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상담 /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유치호2008.08.15
조회119
댓글 상담 /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김호진(http://www.cyworld.com/hojene) :

 

요한의 세례에 대한 것은 의구심이 듭니다. 요한은 제사장도 아니고 한 인간에 불과한데 어떻게 예수님께 죄를 전가 시킬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 죄를 전가시킨 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요한의 세례는 육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육신의 예수로서의 순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답변(원본 게시글 보기) :

 

좀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조건 편견을 갖고 바라보시지는 말고 과연 기록된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 숨어 있는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복음의 성경적 의미도 좀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의 세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왜 그렇게 기록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셨으면 좋겠네요.

각설하고... 복음을 아시는 분들은 죄의 전가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6)

담당시켰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 했다는 이야기이지요.
다시 말해서 내가 짊어져야 할 죄를 예수님이 담당했다는 말이 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했다면 내가 할 일은 더 이상 없어야 정상입니다. 아침에 내가 쓰레기를 버려야 할 참인데 아내가 대신 했다면 다시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아내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셨다면 나에게는 죄가 없어야 맞습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9:26)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7)

세상 끝에 예수님이 오셨다면 그리고 마1:21의 예수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대로 목적을 다 이루셨다면 (요19:30) 히 9:26 말씀대로 죄를 없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6)
다 이루었다!!! (요19:30)

이사야 53장의 말씀만으로도 사실 예수님께 죄는 전가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있고 성경 곳곳에 그런 사실들을 예를 들면서, 사건들을 통해서, 신구약에 입체적으로 기록하셨고 숨겨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왜 그러한가>를 생각해 봐야지 무조건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단정짓는 모습은 잘못하면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자기 생각으로 축소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줄의 말씀을 기록하시면서도 사건의 중요성이 있는 부분은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부분을 그냥 간단하게 넘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례요한도 본인도 말렸고 왜 그런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 사건이 뭔가 심상치 않는 일일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질문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례요한이 제사장도 아니고 한 인간에 불과하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죄도 없는 예수님이 그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까? 예수님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할(막1:4) 어떤 이유가 있어서 세례요한에게 나아갔나요? 님이 언급하신대로 육신의 예수로서 순종이라고 알고 있다고 하셨는데 성경 어디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성경은 세례요한을 일컬어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6개월 먼저 온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사40:3)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1:2-5)

세례요한의 부친은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인 ‘사가랴’ 였습니다.(눅1:5)
더구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보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11:11) 라고 말씀하셨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자, 이 세상의 어떤 자보다 큰 이, 제사장 직분을 가진 족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시점이 삼십세 이상이었던 점...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통해서 이사야 53:6을 이루시려는 것은 물론 레위기의 실상을 나타내셨습니다. (레위기16장)


자 다시 봅시다.
세례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는데 그에게 나아온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게 됩니다. (마3:6) 그런데 죄 없는 예수님은 죄를 자복할 필요도 없고 세례요한에게 나올 필요도 없는데 세례요한에게 나아와 “내게 세례를 베풀라” 고 하십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3:13-15)

이 사건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것이 이스라엘에게 그를 나타내려 함이라(요1:3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1:29-31)

바로 그분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한 목적은 예수님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심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보라!!! 저 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바로 세상 죄, 네 죄, 내 죄, 모두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세상(世上) 죄에는 모든 사람들의 죄가 다 들어 있습니다.
아담 때부터 인류 종말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그분은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봅시다. 우리 죄는 십자가에서 다 처리가 될텐데 언제 예수님이 그 세상 모든 죄를 짊어지셨지? 라는 생각은 안듭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미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아직 지시기도 전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그런데 그 이전에는 세례 요한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말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요한이 그때서야 깨닫게 되어서 그렇습니까?
성경은 그런 요한의 깨달음을 주는 어떤 직접적인 실마리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요한의 말 속에서 그분이 바로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던 사건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기록된 말씀 자체만을 가지고 맞다 틀리다 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숨은 계획과 마음을 발견하는 것은 밭에서 진주를 캐내는 것과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럼 또 봅시다.

