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안용식 교수팀 분석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지금의 경위에 해당되는 경부보 이상 경찰간부직에 몸담은 한국인 930명의 명단이 정리됐다. 더불어 식민 당국에서 정근증서를 받은 한국인 순사 3천854명의 명단 또한 밝혀졌다.
연세대 행정학과 안용식 명예교수팀은 이런 연구성과를 정리한 단행본 '일제하 한국인경찰 연구'(한국국정관리학회)를 최근 펴냈다.
안 교수에 의하면, 병합 초기 한국인 경찰은 모두 대한제국 경찰이었으며, 식민당국은 통역생으로 뽑은 한국인을 일정기간이 지난 뒤 경찰로 임용하는 정책을 폈다.
나아가 한국인이 경찰직에 진출하는 통로는 순사채용시험, 판임관채용시험(보통시험), 경부ㆍ경부보특별임용시험 등이 있었으며 이를 통과하면 순사나 경부보로 임용되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한국인으로 도경시(오늘날의 총경 이상)로 승진한 사람은 105명이었으며, 경찰직 군수를 지낸 사람은 84명으로 나타났다. 도참여관 겸 도사무관을 지낸 사람은 12명이며, 나중에 도지사를 역임한 경찰 출신은 2명이었다.
안 교수는 "경찰로서 경부보나 경부에서 고등관직까지 오른 사람이 258명이나 되어 일제가 경찰직에 몸담은 한국인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다"면서 "도경시가 된 한국인 중 36명은 도경시 발령과 동시에 사직토록 함으로써 오랜 기간 일제를 위해 공헌한 한국인을 교묘히 예우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에도 민족 차별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컨대 도경시의 경우 주요 보직(경무과장, 고등경찰과장, 형사과장)은 일본인이 맡고 한국인은 주로 보안과장이나 위생과장, 순사교습소장직을 맡는 정도였다.
고등관 경찰직 종사자로 8ㆍ15 광복 때까지 고등관직을 보유한 사람은 모두 28명. 이 중 도참여관 겸 도사무관이 4명(조종춘ㆍ김덕기ㆍ김창영ㆍ최창홍)이고, 도경시는 5명(노기주ㆍ노덕술ㆍ최주영ㆍ최영ㆍ전봉덕)이며, 도경찰부장은 1명(윤종화), 경찰서장은 3명(이명흠ㆍ김인영ㆍ손석도), 군수는 12명이었으며 총독부사무관, 세무감독국사무관, 부(府)이사관은 각각 1명이었다.
경찰직 퇴임 이후 친일기관이었던 중추원에서 참의직을 지닌 사람은 장헌근ㆍ이원보ㆍ김태석ㆍ이계한ㆍ한정석ㆍ김윤복ㆍ강이황 등 7명으로 나타났다.
일제하 경찰 출신 중 미군정기를 지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경찰직을 유지한 사람은 41명으로 조사됐다.
안 교수는 "일제하 경찰을 지낸 한국인이 친일이다, 혹은 아니다에 관해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제하 한국인 경찰 가운데 일제로부터 대우를 받은 사람이 많았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한국 경찰의 주요직에서 봉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친일파]"일제하 한국인 경찰간부 930명"
여명의 눈동자 명장면
연세대 안용식 교수팀 분석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지금의 경위에 해당되는 경부보 이상 경찰간부직에 몸담은 한국인 930명의 명단이 정리됐다. 더불어 식민 당국에서 정근증서를 받은 한국인 순사 3천854명의 명단 또한 밝혀졌다.
연세대 행정학과 안용식 명예교수팀은 이런 연구성과를 정리한 단행본 '일제하 한국인경찰 연구'(한국국정관리학회)를 최근 펴냈다.
안 교수에 의하면, 병합 초기 한국인 경찰은 모두 대한제국 경찰이었으며, 식민당국은 통역생으로 뽑은 한국인을 일정기간이 지난 뒤 경찰로 임용하는 정책을 폈다.
나아가 한국인이 경찰직에 진출하는 통로는 순사채용시험, 판임관채용시험(보통시험), 경부ㆍ경부보특별임용시험 등이 있었으며 이를 통과하면 순사나 경부보로 임용되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한국인으로 도경시(오늘날의 총경 이상)로 승진한 사람은 105명이었으며, 경찰직 군수를 지낸 사람은 84명으로 나타났다. 도참여관 겸 도사무관을 지낸 사람은 12명이며, 나중에 도지사를 역임한 경찰 출신은 2명이었다.
안 교수는 "경찰로서 경부보나 경부에서 고등관직까지 오른 사람이 258명이나 되어 일제가 경찰직에 몸담은 한국인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다"면서 "도경시가 된 한국인 중 36명은 도경시 발령과 동시에 사직토록 함으로써 오랜 기간 일제를 위해 공헌한 한국인을 교묘히 예우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에도 민족 차별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컨대 도경시의 경우 주요 보직(경무과장, 고등경찰과장, 형사과장)은 일본인이 맡고 한국인은 주로 보안과장이나 위생과장, 순사교습소장직을 맡는 정도였다.
고등관 경찰직 종사자로 8ㆍ15 광복 때까지 고등관직을 보유한 사람은 모두 28명.
이 중 도참여관 겸 도사무관이 4명(조종춘ㆍ김덕기ㆍ김창영ㆍ최창홍)이고, 도경시는 5명(노기주ㆍ노덕술ㆍ최주영ㆍ최영ㆍ전봉덕)이며, 도경찰부장은 1명(윤종화), 경찰서장은 3명(이명흠ㆍ김인영ㆍ손석도), 군수는 12명이었으며 총독부사무관, 세무감독국사무관, 부(府)이사관은 각각 1명이었다.
경찰직 퇴임 이후 친일기관이었던 중추원에서 참의직을 지닌 사람은 장헌근ㆍ이원보ㆍ김태석ㆍ이계한ㆍ한정석ㆍ김윤복ㆍ강이황 등 7명으로 나타났다.
일제하 경찰 출신 중 미군정기를 지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경찰직을 유지한 사람은 41명으로 조사됐다.
안 교수는 "일제하 경찰을 지낸 한국인이 친일이다, 혹은 아니다에 관해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제하 한국인 경찰 가운데 일제로부터 대우를 받은 사람이 많았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한국 경찰의 주요직에서 봉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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