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 큰 인기를 끈 책이 있다. 론다 번의 '시크릿(The Secret)'이다. 이 책에 따르면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등 존경 받는 위대한 사상가 과학자 창조자들은 모두 '위대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 비밀은 "긍정적인 생각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믿음이 만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이러한 긍정의 힘은 실제로 원하는 것을 이뤄지게 하는 힘을 지닌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들은 자기력과 같아서, 낙관적이고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밝은 기운이 찾아와 좋은 일만 일어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희망과 긍정의 힘에 크게 고무돼 있었다.
시야를 조금 넓혀 우리 주변을 보자. 촛불은 생활정치, 생명정치의 이름으로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 정부는 뒷북치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정치는 개점휴업 상태다. 주변국가는 영토 문제를 들이대며 염장을 질러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너무 태연하다. 진실보다 추문에 더 관심이 쏠리고, 미담보다 추담이 넘쳐난다. 제자리를 지키는 데가 별반 없다.
보수와 진보도 본연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보수란 여유, 능력, 양보, 느긋함으로 살아가야 하며, 진보란 결기, 기개, 도덕, 당당함으로 살아가야 한다. '보수다워야 한다'는 것은 여유와 양보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며, '진보다워야 한다'는 것은 결기와 도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선, 보수의 특권인 느긋함도 진보의 특권인 당당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척박한 정치공학 속에서 느긋함은 냉소로, 당당함은 자학으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다. 냉소의 역사, 자학의 역사에서 미래를 기약하기는 어렵다. 냉소하고 자학하는 민족에게 희망과 긍정을 부여한 다른 민족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냉소와 자학에 갇혀 자신의 긍정적 가능성을 논의하지 않는데 누가 자긍심과 자존감을 거론할 것인가 말이다.
건국 60년. 지난 60년은 앞으로의 60년 존재를 결정할 기준점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 현대사 60년의 마무리가 냉소와 자학으로 정리되는 일은 불행하다. 보수와 진보의 간극이 점점 좁혀지는 것이 오늘날 선진사회의 추세다. 보수가 강변하는 '사회의 시장화' 개혁과 진보가 강변하는 '시장의 사회화' 개혁이 일도양단식의 이분법으로 진행되는 선진사회는 없다. 효율성과 공공성은 더 이상 이것 아니면 저것의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정복해야 한다'는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태론적인 사고로의 전환이 이 시대의 흐름임을 알고 나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냉소와 자학의 정쟁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미숙아들의 집단놀이인지 알고도 남을 텐데 말이다. 보존하면서 개혁해야 함은 우리보다 훨씬 오랜 이념 논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구사회가 내놓은 해법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젠 시각을 바꿀 때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멋들어지게 이뤄낸 한국은 선진사회를 향해 시동을 걸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선진사회란 남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실주의 정치의 대표적인 계보로 여겨지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20대에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40대에 보수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언변이 뛰어난 정치가답게 그의 말은 흑백을 가로지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이분법적인 세대의 정치, 이념의 정치가 당시의 전략적인 목적에는 부합하였는지는 몰라도 오늘의 해법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20대에 보수, 40대에도 진보가 될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그게 요즘 현실이다. 반대 의견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냉소와 자학에 갇혀 있다면, 선진사회를 향한 미래는 요원한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긍정의 힘이란 다른 사람의 부정까지도 끌어안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에게 동침(同寢)을 제안하는 까닭이다.
보수, 진보...적과의 동침만이..살길이다.
적과의 동침
보수에 여유와 양보가 없고 진보에 결기와 도덕이 없다
냉소와 자학의 政爭에 갇혀 영영 시대의 미숙아로 남을건가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 큰 인기를 끈 책이 있다. 론다 번의 '시크릿(The Secret)'이다. 이 책에 따르면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등 존경 받는 위대한 사상가 과학자 창조자들은 모두 '위대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 비밀은 "긍정적인 생각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믿음이 만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이러한 긍정의 힘은 실제로 원하는 것을 이뤄지게 하는 힘을 지닌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들은 자기력과 같아서, 낙관적이고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밝은 기운이 찾아와 좋은 일만 일어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희망과 긍정의 힘에 크게 고무돼 있었다.
시야를 조금 넓혀 우리 주변을 보자. 촛불은 생활정치, 생명정치의 이름으로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 정부는 뒷북치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정치는 개점휴업 상태다. 주변국가는 영토 문제를 들이대며 염장을 질러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너무 태연하다. 진실보다 추문에 더 관심이 쏠리고, 미담보다 추담이 넘쳐난다. 제자리를 지키는 데가 별반 없다.
보수와 진보도 본연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보수란 여유, 능력, 양보, 느긋함으로 살아가야 하며, 진보란 결기, 기개, 도덕, 당당함으로 살아가야 한다. '보수다워야 한다'는 것은 여유와 양보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며, '진보다워야 한다'는 것은 결기와 도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선, 보수의 특권인 느긋함도 진보의 특권인 당당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척박한 정치공학 속에서 느긋함은 냉소로, 당당함은 자학으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다. 냉소의 역사, 자학의 역사에서 미래를 기약하기는 어렵다. 냉소하고 자학하는 민족에게 희망과 긍정을 부여한 다른 민족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냉소와 자학에 갇혀 자신의 긍정적 가능성을 논의하지 않는데 누가 자긍심과 자존감을 거론할 것인가 말이다.
건국 60년. 지난 60년은 앞으로의 60년 존재를 결정할 기준점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 현대사 60년의 마무리가 냉소와 자학으로 정리되는 일은 불행하다. 보수와 진보의 간극이 점점 좁혀지는 것이 오늘날 선진사회의 추세다. 보수가 강변하는 '사회의 시장화' 개혁과 진보가 강변하는 '시장의 사회화' 개혁이 일도양단식의 이분법으로 진행되는 선진사회는 없다. 효율성과 공공성은 더 이상 이것 아니면 저것의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정복해야 한다'는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태론적인 사고로의 전환이 이 시대의 흐름임을 알고 나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냉소와 자학의 정쟁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미숙아들의 집단놀이인지 알고도 남을 텐데 말이다. 보존하면서 개혁해야 함은 우리보다 훨씬 오랜 이념 논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구사회가 내놓은 해법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젠 시각을 바꿀 때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멋들어지게 이뤄낸 한국은 선진사회를 향해 시동을 걸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선진사회란 남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실주의 정치의 대표적인 계보로 여겨지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20대에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40대에 보수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언변이 뛰어난 정치가답게 그의 말은 흑백을 가로지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이분법적인 세대의 정치, 이념의 정치가 당시의 전략적인 목적에는 부합하였는지는 몰라도 오늘의 해법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20대에 보수, 40대에도 진보가 될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그게 요즘 현실이다. 반대 의견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냉소와 자학에 갇혀 있다면, 선진사회를 향한 미래는 요원한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긍정의 힘이란 다른 사람의 부정까지도 끌어안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에게 동침(同寢)을 제안하는 까닭이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