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

김선미200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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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

1872년 8월과 1890년 7월 사이에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영혼의 편지 668통은 "친애하는 테오에게"라는 말 로 시작하고 있다. 그의 편지에는 그림과 그림그리기의 목표와 지향점 등이 담겨 있다.


1874년 1월

네 편지를 보니 미술에 큰 흥미가 있는 것 같구나. 좋은 일이다. 네가 밀레, 자크, 슈레이어, 랑비네, 프란스 할스 같은 화가들을 좋아한다니 나도 기분이 좋다. 모베가 말했듯 '바로 그거다'. 밀레의 그림 , 정말이지 '바로 그거'라니까. 장엄하고 한마디로 시 그 자체인 작품이지. 너와 그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지금은 편지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지. 될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1880년 7월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을 지켜 왔는데, 어쩔 수 없이 펜을 들었다. 그동안 너는 나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렸고, 나도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렇게 지내지 않는 것이 우리두 사람을 위해 좋을 텐데... 네가 50프랑을 보냈다는 소식이 에텐에서 왔더라. 그래서 그 돈을 받기로 했다. 물론 많이 망설였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내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으니 달리 어쩌겠니. 그래서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보리나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내가 에텐 근처에 있기를 원하셨지만, 거절했다. 그렇게 한 것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싫든 좋든 나는 가족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존재,나쁜 놈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겠니? 그래서 멀리 떠나 있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사람은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경우다. 원한다면 나를 그 가운데 하나로 봐도 좋다. (...)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해방은 뒤늦게야 오는 법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든 부당하게든 손상된 명성, 가난, 불우한 환경, 역경 등이 그를 죄수로 만든다. 그를 막고, 감금하고, 매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창살, 울타리, 벽 등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고 상상에 불과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묻곤 한다. 신이여,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영원히?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1881년 10월

예술가는 초기에는 자연의 저항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가 자연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대립으로 기가 꺾이기는커녕 자연을 자기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사실 자연과 정직한 데생화가는 하나다. 자연은 손으로 움켜쥘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연을 움켜쥐어야 하며 그것도 두손으로 힘껏 붙잡아야 한다. 자연과 자주 씨름해온 나의 눈에는 자연이 유연하고 순종적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그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지금 그 문제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그림 그리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자연과의 씨름은, 셰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이 말은 싫든 좋든 대립을 조금씩 완화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부른 것과 비슷하다. 많은 분야에서 공통된 말이겠지만, 특히 데생에서는 '꾸준함이 항복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1881년 12월 21일

다른 누가 아니라 오직 그녀만을 원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여자에게 가고 싶어하는 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지 않느냐고 혼자 따져보기도 한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 뭐가 중요하지? 논리인가, 나 자신인가? 논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내가 논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비합리적인고 분별 없는 내 성격에 어떤 이유도, 의미도 없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빌어먹을 벽은 나에게는 너무 차갑고,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할 것이다.


1882년 3월 3일

(...) 테오야, 터널이 끝나는 곳에 희미한 빛이라도 보인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요즘은 그 빛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를 그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 일이 힘들긴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요령이 없다는 것 솔직히 인정한다. 그 대신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더 잘 지낸다. 앞의 사람들한테서 잃은 것을 뒤의 사람들한테서 얻는다. 결국은 나 자신이 관심을 갖는 환경, 표현하고 싶은 환경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그걸 나쁘게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지.

1882년 5월 3일~12일

글쎄, 예절과 교양을 숭배하는 너희 신사들에게 물어보고 싶구나. 한 여자를 저버리는 일과 버림받은 여자를 돌보는 일 중 어떤 쪽이 더 교양 있고, 더 자상하고, 더 남자다운 자세냐? 지난 겨울, 임신한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한테서 버림받은 여자지.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때에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녀를 계속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과거의 길, 그녀를 구렁텅이로 내몰 것이 분명한 그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녀는 돈이 없지만, 내가 그림을 그려 돈을 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다른 여자가 내 가슴을 뛰게 한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멀리 떠나버렸고,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자, 병들고 임신한 데다 배고픈 여자가 한 겨울에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달리 행동할 수 없었다.

