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묵상, 묵도, 관상

김선미20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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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瞑想, meditation]

요약
마음을 자연스럽게 안으로 몰입시켜 내면의 자아를 확립하거나 종교 수행을 위한 정신집중을 널리 일컫는 말.

본문
라틴어로 메디타티오(meditatio)라고도 한다. 모든 생각과 의식의 기초는 고요한 내면의식이며 명상을 통하여 순수한 내면의식으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수행법은 그리스도교와 같은 서양종교보다는 힌두교나 불교, 도교 등의 동양종교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힌두교에는 다양한 명상법이 있으며, 요가의 한 분야로서 라자 요가, 쿤달리니 요가라고 부른다. 요가의 입장에서 본 명상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행해진다. 먼저 윤리적인 가르침을 지키며 몸을 수행하는데, 주로 몸을 부드럽게 만드는 체위법을 행한다. 체위법은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바른 호흡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바른 호흡은 배로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외적인 수행을 거치면 내적인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모두 3과정으로 나뉜다.

① 다라나(dharana) :마음을 한 곳에 모아서 흩어지지 않게 한다.
② 디야나(dhyana) : 마음이 고요해져 순수하고 맑아진다.
③ 사마디(samadhi) :정신이 최고로 집중되어 자신의 의식은 사라지고 대상(對象)만이 빛을 발하는 대우주와 합치된 상태가 된다.

흰두교에서 보면 사마디는 해탈 혹은 깨달음으로 불리는 상태이다. 불교의 명상법은 요가의 영향을 받았으며 각 종파에 따라 다르다. 선종에서는 모든 잡념을 떨어버리고 공(空)이나 무심(無心)의 상태인 무념무상(無念無想)을 목표로 삼았다. 밀교에서는 관심(觀心) 혹은 관찰이라고 하며 명상을 통하여 신들이나 부처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도교에서는 명상 수행을 통해서 영원무궁의 세계로 통하는 진인(眞人)을 수태하여 도(道)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오늘날에는 명상이 긴장과 잡념에 시달리는 현실세계로부터 의식을 떼어놓음으로써 밖으로 향하였던 마음을 자신의 내적인 세계로 향하게 한다. 항상 외부에 집착하고 있는 의식을 안으로 돌려주므로 마음을 정화시켜 심리적인 안정을 이루게 하고 육체적으로도 휴식을 주어 몸의 건강을 돌보게 한다. 치료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명상 상태에 있을 때는 좋지 않은 성격과 행동을 자신이나 타인의 암시로 바꿀 수 있다.



출처 : http://100.naver.com/100.php?id=703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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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감고 생각을 하나로 모은 후 만들어내는 평화와 안정의 세계, 아마도 사람들이 명상을 하면서 얻고자 하는 느낌일 것입니다. 명상은 의식세계를 확장시키고 영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정신 훈련 요법으로, 단순한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가 아니라 안정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명상은 오랫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행해져 왔으며, 기독교의 묵상이나 기도, 불교의 화두나 참선, 염불, 요가 외에도 경전 암송이나 춤, 노래, 집단 의식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 됩니다.



명상이 뇌의 이완 상태를 유도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몇 년 전 직접 티베트에 가서 유명한 고승들을 대상으로 인체의 산소 소비량, 혈압, 체온, 뇌파 중 알파파의 빈도 등을 조사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명상을 하기전과 명상을 하고 난 후 인체의 생리 변화가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명상을 하고 난 후에는 심장 박동이 줄어들고, 몸의 산소 소비량이 감소되었으며, 혈압 또한 떨어졌습니다. 반면에 체온과 알파 파장은 증가하였습니다.



알파 파장은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을 때 증가되어 나타나는 뇌파입니다. 그러한 알파 파장 상태는 명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의식 상태와 매우 유사하다고 보고되고 있는데, 향기요법으로도 가장 빠르고 쉽게 알파 파장을 이끌어낼 수 있음이 실험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로마 에센셜 오일을 흡입법이나 램프 확산법을 통해 확산시키면서 명상을 하게 되면 매우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명상을 일상화함으로써 스스로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정신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의미있고 행복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명상은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와 긴장을 덜어줍니다. 혈압을 낮추어 치료 약물이 사용을 줄여줄 뿐 아니라 알코올, 담배 양을 감소시키며 나쁜 습관을 바꿔줍니다. 명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의식 상태를 변화시켜 자아를 성찰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타인과 자연에 대해 일치감을 갖게 하고 삶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명상을 하면 신체가 이완되고, 정서가 안정됨에 따라 몸의 면역체계가 강화되고, 생리적인 대사가 균형을 이루어 에너지 효율이 높아집니다.



