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히말라야의 K2봉을 등정하던 산악인 6명이 정상 바로 밑에서 눈사태로 사망하였는데 그중에 한국인이 3명이라고 한다.
히말라야에서 한국원정대가 목숨을 잃은 것은 1971년 마나슬루 원정대의 김기섭이 정상등정을 목전에 둔 캠프 5에서 돌풍으로 크레바스에 떨어져 추락사한 것을 비롯하여 다음해인 1972년 다시 제2차 마나슬루 원정대가 캠프 3에서 눈사태를 맞아 대원 5명과 셰르파 10명 등 15명이 사망한 사고가 대표적이다.
원정대의 김정섭 대장은 마나슬루 1차 원정에서 김기섭 대원을, 2차 원정에서 김호섭 대원을 잃어 두 동생을 히말라야에 묻어야만 하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산에 대하여 잘 모르던 시절
멀쩡한 사람들이 밥먹고 할 일이 없는 것처럼 산에 갔다가 목숨을 잃고 돌아오지 못하는 일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었다.
공무원 시절, 지방에서 등산에 취미를 갖게 되면서 암벽, 원정등반까지는 못하였지만, 필자도 백두대간을 3분의 2정도까지 주파하고, 한국의 100명산을 주말마다 오르는 재미로 살다가 겨울철에 무모하게 혼자 설악산 공룡능선을 가던중 눈폭풍을 만나 죽음의 직전까지 맛보면서 산이라는 객체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http://blog.joins.com/choe0ho/7562784).
그 무렵 필자는 매월 발간되는 등산잡지 2개를 몇 년 동안 계속 보고 있었는데 어느날 사무실에서 등산잡지에 실린 어떤 여인의 사부곡을 읽으면서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어떤 죽음이고 슬프고 애통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마는
사랑하는 남편을 산에서 보내고 난 뒤 여인이 겪는 아픔과 남편에 대한 사랑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적셨으리라...
평범한 간호사이던 그녀는 1989년 친구들과 도봉산에 갔다가 암벽등반에 발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하여 직장도 포기할 정도로 열중하여 수많은 등반대회에 입상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간다.
등산학교의 강사로 일하던 그녀는 1995년 같은 강사로 일하던 사나이의 도움으로 한국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340미터나 되는 설악산 토왕빙폭을 단독등반하게 된다.
위험한 고비를 목숨을 걸고 보살펴준 네 살 아래의 위 사나이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는 평생을 그와 함께 산에 오르기로 하면서 서울이 가까운 곳에 조그만 둥지를 튼다.
함께 인공암장을 열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딸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들은 도봉산 산장에서 뒤늦은 결혼식을 올린 뒤 아껴 모은 돈을 털어 신혼여행으로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1,000미터가 넘는 수직암벽 엘 캐피탄을 오른다.
몇 년 전 그가 단독으로 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벽이라고 믿었던 그곳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데리고 간 것일까?
사나이는 총각시절 그와 함께 쌀 한 말씩 걸머지고 집을 나와 전국의 암벽을 순례하던 그의 영원한 자일 파트너를 부부의 신혼여행에 끼워넣고야 만다.
아내와 같이 엘 캐피탄 정상에 오른 사나이는 아내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하여 정상에서 패러그라이더를 타고 내려오면서 하늘을 향하여 그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사랑하는 딸 아이를 위하여 5년 동안만 등반을 하고 그 뒤에는 오로지 생활에 치중하기로 한 그들은 5년간의 등반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1차로 1998년 사나이는 신혼여행까지 데리고 갔던 그의 영원한 자일 파트너와 또 다른 사나이를 데리고 탈레이샤가르(해발 6,904미터) 북벽을 오른다.
탈레이샤가르....
히말라야의 인도쪽에 위치한 탈레이샤가르는 다른 거봉들보다 높이는 낮지만, 그 북벽은 한국의 등반대가 여섯 번이나 등정에 실패하여 “악마의 성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험난한 봉우리다.
