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청와대나 백악관에 초대받아 들어가 보신 적 있으세요? 그곳에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자녀들은 그 누구보다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으며, 이것을 불평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저녁식사 한 끼를 사먹고 싶어도, 정장을 입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식당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것을 불평하는 사람은 없으며, 자신이 원하면 자신도 그곳에 맞는 옷을 입고 가면됩니다. 아빠는 자녀들이 밖에서 온몸에 더러운 흙을 묻히고 들어오면, 안아주기 전에 먼저 깨끗이 씻으라고 합니다. 밥 먹기 전에도 항상 손 씻고 오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한 곳에는 거룩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것도 역시 누구나 당연히 여깁니다. 셋째하늘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이 두 군데 있는데, 첫째는 ‘거룩한 곳’이라는 의미로 성소(聖所)가 있습니다. 둘째로 ‘가장 거룩한 곳’ 이라는 뜻으로 지성소(至聖所)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두 장소를 합하여,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 성전은 아버지와 택하심을 얻은 맏아들과 거룩하신 영, 세분께서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택하심을 얻은 맏아들께서 허다한 종들을 창조하시기 전입니다. 그 성전은 예루살렘이라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城)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성안에서 성전을 제외한 부분을 뜰이라고 부르며,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거룩한 시온산 안에 있습니다. 성소에는 거룩하고 능력 있는 120의 종들 외에는, 그 어떤 천사들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딸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 외에는, 그 어떤 국민들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성소입니다. 반면, 지성소에는 120의 종들조차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맏아들과 아버지의 영광을 얻은 아들들 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원칙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열면,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나옵니다. 그 길을 지나면 다시 문이 나오는데, 그 문을 열면 그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아버지께서 계신 지성소로부터 두 가지의 물이 흘러나옵니다. 오른쪽으로는 포도주의 강이 흘러나오고, 왼쪽으로는 생수의 강이 나옵니다. 그 두 가지의 물 모두 지성소에서 성소로 흘러가며, 뜰을 지나 셋째하늘의 모든 백성들에게 퍼져나갑니다. 120종들 가운데 지성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종들이 넷이 있습니다. 네 생물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지성소로 연결된 길로 통하는 성소의 문 앞에 항상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네 종들도 지성소에는 들어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과 딸들은 셋째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가지며, 그로인하여 기쁨이 충만하며, 백성들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또한 거룩한 물질들을 영원토록 상속받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유산을 떠나, 거룩하신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신성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소와 지성소의 규모는 마지막에 거룩한 아들과 딸들이 다함께 모이기에 충분합니다. 그 크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올해 2006년으로부터 정확히 4010년 전에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첫째사람들과 둘째사람들과,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멸절시키셨습니다. 그들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결합했습니다. 부부간에도 남자가 다른 여자와,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하는 것을 전혀 부끄럼 없이 여겼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딸이 아들과 엄마 간에도 부끄럼이 없었습니다. 또한 아들이 자기 여동생과, 누나가 자기 남동생과 하는 것을, 부끄러움은커녕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게다가 술 취해 저지르는 죄들은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양심을 버리고, 오직 자신의 기쁨만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으로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죄악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4010년 전 노아의 때와 같이, 마지막 때에도 사람들의 양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모든 일을 자기의 기쁨에 맞출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오히려 죄책감이 없이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노아홍수 당시의 그러한 죄악들이 이 마지막 때에 또다시 벌어지고 있으니, 4010년 전의 그날은 현재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이 첫째하늘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예고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시 노아라 이름 하는 한사람을 빼고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로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여 택한 죄 가운데서도 의롭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노아만 자신의 죄와 연약함과 불의를 인정하며, 죄와 세상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노아를 의인으로 보셨으며, 노아 한사람으로 인해 그의 사랑하는 모든 가족은 홍수라는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의인으로 인하여 온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되는 일은 이 마지막 때에도 똑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아버지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노아가 만든 그 방주의 크기에서 10배를 하면 지성소의 크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성소는 그 지성소 크기의 100배입니다. 