요한이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한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전에 예수님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요1:31,33) 다만 자기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보다 앞서서 주의 길을 평탄케 하고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기 위해 왔다고 증거하고 있지요. (사40:3, 요1:22-23)

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 것은 “내게 세례를 주라고 하신 이가 성령이 내려서 머무는 자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 즉,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라 하셨기에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32-36)

그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알았는데 왜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을까요? 요한은 세상 죄가 예수님께 언제 어떻게 넘어갔는지 알 수도 없었고 볼 수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다시 한번 마태복음 3:15를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3:13-15)

요한은 말렸지만 예수님은 예수님 당신이 세례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니 허락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같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맞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그리고 세례가 베풀어졌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고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마3:16-17)
모든 의를 이룬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의(義)의 반대는 죄(罪)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의 행위를 통해 모든 의를 이룬다는 말씀은 <모든 죄가 예수님께 넘어간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이 세례를 통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는 말씀은 모든 죄가 예수님께 전가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외칠 수 있었던 중요 단서는 바로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에서 우리는 쉽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모든 의를 이루는 사실, 즉 모든 세상 죄가 그분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는 그렇게 외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기록한 내용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며 우리는 그것을 4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복음에는 무엇이 나타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의로운 일이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1:17)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마3:15)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마음이 의에 이르게 된다는 말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우리 죄가 도말되어 깨끗게 되었음을 인식했을 때 "아 그렇게 주님의 보혈로 내 모든 죄가 속하여졌구나" 라고 마음에 죄 사함의 확신이 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로 죄 사함의 확신이 마음에서 이루어지면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되었는지 알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레위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회중의 속죄 제물을 위하여 두 염소가 나옵니다. 바로 여호와를 위한 속죄 제물와 아사셀을 위한 제물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한 염소는 속죄제물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한 제물은 광야로 보내지요. 말씀을 한번 봅시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16:6-10)

아론은 먼저 속죄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기를 정결해야 하기 때문에 6절에 기록한 대로 수송아지를 드리고 속죄 받은 후에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염소를 잡습니다. 그 피를 제단 귀퉁이 뿔에 바르고 성결케 한 후에, 21절에 아사셀을 위한 산 염소에게 안수하여 이스라엘 모든 회중의 모든 죄를 고하고 광야로 보내는 것이지요.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레16:21-22)


바로 이스라엘 회중은 자기들이 범한 모든 죄를 넘겨받은 염소가 죽임을 당하고 그 피가 제단 뿔에 발려진 모습은 볼 수가 없었으나 (성전 안에서 이루어진 사실이기에) 무인지경으로 자기 모든 죄를 지고 가는 아사셀의 염소는 볼 수 있었지요.
저 멀리 자기 죄를 지고 사라지는 염소를 보면서 그들은 자기 죄가 그 염소에게 넘어갔고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성전 안에서 자기들의 죄가 어떻게 속죄되는지 모르기에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아사셀의 염소를 준비한 것입니다.
이는 나중에 예수님의 피가 하늘 성전에서 어떻게 도말되는지 모르기에 아사셀의 염소와 같이 예수님에게 죄가 넘어간 사실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이 일은 7월 10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평민이 죄를 지으면 수도 없이 짐승을 잡아 죄를 사함 받아야 했기에 1년 일차 한번에 이스라엘 회중 전체의 1년의 모든 죄를 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7월 10일의 속죄제는 바로 1월1일부터 12월 31까지의 모든 죄의 사함이었습니다. (레16:29-34)
예수님의 죄 사함은 모든 인류를 위해 단번에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아담 때부터 지구 종말까지의 모든 죄를 사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도 안했고 경건치도 않는 죄인들인데 이 사실 때문에 내 노력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너 의롭다” 고 하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입니다. (롬4:5-8)
바로 저 사실을 믿는 자는 그 믿음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이며, 믿지 못하는 자는 불신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인정치 못하기에 지옥을 가는 것입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4:4-8)


레위기의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모습과 무인지경으로 사라지는 아사셀의 염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성전 안에서 희생된 염소,

