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커뮤니케이션 김경해 사장님과 PCG 여준영 사장님이 PR산업의 정체성과 발전가능성에 대해 쓴 글이다.
따로 쓴 글이지만 이렇게 이어지면 어떨까 하고 붙여보았다.
기능이 명확하면 문제가 없다. 문제는 기능이 애매하거나 복잡할 때 생긴다. 스위스제 다용도 칼이 그 예이다.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스위스 칼은 그 안에 손칼은 물론 소형 볼록렌즈, 가위, 끌, 집게, 드라이버, 송곳 등 많게는 10여개의 기능이 한몸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스위스 칼의 멋은 바로 이 다기능성이다.
PR은 마치 이 스위스칼과 같다. PR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PR은 세상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라고 한다.
PR을 하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PR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흔히 PR을 Publicity(언론홍보)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시 스위스 칼을 떠올려 보자. 스위스 칼 내부 기능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손칼이라고 해서, 스위스 칼을 손칼로 여긴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차라리 값싸고 날 선 손칼을 하나 구해 가지고 다니면 될 걸 왜 등산객들은 무거운 스위스칼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까.
- Let's PR, 김경해 (커뮤니니케이션 코리아 대표)
2. 드러내놓고 말들은 안하지만 PR하는 사람들은 광고앞에서 열등감을 가질때가 많다.
예산의 배분에서 효과의 측정에서 늘 왜소해진다
광고전문가가 PR의 영역을 아우르는 경우는 있어도 PR하는 사람이 광고를 주도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PR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있다
크로스오버의 권한은 산업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점이다
무슨말인고 하니 광고가 늘 큰 예산을 핸드링하며 모든 캠페인을 주도해야하고
PR은 늘 작은 파트만 담당하도록
사전에 사회적으로 약속되어있거나 정해져 있는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차피 광고든 PR이든 이벤트든 다 수단이다 수단으로서의 그 광고와 PR 위에 컨셉이 있고 기획이 있다.
누가 좋은 컨셉과 기획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내가 어느 수단을 쥐고있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다.
세상은 바뀌었다
PR하는 사람이 아주 기발한 캠페인 컨셉을 기획해 내면 그 기획의 하부에 광고도 달리고 이벤트도 달리는거고
이벤트 하는 사람이 아주 기발한 컨셉을 기획하면 PR과 광고가 그 조정을 받게 되는거다.
그러나 아쉽게도 PR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매뉴얼의 한계에 갇혀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뿐이다.
젊은 PR인들이 바꿔야 한다.
이제 부터라도 고객이 "우리 회사가 새로운 제품을 런칭합니다 도와주세요" 하고 요청하면
선배들이 하는것처럼 낡은 "PR 매뉴얼" "리테이너 서비스스코프" 쓰레기같은 "PR기획서"를 를 들고 들어갈게 아니라
그 전에 모든 영역을 아우를 컨셉과 기획을 스스로 만들어 제시해 보는 (고객이 원하든 원치않든) 노력과 시도를 해야한다.
그런일이 반복되고 그 반복속에 유효한 성공케이스가 나오면 그때 비로소 "의사를 만난뒤 성공했습니다" "PR을 만난뒤 성공했습니다"며 산업의 서열이 다시 정착되게 된다
애초에 산업위에 산업은 없었다 당연히 PR위에 광고 없었고 대신 사람위에 사람이 있을 뿐이다 머리 위에 더 좋은 머리 있을 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PR이 광고에 열등한게 아니라 PR인이 광고인에 열등했던게 맞다.
여태까지는 그랬다.
(다시 질문)
클래식 연주자가 팝을 접목한 크로스오버가 옳은가 대중가수가 클래식을 샘플링한 크로스 오버가 옳은가
PR Identity와 License to Crossover.
홍보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 어찌 다 읽는 것들이
홍보 관련된 책이거나
마케팅 관련된 책이거나
둘다 관련된 책이거나
그렇다.
현대철학 속 실존적 자아를 고민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쓸모없는 지식들을 주워섬기며
한량없이 할랑하던 한량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뭐 일단은 재미있다.
