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이영주200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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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

감독 : 류승완

 

 

푸하핫... 이 얼마나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웃어보던가!

 

분명 삼복더위였는데, 8.15를 지나니 마치 거짓말처럼 가을이 느껴진다. 그래서인가? 요즘 대략 우울증이다. 눈물이 가슴께까지 차 있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한 후,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던 한 가지는 "제발 그럴듯한 척하지 말고, 제발 뭔가 있는 척좀 하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게만 해달라"는 거였다. 류승완 감독에 대한 믿음이 크기는 했지만, 에서 퍽 상처가 컸던지라, 유치찬란 포스터를 보면서도 내심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말 내 바람 그대로 미친 듯이 웃었다. 아이고, 배꼽을 쥐고 웃었다. 영화 도입부 깜짝 출연하신 장 마담 오지혜님이 나올 때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큼지막하게 잘생겼군이라는 자막이 쾅 박힐 때까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웃음에는 뭔가 그럴 듯한 의미따윈 없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다찌마와 리에게, 그리고 이런 골빈 영화를 만들어준 류승완 감독에게. 역시 류승완 감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물론, 이런 무뇌형 웃음이 모처럼 찾아온 울증을 치유해주진 못한다. 그래서 극장에서 돌아와 홀로 집에 누워 책을 읽다가 다시 덮쳐오는 우울함에 온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은 여전했다.

그러나 오늘 하루 종일 우울했던 내게 순간순간 실성한 인간처럼 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것은 다찌마와 리였다. 후시녹음으로 더빙된 영화 속 대사들이 떠오를 때마다 킥킥대며 웃었고,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를 성실히 자막 작업해준 그분을 떠올리며 하하, 웃음이 터져나왔다. 두만강, 흑룡강, 만주, 상해, 일본, 스위스, 미국 등 국적을 초월한 촬영지의 비밀이 떠오를 때마다 흐흐 웃음이 삐져나왔다. 잘 생긴 정우성으로 대표되는 쌔끈한 만주발 웨스턴무비 놈놈놈을 제멋대로 주물럭거려놓은 것 같았던 세트장을 떠올릴 때마다 키득거렸다.

물론 이 웃음 역시 아무 생각 없는 웃음이었다.

 

머릿속을 비우고 조금은 단순해져야겠다. 앞뒤 재는 것 그만하고, 마구 넘치더라도, 그래서 나중에 무진장 쪽팔리더라도, 뭔가 있는 척 그만하고 넘치게 가야겠다. 요즘은 너무 재서, 너무 있는 척해서 큰일인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2008. 0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