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와서 달라진 나의 감성. 나의 고향은 마산이고 아버지의 고향은 대구다.아버지가 내 나이쯤일 때는 할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다.그래서 아버지가 16일짜리 휴가를 나왔을 때 15일은 농사일을 도우셨다고 했다.아버지는 논두렁에 있는 풀들을 많이 보셨을 것이다.지금 우리집 아파트 베란다에는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화분 위에서 자라고 있다.아버지는 그 식물들을 아끼고 기르신다. 그 푸르름이 좋으신 모양이다. 1년에 한번 피는 꽃을 예뻐하신다. 나의 고향은 마산이고 어머니의 고향은 부산이다.어머니가 내 나이쯤일 때는 바다가 맑고 깨끗해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손쉽게 먹을 수 있었다.어머니는 파래무침을 참 맛있다고 많이 드셨다. 시원한 바다 소리를 좋아하시고 낚시를 가면 바닷가에 쪼그려 앉아 고동을 줍고 굴을 캐서아들들에게 맛있는거라며 먹여주신다. 나의 마산은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하지만 나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고, 바다에서 나는 파래무침의 맛을 몰랐다.그저 학교를 다니고~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 오락을 했다.고등학교때는 메케한 매연을 뿜는 차를 타고 등교해서 해가 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집에 왔다.대학교를 서울로 와서 크나큰 63빌딩에 놀라고, 시끌벅적한 명동을 누비고. 갑갑한 곳에서 옹기 종기 앉아 영화를 보고. 도서관의 텁텁한 지하 열람실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그리고 군대에 왔다. 군시설 주위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빵빵거리며 지나가는 자동차가 없다.그야 말로 시골이다.담장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날카로운 총알을 지나가는 풀밭에는 노란 민들레가 꽃을 피고. 새하얀 씨들이 바람에 날라간다.화생방 가스가 가득한 훈련장에는 도마뱀이 까만 전투화를 피해 요리조리 다니다가장난끼 많은 일병에게 걸려 꼬리를 조금씩 땅에 버리며 필사적으로 도망간다.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해칠 수 있는 수류탄을 던지는 연습을 하러 가는 길에는딸기 하우스가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끝도 없이 이어져. 딸기가 제철일쯤 달콤한 딸기 내음이 나를 간지럽힌다.피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산속 깊은 각개전투 교장에서는 산림욕을 즐기러 온 마냥나무 냄새와 풀 냄새에 취해, 훈련병들도 잊어버린다. 겨울에는 논들이 쩍쩍 갈라져 말라 있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갈 쯤.농부들이 뒤집어 위 아래가 바뀌고. 어느새 물이 가득차 진흙이 된다.한달쯤 후에 다시 가보면 조그만 모들이 줄 맞춰 나란히 서서 나를 본다.따스한 봄이 지나 뜨거운 여름이 지날때 까지 한달에 한번씩 가보는 논엔.그 조그만 모였던 벼들이 쑥쑥 자라 어느새 나의 무릎을 간지럽히고.뜨거운 가을 햇살을 견디기 힘든지 누렇게 변해. 바람에 물결친다.또 한달 쯤 후에 가보면 8개월을 함께 했던 벼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모들을 만나기를 기대하게 된다. 군대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의 고향은 똑같은 도시이건만.부모님이 고향에서 몸으로 느끼며 커왔던 그런 것들을 나의 고향에서 나는 왜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군대에 와서 누런 벼들의 물결에 아름다움을 느끼고,휴가 나가서 오랜만에 집으로 가. 베란다에 20년을 커 온 러브체인의 하트에 가슴 설렌다.어머니가 해주는 파래무침에 짭조름한 맛은 그동안 왜 몰랐을까.등산 하는 내내 가쁜 내 숨만을 내쉬었지만. 마시는 숨속에 나무내음과 풀내음이 느껴진다. 컴퓨터가 중학교때 나왔던 내가 이정도인데. 초등학교때부터 놀이터의 흙을 볼에 묻히지 못하고컴퓨터의 앞에 앉아 있는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어릴 때 부터 영어에 매달리고 수학에 매달리는 것보다 집 주위의 놀이터의 흙내음. 학교 주변에 심어진 단풍나무의 붉은 빛깔. 운동 후에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의 상쾌함.내 고향에 있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이 즐거움을 알아야크나큰 슬픔과 시련이 왔을 때 웃음을 되찾아 힘낼 수 있지 않을까.
