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론vs청빈론을 넘어서...

허무길200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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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이어 - 소리엘

개념을 알고 시작하자.

부자에 대한 긍정적(신28:2~11),부정적인 언급(시73:1~12,잠23:4,전5:12,10:6,겔28:3~7,미6:12)

 

히브리어에서 부는 자원,물질,상품,힘,세력이다. 물질적인 부란 유전될 수 있으며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부는 물질적이지 않은 영역에도 있을 수 있는데, 정직이나 지혜, 성품과 같은 영적인 본질을 말한다.

많은 재물로, 구약에서의 부는 땅, 건물, 가축, 노예 등 소유의 풍부함을 말한다

(삼상25:2,대하1:11,시112:3,잠10:15,전5:19)



부의 근원은 하나님

(창24:35,26:12~13,신28:8~9,삼상2:7,왕상3:13,대상29:12,대하1:11~12,욥1:21,42:10,시24:1,잠10:22,전5:19,6:2,말3:10)

 

잠언 기자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부를 이루게 된다고 보았지만

(잠10:4,12:11,13:4,22:29,28:19) 성경 곳곳에서 부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부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 버릴 수도 있고

(신6:10~12,8:12~14,8:16~17,31:20,32:15,30:8~9,5:7~8),

부가 탐욕과 교만의 원인이 되어(잠18:23,28:11,22,겔28:5,호12:8)자신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기 때문이다(전5:13~14)

또한 부는 순간적이고 불안정한 것으로(잠23:5,27:24) 부가 생명을 구속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시49:6~9,52:1~7,겔7:17,19습1:18)

 

돈은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교환 수단이다.

돈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힘이나 능력을 드러내는 유형적인 증거물의 모든 형태를 말한다

 

청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자가 되고 싶어하며 가난하게 살기를 싫어한다.

청부론이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정직하게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살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이다.

 

1.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에 대한 책임에 관심이 있는 논리

2.깨끗하고 바르게 돈을 버는 것을 강조

3.돈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삶을 강조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

1.도둑질한 돈 - 예를 들어서 탈세한 돈

2.정당하지 못한 직업으로 벌어들인 돈 - 예를 들어서 술집에서 몸을 파는 여자가 번 돈

3.불로소득으로 벌어들인 돈 - 예를 들어서 도박, 투기, 복권 등을 통하여 벌어들인 돈

4.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은 도덕적으로 건전한 직업을 가진 자가 자기 손으로 노동하여 벌어들인 돈 중에서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이다.

 

About money...

 

성경은 돈이나 물질을 은사라고 부른 예가 없다. 신약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은사는 언제나 인격체이신 성령께서 성도들의 인격에 바탕을 둔 품성이나 재능을 뜻하며,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물질이나 돈을 은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욱이 성경은 물질이나 돈이 복임을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창24:35)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창26:12~14)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욥42:1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10:22)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

 

돈은 성경의 일상생활에서 여러모로 사용되었다. 종을 사고 팔고(창17:27,출12:44)배상하는데(출21:34),성전을 수리하고(대하24:5)향품을 사는 데(사43:24),세금

(마22:19~21,느5:4),헌금(막12:41),인건비(스3:7),식량 구입(신2:6)등에 쓰였다. 때로 돈은 착복(창31:15), 강제 징수(왕하15:20),변리로 대금하는 것(시15:5), 뇌물(시15:5), 성령을 돈으로 사려는 것(행8:18,20)등에 악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외에 성경에는 돈 없이도 가능한 일이 적혀 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고 표현했다(사52:3).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간 것은 그들의 죄값이었으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값을 받고 파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속량하실 때도 값 없이 돈 없이 속량하시는 것이다(사45:13)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을 향해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고 했으며, 예수님도 복음을 전할 때 돈을 가지지 말고 가라고 했다(눅9:3)

 

 

우리들 대부분은 돈으로 하여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에 독재를 부리도록 허락을 하고 있다. 즉 어떠한 집에서 살 것인지, 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어떠한 직업을 가질 것인지 하는 것들을 돈이 결정한다. 무엇을 할때 내가 돈이 많지 않다고 불평을 한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돈이 결정하였다.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보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니고 돈이 결정을 내린 것이다. 돈이 나의 주인이다. 따라서 나는 돈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만일 허드슨 테일러가 돈으로 하여금 결정하도록 하였었다면 중국내륙선교라 불리운 위대한 선교 역사의 장은 결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재원이 별로 없는 보통 사람이었지만 일단 하나님께서 그가 가기를 원하신다고 결단을 내린 이상 중국으로 갔다. 하나님께서 결정을 내리셨지 돈이 결정을 내린것이 아니었다. 그의 주인은 하나님이었으며 그가 섬긴 분이 바로 이 주인이었다.

