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의 글을 향하여 ‘건성건성 예리하게’ 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즈음하여 한 출판사의 의뢰로 올림픽 기간동안 호주에 머물면서, 올림픽 경기들을 보거나 호주를 살피며 기록한 그의 에세이를 읽자니 예의 그 ‘건성건성 예리하게’ 라는 표현이 다시금 떠오른다. 여기에 그다지 생각할 틈이 없이 바로바로 써대는 (당시에도 이미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순발력이 덧붙여진 에세이이다.
사실 보름남짓 매일매일 집에 가면 방송3사에서 지겹도록 틀어대는 스포츠 경기를 보아야 했던 요즘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이기도 하다. 보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보게 되는 TV 중계들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던 첫 번째 주에 비하여 하루키의 책을 읽고 난 다음에 TV 중계들을 볼 때는 뭔가 자세가 조금 달라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미안, 오늘이 올림픽의 폐막이니 오늘 책을 사서 본다고 해도 이미 버스는 떠난 셈, 하지만 아마도 다음 주까지는 올림픽 소식과 올림픽 스타들을 나름 열심히 울궈 먹을 터이니 지금이라도 사서 본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쯤 되면 ‘스포츠의 제전’이 아니다. 국가와 거대 기업의 목적이 융합되고 결탁한 지점에서 성립된 이벤트일 뿐. 그 원리는 투자와 회수에 있겠지. 어찌 보면 스포츠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보고 있으려니 점점 불쾌한 기분이 든다... 밤은 깊어가지만 선수들의 입장은 끝이 안 보인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피곤하고 졸린 표정이다. 10시 전에 끝낼 수는 없었을까. 4시간 반은 너무한 거 아니냐고.”
사실 책을 읽다보면 하루키는 올림픽에 (그러니까 이벤트로서의 올림픽에)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달리기 매니아로 알려진 하루키이다보니 (그는 시드니에 머무는 중에도 매일 한 시간 정도의 조깅을 잊지 않는다)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 마라톤 선수들이나 철인3종 경기의 선수들에게는 꽤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아낌 없이 애정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돈까지 받아서, 그리고 글을 쓰고 난 다음 또 돈을 받을테고) 시드니까지 가서, 올림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하여 허송세월을 보냈을 하루키는 아니어서 나름 열심히 육상이며, 야구며, 핸드볼이며, 체조를 보러 다닌다. 물론 사이사이 맥주도 마시고 호주의 동물들도 구경하고 호주의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관전평을 작성하거나 관람평을 작성하는 것으로 하루키식의 밥값을 한다.
“그런데 왜 올림픽 육상의 하이라이트가 가장 짧은 100미터와 가장 긴 마라톤일까? 그 중간은? 이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누군가 생각해 보시길.”
“일본 선수는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본인도 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내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사람은 그렇게 악몽에 견디는 법을 배운다. 나도 배웠다. 다만 TV로 중계되지 않았을 뿐이다.”
“... 핸드볼은 반드시 어느 한쪽이 공격하고 있고, 공이 가운데에서 빙빙 도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공수 전환의 속도가 빠르다... 골키퍼들의 영혼은 진공 속의 고독한 바위섬이며 육체는 무지비한 공을 맞는 골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핸드볼의 골키퍼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여기에 하루키식 농담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툭툭 던지는 말들의 재미가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출신으로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 켈리에 대한 영화에서 켈리역을 맡았다는 믹 재거를 향해 ‘믹 재거는 교수형에 처할 만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거나, 시드니를 벗어나 교외로 나갈 수록 기름값이 비싼 것을 보며 ‘수송 중에 성질 더러운 캥거루의 습격을 받아 기름을 빼앗기는 것’도 아니면서 왜 기름값이 비싸냐고 투덜댈 때는 얼마나 귀엽던지...
이처럼 (월드컵과 함께) 인류 최대의 스포츠 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과 그러한 올림픽을 바라보는 수준급 글쟁이의 만남은 굉장히 상큼하다. 스포츠 평론가라는 직업이 있는 것은 같지만 그다지 재미있는 스포츠 평론을 만나기는 힘든 우리들의 여건이고 보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자신에게 있어) 올림픽이 지루하기는 하지만 그 어떤 지루함도 용납하지 않는 현대를 돌이켜보건대 ‘올림픽은 밀도가 높은 지루함의 궁극적인 제전’이라는 면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하루키의 존재가 부럽다고나 할까.