명상에는 촛불을 응시하는 것, 주문을 외우는 것, 호흡을 맞추는 것, 빗방울 소리를 상상하는 것, 마음에 드는 글의 한 구절을 큰소리로 외우는 것, 생각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 춤을 추며 빙빙 도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아로마 에센셜 오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와 각종 질병, 심리적 변화들을 조절, 치료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습니다. 코를 통해 아로마 향이 느껴지면 두뇌는 평안함과 평화, 안정감 등으로 생각이 모아지고 신체적 반응 역시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마사지, 호흡, 명상을 통한 마음의 수련, 즉 오감을 이용한 치료법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양자 역학적 진동 효과 때문입니다. 아로마 에센셜 오일을 생물 화학적인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양자 진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로 보는 것입니다. 양자 진동학은 이미 공학, 물리학, 약학, 농학, 공업 분야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고, 의학에서도 진단과 치료 부분에 일부 활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다양하게 응용될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명상을 통한 치료의 구체적인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명상은 처음부터 오래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아로마 향이 발향되는 조용한 공간에서 하루에 꾸준히 10∼20분 정도 하면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명상은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므로 잡념을 없애려고 억지로 애쓰지 말고 잡념을 떠올리고 있는 자기를 고요히 바라보도록 합니다.



한편 창조적 영상요법은 상상력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창조해 내는 하나의 치료 기술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나 목적, 기분, 상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거나 외우면서 부정적인 자아관과 생각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즉 근육 인식 훈련이나 호흡법으로 몸을 이완시킨 상태에서 좋은 감정이나 기억 또는 쾌적한 자연환경을 떠올리다 보면 긍정적인 기운들이 온몸으로 전달되는데, 이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병은 내면의 갈등이나 불안, 불협화음으로 인해 생기게 마련이고 몸과 마음이 대화를 단절시켰을 때 일어 납니다. 병이 발생하는 것은 자기 내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일종의 메시지인 셈인데, 자기 내면과 규칙적으로 만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병은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떠나버리게 됩니다. 나을 수 있다는 강한 신념으로 건강에 집중한다면 우주적 치료 에너지가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창조적 영상요법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입니다.



아로마 향이 풍기는 공간에서 식물, 꽃, 과일 등 보기 좋은 자연 풍물을 선택하여 테이블 위에 놓고 60∼120㎝ 떨어진 곳에 앉아 편안하게 그것을 바라봅니다. 자신이 그것을 응시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저 바라만 봅니다.



7∼10초 정도 풍물이 눈 안으로 들어가게 하다가 초점을 더 먼 곳으로 던져봅니다. 몇 초 후 다시 원래의 물건으로 돌아와서 응시하기를 5분 정도 반복합니다. 그리고 1분 정도 눈을 감은 뒤 조용히 앉아 있다가 마무리를 합니다.



명상의 효과를 높이는 아로마에는 유향, 클라리 세이지, 몰약, 장미, 샌들우드, 제라늄 등이 있습니다. 보다 효과적인 명상을 위해 클라리 세이지 5방울과 제라늄 2방울을 혼합한 배합 오일을 1∼2방울 램프에 떨어뜨려 공기 중에 아로마 향이 퍼지도록 해봅시다. 은은하게 풍기는 아로마 향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을 하나로 모으면 몸과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평화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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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도