당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죄와 세상에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방주에 손만 대어도 홍수로부터 구해주실 계획이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억수 같은 비가내리고, 또 물이 불어와도 사람들은 방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평소처럼 옆집 사람과 간음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홍수로 먼저 죽은 사람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옆집사람이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도, 그날 밤 편안하게 잠을 자다 떠내려갔습니다. 모두가 홍수에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죄악을 그대로 끝까지 쥐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러한 말씀들을 읽은 후에,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듯……. 예루살렘성의 뜰의 크기는 현재 이스라엘의 나라와 국토와 그 크기가 비슷합니다. 단, 사마리아라는 지역은 그 크기에서 제외됩니다. 만일 어떤 나라가 휴전선을 중심으로 위로는 평양까지 밑으로는 서울까지 차지했다고 가정하며,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그 나라를 기준으로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에게 그런 나라로 여겨졌습니다.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맏아들께서는 종들을 로봇이 아닌 마음과 생각을 가진 인격체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며 한 가지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을 따라 사망으로, 마음을 따르는 생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불의를 의라고 하며, 죄 가운데서도 큰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며, 아버지와 같은 영원한 생명을 얻되, 거룩한 육체를 얻습니다. 사람이 만일 거룩한 아들이 되면, 그 능력의 120종들도 들어가 보지 못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딸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면, 셋째하늘의 백성들이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이 되면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성 가까이 거주하며,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 성으로부터 멀리 거하게 됩니다. 물론 그 기준은 자신이 애써서 이룬 거룩의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과 육신의 즐거움을 따르다, 다가오는 3차 세계대전에서 사망에 이르면, 태양인 유황불못에서 영원을 보냅니다. 하지만 만일 3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건져도, 짐승의 수를 받아 육과 세상을 잠시 즐긴 후, 그 끝에는 영원한 사망의 유황불못으로 들어갑니다. 유황불못은 아버지와 맏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일방적으로 기준을 세우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격으로 저지른 죄악의 정도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한 것을 기준으로 영원한 고통과 저주의 정도를 정하되, 맏아들께서는 그것을 아버지의 말씀대로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북한과 남한 한민족의 모든 사람들이, 또한 모든 민족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길 원합니다. 셋째하늘의 영광과 권세는 바로 그 ‘거룩하게 살고자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휘장 뒤에있는 장막
혹시 청와대나 백악관에 초대받아 들어가 보신 적 있으세요? 그곳에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자녀들은 그 누구보다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으며, 이것을 불평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저녁식사 한 끼를 사먹고 싶어도, 정장을 입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식당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것을 불평하는 사람은 없으며, 자신이 원하면 자신도 그곳에 맞는 옷을 입고 가면됩니다.
아빠는 자녀들이 밖에서 온몸에 더러운 흙을 묻히고 들어오면, 안아주기 전에 먼저 깨끗이 씻으라고 합니다. 밥 먹기 전에도 항상 손 씻고 오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한 곳에는 거룩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것도 역시 누구나 당연히 여깁니다. 셋째하늘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이 두 군데 있는데, 첫째는 ‘거룩한 곳’이라는 의미로 성소(聖所)가 있습니다. 둘째로 ‘가장 거룩한 곳’ 이라는 뜻으로 지성소(至聖所)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두 장소를 합하여,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 성전은 아버지와 택하심을 얻은 맏아들과 거룩하신 영, 세분께서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택하심을 얻은 맏아들께서 허다한 종들을 창조하시기 전입니다.
그 성전은 예루살렘이라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城)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성안에서 성전을 제외한 부분을 뜰이라고 부르며,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거룩한 시온산 안에 있습니다.
성소에는 거룩하고 능력 있는 120의 종들 외에는, 그 어떤 천사들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딸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 외에는, 그 어떤 국민들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성소입니다.
반면, 지성소에는 120의 종들조차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맏아들과 아버지의 영광을 얻은 아들들 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원칙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열면,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나옵니다. 그 길을 지나면 다시 문이 나오는데, 그 문을 열면 그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아버지께서 계신 지성소로부터 두 가지의 물이 흘러나옵니다. 오른쪽으로는 포도주의 강이 흘러나오고, 왼쪽으로는 생수의 강이 나옵니다.
그 두 가지의 물 모두 지성소에서 성소로 흘러가며, 뜰을 지나 셋째하늘의 모든 백성들에게 퍼져나갑니다.
