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한상원200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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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대로 영화를 온통 휩쓴 것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 히스 레져였다. 그의 광기, 잔인함, 치밀한 계획 그리고 인간의 악한 잠재력에 대한 광적인 믿음. 이 때문에 히스 레져가 연기한 조커는 영화사상 길이 남을 최고의 악당으로 기록될 것이다.

 

도대체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가?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조커는 너무나 악하다. 은행을 털면서 같은 편을 죽이고, 고담시에 있는 다른 악당들조차도 혀를 내두를정도로 광폭하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두목은 경찰에게 "그는 미쳤어"라며 조커가 있는 곳을 가르쳐줄 정도. 그러나 악하기에 그는 강하다. 그는 단지 돈과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악당들의 비자금을 모두 자기 손아귀에 넣은 다음 그것을 태워버린다. 그렇다면 조커는 무엇을 믿는가? 그는 인간이 원래 사악하다는 사실을 믿는 철저한 성악론자다.

 

인간의 악함에 대한 그의 믿음은, 배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마지막 장면에서도 발현되는데, 여기서 조커는 죄수들이 탄 배와 시민들이 탄 두 배에 각각 기폭장치를 준 다음, 12시가 되기 전에 상대방 배에 장착된 배의 폭발장치를 누르지 않으면 두 배 모두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조커는 12시가 지나도 배를 폭발시키지 못한다. 그는 배에 탄 사람들을 믿은 것이다. 그들이 악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똑똑하게, 자신들이 악하다는 사실을 체험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돈과 힘으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독재자가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리얼리즘, 즉 '원래적'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눈을 뜨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부른다.

 

인간에 대한 믿음. 즉 인간의 '악함'에 대한 믿음이 조커를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고담시의 영웅인 정직한 검사 하비 덴트를 자기 편으로 만들고, 대다수 시민들과 경찰들이 조커에 대한 두려움으로 배트맨을 적으로 돌리게 하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배트맨을 구속하라고 요구하는 고담 시민들은 마치 본시오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고 바랍바를 풀어주라고 요구하는 유태인들을 보는 것 같다. 감독의 이러한 은유는 9.11 테러 이후 벌어진 미국인들의 공포를 반영한 것 같다. 조커는 돈과 권력을 위해 테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 자체를 예찬하는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로(조커가 인질들을 비디오로 촬영하는 장면을 보고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된 김선일씨를 비롯한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에 맞서는 검사 덴트, 고든 시장 그리고 배트맨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노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메세지 자체는 소름끼치는 것이다. 배트맨은 고담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휴대폰 통화 내용을 도청하면서, 이를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악에 맞서 싸우는 '백기사'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악과 함께 뒹굴면서, 그 악을 퇴치해 궁극적으로는 밝은 세계에 사는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흑기사(다크 나이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아주 끔찍한 결론인데, 마치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옛 안기부가 생각나서일뿐만 아니라, 9.11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자행하는 온갖 인권 침해 사례들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사회의 불안정, 중동에서의 학살 등을 옹호할 수 있는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다크 나이트'는 아주 훌륭한 방법으로 미국인들의 공포심을 자극한 뒤, 결국 테러라는 악을 제압하기 위한 또 다른 악한 행위를 용납해 주고 있는 셈이다.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통해 미국 정부의 악한 행위에 대해 용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칸트 식의 의무론적 윤리설(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에 호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단지 미국의 그 '악한 행위'가 테러리스트들의 '악한 행위'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해주기만 하면 된다. 왜 무슬림들이 근본주의자가 되었는가? 그것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미국 백악관의 '다크 나이트'들이 석유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중동 땅에서 어마어마한 학살을 저지르고, 그곳에 미국의 말을 잘 듣는 꼭두각시 정권 이스라엘을 심어 상시적으로 중동 국가들을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크 나이트'의 기독교 근본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기사(덴트 검사)도 흑기사(배트맨)도 악당(조커)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이 망쳐놓은 세계를 재건할 수 있는, 민중들 사이의 평화적인 연대인 것이다. '다크 나이트'의 결론은 백악관에 앉아 있는 세계 최고의 악당들을 도와줄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극우적 메세지를 담은 영화의 놀라운 성공 역시 예찬해 주도록 하자. 어쨌거나 영화의 메세지에는 찬동할 수는 없을지언정, 나는 이 영화가 보여준 긴박감 넘치는 장면들과 히스 레져의 명 연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끔찍한 염세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 영화의 예술적 가치는 재앙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