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저보다 한살 밑에 여자분의 삶입니다.. 너무 좋아 이렇게 광장에 글을 올립니다... 이발은 그 22살 친구의 발입니다... 이글을 읽으며 나는 내가 하고싶은 꿈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았난... 라고.. 깊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X같고 먹고살기 힘든세상에.... 이렇게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19살 여름때부터 학비를모으고자 까르푸 ( 현 홈에버) 보안팀 매장입구 도우미로 입사하고 대학다니며 일한지 벌써 3년이 훌쩍 지나버렸다.처음엔 단지 학비가 목적이기에 교육받은대로의 형식적인 인사와 멘트로 일을 시작했었다.왜냐하면 그때 당시엔 당연히 학비가 목적이기 때문에 즉 '돈'이 목적이기 때문이였다. 난생 태어나서 처음신어보는 구두에 화장에 낯선것은 둘째치고 하루에 10시간씩 힐을 신고 일을 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신어봐서 그런건지하루에도 2-3개씩 터져나가는 물집이 견디기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었다. 여름에는 주차장으로 나가 땡볕아래 검정색 앞뒤꽉 막힌 구두를 신고 있으면 어느새 구두라인대로 살이 타버리고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워서 코트속에 개인옷을 겹쳐 입어도밖에 나가있는 그 한시간이 마치 4시간을 서있었던 마냥 너무 추웠던 시기였었다. 본래 대학을 가고자 했었던 의지는 없었다. 목표도 없었고, 꿈도 없었고, 성적도 좌절이였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대학이냐 취업이냐 두가지의 관문에 섰을때 내 자신을 뒤돌아봤다어떤 뚜렷한 공부를 하고싶다는 생각보단 대학을 가고자 했던이유는 두가지였었는데 첫번째는 엄마가 내 나이 14살적에 내 앞에서 자살하셨었는데그때 당시엔 엄마가 나를 버린것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방황했었던것일까? 대학에 들어가자는 것도 엄마가 어릴적에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가지못했기 때문에 나는 엄마보란듯이 집안이 어려워도 대학에 들어갈꺼라고 .. 그런 복수심때문에 대학에 가고자 했던 의지가 생겨났던것 같다. 그보다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것, 두번째는..중고등학교까지 아버지 혼자 힘으로 키워준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할 나름인데 감히 대학등록금 이야기를 꺼낼수가 없었고,나보다 공부도 상위권이였던 오빠도 형편때문에 대학에 입학원서 한장 내질 못하고 포기했었다. 키워준만으로도 감사한데 아빠는 공부를 더 시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내 고등학교3학년일때 얼굴을 제대로 봐주시질 않으셨다. 어느날 아빠 친구분과의 전화통화를 우연히 듣게되었다.그 친구분이 자신이 자식자랑을 하는데 아무말없이 묵묵히 듣고계셨던 아빠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빠에게 있어서 자랑스럽지 않은 딸이였다는걸 늘 대학을 보내주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마음아파하고 어깨 축 늘어진 아빠 모습이 보기 싫어서 그래서 19살 여름방학때 까르푸(홈에버)로 위장취업을 했었다.아마도 내가 모교(근명여정)에서 제일 빨리 취업했을것이다.그도 그러할 법한게 담임선생님께서 절대 안된다고 규칙에 어긋난다고 반대하셨었는데내 사정을 이야기하며 어떻게든 대학을 가고 싶다고 나 혼자서 벌어서 갈테니까 도와달라며울며불며 이야기 했었던 적이 있었다.다행히도 내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담임선생님께서 날 조용히 부르시더니 승낙해주셨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일하게된 매장입구 그리고 주차 도우미일.하루에도 2-3개 터지는 물집에 생살이 부어올라 이제는 물집이 생겼던 자리도그리고 벌겋게 부어올랐던 그 생살들도 모두 굳은살이 박혀서 아무리 높은 구두를 신어도 아프지가 않다. 아르바이트를한 그 다음해 20살 2월달이 되던날 입학발표날이 있던날그날에도 어김없이 까르푸 매장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합격발표를찾아보니 경인여자대학 인터넷비즈니스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물론 입학후에도 학교개학날엔 주말알바로, 학교방학날엔 평일주말 병행하며 차근차근 통장에 내 자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퇴했다.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들어간 대학 왜 자퇴했냐고들 물어본다.돈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도 아니다.자퇴이전 학점은 총평균 평점 4.45/4.50 이였고 매 학기마다 성적우수장학금을 받는 덕분에 학교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며 학비 목적으로 모았던 돈은 그대로 남아있다. 