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7일 김용태국회의원을 만났습니다. 먼저 첫번째글은 김용태의원이 저를 만나고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제가 느낀점을 쓴 글입니다.
'불법시위 엄정대처'를 비판한 고3 이준희 학생과의 만남
지난 8월 1일 '회생의 비밀은 용기다'라는 저의 글을 보고, 우리 동네 신정5동에 사는 고3 이준희 학생이 여기 홈페이지(www.ytnetwork.or.kr)에 실명으로 글을 올려, 제 의견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실명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다니는 학교는 물론 집주소까지 공개하는 기백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어제 8월 7일 지역사무소에서 이준희 학생을 만났습니다. 예의 혈기방자하고 팔팔한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영리하게 생기고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친구였습니다. 우선 너무 반갑고, 우리 동네에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용기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약 50분에 걸쳐 세상 돌아가는 얘기, 제가 살아온 얘기, 준희 학생이 궁금해 하는 것, 그리고 왜 이 정국에서 그토록 강경한 발언들을 했는 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참으로 많은 지식을 가진 청년이더군요. 놀랐습니다. 저 고3때와 비교한다면, 정말 세상에 대한 숱한 정보와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정보 체계와 입장이 뚜렷한 '지향(orientation)'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이명박 정부는 8.15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하려 하는데, 이는 임시정부의 적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이는 헌법에도 나오는 임시정부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저에게 따져 묻더군요. 이 질문에는 이승만 대 김구의 대결구도, 그리고 1948년 한반도 38선 이남에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史實)에 대한 비판적 사관까지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이 사안은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사관 대립의 절정 중에 하나인 사안이며 지금도 치열하게 논쟁 중입니다.
저는 1945년 8.15는 민족으로서는 광영을 찾은 뜻 깊은 날이지만, 대부분 외부의 힘에 의한 해방이었고, 1948년 8.15는 비록 한반도 남쪽에 국한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초로 한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이므로, 이 날 또한 광복절과 더불어 기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이 사안에 대해 고3 학생이 어떻게 그렇게 분명한 '지향'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史觀이 고3 학생에게 각인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역사의 굴곡과 그 뒤안길에서의 아픔을 포함하고서라도, 식민지의 고통, 전쟁의 폐허, 절대빈곤의 절망을 뚫고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 투쟁, 첨단수출산업과 내수시장의 확대를 이룩하고 이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제 부모님은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자식들 배불리 먹이고 공부 잘 가르치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던 분들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조그만 공장을 하셔서, 우리 3형제 자식을 길렀습니다. 많을 때는 10명, 적을 때는 달랑 2명 정도의 직원을 데리고 쉼 없이 일하셨습니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월말이면 집안이 완전 북새통이 되고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며 싸웠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주려고 수금하려 다니고 달러돈 빌러 다니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평생 자랑(어머니는 너무 이른 나이에 중병으로 돌아가셨구요)은 직원들 월급은 한 번도 밀려보지 않았다는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 부모님처럼 정말 건강한 노동윤리를 가지시고 소리 없이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가족을 지키고 자그나마 사회에 공헌하는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최고의 영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자기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하면서 가족을 지키고 자그나마 사회에 공헌하는 일,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이며,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 가장 강력한 동력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긍정적 사고로 현재의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것, 저는 그것을 제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天道無親常與善人, 노자는 말합니다. 하늘의 뜻은 치우침이 없다, 다만 올바른 자에게 향할 뿐이다. 이제 제 좌우명이라면 좌우명입니다.
이준희 학생과의 만남은, 4월 9일 이후 정신 없이 뛰었던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한여름 시원한 소낙비였습니다. 오히려 이준희 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준희 학생이 부지런히 공부하여 정말 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가족에 최선을 다하며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진정 큰 사람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제가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의 대국민 신년 메시지를 쓴 적이 있는데, 이 글과 어울린다 생각하여 뒤에 붙입니다.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용태 올림
간단하게 몇 마디로 소감을 표현하자면, '놀람'과 '씁쓸함' 그리고 '이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놀람에 대해서 말을 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일종의, 뭐랄까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번 만남으로 그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완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놀랐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정치인이 굉장히 권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김용태의원님은 뭐랄까,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시민들 의견에 일일이 답변해주는 모습, 그리고, 만나자고하면 직접 전화와 문자를 통해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모습을 통해서 한나라당에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저이지만, 놀랐습니다. 이 모습은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민노당 자선당 창한당등등 여러 당에서도 배우면 좋을 모습이라고 생각 됩니다.
