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展

이영주200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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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8 with 일종의친구들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알고 싶은...

 

연일 아스팔트 위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기세로 내리쬐는 한여름 뙤약볕에 기력이 다 빠져나갔는지, 아니면 교육감선거와 이후 심각한 우울+의기소침 상태로 빠져든 건지, 아무튼 기력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 내게도 충전이 필요해!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다.

체 게바라 때문인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때문인지, 쿠바 때문인지, 차베스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합쳐놓은 이미지 때문인지, 동경의 공간이 돼버린 라틴 아메리카. 그곳의 미술작품들이 '거장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온다니 사뭇 기대가 컸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화가 중 이 전시회 이전에 이름을 들어보기라도, 그림을 한 점이라도 본 적이 있는 화가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밖에 없었지만. ㅋ

 

무지와 동경이 범벅된,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찾은 덕수궁미술관 전시실. 그곳에서 만난 라틴아메리카의 그림들은 퍽 놀라웠다.

우선 기대했던 만큼 강렬하지 않아서 놀랐다. 대부분이 유화였는데 전반적으로 색감이 어둡고 무거웠다. 물론 이전에 잉카나 아스텍 다큐멘터리에서 만났던 화려한 색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전시의 첫 부분인 은 변혁, 혁명이라는 열정적 단어에서 기대되는 강렬한 느낌보다는 혁명의 시절 라틴아메리카 전반을 짓누르고 있었던 불안과 공포, 분노와 같이 어두운 부분이 더 드러난 그림들로 보였다. 전시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알지 못하니 눈으로는 그림을 보고 있으나 그림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으로 그림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또 놀라웠던 것은, 아니, 새삼스레 놀라웠던 것은 라틴아메리카의 그림 속 인물들의 피부색이었다. 왜 나는 라틴아메리카 그림 속 인물들이 백인에 가까울 것이라고 내심 짐작했던 것일까? 백인 중심의 사고방식은 참 무서운 것이구나, 새삼 깨달아야 했다. 거의 눈만 보이는 검은 피부부터 우리와 비슷한 황색 피부, 약간 흰 피부까지 그들의 인종적 다양함이 그림마다 묻어있었다. 인종을 읽는 것이야말로 라틴아메리카를 제대로 읽는 첫 걸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지막으로 놀라웠던 사실은, 아니, 놀랍다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게 됐던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림과 세계사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고흐나 모네 전시회에 갔을 때는 그런 무지를 뛰어넘는 익숙함이 있었다. 서구중심의 교육과정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는 내게 익숙한 서구에 포함되지 않는 변방이라는 것을, 그림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였다. 두 시간 남짓 전시장을 돌아보는 내내 "나는 왜 이렇게 아는 게 없는 거야?" 자책 섞인 푸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시회를 나서면서, 눈이 즐거웠다는 충족감보다는 지적인 갈증으로 목이 말랐던 것은.

 

라틴아메리카는 내게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변방이다. 그래서 더욱 알고 싶은 곳이다.

 

이렇게 글을 마치려고 하니 아쉽긴 하다. 그림이 무겁긴 했으나, 또 그렇다고 밋밋한 것은 아니었는데.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색감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는데. 그 느낌은 글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아무튼, 푸른색과 오렌지, 핑크(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하는 유치한 색깔들... ㅋ)가 이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걸, 라틴아메리카의 그림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계의 변혁을 꿈꾸다 ; 벽화운동]

 

메이데이 행진, 1952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멕시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展   
종교의 역사Ⅰ, 종교의 역사 Ⅳ, 1950~1957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

 

 

선동정치가, 1946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멕시코)

 

 

예수그리스도,1926~1927 (프란시스코 고이티아, 멕시코)

 

 

   
엑소더스:탈출,소개(疏開),탈출, 1953 (오스왈도 과야사민, 에콰도르)

 

 

 

 

[우리는 누구인가 ;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

 

 

바이아의 흑인여인, 1956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디, 브라질)

 

 

쾌적한 여름, 1965 (펠리시아노 카르바요, 베네수엘라)

 

 

분수, 1951 (루피노 타마요, 멕시코)

 

 

야나 쿠이치 (검은 무지개), 1961 (페르난도 데 치슬로, 페루)

 

 

바나나, 1968 (안토니우 엔히크 아마라우, 브라질)

 

 

 

[나를 찾아서 ; 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

 

식민풍 집, 1924 (알레한드로 슐 솔라르, 아르헨티나)

 

아담과 이브, 1945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멕시코)

 

판초 비야와 아델리타, 1927 (프리다 칼로, 멕시코)

 

쇠락, 1949 (엑토르 폴레오, 베네수엘라)

 

흑백의 형상, 1954 (위프레도 램, 쿠바)

 

 

[형상의 재현에 반대하다 ; 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

 

구조, 1935 (호아킨 토르레스-가르시아, 우루과이)

 

아무튼, 이번 전시구성은 너무 백화점식이어서 집중력은 떨어졌으나, 그래도 새로운 그림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 ^^

 

2008. 0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