1882년 7월 21일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조만간에 좀더 흡족할만한 그림을 받아보게 될 것이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교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여주겠다. 옛것을 모방하는 유행을 따라가서는 안 되겠지. 밀레도 "스스로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고 했다. 이 말은 진부하게 들리 수도 있지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대양처럼 심오하다.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1882년 5월 3일~12일

겨울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 그녀는 포즈를 취하는게 힘들었지만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나는 좋은 모델을 가진 덕분에 데생에 진전이 있었다.

1882년 7월 21일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로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1882년 9월 3일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1882년 7월

1882년 9월 3일

너의 변함 없는 도움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요즘은 네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더욱더 내 그림이 활기있고 진지하고 강령하게 되어 너에게 빨리 기쁨을 주고 싶다. 내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떠냐? 내 치료법이 너에게도 통하리라 생각하는데, 그건 툭 트인 야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잘 지낸다. 피곤할 때도 더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식사를 간소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주된 치료법은 그림이다.

1882년 10월 22일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이 먼저 있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지. 인간의 행동에서 규칙이 추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규정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사고력과 의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1883년 3월 21~28일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그래, 그런 일이 나를 생각에 잡기게 한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입을 막고 자신의 날개를 자르는 짓이지.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더 갖게 되는 반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집시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아 보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얼굴에 잼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1883년 7월 11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황야의 오솔길에 서 있는 아버지를 그리는 일이다. 히이드로 뒤엎인 갈색의 황야를 좁고 하얀 모래길이 가르지르고, 그 위에 엄격하게 보이는 개성있는 인물이 서 있는 모습으로. 하늘은 조화롭고 열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을 풍경 속에 서로 팔을 끼고 있는 그림도 그리고 싶다.

1883년 12월17일

언젠가 모베는 "자네가 자네만의 예술을 계속 추구한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깊이 파고든다면, 자네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년 전 일이다. 요즘 들어 그 말을 자주 생각한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찾았다. 바로 그개가 나 자신이다. 조금 과장된 말인지도 모르지. 사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상황이 극단적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이 표현이 옳다고 믿는다. 본질적인 것만 거론하자면, 어제 편지에서 말한 대로 털 많은 양치기 개는 바로 나 자신이고, 그 동물의 삶이 나의 삶이다. 너에게는 과장된 표현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 말을 취소할 마음은 없다. 나는 그 개의 길을 택했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개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또, 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자연을 떠난 자는 머릿속이 늘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살다보면 더 이상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리고는 결국 애초에 원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겠지.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1885년 4월 30일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에 맞춰 유화 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1885년

사람들은 기술을 형식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부적절하고 공허한 용어를 마음대로 지껄인다. 그냥 내버려두자.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1885년 12월 28일

모델은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인데,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같은 모습이다. 그녀는 밤새 꽤 바쁘게 일했음이 분명한 모습을 하고 찾아왔다. 인상적이게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샴페인은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슬프게 해요." 그 순간 나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 것 같았고,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쥐어뜯을 것 같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같은 모델을 놓고 옆모습으로 두 번째 습작을 시작했다. 요즘은 온통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 생각뿐이다. 그들의 그림을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을 이곳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면서도 평온함을 유지한다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은 양홍색과 코발트색에 푹 빠져 있다. 코발트는 아주 신비로운 색으로, 사물 주변의 분위기를 만들 때 이보다 더 적합한 색은 없지 싶다. 카르민은 포도주의 붉은색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며 포도주처럼 강렬하다. 에메랄드 그린도 마찬가지다. 이런 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절약이다. 카드뮴색(노란색 계열)도 마찬가지다.

1888년 6월

펜과 종이를 대할 때처럼 물감을 사용할 때도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 색을 망칠까 싶어 두려워하다 보면 꼭 그림을 실패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부자였다면 지금보다 물감을 덜 썼을 것이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거이지.