군대에 와서 달라진 나의 감성.나의 고향은 마산이고 아버지의 고향
군대에 와서 달라진 나의 감성.
나의 고향은 마산이고 아버지의 고향은 대구다.
아버지가 내 나이쯤일 때는 할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16일짜리 휴가를 나왔을 때 15일은 농사일을 도우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논두렁에 있는 풀들을 많이 보셨을 것이다.
지금 우리집 아파트 베란다에는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화분 위에서 자라고 있다.
아버지는 그 식물들을 아끼고 기르신다. 그 푸르름이 좋으신 모양이다. 1년에 한번 피는 꽃을 예뻐하신다.
나의 고향은 마산이고 어머니의 고향은 부산이다.
어머니가 내 나이쯤일 때는 바다가 맑고 깨끗해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손쉽게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파래무침을 참 맛있다고 많이 드셨다.
시원한 바다 소리를 좋아하시고 낚시를 가면 바닷가에 쪼그려 앉아 고동을 줍고 굴을 캐서
아들들에게 맛있는거라며 먹여주신다.
나의 마산은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고, 바다에서 나는 파래무침의 맛을 몰랐다.
그저 학교를 다니고~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 오락을 했다.
고등학교때는 메케한 매연을 뿜는 차를 타고 등교해서 해가 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집에 왔다.
대학교를 서울로 와서 크나큰 63빌딩에 놀라고, 시끌벅적한 명동을 누비고. 갑갑한 곳에서 옹기 종기 앉아 영화를 보고. 도서관의 텁텁한 지하 열람실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그리고 군대에 왔다.
군시설 주위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빵빵거리며 지나가는 자동차가 없다.
그야 말로 시골이다.
담장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날카로운 총알을 지나가는 풀밭에는
노란 민들레가 꽃을 피고. 새하얀 씨들이 바람에 날라간다.
화생방 가스가 가득한 훈련장에는 도마뱀이 까만 전투화를 피해 요리조리 다니다가
장난끼 많은 일병에게 걸려 꼬리를 조금씩 땅에 버리며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해칠 수 있는 수류탄을 던지는 연습을 하러 가는 길에는
딸기 하우스가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끝도 없이 이어져. 딸기가 제철일쯤
달콤한 딸기 내음이 나를 간지럽힌다.
피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산속 깊은 각개전투 교장에서는 산림욕을 즐기러 온 마냥
나무 냄새와 풀 냄새에 취해, 훈련병들도 잊어버린다.
겨울에는 논들이 쩍쩍 갈라져 말라 있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갈 쯤.
농부들이 뒤집어 위 아래가 바뀌고. 어느새 물이 가득차 진흙이 된다.
한달쯤 후에 다시 가보면 조그만 모들이 줄 맞춰 나란히 서서 나를 본다.
따스한 봄이 지나 뜨거운 여름이 지날때 까지 한달에 한번씩 가보는 논엔.
그 조그만 모였던 벼들이 쑥쑥 자라 어느새 나의 무릎을 간지럽히고.
뜨거운 가을 햇살을 견디기 힘든지 누렇게 변해. 바람에 물결친다.
또 한달 쯤 후에 가보면 8개월을 함께 했던 벼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모들을 만나기를 기대하게 된다.
군대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의 고향은 똑같은 도시이건만.
부모님이 고향에서 몸으로 느끼며 커왔던 그런 것들을
나의 고향에서 나는 왜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군대에 와서 누런 벼들의 물결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휴가 나가서 오랜만에 집으로 가. 베란다에 20년을 커 온 러브체인의 하트에 가슴 설렌다.
어머니가 해주는 파래무침에 짭조름한 맛은 그동안 왜 몰랐을까.
등산 하는 내내 가쁜 내 숨만을 내쉬었지만. 마시는 숨속에 나무내음과 풀내음이 느껴진다.
컴퓨터가 중학교때 나왔던 내가 이정도인데. 초등학교때부터 놀이터의 흙을 볼에 묻히지 못하고
컴퓨터의 앞에 앉아 있는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어릴 때 부터 영어에 매달리고 수학에 매달리는 것보다
집 주위의 놀이터의 흙내음.
학교 주변에 심어진 단풍나무의 붉은 빛깔.
운동 후에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의 상쾌함.
내 고향에 있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이 즐거움을 알아야
크나큰 슬픔과 시련이 왔을 때 웃음을 되찾아 힘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