아래의 글은 커뮤니케이션 김경해 사장님과 PCG 여준영 사장님이 PR산업의 정체성과 발전가능성에 대해 쓴 글이다.
따로 쓴 글이지만 이렇게 이어지면 어떨까 하고 붙여보았다.
기능이 명확하면 문제가 없다. 문제는 기능이 애매하거나 복잡할 때 생긴다. 스위스제 다용도 칼이 그 예이다.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스위스 칼은 그 안에 손칼은 물론 소형 볼록렌즈, 가위, 끌, 집게, 드라이버, 송곳 등 많게는 10여개의 기능이 한몸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스위스 칼의 멋은 바로 이 다기능성이다.
PR은 마치 이 스위스칼과 같다. PR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PR은 세상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라고 한다.
PR을 하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PR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흔히 PR을 Publicity(언론홍보)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시 스위스 칼을 떠올려 보자. 스위스 칼 내부 기능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손칼이라고 해서, 스위스 칼을 손칼로 여긴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차라리 값싸고 날 선 손칼을 하나 구해 가지고 다니면 될 걸 왜 등산객들은 무거운 스위스칼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까.
- Let's PR, 김경해 (커뮤니니케이션 코리아 대표)
2. 드러내놓고 말들은 안하지만
PR하는 사람들은
광고앞에서 열등감을 가질때가 많다.
예산의 배분에서
효과의 측정에서
늘 왜소해진다
광고전문가가
PR의 영역을 아우르는 경우는 있어도
PR하는 사람이 광고를 주도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PR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있다
크로스오버의 권한은
산업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점이다
무슨말인고 하니
광고가 늘 큰 예산을 핸드링하며
모든 캠페인을 주도해야하고
PR은 늘 작은 파트만 담당하도록
사전에 사회적으로 약속되어있거나
정해져 있는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차피 광고든 PR이든 이벤트든 다 수단이다
수단으로서의 그 광고와 PR 위에
컨셉이 있고 기획이 있다.
누가 좋은 컨셉과 기획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내가 어느 수단을 쥐고있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다.
세상은 바뀌었다
PR하는 사람이
아주 기발한 캠페인 컨셉을
기획해 내면
그 기획의 하부에
광고도 달리고 이벤트도 달리는거고
이벤트 하는 사람이
아주 기발한 컨셉을 기획하면
PR과 광고가 그 조정을 받게 되는거다.
그러나
아쉽게도
PR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매뉴얼의 한계에 갇혀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뿐이다.
젊은 PR인들이
바꿔야 한다.
이제 부터라도 고객이
"우리 회사가 새로운 제품을 런칭합니다
도와주세요"
하고 요청하면
선배들이 하는것처럼
낡은 "PR 매뉴얼" "리테이너 서비스스코프"
쓰레기같은 "PR기획서"를
를 들고 들어갈게 아니라
그 전에
모든 영역을 아우를 컨셉과 기획을
스스로 만들어 제시해 보는 (고객이 원하든 원치않든)
노력과 시도를 해야한다.
그런일이 반복되고
그 반복속에 유효한 성공케이스가 나오면
그때 비로소
"의사를 만난뒤 성공했습니다"
"PR을 만난뒤 성공했습니다"며
산업의 서열이 다시 정착되게 된다
애초에
산업위에 산업은 없었다
당연히 PR위에 광고 없었고
대신
사람위에 사람이 있을 뿐이다
머리 위에 더 좋은 머리 있을 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PR이 광고에 열등한게 아니라
PR인이 광고인에 열등했던게 맞다.
여태까지는 그랬다.
(다시 질문)
클래식 연주자가 팝을 접목한 크로스오버가 옳은가
대중가수가 클래식을 샘플링한 크로스 오버가 옳은가
답은
"둘중 더 실력있는 아티스트가 만든 음악이 옳다."
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살고
크로스 오버 마케팅을 주도할
후배들이 나와야
PR이 산다.
- Hunt Blog, 여준영 사장 (PCG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