1888년 7월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주어라. 요즘은 너에게 그림을 보내기 위해서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을 그리는 동안 밭에서 직접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보다 결코 편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1888년 9월 8일

우체국에서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을 부치면서, 새 그림 의 스케치도 함께 넣었다. 이제 일본판화의 성격을 약간 가미하면 완성될 것이다.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혹은 와인빛 도는 붉은색과 대비함으로써, 부드러운 녹색과베로네즈 녹색을 노란빛 도는 녹색과 거친 청록색과 대비함으로써,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지옥 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본 회화 특유의 경쾌함을 담고 있다.

1888년 9월

이번 주에 그린 두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세 번째 그림은 흐릿한 베로네즈 녹색 바탕에 잿빛 톤으로 그린, 퇴색한 느낌을 주는 자화상이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이번 주에는 그림 그리고, 잠자고, 먹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6시간씩 총 12시간의 작업을 했고, 단번에 12시간 동안 잠을 잤다.

1888년 10월 24일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 걸...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1889.1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1888년 12월 23일

고갱은 아를이라는 훌륭한 도시,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작고 노란집,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조금 싫증이 난 것 같다. 사실 우리 두 사람 모두 두손 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원인은 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그냥 떠나버리거나 머무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에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깊이 생각해보라고, 또 이익과 손해를 잘 따져보라고 말했다. 고갱은 아주 강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라도 그는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그가 이곳에서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 그걸 찾게 될까? 묵묵히 그의 결정을 기다리겠다.

1889년 1월

생각도 사라졌고, 악몽을 꾸는 일밖에 없다. 칼륨 정제를 복용한 덕분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잘못했다면 나를 가둔다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그냥 그림을 그리게 내버려둔다면, 약속한 주의사항을 모두 지키도록 하마.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1889년 4월 30일

아무 대가없이 나를 받아들여줄 병원은 없다는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나에게 너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무런 가책없이 나를 자살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테지. 비겁한 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테니까. 우리가 계속 사회에 대항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할수 있기를 바란다.

1889년 9월 7일~8일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난다. (...)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건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1890년 5월 4일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하느님 맙소사! 1년이 넘도록 참아왔으니 이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지루함과 슬픔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사랑하는 동생아, 나의 인내심이 극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임시변통에 불과하더라도.

1890년 7월 24일

테오에게 편지와 동봉한 50프랑 수표 고맙게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럴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이 너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네 가정의 평화문제라면, 잠시 파란이 있어도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프랑스어나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론 할 때 이런저런 면의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게 그리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지만. 요즘은 온통 그림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고 존경했던 화가들처럼 잘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으니, 오늘날 화가들이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그런데 화가 공동체를 결성하는 게 유용하다고 화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사라진 것이냐? 하긴, 공동체가 결성되더라도 다른 화가들이 파멸한다면 공동체 역시 파멸하게 될 테지. 너는 그런 경우, 화상들이 인상파 화가들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개인적인 노력은 별소용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이미 여러 가지 일을 겪었는데, 정말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고갱이 브르타뉴 지방에서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그린 다른 그림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봉한 것은 도비니의 정원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다시 스케치한 것이다. 내가 가장 세심하게 생각해서 그린 작품 중 하나다. 구식으로 이엉을 인 지붕과 비온 후의 광대한 밀밭 정경을 그린 30호 크기 그림 두 점도 대략 스케치했다.




