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통령’ 서태지(본명 정현철).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서태지는 우리 대중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자다. 그러나 그 권력은 엘리트의 동원이나 권모술수 같은 정치적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랩과 댄스라는 서태지 이전에는 생소했던 외국 대중문화 아이템들의 한국적 차용으로 만들어냈다.
대중음악을 향한 서태지의 욕구는 일찍부터 활화산처럼 뜨거웠다. 그는 대동중학교 2학년 때인 1986년 친구들과 ‘하늘벽’이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음악에 심취한 그는 중3 때 전교 537명중 꼴찌를 할 정도로 공부와는 멀어졌다. 게다가 고등학교마저 자퇴하고 만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 ‘고교 자퇴생’이란 딱지는 얼마나 견고하게 당사자를 속박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부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왜? 난 내 음악을 해야 하니까...’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한 그는 , 등을 작곡했다. 그리고 1991년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했다.
데뷔 당시 떨떠름한 평론가들의 ‘세치 혀’를 일축하고 그들은 방송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를 모두 석권했다. 그리고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서울가요대상 최고 인기상, 스포츠서울 올해의 가수상, 대한민국 영상음악 대상 골든디스크상,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인기가요상과 신인가수상, KBS 가요대상 15대 가수상 등 그해 가요계에 부여된 모든 상을 휩쓸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음악, 그리고 처음 접해보는 패션, 자유스러움... 그 모든 것은 10대를 위시한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기 충분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유행이 됐다. 거리는 ‘서태지 패션’의 물결이었다. 거리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가 터져 나왔다.
서태지를 분기점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 소비층은 확실하게 기성세대에서 10대 청소년으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청소년들은 서태지의 음악, 서태지의 패션, 서태지가 상징하는 어떤 ‘거부의 몸짓’으로 기성의 질서를 차가운 단두대로 보내버렸다.
서태지의 노래 ‘시대유감’은 ‘공연윤리심의원회의 사전심의’라는 대중음악계의 억압적 잔재를 없애버린 기념비적인 노래이다. 당시 서태지는 공윤이 ‘시대유감’에 대해 일부 기사 삭제 결정을 내리자, 아예 모든 가사를 삭제하고 음악만 앨범에 담아 발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서태지 팬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서명운동이 일어났고, 법원까지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서태지 팬들이 승소한 이 사건을 계기로 공윤의 사전 심의제도는 완전히 철폐됐다.
이제 10대 청소년들은 부모님에게 용돈이나 타 쓰는 단순한 ‘애들’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한국 가정의 모순,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공교육의 모순, 규제와 억압이 판치는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적 잔재를 청산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등장했다.
서태지는 또 기획사(메니저)와 가수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도 마련해주었다. 요즘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서태지가 처음 연예계에 발 딛을 당시에는 기획사와 가수는 ‘주종관계’였다. 돈을 벌기 위해,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기획사라는 이름의 ‘주인’에게 가수라는 ‘노예’는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데뷔 후 3개월이 지난 후 메니저와 결별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스스로 관리했다. 그 결과 많은 시간을 더욱 더 자신의 음악을 고민하고, 만드는데 쓸 수 있었다.
서태지는 또 우리의 대중음악계에 저작권이란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실제로 그는 1992년 9월 국내 비디오 산업의 첫 저작권 분쟁으로 기록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비디오 판권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 모든 연예인들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이 저작권은 당시 20세 청년이던 서태지가 대형 프로덕션 등과 벌였던 ‘투쟁’의 결과이다.
이처럼 서태지는 노래 뿐 아니라,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를 장악하고 있는 많은 기성의 관행들을 하나씩 들춰내고, 대결하고, 부수면서, 자신들의 신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이러한 성취는 서태지라는 한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서태지’로 상징되는 신세대(新世代)의 등장과 성장에 따른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만화로 풀어본 서태지 이야기
기사원문 바로가기 :
http://cocanews.com/?doc=news/read.htm&ns_id=2557
서태지
‘문화 대통령’ 서태지(본명 정현철).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서태지는 우리 대중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자다. 그러나 그 권력은 엘리트의 동원이나 권모술수 같은 정치적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랩과 댄스라는 서태지 이전에는 생소했던 외국 대중문화 아이템들의 한국적 차용으로 만들어냈다.
