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구원희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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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씨네큐브에 개봉되었다가 앙코르 상영.

통일독일 전환기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밀경찰 비즐러와 극작가 라즐로 그리고 그의 애인 크리스타

비즐러는 규칙에 엄격했던 타고난 사회주의 독재체제의 모범생.

그런 그가 극작가 라즐로의 아파트를 도청하면서

남녀 간의 사랑과 음악 등의 문화 소위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각종 일탈행동들에 결과로

작은 사고-조선말기의 격서운동 정도?-가 하나 일어나게 된다.

비즐러의 눈감음으로 라즐로가 서독 중앙주간지 슈피겔에 익명으로 글을 게재하게 되었던 것.

동독 치안국장 그라코프 중령은 동기생 범생이 비즐러의 말만 믿었다가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격이 되어 결국 그를 한직-우편물 감시-으로 좌천시키고 좌천된 지 4년 7개월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이 열리게 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

극작가 라즐로는 내무부장관이었던 햄프와 대면한 자리에서 그제서야 자신이 도청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에 관련된 정보를 열람하던 중 하게베(HGW XX0017)라는 비밀경찰의 비호 하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를 찾게 되지만 대면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2년 후 비즐러는 신문배달부라는 하릴없는 구동독 출신의 현실에서 생활하던 중 KARL MARX 서점에서 라즐로가 쓴 소설 서문에서 '이 책을 HGW XX0017에게 바친다'라는 글을 확인하고 그 책을 구입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비밀경찰 비즐로와 비밀 경찰국장 그라코프는 간부후보생 동기이지만 처세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여 비즐로는 대위, 그라코프는 중령의 위치에서 서로를 대하게 된다.

햄프는 연극배우 크리스타가 극작가 라즐로와 연인관계에 있음을 알고도 그녀의 몸을 탐한다.

크리스타는 라즐로와 사랑하는 관계에 있지만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햄프에게 몸을 허락하려 하지만 술집에서 비즐로의 권유를 받아들여 다시 라즐로에게 돌아간다.

 

완전 비만 허리둘레 50인치? 햄프는 크리스타를 기다리다 자신이 바람을 맞았다는 사실에 조직원들을 동원, 그녀가 마약을 구매하는 현장을 덮쳐 앞으로 연극을 할 수 없게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비밀경찰국장 그라코프는 협박을 통해 라즐로가 연루된 슈피겔 사설 게재사건의 단서를 잡으려 한다. 크리스타는 연극배우로서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라즐로를 배신하지만 결국 자살의 길을 택하고 만다. 비즐러는 팬의 입장에서 라즐로는 연인의 입장에서 그녀의 슬픈 죽음에 비통해하지만 비즐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밀경찰 교수직 박탈과 한직으로의 좌천이다.

 

건조하기 짝 없는 사회주의 독재체제 하에 모범생으로 살았던 한 비밀경찰이 인간의 감정을 경험한 후 돌변하는 모습을 그리 과장적이지 않게 그려냈다.

1989년 고르바쵸프의 소련 대통령 선출과 독일의 통일-독일의 통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동독의 붕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면에는 문화의 다양성 인간의 감성을 탐색하려고 하는 다양한 시도라는 측면에서 이미 월등하게 앞서 있었던 자본주의 체제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던 현실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 내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통제없이 방치된 문화의 흐름이란 각종 선정적 문화의 범람으로 귀결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다.

과유불급. 지나친 통제나 방치 모두 적절하지 못하다.

누가 정도를 조절할 것인가 얼마만큼으로 조율할 것인가에 대해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들 인간의 문제가 아닐까 라는 결론에 도착했다.

 

너무 미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많은 비즐로의 출현이 동독의 붕괴를 촉진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나라 상황을 투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으면서 그네들이 만들어낸 영상물이나 제품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말이 안된다.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따라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우리의 현실을 알려야 한다.

그래서 그네들로 하여금 우리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최소한 그렇게 하고 있다.

비록 통일 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 제한사항이지만.

어떡해서든 이제 더이상은 왜곡된 북한의 모습은 방영하거나 반입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모습을 저들에게 알리는 것이 급하다.

통일에의 의지가 있다면은.

 

사족을 달자면

이 영화를 보며

로버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가 오버랩되었는데

관심 있으신 분은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

인간의 감성과 사회주의 체제-이론적 개체가 아닌 실존적 개체(사회주의를 가장한 독재체제)에 대한 고찰을 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