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와 나혜석,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이영은2008.08.05
조회927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지음)

나혜석 평전-내 무덤에 꽃 한송이 꽂아주오 (정규웅 지음)

 

 

        

 

 

 

 

**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그리고 까미유 끌로델이 그렇게 대단해?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예술에 손톱만큼의 관심만이라도 가진 자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나혜석을 제외한 프리다 칼로와 까미유 끌로델은

그들의 일생이 영화로 만들어 졌을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유명세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역사책 속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의

개인의 예술적 재능 때문일까?

아니면

드라마틱한 인생여정을 겪은, 그 시대엔 흔하지 않은 여성예술가를 향한

대중의 가벼운 호기심 때문일까?

 

 

불행히도 내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엔 능력이 부족하다.

두 권의 책을 읽은 후

대충 인터넷으로 그들의 그림과 조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내가 알아 낸 것이라고는

까미유 끌로델의 대표작 "왈츠"가

음악가 드뷔시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들어졌더라는 따위의 허접한 이야기 아니면

초현실주의와 야수파 색채를 띤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의 그림을

(나는 인상파 화가가 그린 풍경화가 최고의 그림인줄로만 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얼마나 미술에 관한한 문외한 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 것 뿐이었다.

 

 

** 나혜석

 

그녀는 남편 김우영과 결혼하며 3가지를 약속 받았다.

첫째-일생을 두고 지금처럼 나를 사랑할 것

둘째-어떤 경우에도 그림 그리는데 방해가 되지 말 것

셋째-시어니와 전 처의 딸과는 함께 살지 않을 것

 (나혜석 평전-101페이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지극히 일상이 되어버린 일들이

그녀가 살았던 시절엔 각서를 받아야 할 만큼 대단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혼 후 나혜석이 보여준 이기심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불쾌감을 준다.

 

자신의 그림그리기를 이유로 시댁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그녀는

어린 자식 셋을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맡기고는

남편과 1년 6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떠났다.

세계여행을 하는 동안 최린을 만난 나혜석은

"정조는 취미일 뿐"이라고 말하며 불륜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녀는 이혼 3년 후

 

가부장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를 비난하며

이혼 고백서를 내밀고

자신의 불륜 상대자 최린에겐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 이혼 고백서와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

 

나혜석의 이혼 고백서 (삼천리 1934, 8-9)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이나 동경 사람쯤 하더라도 내가 정조 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이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남의 정조를 유인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해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종종 방종한 여성이 있다면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저작시키는 일이 불소하외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냐."

-발췌-

 

 

정조는 취미일 뿐이라고 말했던 그녀가

정작 자신의 불륜 상대자에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이 모순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결국 그녀는 최린으로부터 합의금 수 천원을 받아냈다.

 

 

           나혜석의 자화상 

 

 

 

 

**프리다 칼로

 

그녀는 유독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다.

프리다 칼로 자화상의 특징은 눈썹이 일자로 붙어 있다.

그녀의 일자 눈썹 자화상을 분석해 놓은 의사의 해석이 재미있어 올려놓는다.

 

척추 대신 쇠파이프가 박혔고, 못이 온몸을 찌르는데도 멀리서 본 자화상 속 칼로의 얼굴은 어째 무표정한 것 같다. 문 교수는 특이하게도 눈썹에서 고통을 읽어 냈다. 치과 치료를 받는 환자는 입을 벌리고 있으니 아프단 말을 잘 못한다. 이때 노련한 의사는 눈썹을 보고 환자의 고통을 짐작한다. 아파서 이마를 찌푸리면 눈썹 사이에 있는 눈썹 주름근이 수축하면서 눈썹의 안쪽 부분이 밑으로 당겨진다. 칼로의 자화상은 이를 표현하듯 눈썹이 일자로 붙어 있다.”

 

 

 

멕시코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뿌리 혹은 거친 땅'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중남미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인

560만 달러에 팔렸다.

 

금속에 유화로 그려진 이 작품은 화산으로 뒤덮인 멕시코 대지를 배경으로 식물의 뿌리와 프리다 칼로의 핏줄이 얽혀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까미유의 대표작, ‘la Valse (왈츠)’ 1899년, 브론즈

 

끌로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면서 가장 에로틱한 작품이다.

로댕과 행복했던 시절의 말기에 제작되었다.

오른 팔의 유연한 몸짓, 여자 손이 남자의 손바닥을 살포시 잡고 있는 모습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감상자가 움직이면서 보아야한다.

 

 

 

 

 

:프리다 칼로-화가 (1907년 ~1954년 -멕시코)

 

7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 되었고, 1925년 18세 때 교통사고로 척추,  오른쪽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쳐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는 등 이 사고는 

그의 삶 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사고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프리다 칼로는 생전은 물론이고 1957년, 사후에도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서만 기억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존재는 새롭게 부각되었고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그림을 국보로 지정했다.

20세기 초반 제3세계 국가의 여성으로 태어나 강렬한 인상의 그림을 남긴

프리다 칼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80년 대 중반이다.

그러나 그녀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녀에게 금새 매료되는데,

그녀에 붉은색 주조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격정적인 삶과 20세기 초 혁명의 소용돌이와 애증의 굴레에 휘말렸던 그녀의 인생을 느끼기 때문이다.

-발췌-

 

 

:나혜석-화가, 작가 (1896년~1948년 -대한민국)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부유한 관료의 딸로 태어나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도쿄의 여자미술학교에서 유화를 공부했으며

그림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글재주도 뛰어나 문단에서까지 폭넓게 활동하였다.

나혜석의 삶은 1927년을 전후하여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남편 김우영과 함께 한 세계 여행길에서 한동안 남편과 떨어져

파리에 체류했던 그녀는 그 곳에서 최린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되고,

결국 이 일이 화근이 되어 남편으로부터 이혼 당한다.

나혜석의 외도는 그때까지 그녀에게 열광하던 사람들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혼 이후 나혜석은 궁지로 몰린 자신을 스스로 변명하고자

1934년 「이혼고백장」을 발표하고 자신을 유린한 최린에게 보상금을 요구하는 제소장을 냈지만 이일로 인해 그녀의 삶은 더욱 비참해진다.

재기를 위한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따른 건 화마와 병마, 외로움이었고 자식들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던 그녀는 1948년에 행려병자로 숨을 거둔다.

-발췌-

 

 

 

:까미유 끌로델 조각가 (1864년~ 1943년 -프랑스)

 

1864년 프랑스 동부에서 출생하여 1913년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감금되기까지

스승 로댕의 연인이자 모델, 공동작업자로, 프랑스 대시인이자 극작인 폴 끌로델의 누이로 생을 마감했다.

까미유의 작품세계가 로댕을 능가할 자질을 보여줄 무렵,

로댕은 그런 까미유를 경계한다

로댕을 위해 헌신했던 그녀는 마치 복수라도 하려는 듯 창작활동에 전념하지만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모든 것을 초월하고 오직 작품에만 매달린 그녀는

주위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세상과 단절된 까미유는 3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채

서서히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한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