120종들 가운데 지성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종들이 넷이 있습니다. 네 생물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지성소로 연결된 길로 통하는 성소의 문 앞에 항상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네 종들도 지성소에는 들어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과 딸들은 셋째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가지며, 그로인하여 기쁨이 충만하며, 백성들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또한 거룩한 물질들을 영원토록 상속받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유산을 떠나, 거룩하신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신성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소와 지성소의 규모는 마지막에 거룩한 아들과 딸들이 다함께 모이기에 충분합니다. 그 크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올해 2006년으로부터 정확히 4010년 전에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첫째사람들과 둘째사람들과,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멸절시키셨습니다.
그들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결합했습니다. 부부간에도 남자가 다른 여자와,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하는 것을 전혀 부끄럼 없이 여겼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딸이 아들과 엄마 간에도 부끄럼이 없었습니다.
또한 아들이 자기 여동생과, 누나가 자기 남동생과 하는 것을, 부끄러움은커녕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게다가 술 취해 저지르는 죄들은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양심을 버리고, 오직 자신의 기쁨만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으로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죄악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4010년 전 노아의 때와 같이, 마지막 때에도 사람들의 양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모든 일을 자기의 기쁨에 맞출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오히려 죄책감이 없이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노아홍수 당시의 그러한 죄악들이 이 마지막 때에 또다시 벌어지고 있으니, 4010년 전의 그날은 현재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이 첫째하늘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예고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시 노아라 이름 하는 한사람을 빼고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로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여 택한 죄 가운데서도 의롭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노아만 자신의 죄와 연약함과 불의를 인정하며, 죄와 세상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노아를 의인으로 보셨으며, 노아 한사람으로 인해 그의 사랑하는 모든 가족은 홍수라는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의인으로 인하여 온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되는 일은 이 마지막 때에도 똑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아버지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노아가 만든 그 방주의 크기에서 10배를 하면 지성소의 크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성소는 그 지성소 크기의 100배입니다.
당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죄와 세상에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방주에 손만 대어도 홍수로부터 구해주실 계획이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억수 같은 비가내리고, 또 물이 불어와도 사람들은 방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평소처럼 옆집 사람과 간음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홍수로 먼저 죽은 사람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옆집사람이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도, 그날 밤 편안하게 잠을 자다 떠내려갔습니다.
모두가 홍수에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죄악을 그대로 끝까지 쥐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러한 말씀들을 읽은 후에,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듯…….
예루살렘성의 뜰의 크기는 현재 이스라엘의 나라와 국토와 그 크기가 비슷합니다. 단, 사마리아라는 지역은 그 크기에서 제외됩니다.
만일 어떤 나라가 휴전선을 중심으로 위로는 평양까지 밑으로는 서울까지 차지했다고 가정하며,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그 나라를 기준으로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에게 그런 나라로 여겨졌습니다.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맏아들께서는 종들을 로봇이 아닌 마음과 생각을 가진 인격체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며 한 가지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을 따라 사망으로, 마음을 따르는 생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불의를 의라고 하며, 죄 가운데서도 큰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며, 아버지와 같은 영원한 생명을 얻되, 거룩한 육체를 얻습니다.
사람이 만일 거룩한 아들이 되면, 그 능력의 120종들도 들어가 보지 못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딸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면, 셋째하늘의 백성들이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이 되면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성 가까이 거주하며,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 성으로부터 멀리 거하게 됩니다. 물론 그 기준은 자신이 애써서 이룬 거룩의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과 육신의 즐거움을 따르다, 다가오는 3차 세계대전에서 사망에 이르면, 태양인 유황불못에서 영원을 보냅니다.
하지만 만일 3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건져도, 짐승의 수를 받아 육과 세상을 잠시 즐긴 후, 그 끝에는 영원한 사망의 유황불못으로 들어갑니다.
유황불못은 아버지와 맏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일방적으로 기준을 세우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격으로 저지른 죄악의 정도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한 것을 기준으로 영원한 고통과 저주의 정도를 정하되, 맏아들께서는 그것을 아버지의 말씀대로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북한과 남한 한민족의 모든 사람들이, 또한 모든 민족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길 원합니다. 셋째하늘의 영광과 권세는 바로 그 ‘거룩하게 살고자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