대중음악을 향한 서태지의 욕구는 일찍부터 활화산처럼 뜨거웠다. 그는 대동중학교 2학년 때인 1986년 친구들과 ‘하늘벽’이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음악에 심취한 그는 중3 때 전교 537명중 꼴찌를 할 정도로 공부와는 멀어졌다. 게다가 고등학교마저 자퇴하고 만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 ‘고교 자퇴생’이란 딱지는 얼마나 견고하게 당사자를 속박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부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왜? 난 내 음악을 해야 하니까...’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한 그는 , 등을 작곡했다. 그리고 1991년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했다.
데뷔 당시 떨떠름한 평론가들의 ‘세치 혀’를 일축하고 그들은 방송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를 모두 석권했다. 그리고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서울가요대상 최고 인기상, 스포츠서울 올해의 가수상, 대한민국 영상음악 대상 골든디스크상,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인기가요상과 신인가수상, KBS 가요대상 15대 가수상 등 그해 가요계에 부여된 모든 상을 휩쓸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음악, 그리고 처음 접해보는 패션, 자유스러움... 그 모든 것은 10대를 위시한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기 충분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유행이 됐다. 거리는 ‘서태지 패션’의 물결이었다. 거리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가 터져 나왔다.
서태지를 분기점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 소비층은 확실하게 기성세대에서 10대 청소년으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청소년들은 서태지의 음악, 서태지의 패션, 서태지가 상징하는 어떤 ‘거부의 몸짓’으로 기성의 질서를 차가운 단두대로 보내버렸다.
서태지의 노래 ‘시대유감’은 ‘공연윤리심의원회의 사전심의’라는 대중음악계의 억압적 잔재를 없애버린 기념비적인 노래이다. 당시 서태지는 공윤이 ‘시대유감’에 대해 일부 기사 삭제 결정을 내리자, 아예 모든 가사를 삭제하고 음악만 앨범에 담아 발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서태지 팬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서명운동이 일어났고, 법원까지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서태지 팬들이 승소한 이 사건을 계기로 공윤의 사전 심의제도는 완전히 철폐됐다.
이제 10대 청소년들은 부모님에게 용돈이나 타 쓰는 단순한 ‘애들’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한국 가정의 모순,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공교육의 모순, 규제와 억압이 판치는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적 잔재를 청산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등장했다.
서태지는 또 기획사(메니저)와 가수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도 마련해주었다. 요즘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서태지가 처음 연예계에 발 딛을 당시에는 기획사와 가수는 ‘주종관계’였다. 돈을 벌기 위해,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기획사라는 이름의 ‘주인’에게 가수라는 ‘노예’는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데뷔 후 3개월이 지난 후 메니저와 결별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스스로 관리했다. 그 결과 많은 시간을 더욱 더 자신의 음악을 고민하고, 만드는데 쓸 수 있었다.
서태지는 또 우리의 대중음악계에 저작권이란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실제로 그는 1992년 9월 국내 비디오 산업의 첫 저작권 분쟁으로 기록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비디오 판권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 모든 연예인들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이 저작권은 당시 20세 청년이던 서태지가 대형 프로덕션 등과 벌였던 ‘투쟁’의 결과이다.
이처럼 서태지는 노래 뿐 아니라,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를 장악하고 있는 많은 기성의 관행들을 하나씩 들춰내고, 대결하고, 부수면서, 자신들의 신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이러한 성취는 서태지라는 한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서태지’로 상징되는 신세대(新世代)의 등장과 성장에 따른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글 : 김진수
그림 : 하재욱
만화영상 제작 : ac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