[영어]silent prayer
[한자]默禱
[라틴어]oratio mentalis
[관련단어] 묵상 묵상신공


≪한불자전≫(韓佛字典)에서는 '묵도'를 기도(oraison), ② 묵상(默想)하다, 명상하다(mediter), ③ 말없이 기도하다(prier en silence) 등의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옛말로는 기도문을 여럿이 함께 소리내어 외는 것을 '통경(通經)하다'라고 써 왔으며, 소리내어 기도하거나, 기도문을 소리내어 외거나 또는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을 '염경(念經)하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는네, 이 '통경하다' 또는 '염경하다'의 대조적인 말, 즉 소리내지 않고, 명상하거나 깊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묵상(默想)하다'라는 말과 여기서 파생된 '묵상으로 드리는 기도'를 지칭하여 '묵상신공'(默想神功)이라고 사용해왔다. 여기서 말없이 기도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묵도는 묵상 또는 묵상신공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엄 격히 말해서 묵도는 "소리내지 않고 마음 속으로 올리는 기도"이며, 묵상은 '고찰적인 기도'라고 구별할 수 있다. 가톨릭의 전통은, 묵상을 그리스도 교인의 영적인 생황의 극치로 간주해 왔는데,이는 '염도'(念禱)의 한 형태로서, 지성(知性)이 신의 임재(臨在) 앞에서, 신과 신에 관련이 있는 사항에 대하여 생각함을 지칭하므로 '추리적인 염도'라고도 부른다. '묵도'의 경우에는 ① 미사에 필수적인 침묵을 지켜야만 하는 시간, ② 성직자가 드려야 할 개인 기도문을 침묵 속에 혹은 침묵에 가까운 정도의 소리로 드리는 것, 즉 비밀기도, ③ 음송용이었던 기도문을 침묵으로 올리는 것, 즉 성찬기도 등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이 묵도는 6세기 후반에 와서 비록 일반화된 것은 아니지만 광범하게 사용되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금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이 금령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8세기 말에는 그 사용이 비잔틴 전례의 확고한 관습으로 제정되었고, 로마 가톨릭의식에서의 일반사용 관례로 제정됨에 따라 현존하여 왔는데, 1966년에 와서 미사전문(성찬 기도문)을 음송하는 규정이 다시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묵도가 하나의 변질된 의식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전례 개혁을 거쳐 예배의식에 삽입됨으로써 침묵의 요소가 너무나 적은 현 시대에 있어 큰 효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묵상, 묵상신공


출처 : http://dictionary.catholic.or.kr/dic_view.asp?ctxtIdNum=10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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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默想, meditation]

요약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몰두하여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사랑의 계명을 따르고 주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이끌어 주는 천주교 신자들의 기도.

원어명 meditatio

본문
묵상은 인간이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안에 하나가 되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묵상 기도는 인간의 사고력을 초월하여 초자연적인 실재의 세계로 이끌어 주고 하느님의 현존을 특별히 강조한다. 묵상의 어원인 라틴어 ‘메디타리(meditari)’는 ‘주의하다, 밤새우다, 마음으로 생각하다’는 뜻을 지니면서 영성적인 의미로 ‘단련하다, 익숙해지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성서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꾸준히 반복하여 생각하는 것은 묵상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때문에 성서를 읽는 것이 중요하며 읽은 하느님의 말씀을 반복하여 묵상하는 것을 ‘되새김질(ruminatio;masticatio)’이라는 말로 즐겨 표현되었다.

동방정교회의 수도원들에서는 시편이나 짧은 성서 구절들을 입으로 작게 소리내어 읽는 방법으로 묵상이 진행되었으나 서방교회의 수도자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엄격한 의미에서 15세기까지는 성서 구절들을 반복하여 읊는 단순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고 신과의 일치를 추구하던 것이 16세기 스페인에서는 성 이그나티우스데 로욜라(1491~1556), 성녀 테레사 데 헤수스(1515~1582), 성 요한네스(1542~1591), F.살레시우스(1567~1622) 등을 중심으로 묵상 기도의 구체적 방법론이 체계적으로 제시되었다. 진리에 대해 확신을 얻고 나아가 은총의 도움으로 그 진리를 사랑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묵상 기도는 가난, 이탈, 침묵, 사막과 같은 외적인 조건들을 필요로 하며 고요한 마음으로 하느님 안에 머무를 것을 요구한다.

묵상 기도는 논리에 따르는 지성의 활동이 아니라 마음 깊은 의지적인 사랑의 활동이긴 하지만, 지성은 진리의 빛을 밝혀 주고 의지는 하느님의 사랑의 씨앗을 심어준다. 묵상 기도는 처음에는 이성에 의한 추리적, 이성적 기도의 형태로 출발하고 점차로 마음, 정감, 단순한 대화의 기도로 승화되어 간다. 묵상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인간의 나약함과 자기 중심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인내 안에서 은총의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영성 지도자의 여러 가지 도움을 통해 자신에 맞는 묵상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출처 : http://100.naver.com/100.php?id=70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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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영어]meditation
[한자]默想
[라틴어]meditatio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몰두하여 하느님의 현존(現存) 속에서 하느님과 관계된 모든 일에 관해 생각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즉 묵상은 '생각만으로 드리는 기도' '정신의 기도'라 할 수 있으며, 지적(知的)인 행위와 의지가 결합되어 있다. 묵상의 주제로는 신앙의 신비들, 신앙의 진리, 예수의 일생, 교회의 가르침, 성서의 내용, 성인(聖人)들의 생애 등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제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신앙을 보다 깊이 통찰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바를 깨닫게 되어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알게 되는 것이다. 즉 묵상에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따르려는 열망과 의지, 결심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묵상은 아직 신앙이 얕은 신자들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조금씩 진보하여 높은 수준에까지 도달하여 하느님과의 보다 깊은 친교의 내적인 기쁨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된다. 그러나 묵상은 관상(觀想)과는 구별된다. 현대의 많은 영성대가(靈性大家)들이 주창한 많은 묵상법들 가운데서 성 이냐시오 로욜라(St. Ignatius de Loyola)가 ≪영신 수련≫(Spiritual Exercises)에서 설명한 방법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출처 : http://dictionary.catholic.or.kr/dic_view.asp?ctxtIdNum=1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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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觀想, contemplation]

