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손에 쥐기 전부터 여행은 나에게 하나의 목표였지만..그냥 머나먼 꿈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다짐한다.
나 홀로 여행길 떠나보겠다고-
이 겁쟁이 김보영이 아르바이트 끝나는 내년 겨울에 전국일주 한 번 해보시겠다고.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후후 :p
책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 속의 주인공이 나이고 , 책 속에 표현되는 풍경들이 내가 직접 보고있는 장면인 것만 같아서-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 마지막장을 덮은 순간,
나는 예전부터 막연하게 꿈꿔왔던 전국일주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내년 2월 겨울_
사진기와 노트북들고 이 작은 발로 전국을 누비고 올테닷 :)
어느 CF의 노랫말처럼-
"생각대로 하면 되고~♬"
학업상의 이유로, 또는 업무상의 이유로, 재정적인 이유로..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 못떠나신 분들께 추천 ^-^
여행책으로 허기를 달래봅시다 !
]
나는 다짐하곤 한다. 세상을 처음 보는 듯한 그 시선을 잃어버린다면 그땐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것과 같다고,
좀비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나 <이블 데드>와 같은 공포 영화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이미 수많은 좀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좀비가 되지 않는 방법을 절대 잊지 말자고.
좀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 - 먼저 눈을 평소보다 조금 크게 뜬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세 살배기 아기를 끌어다 망막 뒤에 앉히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낯선 장소일수록 좋고, 이동 중이면 더더욱 좋다. 그래, 여행이란 당신이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이다.
*
문득 <샤이닝>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집필 중인 소설에 열중해 미친 듯이 타자기를 두드려 대는 잭. 그러나 아내가 그가 쓴 원고를 훔쳐보았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장만이 반복되던 수백 페이지의 원고.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
-아, 행복해.
-나도
-나도
나는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테레사 : 당신,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
토머스 : '나는 지금 행복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
당신이 도시를 벗어나 바다를 만나본 것이 언제인지? 당신이 체험한 적이 있다고 여기는 바다는 혹시 조작된 기억이 아닐까? 어쩌면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끝에는 정말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와온리에서 보았다는 바다도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 당장 당신 스스로 확인해보는 길밖에는 도리가 없다.
자, 지금 당장 짐을 챙기고 길을 떠나라! 숙박 예약은? 잠은 어디서 자지? 차편은? 그런 건 잊으라. 그건 길이 알아서 다 챙겨줄 테니. 언제나 그러하듯이.
*
양 같은 범이 살고 범 같은 양이 사는 곳, 금 같은 돌이 나고 돌 같은 금이 나는 곳, 꽃 같은 비가 내리고 비 같은 꽃이 피어나는 곳, 별 같은 노래가 있고 노래 같은 별이 빛나는 곳, 곰과 사람이 혼례를 치르고, 물고기와 새가 나란히 하늘을 나는 곳, 담장 같은 뜰이 있고 뜰 같은 담장이 있는 곳,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곳이 아니라 모든 사랑이 고스란히 성취되는 곳, 친구와 친구 어미가 사랑을 이루고,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별이 되고 달이 되는 곳...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일이나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벌어지는 법이 없는 곳.
최인석 <내 사랑, 나의 귀신>
*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이와 유사한 장면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소년은 송어가 사는 하천을 찾아, 미끼로 쓸 빵 한 조각과 낚싯대를 집어 들고 길을 떠난다.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들판의 저편 멀리 폭포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하천을 보며 기뻐한다. 그러나 다가갈수록 하천의 흐름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폭포는 단지 숲 속의 한 목조주택을 향해 뻗어 있는 하얀 목조 계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소년은 스스로 '송어'가 되어 자신이 가지고 간 빵 조각을 다 먹어치움으로써 자신의 여행을 끝맺는다.
*
눈을 감고 있으니 파도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가끔 바다로 뛰어든 그들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까지 닿지 않았더라면 무인도에 있다고 해도 좋을 그런 느낌이었다. 혹자는 이런 곳을 '심심한 천국', 도시를 '신나는 지옥'이라 불렀다. 나는 심심한 천국이 좋았다. 누운 채 발을 들어 천국의 하늘에 나의 왼발을 담갔다. 새파란 하늘이 찰랑거리며 하얀 포말이 일었다. 나는 하얀 거품과도 같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The Softies의 <The Beginning of the End>가 흐르고, 그렇게 심심한 천국의 저녁 풍경에 스며들며 집으로 들어오자 김치찌개가 뽀글뽀글 끓어오르고...나는 신나는 지옥보다 심심한 천국이 더 좋았다.