 

우리는 결단코 이웃을 속여서는 안된다. 여기에는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들을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전제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들은 우리를 속일 것이다.

바울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6:7)고 말하고 있는 대로 차라리 속으면 어떤가? 결국은 모두가 단지 돈의 문제이다. 돈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

 

영혼을 좀먹는 세력을 이기기 위하여 우리는 옥합을 가지고 나아왔던 여인과 같이 아낌없이 나누어 줄 필요가 있다(마26:6~13) 그녀는 계산하지 않은 행동으로 옥합을 깨뜨리고 귀한 향유를 그리스도의 머리에 쏟아 부었다. 제자들은 이를 낭비로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하셨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돈으로 장난질을 시도해 곧 죄로 드러나 신속하게 처리되기도했다.(행5:1~11)

하늘 창고에 쌓아 두는 것이 최고의 투자임을 명심해야한다.

 

또한, 항상 빈주머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 물질관을 소유한 사람의 삶의 태도라 볼 수 없다. 그런 삶을 살다가 보면 정말 자신에게 돈이 필요할 때 누군가가 돈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잘못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돈이 생기면 하나님이 채워주신 것이라며 신앙적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럼 우리에게 돈이 필요한가? 필요없는가?

성경은 돈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전7:12,10:19)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요한 웨슬리도 벌 수 있을 만큼 벌고, 저축할 수 있을 만큼 저축하고, 줄 수 있을 만큼 주라고 말했다.

돈은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돈은 원래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악하게 쓰이기도 하고 선하게 쓰이기도 한다.

 

저축이 필요한가?

 

겨울에 대비하여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를 보고 배우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저축을 권고하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능한 한 피해야 할 필요악을 제안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제안하신 것이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잠6:6~8)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잠30:25)

 

재물,부에 대한 태도

 

잠언은 재물에 관해 신중한 태도를 가지도록 가르치고 있다.

부가 안전의 근원(10:4), 생명을 구하는 속전(13:8),의 또는 순종에 관한 축복(22:4)이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명예와 정직이 더 중요하다(22:1)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곳간을 더 크게 짓는 데만 급급해 한 부자를 정죄하셨다(눅12:16~21)또한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는 말씀(막10:23)이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12:13~21),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을 때 돌아가 버린 부자 청년(막10:17~31)등의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재물이 제자 됨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고 말씀하심으로써 재물에 악이 내재함과 아울러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세상 재물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임을 분명히 하셨다. 나아가 예수님은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재물에 관해 혁명적인 선포를 하셨다.(눅12:33~34)

 

성경은 우리에게 자족의 마음을 가르친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6:8)

 

빌4:18절에서 풍부라는 말의 의미는 바울의 정황으로 볼 때 부의 축적이 아닌

최소한의 생필품이 충족되는 상태이다.

 

잠언 기자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8~9)

 

청빈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

 

청빈이란 정말 힘들고 가난하여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는데도 부자로 살지 않는 사람을 일컫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자들의 청빈이란 부자 이상의 부자라 해도 될 것이다.

 

청빈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청빈론 보다 영성적 가난이란 말을 쓴다. 영성적 가난이란 ‘자신의 소유를 나누어 스스로 가난함에 이르는 것, 내가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비워지고 낮아지는 영적 과정’을 뜻한다. 깊은 영성 성찰에 들어가면 물질에 대해 일정한 태도와 자세를 갖게 된다. 영성적 가난은 동시에 영성적 부함을 얘기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이 곧 영적으로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영적 가난을 추구하다 보면 부하거나 부하지 않는 문제는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다

 

우리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알아야한다. 과연 우린 돈을 선택할것인가 예수님을 선택할것인가! 이다. 예수님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을때, 부자 청년이 근심하여 돌아간것은 둘 다를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19:16~24)

 

구약은 물질적 축복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풍성함을 알려주는 하나의 표지라고 하면,

신약은 그 물질적 형통함이 도리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상반된 주장을 한다.

