례를 하러 온 사람들이 다 이 물 한 모금을 먹고 가요.”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 ‘훔치훔치’로 시작하는 태을주(太乙呪)라는 증산교 주문이다. 이 주문수행을 외며 쪽방 툇마루에 모태 앉았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농부의 밭에 들끓는 진딧물을 소나기를 내려 씻어주었다더라” 그런 일화가 마을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강증산이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었던 것은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이었을 터. 증산교는 1894년 억압과 부패에서 벗어나고자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사그라든 자리에 새롭게 지펴진 불씨였다. 혁명은 실패했고 50만 명의 농민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다치고 병든 몸과 마음으로 살던 터전을 떠나 떠돌아야 했다. 간절하게 품었던 소망을 일시에 꺾이운 채 마음 둘 곳 없는 혼란의 시절을 지나고 있던 민중들에게 증산의 등장은 새로운 희망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전주 태인 정읍 고부 부안 순창 등 동학혁명의 자취가 서린 고을들이 증산교의 주된 포교지가 되었으며,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하층민중들이 그를 따르던 이들이었다. “부귀한 자는 빈천함을 알지 못하며 강한 자는 병약함을 알지 못하고 유식한 자는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멀리 하고 오로지 병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가까이 하겠노라. 그들이 곧 내 사람이기 때문이다” 골수에 맺힌 원(寃)과 한(恨)을 품은 민중을 사로잡은 증산은 “세상의 참혹한 재앙은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침에 마침내 살기가 터져 나온 것”이라 하였으며 “만고의 원을 풀고 상생의 도로써 선경을 열어 조화정부를 열겠다” 하였다. 특히 여자들이 남자의 그늘에 갇혀 지내야 했던 당시 유교의 폐습을 깨고 여자들의 맺힌 마음 풀이를 강조하며 선구적인 남녀평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천지도수를 뜯어고쳐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아 새 판을 짜겠다는 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는 많은 농민과 하층민들에게 동학이 꺼지고 난 자리에 새롭게 타오르는 희망이 되었다. “천지간에 가득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땅 위에 생명을 받아 뛰어 노는 모든 동물, 창공을 나는 온갖 새들과 풀벌레, 심지어는 파리 모기와 같은 미물에게도 신명이 있다고 본 증산은 우주를 ‘생명의 조화덩어리’라 하였으니 미물도 어여삐 여겼다는 증산의 사상에서 오늘의 생태주의적 세계관을 읽는다. 약방 뒤편으로 대숲이 청정하다. ‘솥쩍다! 솥쩍다!’ 라고 운다든가. 맺힌 소리를 아직 다 토해내지 못한 소쩍새 울음소리가 저물녘 적요한 성지의 뜨락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남인희 기자 namu@jeonlado.com 가는 길: 금산사 나들목 진입-금산사 못미쳐 금평저수지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들어가면 동곡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