*
그래, 조금만 미루자. 조금만 더 그해 천국에서의 나날들에 대해서 추억하자. 집 뒤를 지나가던 바람이 대숲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던 소리와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던, 빗방울들이 긴 처마 너머로 후두둑 떨어지던 모습, 찻집 앞의 풍경이 맑게 울리던 순간들에 대해서. 그리고 J형의 집에서 마시던 차의 향에 대해서.
그래, 그해 내가 머물렀던 천국의 이름은 동천다려였다.
*
나는 어느 현자로부터 이 사회의 시스템은 자유롭게 분출하는 인간의 에너지를 통제하기 위해 인간의 내면을 둘로 쪼개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에게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고 끊임없이 주입하면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통제를 하게 되는데, 그때 '통제를 하는 나'와 '통제를 당하는 나'로 쪼개지면서 에너지를 상실하게 된다고. 그날 둥지를 떠난 새들에겐 '통제를 하는 나'도, '통제를 당하는 나'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성인이 된 우리가 둘로 쪼개지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길은 없을까?
*
나는 문득 한없이 젊고 지혜로운 눈을 가진 그가 그리웠고, 가만히 눈을 감고 얼마 전에 보았던 <크래쉬>란 영화 속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렸다.
Prejudice is Ignorance. 편견은 무지다.
*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싶다면 집을 떠나. 집에서의 일상이란 마치 버스 노선과 같지. 그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답을 알 수 없어. 물론 탯줄은 세상에서 가장 질긴 끈이지. 그러나 가정에서 머물다가는 너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기도 전에 이 사회에 묻혀버릴 거야. 허공 속에선 제각각 한 송이 눈이지만 지상에 닿는 순간, 사라져버리거나 묻혀버리는 우리처럼. 그 전에 답을 알고 싶다면 길을 떠나.
*
나는 다시 오븐에 밀가루 반죽을 넣고
타자기 앞에 앉아 시를 생각하지요
나는 창조주가 아니므로 한번 구워낸
빵과 어제의 시에 만족하지 못해요
내 꿈은 시와 빵을 합치는 것
빵 굽고 남는 시간에 시 쓰는 게 아니라
빵과 함께 시를 구워내는 게 꿈이에요
먼 훗날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리
... 오븐으로 시를 구워낸 사람 있었나니
아직 이런 신종은 아메리카 직업
백과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나는 언젠가 시를 구워낼 거에요
구광본 <빵 굽는 사람>
*
<한국직업사전 3판>에서는 타자기 수리공이 삭제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타자기로 빵을 굽는 사람 혹은 오븐으로 시를 굽는 사람이라는 직업은 사전에 수록되기도 전에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대도시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할인점, 중소도시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중소형 할인점의 확장으로 재래시장 상인들이 직업을 잃고, 대-중-소형 할인점 종업원이라는 '우리'속에 들어가는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으니 장돌뱅이라는 직업이 사라질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은, 직업만이 아니겠지.
*
-군산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일 때문에? 출장 오셨나 보죠?
-사람 찾으러 왔어요.
-어떤 사람을 찾아요? 아저씨, 무슨 사연 있는 분 같아. 그죠? 얘기해 주세요, 아저씨. 이렇게 비도 오는데 심심해 죽겠어요.
-군산에요, 내 첫사랑 여자가 살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어디 사는지도 모르겠는데 하여튼 여기 산대요.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만나요?
-아니, 만나려고 온 게 아니에요. 그냥,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그 여자가 사는 곳이니까. 그 여자가 걷는 길을 나도 걷고 싶고, 또 그 여자가 보는 바다를 보고 싶고.
-근데 이렇게 비가 와서 어떡해요?
-괜찮아요. 지금 나랑 그 여자랑 같은 비를 맞고 있는 거니까. 내가 보고 있는 비를 그 여자도 지금 보고 있으니까요.
*
타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 속에서 자신의 심장에 화살처럼 꽂히는 어떤 한 점을 일컫는 말, 푼크툼.
나바위성당의 마리아 상은 내 마음의 품크툼이었다.
*
군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제방을 따라 벚나무 가로수가 심겨 있고, 위쪽으론 너른 들이, 오른쪽으론 금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나바위성당과 마리아 상과 성당마을도 그렇지만 그 길에 대한 자료를 미리 알고 갔더라도 그만한 감흥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여행의 제맛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인연에 따라 낯선 길을 만나고 발견하는 것이리라.