지상 최대의 쇼를 향한 하루키식의 건성건성 예리한 시선... <승리보다 소중한 것>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의 글을 향하여 ‘건성건성 예리하게’ 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즈음하여 한 출판사의 의뢰로 올림픽 기간동안 호주에 머물면서, 올림픽 경기들을 보거나 호주를 살피며 기록한 그의 에세이를 읽자니 예의 그 ‘건성건성 예리하게’ 라는 표현이 다시금 떠오른다. 여기에 그다지 생각할 틈이 없이 바로바로 써대는 (당시에도 이미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순발력이 덧붙여진 에세이이다.
사실 보름남짓 매일매일 집에 가면 방송3사에서 지겹도록 틀어대는 스포츠 경기를 보아야 했던 요즘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이기도 하다. 보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보게 되는 TV 중계들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던 첫 번째 주에 비하여 하루키의 책을 읽고 난 다음에 TV 중계들을 볼 때는 뭔가 자세가 조금 달라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미안, 오늘이 올림픽의 폐막이니 오늘 책을 사서 본다고 해도 이미 버스는 떠난 셈, 하지만 아마도 다음 주까지는 올림픽 소식과 올림픽 스타들을 나름 열심히 울궈 먹을 터이니 지금이라도 사서 본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쯤 되면 ‘스포츠의 제전’이 아니다. 국가와 거대 기업의 목적이 융합되고 결탁한 지점에서 성립된 이벤트일 뿐. 그 원리는 투자와 회수에 있겠지. 어찌 보면 스포츠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보고 있으려니 점점 불쾌한 기분이 든다... 밤은 깊어가지만 선수들의 입장은 끝이 안 보인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피곤하고 졸린 표정이다. 10시 전에 끝낼 수는 없었을까. 4시간 반은 너무한 거 아니냐고.”
사실 책을 읽다보면 하루키는 올림픽에 (그러니까 이벤트로서의 올림픽에)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달리기 매니아로 알려진 하루키이다보니 (그는 시드니에 머무는 중에도 매일 한 시간 정도의 조깅을 잊지 않는다)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 마라톤 선수들이나 철인3종 경기의 선수들에게는 꽤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아낌 없이 애정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돈까지 받아서, 그리고 글을 쓰고 난 다음 또 돈을 받을테고) 시드니까지 가서, 올림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하여 허송세월을 보냈을 하루키는 아니어서 나름 열심히 육상이며, 야구며, 핸드볼이며, 체조를 보러 다닌다. 물론 사이사이 맥주도 마시고 호주의 동물들도 구경하고 호주의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관전평을 작성하거나 관람평을 작성하는 것으로 하루키식의 밥값을 한다.
“그런데 왜 올림픽 육상의 하이라이트가 가장 짧은 100미터와 가장 긴 마라톤일까? 그 중간은? 이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누군가 생각해 보시길.”
“일본 선수는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본인도 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내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사람은 그렇게 악몽에 견디는 법을 배운다. 나도 배웠다. 다만 TV로 중계되지 않았을 뿐이다.”
“... 핸드볼은 반드시 어느 한쪽이 공격하고 있고, 공이 가운데에서 빙빙 도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공수 전환의 속도가 빠르다... 골키퍼들의 영혼은 진공 속의 고독한 바위섬이며 육체는 무지비한 공을 맞는 골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핸드볼의 골키퍼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여기에 하루키식 농담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툭툭 던지는 말들의 재미가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출신으로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 켈리에 대한 영화에서 켈리역을 맡았다는 믹 재거를 향해 ‘믹 재거는 교수형에 처할 만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거나, 시드니를 벗어나 교외로 나갈 수록 기름값이 비싼 것을 보며 ‘수송 중에 성질 더러운 캥거루의 습격을 받아 기름을 빼앗기는 것’도 아니면서 왜 기름값이 비싸냐고 투덜댈 때는 얼마나 귀엽던지...
이처럼 (월드컵과 함께) 인류 최대의 스포츠 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과 그러한 올림픽을 바라보는 수준급 글쟁이의 만남은 굉장히 상큼하다. 스포츠 평론가라는 직업이 있는 것은 같지만 그다지 재미있는 스포츠 평론을 만나기는 힘든 우리들의 여건이고 보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자신에게 있어) 올림픽이 지루하기는 하지만 그 어떤 지루함도 용납하지 않는 현대를 돌이켜보건대 ‘올림픽은 밀도가 높은 지루함의 궁극적인 제전’이라는 면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하루키의 존재가 부럽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