이스라엘 회중들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전 안에서 들려오는 죽어가면서 고통하는 염소의 외침과 제단 뿔에 발려진 염소의 피..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를 흘리실 때 그 고통의 모습과 외침은 보이지만 하늘 성전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 모든 죄가 기록된 제단 뿔에 피가 발려지는(塗抹) 보이지 않는 엄청난 사실...
어쩌면 너무나도 기가 막힌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렘17:1)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늘 성전 제단 뿔에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이 되고 다시 우리 마음판에도 기록이 되는데 우리는 하늘성전에 기록된 우리 죄는 모르고 우리 마음에 기록된 죄만 바라보며 늘 사해달라고 해왔지요.
이제 하늘 성전에 기록된 우리 모든 죄가 도말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우리는 우리 마음에 기록된 죄가 남김없이 사해졌음을 알게 되어 한없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 하늘 성전에 있는 내 죄의 장부를 지워버렸는데 내가 가진 것은 이제 효력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내 아들이 나 몰래 앞 가게에서 10만원어치 과자를 외상으로 사먹었는데 아들은 늘 그 가게 앞으로 지나면서 돈 갚으라는 독촉을 주인에게 받다가 나중에는 그 가게 앞으로 지나가지 못하고 돌아서 학교에 갑니다. 내가 우연히 그 주인을 만나 아들이 외상으로 과자를 사먹은 줄 알고 다 갚아 주었는데 아들은 아직도 그 소식을 못 들었기에 늘 마음에 부담이 되어 그 가게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돌아서 학교를 가지요.
며칠이 지난 후 아들과 내가 이야기하다가 그 외상값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다 갚아 주었다 라고 아들에게 말하자 그때서야 아들에게 참 자유가 왔고 이제는 그 가게 앞으로 당당하게 지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외상값을 갚았다는 소식은 아들에게 기쁜소식이 되었고 복된 소식이었으며 이제 돌아서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이미 내가 그 외상값을 다 갚았어도 아들에게는 아직도 갚지 못한 외상값으로 남아 있었기에 마음 속에서는 해결이 안된 상태로 늘 그 주인을 피해 다녀야만 했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塗抹)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음이니라 (사44:22)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고맙습니까...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배나 속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사40:2) 하나님은 혹시 부족할까 싶어서 넉넉하게 그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중략)....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9:1-14)

* * * * * *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요단강에서의 세례는 단순히 예수님의 육신의 순종함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에게 죄가 넘어간 사실을 이스라엘에게 알려주어 이미 그들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예수님은 그 죄를 짊어지시고 사망의 형벌을 받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다 이루었다!!! (요19:30)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에게 분명히 현행범으로 사형을 당해야 하는데도 “너 무죄다”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요8:11)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 죽을 죄를 지었는데 정죄하지 않는다... 앞 뒤가 안 맞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면 이유 불문하고 무죄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무 근거도 없이 무죄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의 공의에 위반되는 사항이 되겠지요.

바로 이 여인의 죄는 이미 예수님이 지고 계시기에 그것을 근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병인들에게 네 병이 나았다고도 하셨지만 이상하게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9:2, 눅5:20)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말씀하시면 무조건 옳으시지만 근거없이 말씀하시진 않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바로 근거는 그것입니다. 모든 죄를 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듣고 마음으로 받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옆에서 계속 따라다녀도 그 사실을 받지 않으면 표적이나 바라보고 자리에 연연하여 죄를 사함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죄 사함의 복음을 듣고 그 사실을 받는 자가 마음에 믿으면 “의에 이르게” 됩니다.(롬10:10)
 
기쁜소식선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세례요한의 안수로 죄가 전가되었다고 주장한다고 무조건 그것이 잘못되었다 라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성경의 앞뒤를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획과 섭리를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시대상황에 따라서 이런 방법으로 저런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 오셨습니다. 이 죄 사함의 복음이 전해지고 그것을 받을 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행2:38, 행10:43-44)
그 보혜사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늘 내가 옳다는 자세는 생명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우리는 그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어쩌면 훌륭한 재판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 아이를 포기한 여인은 자기의 옳음을 포기했기에 결국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이(왕상3:16이하) 누구든지 자기가 옳다 하는 사람은 그 옳음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생명이 주어지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