너의 염려해 주는 편지와 같이 동봉한 50프랑의 지폐, 고맙다. 갖가지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헛수고라 생각해 버렸다. 신사들이 네게 대해 여러 가지로 편의를 돌봐주기를 바라고 있다. 너의 가정이 무고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놓는다. 좋은 경우나 나쁜 경우도 상상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5층집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네게나 조에게 얼마나 중노동이 될까 하는 것은 십분 짐작이 간다.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물론 다행이지만.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에 어째서 내가 이렇게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더욱 머리를 냉정히 하여 장사 이야기라도 할 수 있게 되려면 아직도 아득한 일인 것 같다. 현재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고, 이미 그 말을 전했다고 생각되지만, 그 사실에 어느 정도의 공포를 가진 채 자각하고 있었으며, 별로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다른 화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거나 간에 무의식적이나마 실제 장사의 일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틀림없이 우리들은 자기들의 그림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의 아우야, 이런 말을 언제나 네게 했고, 최선을 다하자고 끊임없이 바라던 내 생각을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전하겠다. 거듭 말하거니와 너는 단지 코로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는 전혀 다르며, 나를 통하여 많은 그림 제작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니까, 비록 네가 파산한다 하더라도 안심하고 있어도 된다. 관련성 있는 위기에 즈음하여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네게 그 말은 적어도 중요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현지 실존하고 있는 예술가나 과거의 예술가의 그림과 화상과는 지금도 완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렇다. 나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졌으며, 내 이성을 반쯤 잃어버리면서까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너는 화상답지가 않다. 너는 동료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사회에서 활동한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 1890년 7월 24일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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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편지

베르나르에게



1888년 3월

약속대로 붓을 잡아보았다. 우선 이 고장의 맑은 공기와 명쾌한 빛깔의 인상은 일본을 연상케 한다. 물은 아름다운 에머럴드빛의 점무늬를 그리고, 우리가 오글쪼글한 종이의 판화에서 보는 것 같은 풍부한 푸르름을 풍경에 길들인다. 엷은 오렌지 빛의 저녁놀은 흙을 푸르게 느끼게 한다. 매일 태양은 노란빛으로 빛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고장의 여름철의 멋을 전연 모르고 있다. 여자의 옷차림은 아름답고, 특히 일요일의 가로수 길에서는 소박하고 아주 희한한 빛의 조화를 본다. 아마 여름이 되면 더욱 명랑해질 것이다. 이곳의 물가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비싸서 곤란하다. 퐁 타벤에서 생활했을 무렵과 같지는 않다. 나는 처음에 5프랑씩 매일 지불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4프랑으로 그럭저럭 꾸려나가고 있다. 이곳 사투리를 배워서 브이아베이스나 아이오리를 먹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별로 비싸지 않은 종류의 하숙집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 하숙자 수가 늘어난다면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방 값이 싸질 것이란 확신도 있다. 태양과 색채를 그리워하는 예술가들은 남프랑스로 이주하는 편이 실제로 유리할 지도 모른다. 만일 일본인이 그들의 나라에서 그 예술을 진보시킬 수 없다면 기꺼이 프랑스에서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 이 편지 첫머리에 있는 크로키는 내가 지금 만들어보고자 손을 대고 있는 습작의 하나다. 커다란 황색 태양이 묘한 꼴로 조교(弔橋) 옆면에 부조된 곳을, 선원들이 애인을 데리고 읍내쪽으로 올라간다. 같은 조교와 한 무리의 빨래하는 여자들은 그린 또 한 장의 습작도 있다. 그리고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한마디로 전해주게. 자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악수를 보내며, 친구들에게도 안부 전해주기 바라네.

1888년 6월 18일

베르나르에게 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은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라빛을 띠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황토색이네. 하늘은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 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노란색에 보라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 물감으로 붓질을 많이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또하나의 풍경 스케치를 편지에 그렸는데, 해가 지는 것처럼 보이나 달이 뜨는 것처럼 보이나? 여하튼 여름 태양이네. 마을은 보라빛이고, 태양은 노란색, 하늘은 청록색이네, 밀밭은 오래된 황금빛, 구리빛, 녹색을 띠는 황금빛, 혹은 붉은 황금빛, 노란 황금빛, 노란 청동빛, 적록색 등 모든 색을 담고 있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30호 캔버스네. 미스트랄(지중해 연안에 부는 북서풍)이 한창일때 이 그림을 그렸는데, 오죽했으면 이제리을 말뚝으로 고정해야 했네. 자네엑도 권하고 싶군. 이젤 다리를 흙 속에 박고 50센티미터 길이의 말뚝을 그 옆에 박았네. 그리고는 이 모두를 로프로 묶어야 하네.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어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