*
지금 음악을 함께 듣고, 술을 함께 나누기에 너무 멀리 있는 그대여, 대신 나는 권한다. 부산에 가거들랑 꼭 태종대에 가보라고. 그리고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를 내려다보라고. 당신의 심장 한가운데부터 하얗게 일어나는 자유에 대한 의지를 느껴보라고.
-이 개자식들아, 난 아직 이렇게 살아 있어!
*
지구라는 이름의 별에서 33년간 함께 했던 내 아버지께서는 이 별을 떠나시기 전까지 당신이 다녔던 대학의 교훈(자유, 정의, 진리)이 쓰인 배지를 심장에 달고 지내셨다고 했다. 내게도 그런 배지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써두었다는 묘비명이다. 비록 그것이 가훈이나 교훈은 아닐지라도 내가 길 위에 있는 한, 심장에 품고 있어도 좋으리라.
길 위의 칸타빌레
여름 휴가가 없는 나를 위해
여행책이라도 보며 마음을 달래보자며
무작정 찾아간 서점에서 책 제목만 보고 사버린
"길 위의 칸타빌레"
'국내에서 꼭 가야할 여행지 100곳' 이런 제목이 붙여진
여행책은 전혀 펴보고 싶지 않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산문이다.
그냥 자기가 여행다녀온 이야기들, 그 속의 감상들을
적어논 하나의 에세이집
여행지 소개를 원한 건 아니었기에
오히려 이런 산문형식의 내용들이 더 흥미로웠다.
게다가... 중간중간 조미료처럼 들어간 사진들은 정말, 너무! 아름답다.
나도 여행다니면서 이렇게 사진찍고 글 쓰고 그러고 싶다. 는 꿈도 생겼다.
이 책을 손에 쥐기 전부터 여행은 나에게 하나의 목표였지만..그냥 머나먼 꿈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다짐한다.
나 홀로 여행길 떠나보겠다고-
이 겁쟁이 김보영이 아르바이트 끝나는 내년 겨울에 전국일주 한 번 해보시겠다고.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후후 :p
책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 속의 주인공이 나이고 , 책 속에 표현되는 풍경들이 내가 직접 보고있는 장면인 것만 같아서-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 마지막장을 덮은 순간,
나는 예전부터 막연하게 꿈꿔왔던 전국일주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내년 2월 겨울_
사진기와 노트북들고 이 작은 발로 전국을 누비고 올테닷 :)
어느 CF의 노랫말처럼-
"생각대로 하면 되고~♬"
학업상의 이유로, 또는 업무상의 이유로, 재정적인 이유로..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 못떠나신 분들께 추천 ^-^
여행책으로 허기를 달래봅시다 !
]
나는 다짐하곤 한다. 세상을 처음 보는 듯한 그 시선을 잃어버린다면 그땐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것과 같다고,
좀비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나 <이블 데드>와 같은 공포 영화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이미 수많은 좀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좀비가 되지 않는 방법을 절대 잊지 말자고.
좀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 - 먼저 눈을 평소보다 조금 크게 뜬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세 살배기 아기를 끌어다 망막 뒤에 앉히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낯선 장소일수록 좋고, 이동 중이면 더더욱 좋다. 그래, 여행이란 당신이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이다.
*
문득 <샤이닝>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집필 중인 소설에 열중해 미친 듯이 타자기를 두드려 대는 잭. 그러나 아내가 그가 쓴 원고를 훔쳐보았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장만이 반복되던 수백 페이지의 원고.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
-아, 행복해.
-나도
-나도
나는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테레사 : 당신,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
토머스 : '나는 지금 행복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
당신이 도시를 벗어나 바다를 만나본 것이 언제인지? 당신이 체험한 적이 있다고 여기는 바다는 혹시 조작된 기억이 아닐까? 어쩌면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끝에는 정말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와온리에서 보았다는 바다도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 당장 당신 스스로 확인해보는 길밖에는 도리가 없다.
자, 지금 당장 짐을 챙기고 길을 떠나라! 숙박 예약은? 잠은 어디서 자지? 차편은? 그런 건 잊으라. 그건 길이 알아서 다 챙겨줄 테니. 언제나 그러하듯이.
*
양 같은 범이 살고 범 같은 양이 사는 곳, 금 같은 돌이 나고 돌 같은 금이 나는 곳, 꽃 같은 비가 내리고 비 같은 꽃이 피어나는 곳, 별 같은 노래가 있고 노래 같은 별이 빛나는 곳, 곰과 사람이 혼례를 치르고, 물고기와 새가 나란히 하늘을 나는 곳, 담장 같은 뜰이 있고 뜰 같은 담장이 있는 곳,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곳이 아니라 모든 사랑이 고스란히 성취되는 곳, 친구와 친구 어미가 사랑을 이루고,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별이 되고 달이 되는 곳...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일이나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벌어지는 법이 없는 곳.