다음은 씁쓸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김용태의원 지역사무소에 가서, 지역구 공약을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별로 의견차가 없었습니다만, 현재 국가적인 이슈인 촛불시위와 건국절논란에서는 의견차를 보였습니다. 물론 시간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이 부분에선 굉장히 씁쓸하게 느꼈습니다. 특히나 건국절 논란은 김용태의원님은 인정한다는 의견이었고, 저는 반대하는 의견 이였기에 더욱 씁쓸했습니다. 또한, 촛불시위와 조선일보 관련한 문제도 개인적인 의견차가 있기에, 또한 이를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하지만, 물리적인 제약과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점도 굉장히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김 의원님께서 왜 정치를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실 때,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너무 어려워 직접모스크바를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때, 김 의원님은 이념을 버리고 실사구시 그리고 무실역행의 정치를 하고 싶어 정치인의 뜻을 두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점에 대해서 굉장히 좋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라 함은 자기 가지고 있는 이념의 틀에서 이상사회를 건설하고 그 이상사회를 건설하기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해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진짜 반 한나라당 감정이 심하단 걸 알 수 있습니다. 가까운 다음아고라 토론방이나 뭐 제가 자주 가는 Seoprise.com 혹은 네이버에서도 반 한나라당 감정이 심한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거의 10명의 9명은 한나라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새 정부 들어서서 소위 언니게이트라고 불리는 김옥희 여사 문제, 서울시의회의 단체 뇌물수수의혹 또 청도 군수 뇌물의혹 그리고 오늘 아침 나온 한나라당 유한열 의원의 군납비리 등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고, 매번들은 국민들에게 사과한다. 사죄한다. 등등을 외치면서 국민들이 자신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김용 태의원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듭니다. 김용태의원님이 말씀해 주셨지요. '지역사무소 빌딩 1층에 있던 쇠고기집이 망해서 문을 닫았다'라고요. 물론 그분의 심정도 백배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들이 정말이지 땡깡으로밖에 안보이는것입니까. 저는 이 부분에서 김 의원님이 국민을 이해하는 넓은 포용력의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 또한, 정말 생업 제쳐두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21세기 현대사회는 대화와 타협의 사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에 따라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촛불시위와 쇠고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70,80년대 강경대처로 막는 것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오해가 있으면 오해를 풀고, 이 부분이 서로 극한의 대립을 향하고 있으면 서로 한걸음 씩 양보해서 합의형 여론을 형성한 다음 국민통합을 바라보는 것이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특공대투입이나 물대포 방패 찍기, 색소가 들은 물 분사가 대안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이런 식의 대응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김 의원님이 그 쇠고기집 사장님을 이해하시는 만큼,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이해해주시는 포용력을 가져주셨음 합니다.
정치인을 꿈꾸고 있는 저에게는 참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 이였습니다. 난생처음 만나보는 정치인, 거기다 제가 주로 비판을 했던 한나라당의 정치인 이란 점에서 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만남의 내용 또한 질적으로 완벽했습니다. 마치 직업탐방을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정말이지 재밌었습니다. 물론 의견차를 줄이지 못한 점 어느 정도 대립되는 의견이 있었던 점은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한나라당 김용태의원님과 이준희의 만남이란 것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제가 민주주의를 배울 때 감시와 통제라는 원리를 배웠습니다. 저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시민이기에 김 의원님이 잘한 행동을 하실 땐 잘한다고 응원을 해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때는 거친 비판도 할 것입니다. 모쪼록 김 의원님을 만나서 반가웠고 즐거웠습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만나고 왔습니다.