1998년 추석
아내는 아침 일찍 차례상을 물리고 한숨 돌리던 중
날벼락을 맞는다.
1998. 9. 28. 오후 5시 정상을 100미터 눈앞에 둔 세 사나이
구름이 산봉우리를 휩싸는 순간 1,300미터 아래로 추락한 그들은 한 가닥의 로프로 서로의 몸을 묶어 연결한 채 편안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이의 옆에는 예전의 그 자일 파트너가 언제나처럼 같은 로프를 감고 그를 향하여 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 괜찮어?”
사나이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이었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빨리 나르기 위하여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죽을 힘을 다하여 날기만 하다가 생을 마치는 갈매기....
높이 오르면
멀리 나르면
빨리 나르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처럼....
사나이는 그녀를 그렇게 떠나갔다.
텐트 플라이에 쌓여온 사나이의 몸을 거두고
화장하여 한 그릇의 재로 바뀐 그의 몸을 인도의 이름모르는 강물에 뿌리면서 아내는 울부짖는다.
그 울부짖는 조사가 등산잡지에 실려서 나를 울렸다.
K2 원정대의 비극을 들으면서 그녀의 울부짖음이 그리워 그때 잡지를 찾았으나 여기저지 전출을 다니면서 어디로인가 없어지고, 인터넷으로 며칠동안 검색을 하였지만, 결국 그 내용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울부짖던 그녀가 남편을 잃은지 10년만에 후배 여성산악인 세 명과 함께 파키스탄의 거벽 트랑고타워(해발 6,239m)를 오르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고 한다.
10년전 사나이와 그의 영원한 자일 파트너가 한국인 최초로 코리아 환타지라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였던 트랑고 타워로.....
사랑하는 사람이여, 안녕....
(유럽 최고봉 융프라우요흐에서 바라본 알레치 빙하)
[사랑하는 사람이여, 안녕]
며칠전 히말라야의 K2봉을 등정하던 산악인 6명이 정상 바로 밑에서 눈사태로 사망하였는데 그중에 한국인이 3명이라고 한다.
히말라야에서 한국원정대가 목숨을 잃은 것은 1971년 마나슬루 원정대의 김기섭이 정상등정을 목전에 둔 캠프 5에서 돌풍으로 크레바스에 떨어져 추락사한 것을 비롯하여 다음해인 1972년 다시 제2차 마나슬루 원정대가 캠프 3에서 눈사태를 맞아 대원 5명과 셰르파 10명 등 15명이 사망한 사고가 대표적이다.
원정대의 김정섭 대장은 마나슬루 1차 원정에서 김기섭 대원을, 2차 원정에서 김호섭 대원을 잃어 두 동생을 히말라야에 묻어야만 하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산에 대하여 잘 모르던 시절
멀쩡한 사람들이 밥먹고 할 일이 없는 것처럼 산에 갔다가 목숨을 잃고 돌아오지 못하는 일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었다.
공무원 시절, 지방에서 등산에 취미를 갖게 되면서 암벽, 원정등반까지는 못하였지만, 필자도 백두대간을 3분의 2정도까지 주파하고, 한국의 100명산을 주말마다 오르는 재미로 살다가 겨울철에 무모하게 혼자 설악산 공룡능선을 가던중 눈폭풍을 만나 죽음의 직전까지 맛보면서 산이라는 객체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http://blog.joins.com/choe0ho/7562784).
그 무렵 필자는 매월 발간되는 등산잡지 2개를 몇 년 동안 계속 보고 있었는데 어느날 사무실에서 등산잡지에 실린 어떤 여인의 사부곡을 읽으면서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어떤 죽음이고 슬프고 애통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마는
사랑하는 남편을 산에서 보내고 난 뒤 여인이 겪는 아픔과 남편에 대한 사랑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적셨으리라...
