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아내를 설득하여 극장으로 안내한 보람이 있었다. 지난주말 와 를 날짜를 변경해가며 봤다. 그걸 참지 못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열두시 넘어서 하는 영화를 보게 만드냐는 아내의 투덜거림을 잠재운 건 였다. (를 먼저 보고 를 나중에 봤다면 얼마나 쿠사리를 먹었을까, 생각하면 식은 땀이 주루룩... ^^;;)
영화는 명불허전이다. 보지 않았으면 마알을 하지 말라는 달인의 말씀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블록버스터가 가질 수 있는 예술성의 획기적인 버전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일 터... 여기에 조커를 완벽 재현한 히스 레저의 연기력이 가세하니 (다시 한 번 안타깝다 그의 죽음이, 의 조커 뿐만 아니라 의 그 사탕 물고 있는 듯한 델마도 꽤 좋았었는데...) 조화롭그 그지없다.
팀 버튼의 이 보여주던 괴기한 동화 속의 고담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를 통하여 불쑥 우리들 발 아래의 마천루로 자리를 옮긴다. 배트맨은 밤에만 활동한다는, 동굴 속에서 두문불출한다는 편견을 버려, 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트맨을 들여다보는 일의 불편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 옆으로 불쑥 다가온 배트맨은 더욱 불편해 보인다.
배트맨이 불편하기 그지없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대척점에 서 있는 조커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선보다는 위악이 낫다고 생각하고, 위악보다는 절대악이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기는 내게 조커는 매혹적이다. 사람들 속의 위선을 혹은 위악을 향한 조커의 찢어진 입이 보내는 비아냥에 이끌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에 하비 던트의 투페이스로의 변환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또 얼마나 적절한지...)
고담시가 처한 카오스적 상황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 안으로 끌여들여져도 무방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언제나 영화보다 한 발 앞선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느끼고 있지 못할 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내부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악의라는 단면 또한 조커를 통하여 또는 투 페이스를 통하여 극명해진다. (마지막 순간 두 배에 나눠 타고 있던 우리들의 선택은 그야말로 선한 반전이었지만...)
갈팡질팡 하지 않고 초지일관 악한 조커는 우유부단하며 사랑에 한없이 약한 배트맨에 비하여 오히려 영웅적이기까지 하다. (연쇄살인범을 향해 연정을 품는 우리들도 있지 않은가, 비약하자면...) 그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한 영웅이 아니라, 그저 우리들의 무의식을 대변할 수 있는 초인이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하기보다는 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일원인 우리들은 그렇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인지도...
조금 긴 러닝 타임이 부담스럽지만 (특히 시계바늘이 새벽 세 시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면) 실망스럽지는 않다. 히스 레저의 찢어진 입이 보내는 비아냥도, 망토 속 배트맨의 고뇌도, 화상 치료를 거부하는 하비 던트의 변화도 달갑게 다가온다. 에서 시작된 감독의 푹푹 고아진 듯 고역스럽지만 영양가 만점인 연출력에도 다시 한 번 고개 조아린다. 아깝지 않다.
갈팡질팡하지 않고 초지일관하는 절대악의 위용 앞에... <다크 나이트>
블록버스터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아내를 설득하여 극장으로 안내한 보람이 있었다. 지난주말 와 를 날짜를 변경해가며 봤다. 그걸 참지 못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열두시 넘어서 하는 영화를 보게 만드냐는 아내의 투덜거림을 잠재운 건 였다. (를 먼저 보고 를 나중에 봤다면 얼마나 쿠사리를 먹었을까, 생각하면 식은 땀이 주루룩... ^^;;)
영화는 명불허전이다. 보지 않았으면 마알을 하지 말라는 달인의 말씀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블록버스터가 가질 수 있는 예술성의 획기적인 버전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일 터... 여기에 조커를 완벽 재현한 히스 레저의 연기력이 가세하니 (다시 한 번 안타깝다 그의 죽음이, 의 조커 뿐만 아니라 의 그 사탕 물고 있는 듯한 델마도 꽤 좋았었는데...) 조화롭그 그지없다.
팀 버튼의 이 보여주던 괴기한 동화 속의 고담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를 통하여 불쑥 우리들 발 아래의 마천루로 자리를 옮긴다. 배트맨은 밤에만 활동한다는, 동굴 속에서 두문불출한다는 편견을 버려, 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트맨을 들여다보는 일의 불편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 옆으로 불쑥 다가온 배트맨은 더욱 불편해 보인다.
배트맨이 불편하기 그지없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대척점에 서 있는 조커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선보다는 위악이 낫다고 생각하고, 위악보다는 절대악이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기는 내게 조커는 매혹적이다. 사람들 속의 위선을 혹은 위악을 향한 조커의 찢어진 입이 보내는 비아냥에 이끌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에 하비 던트의 투페이스로의 변환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또 얼마나 적절한지...)
고담시가 처한 카오스적 상황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 안으로 끌여들여져도 무방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언제나 영화보다 한 발 앞선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느끼고 있지 못할 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내부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악의라는 단면 또한 조커를 통하여 또는 투 페이스를 통하여 극명해진다. (마지막 순간 두 배에 나눠 타고 있던 우리들의 선택은 그야말로 선한 반전이었지만...)
갈팡질팡 하지 않고 초지일관 악한 조커는 우유부단하며 사랑에 한없이 약한 배트맨에 비하여 오히려 영웅적이기까지 하다. (연쇄살인범을 향해 연정을 품는 우리들도 있지 않은가, 비약하자면...) 그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한 영웅이 아니라, 그저 우리들의 무의식을 대변할 수 있는 초인이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하기보다는 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일원인 우리들은 그렇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인지도...
조금 긴 러닝 타임이 부담스럽지만 (특히 시계바늘이 새벽 세 시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면) 실망스럽지는 않다. 히스 레저의 찢어진 입이 보내는 비아냥도, 망토 속 배트맨의 고뇌도, 화상 치료를 거부하는 하비 던트의 변화도 달갑게 다가온다. 에서 시작된 감독의 푹푹 고아진 듯 고역스럽지만 영양가 만점인 연출력에도 다시 한 번 고개 조아린다.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