학비 목적으로 들어갔던 홈에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루에도 몇백명 지나가는 매장입구에서 날 알아보는 고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하루는 동전교환기의 위치가 바뀌어버리는 바람에 쇼핑카트를 뽑으려면 매장을 삥 둘러가야만했었기에 고객컴플레인이 장난 아니였던 시기가 있었다.고스란이 욕먹는건 고객접점지역에 있었던 매장입구 도우미들이였다. 어느 아주머니가 갓난아기를 안고 나에게 동전교환기의 위치를 물어보는데그 위치를 설명해주기가 너무 죄송했다.내가 동전교환기 위치를 바꿔버린것도 아닌데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그 아주머니가쇼핑카트를 뽑으려고 매장한바퀴를 삥 돌아가야하는 그 어려움, 시간에 대한 미안함이라.. 그래서 일단은 동전교환기의 위치를 알려드리고 주머니에서 100원을 드렸다.사실적으로 동전교환기의 위치가 너무 멀어서 죄송하다고 안돌려주셔도 되니까아가랑 편안하게 쇼핑하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쉬는시간이 되어 사무실에서 쉬고있는데 들려오는 무전기소리에서어떤 고객님이 날 찾는다는 다급한 소리에 깜짝놀래서 매장으로 올라갔더니그 아주머님이 남편분이랑 같이 오셔서 쇼핑 잘했다면서100원과 스타벅스 1800원짜리를 넘겨주시고 가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그 분은 매 주말마다 내가 서있는 매장입구로 , 내가 있는 주차장입구로 방문하셔서오실때마다 음료수 하나씩을 건네주셨었다. 내가 고객에게 감동을 드려야 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내가 고객에게 감동을 받아버렸다.그 이후로 시급이 어찌되었든 그 일을 하는게 너무 즐거웠다.그 아주머님에게 받은 그 감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경인여대에서 경영학 관련 마케팅강의를 듣는데그 강의과목에 한순간 매료가 되어버렸다.벌써 1년이나 지난 지금시점에서 그 강의를 가르치셨떤 교수님이 알려주신 예제 하나하나가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꿈이 생겼다.경영학 마케팅공부를 하고 싶어져서 자퇴를 한것이였다.중고등학교때에도 세월이 가라 그냥 저냥 목표없이 지내왔었는데 내게도 처음으로 하고싶은 꿈이 생겼다.그래서 그 꿈을 실천하느냐, 아니면 멀쩡히 잘다니던 대학을 계속 다니느냐를고민했었다.근데 나는 그 꿈을 실천할것임을 선택했다. 그래서 현재는 한국교육개발원 학점은행제에 등록하여 경영학사학위 수여중이며,내년쯤에 입학원서를 넣을 예정이다.경인여대에는 경영학과가 없었기때문에 학과이전을 할수가 없어서 어쩔수 없는선택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입준비중이라고 말을 하면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명문대학교의 이름을 말하는데 난 그저 경영공부를 배울수 있는 그 어느 대학교든, 대학원이든상관없다는 취지로 선택한 길이였다.물론 목표로 삼은 대학교는 따로 있으나 구지 그 대학교를 가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경영공부 마케팅 공부를 배울수 있는 그 어느대학이든 입학하여심도있게 공부해서 훗날 취업시즌이 다가올떄 한달 급여 80만원을 받아도 50만원을 받아도 내가 그 고객님에게 감동을 받은만큼 그 몇배로 내가 속한 기업을 찾아주시는 고객에게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어찌보면 소박한 꿈일지라도, 그 일을 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내가 살아있다는게 느껴진다.내가 그일을 함으로써 내가 이 사회에서 무언가를 하는것만 같고 또 처음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줄수 있다는 그 감동만으로도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홈에버(까르푸)에서 일하면서 점차 엄마에 대한 미움도 사라졌다.매장입구에 서서 고객에게 인사를 하는데 엄마와 아들,딸이 손을 잡고 장보러 오는 모습을보면서 괜스레 눈물이 났던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도 ,,약 8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흔한 단어 '엄마' 라는 단어를 써본적이 없다.그때 당시에 남들에게는 사소하고 흔한 단어일 지라도 '엄마'라는 그 단어 만으로도엄청 그리움이였고 가슴이 미어졌었다. 아무리 내게 나쁜엄마고 싫고 화가나게 한 엄마일지라도 그래도 내 엄마라는 생각이였다.그래서 지금은 엄마가 밉고 싫고 화나는 나쁜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한 존재다.왜냐면 엄마는 나에게 하늘나라로 가서 두가지를 알려주셨다.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와 부모님에 대한 소중함을. 벨류스타라는 사이트에 본 글을 올렸었는데내 개인 홈페이지에 등록해서 훗날 내가 시련을 겪거나 좌절 할때쯤에내가 쓴 글을 내가 읽어본다면 지금의 그 자신감으로 훗날의 시련을 이겨낼수 있지 않을까싶어서 남겨놓는다. 조은정(Cho eun joung, 1987)hahahahaha 당신은... 당신의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하고계십니까....??1
이발은.. 여자의 발입니다..
