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마이클 케인, 매기 질렌홀, 게리 올드만, 모간 프리먼
개봉 2008, 미국, 152분
펑점
기억에 남는 명대사
죽어서 영웅이 되거나 끝까지 살아서 악당이 된다.
눈에 띄는 캐릭터
조커(히스 레저 연기) - 워낙 영화를 홍보할 때부터 그의 연기에 대한 많은 비평들을 들었고 또한 그의 자살로 인해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에서 보아서 베트맨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보다는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의 지독한 악당 연기에 영화를 보는 온몸을 떨어야 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악독한 악당 연기였다는 어느 평론가의 비평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
빛이 곧 악이고, 악이 곧 빛이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 철학자다. 유대인으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전쟁 종료 후 있었던 유대인 학살자들에 대한 전범 재판에 기자로서 참여해 "악은 평범하다"라는 보고서를 발표를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녀의 주장은 한마디로 악은 결코 절대적이거나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바로 우리의 일상에, 우리의 평범함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족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어 말 그대로 홀로코스트를 했던 인물들에 대해 평범하다고 말한 그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녀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로운 베트맨 시리즈 두번째 영화 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우리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빛나는 선이 어떻게 악이 되는지를 보여주어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한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왜 이러지? 정말 기분 나쁘다." 오랜 만에 숨죽여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베트맨의 원래 시리즈 영화를 기억한다면, 베트맨의 두번째 시리즈의 시작인 를 보았을 때 놀라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다소 판타지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는 베트맨을 자신의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고 스스로 일어선, 현실 속에서 태어난 진정한 영웅임을 세상에 알렸다. 배트맨은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매우 현실적인 인물로 창조된 것이다. 우리를 구해줄 영웅이 우리와 같이 평범한 인물이라니, 그것도 공포와 고통 속에서 힘겹게 일어난 인물이라는 것은 참으로 독특한 설정이었다. 아 물론 올해 개봉한 영화 에 나오는 영웅도 우리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공포나 고통은 없다. 그는 타고난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배트맨은 타고난 영웅이 아니라 만들어진 영웅이다. 한편 의 주인공 스파이더맨이야말로 가장 일상적인 영웅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스파이더맨은 굉장히 일상적인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배트맨이나 아이어맨보다도 더욱 평범한 영웅이다. 그에게는 막대한 재산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보통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능력. 그 능력만으로도 그는 일상적인 영웅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든 영웅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배트맨의 두번째 시리즈의 두번째 영화인 는 로 출발한 새로운 영웅 배트맨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로 덧칠해졌다. 물론 영화를 둘러싼 몇 가지 말들(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 히스 레저의 죽음) 때문에 호기심도 생겼다. 괜시리 영화가 단순히 배트맨의 초영웅적인 모습만 보일 것 같은 불안함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저 그러한 영웅 영화가 되었을 것이고 가 만들어낸 배트맨의 모습은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는 호기심 충족은 물론 기대를 뛰어넘는 충격적인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빈번한 액션 장면은 호쾌하고 볼거리로서 화려했다. 하지만 그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액션 장면은 , , , 시리즈 같은 대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관점은 웬만한 영웅 영화, 액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보통 영웅 영화, 액션 영화에서는 인간이 선한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선함을 영웅과 기타 영웅을 위해 희생하거나 영웅을 도와주는 자들을 통해 강화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영웅에 대적하는 악당들은 인간이 아니거나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돌연변이와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지구 상에서 제거하면 된다. 그러면 이 세상은 다시 선한 인간들로 평화로워질 것이다. 이것이 보통 영웅 영화, 액션 영화에서 인간에 대한 관점이다. 그러나 는 철저하게 거꾸로 간다. 조커의 활약이 에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부정적인 인간관 때문이었다. 조커는 영화의 두 주인공인 배트맨과 하비 덴트 모두에게 순수한 선이 불가능한 것임을 철저하게 보여준다. 결국 한 인물은 파멸하여 악이 되고 한 인물은 자신의 정체를 악의 그림자 속으로 숨켜야만 했다. 더군다나 조커는 배트맨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구나. 그래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어. 그 알량한 선한 마음 때문에 말이야. 나도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너랑 싸우는 것은 재미가 있거든. 하찮은 고담시 경찰들은 내 상대가 안 되. 그렇다고 깽들하고 싸우는 것이 재미있지도 않아. 니가 있어서 나는 재미있어."(이것은 내가 재구성한 것이다. 내 기억력이 떨어져서 조커의 말을 그대로 옮길 수도 없다. 에고... 이것은 조커가 한 번에 한 말이 아니고 영화 여기저기 한 말을 내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하여 합쳐놓은 것이다.)
