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어? 하나님을 믿자

박선민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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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애쓰다" -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그 동안 사람을 믿으려 많이 애써왔다.

 

일이 잘못되어도 나는 나와 함께한 사람들을 믿고 기다린 것이기에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 그 과정인 사람을 믿은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인 것으로 믿어왔다.

 

그리고 어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함께한 점심 시간...

 

나는 사람을 믿고 기다린 것이었는데 그 사람이

내가 믿었던 사람이 아니였다고 투덜되는 나를 보고,

그 사람이 말했다.

 

사람을 왜 믿어.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만 믿으면 되지.

 

머리에 망치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런 일이 없을 텐데,

사람을 믿으니 그런 일이 생기는 구나....

 

사람은 믿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어울리는 것이다.

꼭 믿어야 한다면 하나님 한분만 믿자.

 

정말 옳은 말이다.

 

근데 글을 쓰고 나니,

왜 그렇게 전도하는 글이 되어버릴까?

 

그래도 나는 아직 교회 앞을 지나갈 뿐 들어가지 못한다.

 

 

여기 인터넷을 통해서, 좋은 글 하나를 찾아냈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스스로 자기 삶의 소중함을 잃었을 때,

한번 읽어보면^^ 희망의 빛을 다시 찾을만한 글이 될 듯 하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가 바울보다 나은가? 애쓰고 노력해도 죄를 짓결심 결심해도 또 죄짓는다. 이 어찌된 일인가? 오해 말자. 도대체 “내”가 뭔가? 죄인이다. 시체에서 썩은 물이 나오듯 죄인이기에 죄짓는다. 예수 믿어도 그렇다. 그러기에 ‘나를 믿지 않고 예수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막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을 살펴보니 좋은 것도, 선한 것도 없어서 절망하고 복받을 자격이 없다며 포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속은 것이다. 시체에서 썩은 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닦고 닦아도 계속 나온다. 이처럼 아담 이후 죄성이 우리에게 들어와 죄의 물이 계속 떨어진다. 그래서 바울도 부르짖었다.

 

또한 우리 감정이 축복을 방해 할 수 있다. 사랑도, 그것은 우리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다. 사람의 정과 성령의 사랑은 다르다. 인간적인 정은 사단의 열매일 수 있다.

 

마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내”가, “정”이 하나님 뜻을 막고 교회와 사람을 망친다. “나”는 원래 그 수준밖에 안된다. 그래서 “나”를 알면 그 날부터 나를 안 믿는다. 그래서 예수만 믿는다. 이것이 신앙이다.

 

마귀는 우리 양심을 공격한다. 신앙은 양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종교생활은 그만두고 믿음 생활을 하자. 우리 양심을 지키는 것도 예수의 보혈이다. 모든 축복은 그래서 보혈부터 시작된다. 보혈의 축복이다. ‘내가 넘어지는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 결심하고 노력한다고 우리가 죄 짓지않을 줄로 속지 말자. 그건 “내가 복음”이다. 은혜 받아도 죄짓는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다. 자꾸만 “죄 안 지어야지!”하면 축복체질이 못된다.

 

“성도인 내가, 집사인 내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하면 속는 것이다. 성도 이전에 죄인이니 죄짓는 것은 당연하다. 죄짓자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빨리 포기하자. 실망할 것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못 믿는다. 말씀을 믿는다. 나대신 예수를 믿는다. 이것이 믿음이다. “형제님은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 하십니다.”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참아도 .. 믿으면 하겠네.”

 

나는 그것 밖에 안되나? 그렇다. 그것 밖에 안되는 우리를 예수님이 그 피로 씻어주셨기에 거룩하게 되었다. 그것 밖에 안되는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어 위대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결심하는 대신 성령께 부탁하자. 자신에게 기대 않고 주님만 의지해서 승리하자. 사단은 “내가”를 계속 공격한다. “내가”를 버리면 마귀가 시험할 수 없고 축복이 부어진다.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하나? 내 힘으로 선행하려 애쓰지 말고 성령이 감동하실 때 순종하자.

 

좋은 일도 “내가”하다 보면 나중에 섭섭하게 된다. 성령이 하시게 하자. 하나님 주시는 재물과 능력으로 주님이 하라고 하실 때 순종하자. 그러면 욕해도 섭섭하지 않다. 영감 곧, 성령이 감동하시면 그냥 한다. 영감은 묵상할 대상이 아니라. 순종하라고 주신다. 영감대로 했는데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니 하나님만 영광받으시는 것이다. 

 

축복체질이 되는데 문제는 바로 “결심!”하는 것이 문제다. 결심은 사실 교만이다. 내가 나를 바꿀 수 없다. 주님이 하신다. 이제 피눈물내지 않아도 ,결단하지 않아도 된다. 믿으면 된다. 하나님이 내게 굉장한 기대를 하신다고 착각하지 말자. 나는 가망이 없기에 예수님이 피흘려  죄사하셨고 ,나는 열매맺지 못하니 성령이 오셔서 열매맺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 우리에게 기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랑하신다. 이제부터 혼자 고통하고 좌절하지 말자. 혼자 애쓰는 것이 율법주의며 자력구원이다. 불교다. 기독교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주시는 분이다. 저주나 고생시키시는 분이 아니다. 고생해야 뭘 얻는다는 것은 불교나 유교요 불신앙이다. 하나님은 공짜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생각을 바꾸라. 

[ 출처: http://www.urimchurch.org/technote/read.cgi?board=sermon&y_number=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