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휘 - 조선말 최고의 갑부이자 친일파

김민호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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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휘는 1884년에는 김옥균의 갑신정변을 진압했고, 1894년에는 동학농민항쟁을 진압했다. 임오군란 때 탐관오리로 단죄되어 유배되었다가 국권피탈 후 일본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대표적 식민은행인 천일은행(우리은행의 전신)과 휘문학교를 설립하였다. 일제의 토지강탈에 앞장서 수많은 동포들이 토지를 잃고 먹고 살기위해 만주와 연해주로 방랑하게 만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해 고려인이 되었다

[출처] 휘문고등학교와 친일파 민영휘 |작성자 네스카페

 

2007년 5월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휘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했고, 11월 22일 제3차 재산환수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제3자에게 처분한 민영휘의 재산까지 국가에 귀속시킨다는 결정을 내렸다. 민영휘의 후손들은 이 결정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출처] 위키백과

이 얼마나 살기 좋은 대한민국인가. 나라를 판 조상의 자손들은 할말이 더 많다. 그들은 이미 백년도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한다. 이제 그만 할때도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라를 팔아 얻은 재산은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살기 좋은 대한민국인가. 잠깐 욕 먹고나면 다시 잘 살 수 있으니까.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말은 듣기 싫지만 그 친일로 얻은 재산은 갖고 싶으니까. 이들을 보면 나라가 다시 어려워졌을 때, 이제 누가 그 어느 누가 위국헌신할까...

독립운동가의 후손에겐 "독립운동가의 후손 ㅇㅇㅇ" 이란 문패가 걸린다. 나라를 판 친일파의 후손에겐 어마어마한 재산이 생긴다. 멋진 광경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 또 어느 시대엔들 이런 살기 좋은 시절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