최인석 <내 사랑, 나의 귀신>
*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이와 유사한 장면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소년은 송어가 사는 하천을 찾아, 미끼로 쓸 빵 한 조각과 낚싯대를 집어 들고 길을 떠난다.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들판의 저편 멀리 폭포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하천을 보며 기뻐한다. 그러나 다가갈수록 하천의 흐름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폭포는 단지 숲 속의 한 목조주택을 향해 뻗어 있는 하얀 목조 계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소년은 스스로 '송어'가 되어 자신이 가지고 간 빵 조각을 다 먹어치움으로써 자신의 여행을 끝맺는다.
*
눈을 감고 있으니 파도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가끔 바다로 뛰어든 그들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까지 닿지 않았더라면 무인도에 있다고 해도 좋을 그런 느낌이었다. 혹자는 이런 곳을 '심심한 천국', 도시를 '신나는 지옥'이라 불렀다. 나는 심심한 천국이 좋았다. 누운 채 발을 들어 천국의 하늘에 나의 왼발을 담갔다. 새파란 하늘이 찰랑거리며 하얀 포말이 일었다. 나는 하얀 거품과도 같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The Softies의 <The Beginning of the End>가 흐르고, 그렇게 심심한 천국의 저녁 풍경에 스며들며 집으로 들어오자 김치찌개가 뽀글뽀글 끓어오르고...나는 신나는 지옥보다 심심한 천국이 더 좋았다.
*
그래, 조금만 미루자. 조금만 더 그해 천국에서의 나날들에 대해서 추억하자. 집 뒤를 지나가던 바람이 대숲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던 소리와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던, 빗방울들이 긴 처마 너머로 후두둑 떨어지던 모습, 찻집 앞의 풍경이 맑게 울리던 순간들에 대해서. 그리고 J형의 집에서 마시던 차의 향에 대해서.
그래, 그해 내가 머물렀던 천국의 이름은 동천다려였다.
*
나는 어느 현자로부터 이 사회의 시스템은 자유롭게 분출하는 인간의 에너지를 통제하기 위해 인간의 내면을 둘로 쪼개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에게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고 끊임없이 주입하면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통제를 하게 되는데, 그때 '통제를 하는 나'와 '통제를 당하는 나'로 쪼개지면서 에너지를 상실하게 된다고. 그날 둥지를 떠난 새들에겐 '통제를 하는 나'도, '통제를 당하는 나'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성인이 된 우리가 둘로 쪼개지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길은 없을까?
*
나는 문득 한없이 젊고 지혜로운 눈을 가진 그가 그리웠고, 가만히 눈을 감고 얼마 전에 보았던 <크래쉬>란 영화 속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렸다.
Prejudice is Ignorance. 편견은 무지다.
*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싶다면 집을 떠나. 집에서의 일상이란 마치 버스 노선과 같지. 그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답을 알 수 없어. 물론 탯줄은 세상에서 가장 질긴 끈이지. 그러나 가정에서 머물다가는 너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기도 전에 이 사회에 묻혀버릴 거야. 허공 속에선 제각각 한 송이 눈이지만 지상에 닿는 순간, 사라져버리거나 묻혀버리는 우리처럼. 그 전에 답을 알고 싶다면 길을 떠나.
*
나는 다시 오븐에 밀가루 반죽을 넣고
타자기 앞에 앉아 시를 생각하지요
나는 창조주가 아니므로 한번 구워낸
빵과 어제의 시에 만족하지 못해요
내 꿈은 시와 빵을 합치는 것
빵 굽고 남는 시간에 시 쓰는 게 아니라
빵과 함께 시를 구워내는 게 꿈이에요
먼 훗날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리
... 오븐으로 시를 구워낸 사람 있었나니
아직 이런 신종은 아메리카 직업
백과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나는 언젠가 시를 구워낼 거에요
구광본 <빵 굽는 사람>
*
<한국직업사전 3판>에서는 타자기 수리공이 삭제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타자기로 빵을 굽는 사람 혹은 오븐으로 시를 굽는 사람이라는 직업은 사전에 수록되기도 전에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대도시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할인점, 중소도시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중소형 할인점의 확장으로 재래시장 상인들이 직업을 잃고, 대-중-소형 할인점 종업원이라는 '우리'속에 들어가는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으니 장돌뱅이라는 직업이 사라질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은, 직업만이 아니겠지.
*
-군산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일 때문에? 출장 오셨나 보죠?