 

마가는 우리로 하여금 재물을 위시한 세상의 관계를 전적으로 포기하고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뒤좇을 것을 명령한다. 제자의 따름은 직업과 가족(막1:16~20,2:13~14)의 포기와 단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그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으며, 대가와 보상을 기대해서도 안된다.(막9:33~35,10:35~45)십자가의 길은 타산적인 조건이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누가도 마가와 일치하여 신자는 모든 소유를 버려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눅14:33) 그럼에도 갈릴리의 부유한 여인들의 섬김(눅8:1~3)과 삭개오를(19:1~10)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는 마가와 달리 재물의 포기가 아니라 올바른 사용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철저하게 가난한 삶을 사시는 주님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교회와 제자들(2장,4장) 역시 철저한 포기보다는 소유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도 그들의 부를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사용하였다 (마27:57~61,요19:38~42)

바나바는 초대교회를 돕기 위하여 자기 밭을 판 값을 내어 놓았을 때 그는 참으로 격려하는 아들이었다(행4:36~37)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던자였다(행10:2)

루디아는 자기의 신분과 소유를 사용하여 초대교회에 유익을 끼쳤다(행16:14)

 

유대인의 관원(요3:1)이자 선생이었던(요3:10) 바리새인이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변호했다(요7:51)

아리마대 출신의 유대인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다.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했던 의로운 사람이었다(막15:43,마27:57, 눅23:50~51)

예수님의 제자 였지만 숨기는 사람이었다(요19:38)

로마 군대의 백부장(행10:1).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에 힘쓴 경건한 사람이었다(행10:1~2). 그는 백성에게 구제를 많이 하는 자비를 베풀어서 사람들에게 의인이라는 칭찬을 들었다(행10:22).기도 시간에 환상을 보았으며(행10:3~6) 천사의 지시에 순종하여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초청했다(행10:7~8,23).그리고 성령을 받았으며 방언도 받았다(행10:44~46)

자색 옷감을 사고 파는 사람이다. 전도여행 중인 바울에게 집을 제공했던 소아시아 두아디라 성의 여자 루디아는 자주장사였다(행16:14). 소아시아의 두아디라는 당시 최고가의 옷감인 자색천의 산지로 유명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에서 빌립보로 와서 자색 옷감을 팔던 중 그곳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행16:11~40)

 

-비전성경사전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다는것을 보면 예수님을 따른다는것은 힘든 선택일것이다.

유대인의 최고권력을 가진 기관으로서 이들은 예수님을 잡을려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청빈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들을 보겠다.

 

1. 성 프랜시스 (이탈리아 아씨시)

"형제여, 어떤 사람이 그의 주인으로부터 재산을 받아 수년간 관리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는데 이런 경우 최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준 사람에게 돌려드리시오!" 프랜시스는 명확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나의 형제여, 내가 가진 이 세상의 재물은 모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모든 것을 돌려드리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프랜시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어떻게 말하는지 성경을 읽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마19:21)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막6:8)

프랜시스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입니다. 이는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가난'이 그의 삶에 있어 하나의 기본 이념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의 마지막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예수님을 닮기 위하여 일생 '청빈양'과 결혼했노라고 선언했었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까지 그것을 지키고자 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상 최대의 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 이것이 프랜시스 성인의 또 다른

이름들이다.

 

2. 죠지 뮬러 (독일 크로펜스타트)

죠지는 결혼당시 그의 아내가 화려한 은제품들을 가져왔는데, 이것이 죠지의 마음에 걸렸었다.

죠지는 자신들의 화려한 생활이 가난하셨던 주님의 생활과 위배되며, 누가복음 12장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 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아내는

죠지의 결정에 따랐다.

 

3. 가가와 도요히꼬 (일본)

인도의 간디, 독일의 슈바이쳐와 더불어 20세기의 3대 성자로 불린 가가와 도요히꼬

일본 빈민의 아버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가가와 도요히꼬는 타락한 기성종교를 통렬히 공격하여 말하기를 "현대의 종교들이 부잣집 아가씨들이나 큰 기업주 댁의 호강하는 도련님들과 같이 사람들의 노리개감 노릇을 하는 꼴이 가련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돈의 힘으로 세워진 눈에 보이는 교회들을 때려부수고 돈으로는 세울 수 없는 심령의 천국을 세우는 운동이었습니다. 돈을 모으는데, 기부금 모집하는데 분주한 종교인들은 정 떨어졌습니다!"라고 탄식했다.

 

"나로 하여금 청빈을 찬미하게 해 주십시오! 다다미 두 장 짜리 방에 살면서 10년 동안 문에다 열쇠 한 번 잠가 본 일이 없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가난하다는 일이 얼마나 축복 받은 생활이라는 사실을 나는 체험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몸이라 아무 것도 빼앗길 두려움이 없는 몸입니다. 나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입은 옷 단벌로 돌아다니므로 옷차림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유쾌한 일입니까! 이처럼 길을 가다가 청소 인부의 쓰레기차나 똥차를 밀어줄 수도 있고 청소부와 함게 어울려도 꺼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양복을 차려 입고 강단에 나서서 예의라는 마술적 도덕에 얽매이게 된 뒤부터는 청소부와 친교가 멀어지는 것 같아 서러웠습니다."라고 말했다.