8월7일 김용태국회의원을 만났습니다. 먼저 첫번째글은 김용태의원이 저를 만나고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제가 느낀점을 쓴 글입니다.
'불법시위 엄정대처'를 비판한 고3 이준희 학생과의 만남
지난 8월 1일 '회생의 비밀은 용기다'라는 저의 글을 보고, 우리 동네 신정5동에 사는 고3 이준희 학생이 여기 홈페이지(www.ytnetwork.or.kr)에 실명으로 글을 올려, 제 의견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실명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다니는 학교는 물론 집주소까지 공개하는 기백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어제 8월 7일 지역사무소에서 이준희 학생을 만났습니다. 예의 혈기방자하고 팔팔한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영리하게 생기고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친구였습니다. 우선 너무 반갑고, 우리 동네에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용기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약 50분에 걸쳐 세상 돌아가는 얘기, 제가 살아온 얘기, 준희 학생이 궁금해 하는 것, 그리고 왜 이 정국에서 그토록 강경한 발언들을 했는 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참으로 많은 지식을 가진 청년이더군요. 놀랐습니다. 저 고3때와 비교한다면, 정말 세상에 대한 숱한 정보와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정보 체계와 입장이 뚜렷한 '지향(orientation)'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이명박 정부는 8.15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하려 하는데, 이는 임시정부의 적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이는 헌법에도 나오는 임시정부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저에게 따져 묻더군요. 이 질문에는 이승만 대 김구의 대결구도, 그리고 1948년 한반도 38선 이남에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史實)에 대한 비판적 사관까지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이 사안은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사관 대립의 절정 중에 하나인 사안이며 지금도 치열하게 논쟁 중입니다.
저는 1945년 8.15는 민족으로서는 광영을 찾은 뜻 깊은 날이지만, 대부분 외부의 힘에 의한 해방이었고, 1948년 8.15는 비록 한반도 남쪽에 국한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초로 한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이므로, 이 날 또한 광복절과 더불어 기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이 사안에 대해 고3 학생이 어떻게 그렇게 분명한 '지향'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史觀이 고3 학생에게 각인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역사의 굴곡과 그 뒤안길에서의 아픔을 포함하고서라도, 식민지의 고통, 전쟁의 폐허, 절대빈곤의 절망을 뚫고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 투쟁, 첨단수출산업과 내수시장의 확대를 이룩하고 이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제 부모님은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자식들 배불리 먹이고 공부 잘 가르치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던 분들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조그만 공장을 하셔서, 우리 3형제 자식을 길렀습니다. 많을 때는 10명, 적을 때는 달랑 2명 정도의 직원을 데리고 쉼 없이 일하셨습니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월말이면 집안이 완전 북새통이 되고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며 싸웠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주려고 수금하려 다니고 달러돈 빌러 다니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평생 자랑(어머니는 너무 이른 나이에 중병으로 돌아가셨구요)은 직원들 월급은 한 번도 밀려보지 않았다는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 부모님처럼 정말 건강한 노동윤리를 가지시고 소리 없이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가족을 지키고 자그나마 사회에 공헌하는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최고의 영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자기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하면서 가족을 지키고 자그나마 사회에 공헌하는 일,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이며,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 가장 강력한 동력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긍정적 사고로 현재의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것, 저는 그것을 제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天道無親常與善人, 노자는 말합니다. 하늘의 뜻은 치우침이 없다, 다만 올바른 자에게 향할 뿐이다. 이제 제 좌우명이라면 좌우명입니다.
이준희 학생과의 만남은, 4월 9일 이후 정신 없이 뛰었던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한여름 시원한 소낙비였습니다. 오히려 이준희 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준희 학생이 부지런히 공부하여 정말 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가족에 최선을 다하며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진정 큰 사람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제가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의 대국민 신년 메시지를 쓴 적이 있는데, 이 글과 어울린다 생각하여 뒤에 붙입니다.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용태 올림
간단하게 몇 마디로 소감을 표현하자면, '놀람'과 '씁쓸함' 그리고 '이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놀람에 대해서 말을 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일종의, 뭐랄까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번 만남으로 그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완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놀랐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정치인이 굉장히 권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김용태의원님은 뭐랄까,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시민들 의견에 일일이 답변해주는 모습, 그리고, 만나자고하면 직접 전화와 문자를 통해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모습을 통해서 한나라당에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저이지만, 놀랐습니다. 이 모습은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민노당 자선당 창한당등등 여러 당에서도 배우면 좋을 모습이라고 생각 됩니다.