22살... 저보다 한살 밑에 여자분의 삶입니다..
너무 좋아 이렇게 광장에 글을 올립니다...
이발은 그 22살 친구의 발입니다... 이글을 읽으며 나는 내가 하고싶은 꿈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았난... 라고.. 깊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X같고 먹고살기 힘든세상에.... 이렇게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19살 여름때부터 학비를모으고자 까르푸 ( 현 홈에버) 보안팀 매장입구 도우미로
입사하고 대학다니며 일한지 벌써 3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처음엔 단지 학비가 목적이기에 교육받은대로의 형식적인 인사와 멘트로 일을 시작했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엔 당연히 학비가 목적이기 때문에 즉 '돈'이 목적이기 때문이였다.
난생 태어나서 처음신어보는 구두에 화장에 낯선것은 둘째치고
하루에 10시간씩 힐을 신고 일을 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신어봐서 그런건지
하루에도 2-3개씩 터져나가는 물집이 견디기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었다.
여름에는 주차장으로 나가 땡볕아래 검정색 앞뒤꽉 막힌 구두를 신고 있으면
어느새 구두라인대로 살이 타버리고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워서 코트속에 개인옷을 겹쳐 입어도
밖에 나가있는 그 한시간이 마치 4시간을 서있었던 마냥 너무 추웠던 시기였었다.
본래 대학을 가고자 했었던 의지는 없었다.
목표도 없었고, 꿈도 없었고, 성적도 좌절이였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대학이냐 취업이냐 두가지의 관문에 섰을때 내 자신을 뒤돌아봤다
어떤 뚜렷한 공부를 하고싶다는 생각보단 대학을 가고자 했던이유는 두가지였었는데
첫번째는 엄마가 내 나이 14살적에 내 앞에서 자살하셨었는데
그때 당시엔 엄마가 나를 버린것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방황했었던것일까?
대학에 들어가자는 것도 엄마가 어릴적에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가지못했기
때문에 나는 엄마보란듯이 집안이 어려워도 대학에 들어갈꺼라고 ..
그런 복수심때문에 대학에 가고자 했던 의지가 생겨났던것 같다.
그보다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것, 두번째는..
중고등학교까지 아버지 혼자 힘으로 키워준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할 나름인데 감히 대학등록금 이야기를 꺼낼수가 없었고,
나보다 공부도 상위권이였던 오빠도 형편때문에 대학에 입학원서 한장 내질 못하고
포기했었다. 키워준만으로도 감사한데 아빠는 공부를 더 시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내 고등학교3학년일때 얼굴을 제대로 봐주시질 않으셨다.
어느날 아빠 친구분과의 전화통화를 우연히 듣게되었다.
그 친구분이 자신이 자식자랑을 하는데 아무말없이 묵묵히 듣고
계셨던 아빠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빠에게 있어서 자랑스럽지 않은 딸이였다는걸
늘 대학을 보내주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마음아파하고 어깨 축 늘어진 아빠 모습이 보기 싫어서
그래서 19살 여름방학때 까르푸(홈에버)로 위장취업을 했었다.
아마도 내가 모교(근명여정)에서 제일 빨리 취업했을것이다.
그도 그러할 법한게 담임선생님께서 절대 안된다고 규칙에 어긋난다고 반대하셨었는데
내 사정을 이야기하며 어떻게든 대학을 가고 싶다고 나 혼자서 벌어서 갈테니까 도와달라며
울며불며 이야기 했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내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담임선생님께서 날 조용히 부르시더니 승낙해주셨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일하게된 매장입구 그리고 주차 도우미일.
하루에도 2-3개 터지는 물집에 생살이 부어올라 이제는 물집이 생겼던 자리도
그리고 벌겋게 부어올랐던 그 생살들도 모두 굳은살이 박혀서
아무리 높은 구두를 신어도 아프지가 않다.
아르바이트를한 그 다음해 20살 2월달이 되던날 입학발표날이 있던날
그날에도 어김없이 까르푸 매장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합격발표를
찾아보니 경인여자대학 인터넷비즈니스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물론 입학후에도 학교개학날엔 주말알바로, 학교방학날엔 평일주말 병행하며
차근차근 통장에 내 자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퇴했다.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들어간 대학 왜 자퇴했냐고들 물어본다.
돈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자퇴이전 학점은 총평균 평점 4.45/4.50 이였고
매 학기마다 성적우수장학금을 받는 덕분에 학교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며 학비 목적으로
모았던 돈은 그대로 남아있다.
학비 목적으로 들어갔던 홈에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루에도 몇백명 지나가는 매장입구에서 날 알아보는 고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하루는 동전교환기의 위치가 바뀌어버리는 바람에 쇼핑카트를 뽑으려면 매장을 삥 둘러가야만
했었기에 고객컴플레인이 장난 아니였던 시기가 있었다.