조커의 이 말은 배트맨의 존재가 악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배트맨의 존재가 악의 존재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조커는 배트맨과 동면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배트맨은 조커와 같은 악당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조커와 같은 악당한 배트맨이 존재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둘을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배트맨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조커와 같은 악당들도 강해진다. 결국 조커는 배트맨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이 악을 만들고 악이 선을 만든다. 는 이렇게 선악의 이분법 구조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선악이 혼동되어 있는 회색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회색의 세계에서는 순수한 빛이나 순수한 어둠은 존재할 수 없다. 빛은 끊임없이 타락의 욕망에 퇴색할 것이고 어둠은 끊임없는 갱생의 욕망, 사회 구조로서의 복귀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려 스스로 선을 창조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는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선한 존재만이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면 살 수 있다.
그런데 배트맨은 어째서 타락하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가장 선한 존재가 아니던가? 이렇게 반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트맨은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다. 우선 그가 선한 활동이라고 하는 행위가 선한 행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는 사회적 정의 실현이라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결국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그는 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밖에서 악당들과 싸운다. 그는 정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범인을 고문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자기 회사에서 버는 돈을 사원들 모르게 유용하고 있다. 이런 그를 과연 선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적절하게 악당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슨 영화를 보면서 시시콜콜하게 그런 것을 따지고 앉아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배트맨이 단지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니며, 현실에 기반을 둔 영웅임을 생각한다면, 그가 하는 행위를 단지 영화니까 하면 눈감고 이해할 만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더군다나 가 보여주고 있는 인간관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배트맨의 행위를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하비 덴트의 행위 앞에서 배트맨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조커가 이기게 해서는 안 돼." 그러면서 그는 하비 덴트가 행한 모든 악한 행위를 다 뒤집어 쓴다. 그는 고담시민들에게 악한 존재로 인식되게 된다. 영웅다운 모습이다.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세상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그의 희생정신은 모든 영웅 영화에서 나오는 영웅의 모습이다. 그러나 영화 밖에서 그 모든 장면을 보고 있는 우리들은 결국 이 게임에서 조커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속에서는 배트맨이 영웅이 되었지만 영화 밖의 세상은 더욱 어두워졌다. 영웅 영화를 보면서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대리만족하고 싶었던 관객들은 짜증과 답답함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극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저 어두운 하늘 어딘가에서 조커가 '웃어 웃어 봐' 하면 칼로 우리의 입술을 찢어놓을 것만 같다.
그나마 마지막 희망은 두 유람선에 타 있는 승객들의 행위였다. 그들이야 말로 조커를 이긴 유일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왜 그들의 행위가 전혀 사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까? 아마도 내 자신도 이미 조커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에 대한, 선에 대한 믿음이 영화를 보며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배트맨을 부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형 헤드라이트가 도끼에 깨어져 나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들 모두의 심장이 날카롭게 베어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세상을 가장 우울하게 만든, 그러나 너무나 현실적인 인간 세계를 그려낸 작품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우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우울의 늪에 빠뜨린 조커 역의 히스 레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그가 조커에게 패를 내준 것만 같아 아쉬울 뿐이다.
[action] Dark Knight
빛이 곧 악이고, 악이 곧 빛이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 철학자다. 유대인으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전쟁 종료 후 있었던 유대인 학살자들에 대한 전범 재판에 기자로서 참여해 "악은 평범하다"라는 보고서를 발표를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녀의 주장은 한마디로 악은 결코 절대적이거나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바로 우리의 일상에, 우리의 평범함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족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어 말 그대로 홀로코스트를 했던 인물들에 대해 평범하다고 말한 그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녀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로운 베트맨 시리즈 두번째 영화 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우리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빛나는 선이 어떻게 악이 되는지를 보여주어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한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왜 이러지? 정말 기분 나쁘다." 오랜 만에 숨죽여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베트맨의 원래 시리즈 영화를 기억한다면, 베트맨의 두번째 시리즈의 시작인 를 보았을 때 놀라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다소 판타지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는 베트맨을 자신의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고 스스로 일어선, 현실 속에서 태어난 진정한 영웅임을 세상에 알렸다. 배트맨은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매우 현실적인 인물로 창조된 것이다. 우리를 구해줄 영웅이 우리와 같이 평범한 인물이라니, 그것도 공포와 고통 속에서 힘겹게 일어난 인물이라는 것은 참으로 독특한 설정이었다. 아 물론 올해 개봉한 영화 에 나오는 영웅도 우리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공포나 고통은 없다. 그는 타고난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배트맨은 타고난 영웅이 아니라 만들어진 영웅이다. 한편 의 주인공 스파이더맨이야말로 가장 일상적인 영웅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스파이더맨은 굉장히 일상적인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배트맨이나 아이어맨보다도 더욱 평범한 영웅이다. 그에게는 막대한 재산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보통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능력. 