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역도가 싫다며 아빠 손을 뿌리쳤던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소녀가 10년이 지난 뒤 세계 ‘역도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16일 밤 베이징 올림픽 여자역도에서 금메달을 따낸 장미란이다.
장미란은 중3 시절이던 1998년 바벨을 처음 잡았다. 아버지 장호철(54)씨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장미란은 역도 선수 출신 아버지와 학교 계주 대표를 도맡았던 어머니 이현자(50)씨에게서 운동 능력을 물려받은 덕분인지 달리기는 물론 모든 운동에 능한 편이었다.
장씨는 딸의 손을 잡고 역도부의 문을 두드렸다. 장씨는 “미란이가 역도를 하면 분명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장미란은 “힘만 쓰는 역도는 싫다”며 그 자리에서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어머니 이씨 앞에서도 “싫다. 왜 여자더러 역도를 하라고 하느냐”며 서럽게 울기도 했다.
맏딸이라는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장미란은 결국 부모님의 희망대로 바벨을 잡았다. 96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집안이 어려워졌던 것도 이유였다. 키 1m70㎝와 중학교 졸업 때 이미 체중 75㎏을 넘었던 다부진 체격은 역도 선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99년 6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따면서 역도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0년 전국여자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이 된 이후 국내서 단 한 차례도 정상을 내놓지 않았다.
재능은 곧바로 국제무대에서도 통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은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5년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이 됐다.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중이염을 앓는 어려움 속에서도 2연패에 성공했고 2007년 세계선수권까지 3연패에 성공했다.
장미란은 “어렸을 때는 여자로서 역도를 한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빨리 역도를 시작하지 못한 게 아쉽다. 외모와 체중에 신경을 썼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꾸준히 기록을 늘리고 성적이 나오면서 역도 선수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장미란 장미란 하길래 뭐가 그리 대단하가 싶어 처음으로 역도경기를 시청하게 되었다.보면서 생각했던것이 장미란은 절대 다른 역도선수들보다 거대하지도 않았고그녀의 경기를 보는 내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시청한 나는 그녀의 3차시기가 끝날때까지 비장한 표정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의 물결까지...
장 미란 - 바벨 싫다며 울던 중3 소녀
바벨 싫다며 울던 중3 소녀 ‘역도 여왕’ 등극
2008년 08월 18일 (월) 02:53 중앙일보
사람들이 장미란 장미란 하길래 뭐가 그리 대단하가 싶어 처음으로 역도경기를 시청하게 되었다.보면서 생각했던것이 장미란은 절대 다른 역도선수들보다 거대하지도 않았고그녀의 경기를 보는 내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시청한 나는 그녀의 3차시기가 끝날때까지 비장한 표정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의 물결까지...[중앙일보] 역도가 싫다며 아빠 손을 뿌리쳤던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소녀가 10년이 지난 뒤 세계 ‘역도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16일 밤 베이징 올림픽 여자역도에서 금메달을 따낸 장미란이다.
장미란은 중3 시절이던 1998년 바벨을 처음 잡았다. 아버지 장호철(54)씨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장미란은 역도 선수 출신 아버지와 학교 계주 대표를 도맡았던 어머니 이현자(50)씨에게서 운동 능력을 물려받은 덕분인지 달리기는 물론 모든 운동에 능한 편이었다.
장씨는 딸의 손을 잡고 역도부의 문을 두드렸다. 장씨는 “미란이가 역도를 하면 분명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장미란은 “힘만 쓰는 역도는 싫다”며 그 자리에서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어머니 이씨 앞에서도 “싫다. 왜 여자더러 역도를 하라고 하느냐”며 서럽게 울기도 했다.
맏딸이라는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장미란은 결국 부모님의 희망대로 바벨을 잡았다. 96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집안이 어려워졌던 것도 이유였다. 키 1m70㎝와 중학교 졸업 때 이미 체중 75㎏을 넘었던 다부진 체격은 역도 선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99년 6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따면서 역도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0년 전국여자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이 된 이후 국내서 단 한 차례도 정상을 내놓지 않았다.
재능은 곧바로 국제무대에서도 통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은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5년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이 됐다.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중이염을 앓는 어려움 속에서도 2연패에 성공했고 2007년 세계선수권까지 3연패에 성공했다.
장미란은 “어렸을 때는 여자로서 역도를 한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빨리 역도를 시작하지 못한 게 아쉽다. 외모와 체중에 신경을 썼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꾸준히 기록을 늘리고 성적이 나오면서 역도 선수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한용섭 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그리고 그녀의 기사를 읽으면서 다시한번 장미란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