고스란이 욕먹는건 고객접점지역에 있었던 매장입구 도우미들이였다.
어느 아주머니가 갓난아기를 안고 나에게 동전교환기의 위치를 물어보는데
그 위치를 설명해주기가 너무 죄송했다.
내가 동전교환기 위치를 바꿔버린것도 아닌데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그 아주머니가
쇼핑카트를 뽑으려고 매장한바퀴를 삥 돌아가야하는 그 어려움, 시간에 대한 미안함이라..
그래서 일단은 동전교환기의 위치를 알려드리고 주머니에서 100원을 드렸다.
사실적으로 동전교환기의 위치가 너무 멀어서 죄송하다고 안돌려주셔도 되니까
아가랑 편안하게 쇼핑하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쉬는시간이 되어 사무실에서 쉬고있는데 들려오는 무전기소리에서
어떤 고객님이 날 찾는다는 다급한 소리에 깜짝놀래서 매장으로 올라갔더니
그 아주머님이 남편분이랑 같이 오셔서 쇼핑 잘했다면서
100원과 스타벅스 1800원짜리를 넘겨주시고 가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분은 매 주말마다 내가 서있는 매장입구로 , 내가 있는 주차장입구로 방문하셔서
오실때마다 음료수 하나씩을 건네주셨었다.
내가 고객에게 감동을 드려야 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내가 고객에게 감동을 받아버렸다.
그 이후로 시급이 어찌되었든 그 일을 하는게 너무 즐거웠다.
그 아주머님에게 받은 그 감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경인여대에서 경영학 관련 마케팅강의를 듣는데
그 강의과목에 한순간 매료가 되어버렸다.
벌써 1년이나 지난 지금시점에서 그 강의를 가르치셨떤 교수님이 알려주신 예제 하나하나가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꿈이 생겼다.
경영학 마케팅공부를 하고 싶어져서 자퇴를 한것이였다.
중고등학교때에도 세월이 가라 그냥 저냥 목표없이 지내왔었는데
내게도 처음으로 하고싶은 꿈이 생겼다.
그래서 그 꿈을 실천하느냐, 아니면 멀쩡히 잘다니던 대학을 계속 다니느냐를고민했었다.
근데 나는 그 꿈을 실천할것임을 선택했다.
그래서 현재는 한국교육개발원 학점은행제에 등록하여 경영학사학위 수여중이며,
내년쯤에 입학원서를 넣을 예정이다.
경인여대에는 경영학과가 없었기때문에 학과이전을 할수가 없어서 어쩔수 없는선택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입준비중이라고 말을 하면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
명문대학교의 이름을 말하는데
난 그저 경영공부를 배울수 있는 그 어느 대학교든, 대학원이든
상관없다는 취지로 선택한 길이였다.
물론 목표로 삼은 대학교는 따로 있으나 구지 그 대학교를 가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경영공부 마케팅 공부를 배울수 있는 그 어느대학이든 입학하여
심도있게 공부해서 훗날 취업시즌이 다가올떄
한달 급여 80만원을 받아도 50만원을 받아도
내가 그 고객님에게 감동을 받은만큼 그 몇배로 내가 속한 기업을 찾아주시는 고객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어찌보면 소박한 꿈일지라도, 그 일을 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내가 살아있다는게 느껴진다.
내가 그일을 함으로써 내가 이 사회에서 무언가를 하는것만 같고
또 처음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줄수 있다는 그 감동만으로도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홈에버(까르푸)에서 일하면서 점차 엄마에 대한 미움도 사라졌다.
매장입구에 서서 고객에게 인사를 하는데 엄마와 아들,딸이 손을 잡고 장보러 오는 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눈물이 났던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도 ,,
약 8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흔한 단어 '엄마' 라는 단어를 써본적이 없다.
그때 당시에 남들에게는 사소하고 흔한 단어일 지라도 '엄마'라는 그 단어 만으로도
엄청 그리움이였고 가슴이 미어졌었다.
아무리 내게 나쁜엄마고 싫고 화가나게 한 엄마일지라도 그래도 내 엄마라는 생각이였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가 밉고 싫고 화나는 나쁜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한 존재다.
왜냐면 엄마는 나에게 하늘나라로 가서 두가지를 알려주셨다.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와 부모님에 대한 소중함을.
벨류스타라는 사이트에 본 글을 올렸었는데
내 개인 홈페이지에 등록해서 훗날 내가 시련을 겪거나 좌절 할때쯤에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어본다면 지금의 그 자신감으로 훗날의 시련을 이겨낼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남겨놓는다.
조은정(Cho eun joung, 1987)
hahahahaha
당신은... 당신의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하고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