 

4. 이용도 (황해도 금천군)

고는 나의 선생 : 평안할 때보다 고통 속에서 더 참된 진리를 배운다

빈은 나의 애처 : 가난은 사랑하는 아내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다

비는 나의 궁전 : 비천은 내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다

주는 나의 구주 : 돈, 학벌,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구원하신다

 

5. 이세종 (전남 화순군)

"구제는 자기가 쓸 몫에서 떼어내어서 구제해야 참 구제이다. 자기가 먹을 것 안먹고 해야지. 먹고 입고 쓸 것을 다 쓰고 남은 것을 구제하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 한 벌 준다해도 자기가 입은 옷이 다 해어져 누더기가 되기까지 입으면서 주어야 참 구제가 된다.

 

록펠러와 카네기는 돈을 잘 벌고 잘 쓴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노동운동사에서는 노동운동을 극심하게 탄압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5:10)

 

청부론이냐 청부론이냐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것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권이란것을 인정해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는 “그렇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조성하셨으며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하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만일 그 분이 자신의 소유를 마음대로 사용하시도록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을 자신의 행동으로 부인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만일 누군가가 자신이 믿는 방법대로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는 절대로 예배도 같이 드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둘 중에 믿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주인이라는것을 인정해야한다.

하나님은 돈을 받고서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신 적이 없다. 그것을 누구에게 거저 주신 적도 없다.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만물의 소유주이다. 불신자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자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따라서 이 관점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점이 신자와 불신자간의 차이다.

무신론자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공개적으로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다른 하나는 “그렇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소유를 마음대로 이용하시도록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입으로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분이 소유권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무신론자가 된다.

 

롬14:7~9절을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만물이 그 분의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그 분의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원하셨다. 집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모든 것과 함께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한다.

 

청지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신10:14을 보면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50:9~12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레25: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눅19:12~27을 보면 청지기직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또한,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그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주인을 위하여 열 므나를 남긴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한 므나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열 므나 가진 사람에게 준걸 보면 매우 부당하게 보이지만 우리는 항상 부자의 것을 취하여 가난한 자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 부유한 자에게 주라고 말씀하신다. 이 비유는 가지고 있는 자는 관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관리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관리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마저 빼앗아야 합니다. 그것은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관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부유하냐 그렇지 못하냐가 아니고 잘 관리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관리할 수 있도록 맡겨 주신 것이다.

눅16:1~9에는 지혜로운 청지기에 관한 비유가 나와 있다.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하였으므로 칭찬하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의 것을 취하여 부유한 자들에게 주는 것을 언급하신 것이 아니고,

맡은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자의 소유를 취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할 목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예수님이라면...

 

기독교 신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하며, 그 발자취란 곧, ‘순종, 믿음, 사랑, 그리고 모방’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 할까? 예수님의 행적은 스스로 고난을 당하고 자신을 부정하면서 길 잃은 자와 고통받는 자를 구원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에 대답할 만한 우리의 지식이 너무나 보잘것없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이라고 저에게 확실히 알려 주실 분이 있다면, 과연 그 분은 누구일까? 그리고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더구나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들이 이 문명 세계에 많으니, 내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리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에 관하여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위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16:13~15)

 

이 방법밖에는 없다.

 

“예수님이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하시리라 믿고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데, 만약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하지요?”라고 한다면 그런 주장을 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철저하게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성령님께 물어 보고 그 대답에 접한 다음에는 그 결과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구애받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하게 살아야한다 가난하게 살아야한다보다는 하나님께선 주신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주님이 나의 主이시고 그러한 삶을 사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6~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4:3)

 

 

 

*참고자료

-성경

-깨끗한 부자 (김동호)

-돈 섹스 권력 (리차드 포스터)

-신앙의 위인들 (성 프랜시스, 죠지뮬러등)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김영봉)

-하나님의 부자 경제학 (양창삼)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청지기일 뿐입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찰스 M.쉘돈)

-경제문제와 기독교 윤리 (한국 기독교 윤리학회): 청부론과 청빈론을 넘어서 (이상원)

-그리스도인의 재정 원칙 (크래그 힐,얼 피츠)

-CBS방송 토론 내용

-비전성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