그 능력만으로도 그는 일상적인 영웅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든 영웅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배트맨의 두번째 시리즈의 두번째 영화인 는 로 출발한 새로운 영웅 배트맨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로 덧칠해졌다. 물론 영화를 둘러싼 몇 가지 말들(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 히스 레저의 죽음) 때문에 호기심도 생겼다. 괜시리 영화가 단순히 배트맨의 초영웅적인 모습만 보일 것 같은 불안함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저 그러한 영웅 영화가 되었을 것이고 가 만들어낸 배트맨의 모습은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는 호기심 충족은 물론 기대를 뛰어넘는 충격적인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빈번한 액션 장면은 호쾌하고 볼거리로서 화려했다. 하지만 그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액션 장면은 , , , 시리즈 같은 대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관점은 웬만한 영웅 영화, 액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보통 영웅 영화, 액션 영화에서는 인간이 선한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선함을 영웅과 기타 영웅을 위해 희생하거나 영웅을 도와주는 자들을 통해 강화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영웅에 대적하는 악당들은 인간이 아니거나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돌연변이와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지구 상에서 제거하면 된다. 그러면 이 세상은 다시 선한 인간들로 평화로워질 것이다. 이것이 보통 영웅 영화, 액션 영화에서 인간에 대한 관점이다. 그러나 는 철저하게 거꾸로 간다. 조커의 활약이 에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부정적인 인간관 때문이었다. 조커는 영화의 두 주인공인 배트맨과 하비 덴트 모두에게 순수한 선이 불가능한 것임을 철저하게 보여준다. 결국 한 인물은 파멸하여 악이 되고 한 인물은 자신의 정체를 악의 그림자 속으로 숨켜야만 했다. 더군다나 조커는 배트맨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구나. 그래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어. 그 알량한 선한 마음 때문에 말이야. 나도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너랑 싸우는 것은 재미가 있거든. 하찮은 고담시 경찰들은 내 상대가 안 되. 그렇다고 깽들하고 싸우는 것이 재미있지도 않아. 니가 있어서 나는 재미있어."(이것은 내가 재구성한 것이다. 내 기억력이 떨어져서 조커의 말을 그대로 옮길 수도 없다. 에고... 이것은 조커가 한 번에 한 말이 아니고 영화 여기저기 한 말을 내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하여 합쳐놓은 것이다.)
조커의 이 말은 배트맨의 존재가 악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배트맨의 존재가 악의 존재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조커는 배트맨과 동면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배트맨은 조커와 같은 악당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조커와 같은 악당한 배트맨이 존재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둘을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배트맨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조커와 같은 악당들도 강해진다. 결국 조커는 배트맨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이 악을 만들고 악이 선을 만든다. 는 이렇게 선악의 이분법 구조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선악이 혼동되어 있는 회색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회색의 세계에서는 순수한 빛이나 순수한 어둠은 존재할 수 없다. 빛은 끊임없이 타락의 욕망에 퇴색할 것이고 어둠은 끊임없는 갱생의 욕망, 사회 구조로서의 복귀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려 스스로 선을 창조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는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선한 존재만이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면 살 수 있다.그런데 배트맨은 어째서 타락하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가장 선한 존재가 아니던가? 이렇게 반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트맨은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다. 우선 그가 선한 활동이라고 하는 행위가 선한 행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는 사회적 정의 실현이라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결국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그는 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밖에서 악당들과 싸운다. 그는 정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범인을 고문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자기 회사에서 버는 돈을 사원들 모르게 유용하고 있다. 이런 그를 과연 선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적절하게 악당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슨 영화를 보면서 시시콜콜하게 그런 것을 따지고 앉아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배트맨이 단지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니며, 현실에 기반을 둔 영웅임을 생각한다면, 그가 하는 행위를 단지 영화니까 하면 눈감고 이해할 만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더군다나 가 보여주고 있는 인간관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배트맨의 행위를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하비 덴트의 행위 앞에서 배트맨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조커가 이기게 해서는 안 돼." 그러면서 그는 하비 덴트가 행한 모든 악한 행위를 다 뒤집어 쓴다. 그는 고담시민들에게 악한 존재로 인식되게 된다. 영웅다운 모습이다.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세상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그의 희생정신은 모든 영웅 영화에서 나오는 영웅의 모습이다. 그러나 영화 밖에서 그 모든 장면을 보고 있는 우리들은 결국 이 게임에서 조커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속에서는 배트맨이 영웅이 되었지만 영화 밖의 세상은 더욱 어두워졌다. 영웅 영화를 보면서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대리만족하고 싶었던 관객들은 짜증과 답답함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극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저 어두운 하늘 어딘가에서 조커가 '웃어 웃어 봐' 하면 칼로 우리의 입술을 찢어놓을 것만 같다.
그나마 마지막 희망은 두 유람선에 타 있는 승객들의 행위였다. 그들이야 말로 조커를 이긴 유일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왜 그들의 행위가 전혀 사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까? 아마도 내 자신도 이미 조커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에 대한, 선에 대한 믿음이 영화를 보며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배트맨을 부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형 헤드라이트가 도끼에 깨어져 나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들 모두의 심장이 날카롭게 베어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세상을 가장 우울하게 만든, 그러나 너무나 현실적인 인간 세계를 그려낸 작품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우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우울의 늪에 빠뜨린 조커 역의 히스 레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그가 조커에게 패를 내준 것만 같아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