다음은 씁쓸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김용태의원 지역사무소에 가서, 지역구 공약을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별로 의견차가 없었습니다만, 현재 국가적인 이슈인 촛불시위와 건국절논란에서는 의견차를 보였습니다. 물론 시간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이 부분에선 굉장히 씁쓸하게 느꼈습니다. 특히나 건국절 논란은 김용태의원님은 인정한다는 의견이었고, 저는 반대하는 의견 이였기에 더욱 씁쓸했습니다. 또한, 촛불시위와 조선일보 관련한 문제도 개인적인 의견차가 있기에, 또한 이를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하지만, 물리적인 제약과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점도 굉장히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김 의원님께서 왜 정치를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실 때,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너무 어려워 직접모스크바를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때, 김 의원님은 이념을 버리고 실사구시 그리고 무실역행의 정치를 하고 싶어 정치인의 뜻을 두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점에 대해서 굉장히 좋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라 함은 자기 가지고 있는 이념의 틀에서 이상사회를 건설하고 그 이상사회를 건설하기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해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진짜 반 한나라당 감정이 심하단 걸 알 수 있습니다. 가까운 다음아고라 토론방이나 뭐 제가 자주 가는 Seoprise.com 혹은 네이버에서도 반 한나라당 감정이 심한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거의 10명의 9명은 한나라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새 정부 들어서서 소위 언니게이트라고 불리는 김옥희 여사 문제, 서울시의회의 단체 뇌물수수의혹 또 청도 군수 뇌물의혹 그리고 오늘 아침 나온 한나라당 유한열 의원의 군납비리 등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고, 매번들은 국민들에게 사과한다. 사죄한다. 등등을 외치면서 국민들이 자신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김용 태의원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듭니다. 김용태의원님이 말씀해 주셨지요. '지역사무소 빌딩 1층에 있던 쇠고기집이 망해서 문을 닫았다'라고요. 물론 그분의 심정도 백배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들이 정말이지 땡깡으로밖에 안보이는것입니까. 저는 이 부분에서 김 의원님이 국민을 이해하는 넓은 포용력의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 또한, 정말 생업 제쳐두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21세기 현대사회는 대화와 타협의 사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에 따라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촛불시위와 쇠고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70,80년대 강경대처로 막는 것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오해가 있으면 오해를 풀고, 이 부분이 서로 극한의 대립을 향하고 있으면 서로 한걸음 씩 양보해서 합의형 여론을 형성한 다음 국민통합을 바라보는 것이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특공대투입이나 물대포 방패 찍기, 색소가 들은 물 분사가 대안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이런 식의 대응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김 의원님이 그 쇠고기집 사장님을 이해하시는 만큼,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이해해주시는 포용력을 가져주셨음 합니다.
정치인을 꿈꾸고 있는 저에게는 참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 이였습니다. 난생처음 만나보는 정치인, 거기다 제가 주로 비판을 했던 한나라당의 정치인 이란 점에서 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만남의 내용 또한 질적으로 완벽했습니다. 마치 직업탐방을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정말이지 재밌었습니다. 물론 의견차를 줄이지 못한 점 어느 정도 대립되는 의견이 있었던 점은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한나라당 김용태의원님과 이준희의 만남이란 것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제가 민주주의를 배울 때 감시와 통제라는 원리를 배웠습니다. 저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시민이기에 김 의원님이 잘한 행동을 하실 땐 잘한다고 응원을 해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때는 거친 비판도 할 것입니다. 모쪼록 김 의원님을 만나서 반가웠고 즐거웠습니다.^^.
이준희 올림
ⓒ이준희(jhlee091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