평범한 간호사이던 그녀는 1989년 친구들과 도봉산에 갔다가 암벽등반에 발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하여 직장도 포기할 정도로 열중하여 수많은 등반대회에 입상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간다.
등산학교의 강사로 일하던 그녀는 1995년 같은 강사로 일하던 사나이의 도움으로 한국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340미터나 되는 설악산 토왕빙폭을 단독등반하게 된다.
위험한 고비를 목숨을 걸고 보살펴준 네 살 아래의 위 사나이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는 평생을 그와 함께 산에 오르기로 하면서 서울이 가까운 곳에 조그만 둥지를 튼다.
함께 인공암장을 열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딸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들은 도봉산 산장에서 뒤늦은 결혼식을 올린 뒤 아껴 모은 돈을 털어 신혼여행으로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1,000미터가 넘는 수직암벽 엘 캐피탄을 오른다.
몇 년 전 그가 단독으로 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벽이라고 믿었던 그곳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데리고 간 것일까?
사나이는 총각시절 그와 함께 쌀 한 말씩 걸머지고 집을 나와 전국의 암벽을 순례하던 그의 영원한 자일 파트너를 부부의 신혼여행에 끼워넣고야 만다.
아내와 같이 엘 캐피탄 정상에 오른 사나이는 아내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하여 정상에서 패러그라이더를 타고 내려오면서 하늘을 향하여 그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사랑하는 딸 아이를 위하여 5년 동안만 등반을 하고 그 뒤에는 오로지 생활에 치중하기로 한 그들은 5년간의 등반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1차로 1998년 사나이는 신혼여행까지 데리고 갔던 그의 영원한 자일 파트너와 또 다른 사나이를 데리고 탈레이샤가르(해발 6,904미터) 북벽을 오른다.
탈레이샤가르....
히말라야의 인도쪽에 위치한 탈레이샤가르는 다른 거봉들보다 높이는 낮지만, 그 북벽은 한국의 등반대가 여섯 번이나 등정에 실패하여 “악마의 성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험난한 봉우리다.
1998년 추석
아내는 아침 일찍 차례상을 물리고 한숨 돌리던 중
날벼락을 맞는다.
1998. 9. 28. 오후 5시 정상을 100미터 눈앞에 둔 세 사나이
구름이 산봉우리를 휩싸는 순간 1,300미터 아래로 추락한 그들은 한 가닥의 로프로 서로의 몸을 묶어 연결한 채 편안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이의 옆에는 예전의 그 자일 파트너가 언제나처럼 같은 로프를 감고 그를 향하여 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 괜찮어?”
사나이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이었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빨리 나르기 위하여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죽을 힘을 다하여 날기만 하다가 생을 마치는 갈매기....
높이 오르면
멀리 나르면
빨리 나르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처럼....
사나이는 그녀를 그렇게 떠나갔다.
텐트 플라이에 쌓여온 사나이의 몸을 거두고
화장하여 한 그릇의 재로 바뀐 그의 몸을 인도의 이름모르는 강물에 뿌리면서 아내는 울부짖는다.
그 울부짖는 조사가 등산잡지에 실려서 나를 울렸다.
K2 원정대의 비극을 들으면서 그녀의 울부짖음이 그리워 그때 잡지를 찾았으나 여기저지 전출을 다니면서 어디로인가 없어지고, 인터넷으로 며칠동안 검색을 하였지만, 결국 그 내용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울부짖던 그녀가 남편을 잃은지 10년만에 후배 여성산악인 세 명과 함께 파키스탄의 거벽 트랑고타워(해발 6,239m)를 오르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고 한다.
10년전 사나이와 그의 영원한 자일 파트너가 한국인 최초로 코리아 환타지라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였던 트랑고 타워로.....
어느덧 12살이 된 딸의 전송을 받으면서....
그녀는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의 흔적을 찾아 나섰으리라....
그녀의 성공적인 등정을 기원해본다.
(‘08. 8. 9.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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