요약
종교에서의 인식 양식.

본문

넓은 의미로는 실천적 태도와는 상대적으로 인식·명상·묵상 등의 정관적 태도를 말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Ethica Nicomachea》에서 인간의 지복(至福)은 그 사람의 고유한 지성적 태도에 입각한 생활에 있다고 말하였다.

좁은 의미로는 신플라톤파(新 Platon派)나 그노시스파(Gnostics) 등의 신비적 사상, 종교에서의 생성 소멸하는 갖가지 사상(事象)의 배후에 숨은 초감각적·초월적 존재를 직관하는 것, 또는 신적 존재와 합일하는 것을 말한다. 즉, 신앙에 의한 진리를 논리적인 논증에 의하지 않고 경험적·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장기적인 수련에 의하여 능동적으로 얻게 되는 것과,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이 신비체험 등에서 수동적으로 얻는 것이 있다.

가르멜회(會) 등과 같이 관상생활로 일관하는 수도회는 관상수도회라 하여, 주로 포교나 교육에 종사하는 활동 수도회와 구별된다.


출처 : http://100.naver.com/100.php?id=18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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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한자]觀想
[라틴어]contemplatio
[영어]contemplation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안에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본성에 참여하여 친밀한 친교를 누리도록 부르시고 있다. 그 친교의 온전한 형태는 천국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을 통하여 이루어지나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직관능력의 씨앗을 받게 된다. 관상은 그 씨앗을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싹트게 하여 꽃피우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교회내 많은 성인들이 영성생활의 일치의 단계에 도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이를 실천하였다. 관상은 염경기도나 일반적 묵상기도와 달리 단순 본질의 직관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본질적인 것의 터득에서 오는 것이므로 직관의 기도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의 친교가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일치로 발전한 나머지 하느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 안에 특별히 긴밀한 양식으로 내재하는 하느님을 본질적으로 바라보고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친교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언어와 개념과 이미지 등에 매개수단을 사용한다. 그러나 친교가 깊어지고 하느님이 사람에게 가까이 현존하심에 따라 그러한 매체가 불필요해지며 마침내 하느님의 영(靈)이 사람 안에 직접 내재하여 활동하실 때에는 사람의 사고와 감정과 상상은 하느님과의??침묵의 일치??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기에 이른다. 더우기 인간의 언어와 개념 등은 하느님이 인간 안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계시하고 활동하시려는 자유를 제한하기에 이른다. 관상은 이러한 단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자는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모두 침묵시키고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친밀한 친교를 체험하는 가운데 사람은 자신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의 존재가 본질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그 사람에게 도달해야 할 목적이라기 보다는 삶의 주제요 내용이며 생명의 원리가 되기에 이른다. 관상은 이에 도달하는 양식에 따라 수득적(修得的) 관상과 주부적(注賦的) 관상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개인의 노력으로써 직관의 능력에 도달하는 것으로 능동적관상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몰입하는 불교의 선(禪)은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비그리스도교 선언문 2). 한편 후자 즉 주부적 관상은 하느님의 은혜로 인하여 신적(神的)영역을 체험하고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것으로 수동적 관상이라고도 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는님의 본성을 체험하는 경우가 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구분에 대하여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관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의문스럽게 여기는 전해도 있어서 학설은 일치되지 않고 있다. 관상은 완덕에 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지 완덕 자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완덕에 부르시는 하느님은 일반 신자들의 일상생활이나 활동수도회의 활동생활 가운데 관상의 경지에 도달하게 도와주시기도 하고 교회내 관상기도 한다. 관상은 본직적인 것과 ??단 한 가지의 필요한 것??(루가 10:41) 즉 하느님께 집중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더욱 겸손하고 관대하게 하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서 나오는 관상및 관상기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출처 : http://dictionary.catholic.or.kr/dic_view.asp?ctxtIdNum=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