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김선미200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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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만년晩年
그는 자살을 전제로 유서를 남기듯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에 대해 작가 자신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나는 이 단편집 한 권을 위해 10년을 허비했다. 만 10년, 보통시민과 똑같은 산뜻한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다. 나는 이 책 한 권을 위해 은신처를 잃고, 끊임없이 자존심에 상처 입고 세상의 찬바람을 호되게 맞으며 그렇게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혀를 데이고 가슴을 태우고 내 몸을 도저히 회복 불가능할 때까지 일부러 망가뜨렸다. 백 편이 넘는 소설을 찢어 없앴다. 원고지 5만 매. 그래서 남은 거라곤 겨우 이것뿐이다. 이것뿐. 그렇지만 나는 믿는다. 이 단편집 은 해가 거듭될수록 한층 더 선명하게 그대의 눈에, 그대의 가슴에 침투해 갈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나는 오로지 이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 어쨌건, 한 권이 그대의 두 손때로 검게 빛날 때까지 몇 번이고 거듭 애독될 것을 생각하면 아아, 나는 행복하다"
죽으려고 생각했다. 올해 설날, 옷감을 한 필 받았다. 새해 선물이다. 천은 삼베였다. 쥐색 줄무늬가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여름에 입는 거겠지.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생각했다.
나는 평생 이런 우울과 싸우다 죽게 되는구나,

"가을까지 살아남아 있는 모기를 슬픈 모기라 한단다. 모깃불은 피우지 않는 법. 불쌍하기 때문이지." "맙소사. 슬픈 모기는 나인 걸. 허망해......"
예술의 미(美)는 결국 시민에 대한 봉사의 미다.
"죽는 게 가장 좋은 거야. 아냐, 나만이 아냐. 적어도 사회의 진보에 마이너스 역할을 하는 녀석들은 전부 죽어 버리면 되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너 말해 봐, 마이너스가 되는 녀석이든 뭐든 사람은 모두 죽어서는 안되는 과학적인 뭔가 이유라도 있기나 한가 말야."
거짓 없는생활. 그 말부터 이미 거짓이었다. 좋은 것을 좋다 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한다. 그것도 거짓이었다. 우선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마음에 거짓이 있겠지. 저것도 더럽다, 이것도 더럽다 하고 사부로는 매일 밤 잠못 이루는 고통을 겪었다. 사부로는 이윽고 한 가지 태도를 발견했다. 무의지 무감동의 백치의 태도였다. 바람처럼 사는 것이다.

무의지 무감동의 태도가 의심스러워진 것이다. 이거야말로 거짓 지옥의 깊은 산이다. 의식해서 노력한 백치가 어째서 거짓이 아닐 수 있겠는가. 노력하면 할수록 나는 거짓에 덧칠을 해 간다. 한마디 변명을 늘어놓기가 무섭게 계속해서 자꾸자꾸 앞에 한 말을 뒤쫓아 가 결국은 천만 단어의 주석. 그리하여 뒤에 남는 것은 두통과 발열과, 아아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는 자책. 연이어 똥통에 빠져 익사하고 싶다는 발작.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내 동상을 세우게 된다면 오른쪽 발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몸을 살짝 뒤로 젖힌 상태에서 왼손은 조끼 주머니 속에 넣고 오른손으로는 잘못 쓴 원고를 구겨쥔 동상을 만들어주시오. 그리고 머리는 붙이지 말아주시오. 별다른 의미는 없소. 단지 참새 똥을 머리에 뒤집어 쓰는게 싫을 뿐이요. 또한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주시오.
'잘못쓴 원고를 찢는데 일생을 소비한 한 사내가 여기 잠들다'

 

 

인간실격
원래 그것은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결코 웃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 증거로 이 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질 않은가. 인간은 주먹을 쥐고서는 웃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어릿광대 노릇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求愛)였습니다. 나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을 단념할 수는 정말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어릿광대 노릇이라는 단 하나의 끈으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끊임없이 웃는 얼굴을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 성공하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위기일발의 진땀을 흘리는 서비스였습니다.
그러나 꼭 하룻밤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자 나는 원래의 경박하고 가장된 어릿광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합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으로 상처를 받는 일도 있습니다. 상처를 받기 전에 빨리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서 초조하고, 늘 쓰는 수법인 어릿광대 노릇으로 연막을 둘러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기도를 하면 하느님이 무엇이든지 다 주신다는 것 정말야?" 나야말로 그런 기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아, 나에게 냉정한 의지를 주시옵소서. 나에게 '인간' 의 본질을 깨닫게 해 주소서. 사람이 사람을 밀어 젖혀도 죄가 되지 않습니까? 나에게 분노의 마스크를 주시옵소서. "그래, 그렇단다. 시게코에게는 무엇이나 다 주시겠지만 아빠에게는 허사일지도 몰라."
그래서 또 다음 날도 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름없는 습관을 따르면 된다. 즉, 거칠고 큰 환락을 피하고만 있다면, 자연히 커다란 비애도 오지 않는 것이다. 갈 길을 막는 걸리적거리는 돌을 두꺼비는 비잉 돌아서 지나간다. (우에다 도시가 번역한, 기 샤를로 클로라든가 하는 사람이 쓴 이런 시구를 발견했을 때, 나는 혼자서 타오르는 것처럼 얼굴을 붉혔습니다.)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끝내 저한테 그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터득했더라면 제가 인간을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필사적인 서비스 같은 것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말입니다. 인간의 삶과 대립되어 밤이면 밤마다 지옥 같은 괴로움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했지만 '우정'이라는 것을 한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었고 (호리키처럼 놀 때만 어울리는 친구는 별도로 하고) 모든 교제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어서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느라 오히려 기진맥진해지곤 했습니다. 조금 아는 사람의 얼굴이나 그 비슷한 얼굴이라도 길거리에서 보게 되면 움찔하면서 일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전율이 엄습할 지경이어서, 남들한테 호감을 살 줄은 알았지만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저는 이 세상 인간들에게 과연 '사랑' 하는 능력이 있는지 어떤지 대단히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소위 '친구'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고 게다가 저한테는 '방문' 하는 능력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나에게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다만 모든 일체의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사양斜陽
불량(不良) 아닌 인간이 있을까. 모래를 씹는 심정. 돈이 아쉽다. 그게 아니면, 잠든 채로 이루어지는 자연사(自然死)
행복감이란 것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沙金)같은 게 아닐지. 슬픔의 극치를 통과해서 보는 기이한 엷은 빛을 보는 심정.
아아, 이 사람들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나의 연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가 싶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아무렇게라도 끝을 볼 때까지 살아야 한다면, 이 사람들이 끝을 볼 때까지 살아 가려고 애를 쓰는 모습도 노상 미워만 할 수 없지 않을까. 살아 가는 일, 살아 가는 일, 그건 어쩌면 이토록 숨이 막히는 대사업일까.
날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세월 고생 많이 끼쳤습니다. 사요나라. 어젯밤에 마신 술은 깨끗이 깨어 있습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죽습니다. 한 번 더 사요나라. 누나. 나는 귀족입니다.
내가 조숙한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댔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글 못 쓴다고 수군댔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부자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댔다. 내가 냉담한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녀석이라고 수군댔다. 하지만 내가 정말 괴로워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척한다고 수군댔다. 자꾸만, 빗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