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순정.

양진혁20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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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에 재직하시는 아버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신다.

종종 특이한 사건이 있으면 나에게도 이야기해주시는데, 어제는 정말 뭐랄까, "남자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 이야기를 해주셨다.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성적도 낮고 싸움이 잦은 이른바 "문제아"였고, 여자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우등생"이었다.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이 사랑에 빠졌고, 고등학교 2,3학년을 사귀었다.

하지만 여자가 서울에 있는 일류대에 진학하고 남자는 대학진학에 실패하였고, 여자는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가야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서,

남자와 여자는 우연히 서울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루지 못한, 혹은 이루지 못할 사랑에, 둘은 다시 빠져들었다.

 

결혼 이야기는 여자가 먼저 꺼냈다.

물론 반대는 많았다. 계약직으로 변변찮은 돈을 버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자의 부모는 물론, 자신이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 남자도 결혼에 반대했다.

하지만 사랑의 힘이었을까, 결국 둘은 결혼에 성공하게 되었고, 처음 몇 년 간은 행복했다.

 

문제 또한 여자에게 먼저 발생했다.

동창회, 동문회에 갈 때마다,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그들의 남편은 의사에 변호사에 각종 전문직에 돈도 많이 벌어주고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고, 여자는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영원히 행복할 듯 했던 사랑은 식었고

여자는 결국 이혼을 요구했다.

 

남자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여자라 생각했던 탓일까.

자신을 떠나 더 행복하길 바랬던 것일까.

 

하지만 여자는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이혼 경력이 남아서는, 멋진 남자를 만나서 재혼하기 힘들었다.

이혼 경력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여자는 변호사에게서 그 방법을 듣게 된다.

 

둘의 혼인신고가, 사실은 남자 측에 의해 무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소송을 통해 결혼을 "취소"할 수 있고, 이는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방법을 사용했을 때 남자는 공문서 위조 혐의로 처벌받는다는 것이다.

 

여자는 부탁, 아니 요구했다.

아무리 고등학교 때 불량했더라도 남자에겐 전과기록이 하나도 없었고, 여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남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 부탁을 들어 주었고, 결국 수감되었다.

 

이 이야기는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결국 여자는 깨끗한 기록으로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남자가 죄가 없음을 안 검찰 측은 남자를 무혐의로 풀어주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자가 무고죄(죄가 없는 사람을 죄가 있다고 한 죄)로 처벌받게 된다는 걸 안 남자의 간청으로, 남자는 기소유예(처벌을 미루는 것, 전과기록은 남는다)로 풀려나게 되었다. 끝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여자를 지키려 한 것이다.

 

 

누군가는 남자의 이 사랑을 바보같다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이 남자의 사랑을 쉽게 생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