-사람 찾으러 왔어요.
-어떤 사람을 찾아요? 아저씨, 무슨 사연 있는 분 같아. 그죠? 얘기해 주세요, 아저씨. 이렇게 비도 오는데 심심해 죽겠어요.
-군산에요, 내 첫사랑 여자가 살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어디 사는지도 모르겠는데 하여튼 여기 산대요.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만나요?
-아니, 만나려고 온 게 아니에요. 그냥,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그 여자가 사는 곳이니까. 그 여자가 걷는 길을 나도 걷고 싶고, 또 그 여자가 보는 바다를 보고 싶고.
-근데 이렇게 비가 와서 어떡해요?
-괜찮아요. 지금 나랑 그 여자랑 같은 비를 맞고 있는 거니까. 내가 보고 있는 비를 그 여자도 지금 보고 있으니까요.
*
타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 속에서 자신의 심장에 화살처럼 꽂히는 어떤 한 점을 일컫는 말, 푼크툼.
나바위성당의 마리아 상은 내 마음의 품크툼이었다.
*
군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제방을 따라 벚나무 가로수가 심겨 있고, 위쪽으론 너른 들이, 오른쪽으론 금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나바위성당과 마리아 상과 성당마을도 그렇지만 그 길에 대한 자료를 미리 알고 갔더라도 그만한 감흥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여행의 제맛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인연에 따라 낯선 길을 만나고 발견하는 것이리라.
*
지금 음악을 함께 듣고, 술을 함께 나누기에 너무 멀리 있는 그대여, 대신 나는 권한다. 부산에 가거들랑 꼭 태종대에 가보라고. 그리고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를 내려다보라고. 당신의 심장 한가운데부터 하얗게 일어나는 자유에 대한 의지를 느껴보라고.
-이 개자식들아, 난 아직 이렇게 살아 있어!
*
지구라는 이름의 별에서 33년간 함께 했던 내 아버지께서는 이 별을 떠나시기 전까지 당신이 다녔던 대학의 교훈(자유, 정의, 진리)이 쓰인 배지를 심장에 달고 지내셨다고 했다. 내게도 그런 배지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써두었다는 묘비명이다. 비록 그것이 가훈이나 교훈은 아닐지라도 내가 길 위에 있는 한, 심장에 품고 있어도 좋으리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
노래하듯, 목차
1. 로드 페르몬
*안면도에서 -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 /
로드 페르몬 향이 새어 나오는 샛길의 끝
*왕다방을 찾아서 - 암흑의 중심에서 일어나던 소용돌이, 철원 /
동정 없는 세상을 싹둑 자를 꿈의 가위, Made in UK
*강화도에서 - '황홀하다'가 부활하는 바다
*제주도에서의 건맨 생활 - 아부 오름, 그곳에 가고 싶다
2. 후천성 샛길 증후군
*소쇄원과 대동여지도 - 양 같은 범이 살고, 범 같은 양이 사는 곳
*담양, 칠불사, 섬진강 - 미국의 송어낚시와 후천성 샛길 증후군
*남해 금산 - 어두운 하늘가에 나 혼자 있는 듯했다
*광양, 순천만 와온리 - 조작된 기억의 바다, 도시의 끝은 어디인가
*여수 향일암과 문경 하늘재 - 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관
3. 푸른 테두리
*태안, 변산, 해남 - 한반도 서쪽 테두리를 따라가는 길
*보길도 동천다려 - 내가 머물렀던 천국의 이름
*예송리, 통리, 공룡알해변 - 심심한 천국의 하늘에 나의 왼발을 담그며
*땅끝에서 다시 부산으로 - 한반도 테두리를 따라가는 여행의 끝
4. 은둔하는 풍경
*광주를 가다 - 20세기 저편의 강가에 남은 청춘들, 꽃이다, 피다, 그것이다
*암자로 가는 길 -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까닭은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을 찾아서 - 땅 아닌 모든 것이 하늘인기라 /
은둔하는 폭포, 은둔하는 사내
*지리산에서 - 산새, 계곡, 숲이 있는 캐슬에서 생긴 일
*고령산 수구암 -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5. 내 마음의 푼크툼
*포천 오일장을 찾아서 - 약장수, 대장장이, 황소, 쪽빛 치마, 여인숙
*충주호 호반길을 따라 -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군산 가는 길 - 내 마음의 품크툼, 나바위성당의 마리아
*익산 가는 길 - 내겐 너무 아름다운 당신의 손
*부산에 대한 이야기 - 가장 활기찬 도시에서 여름을 즐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