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홍세화씨 강연을 듣고 그 양반이 추천하길래 바로 인터넷서점에서 충동구매를 한 것도 벌써 몇 주 전 일이다. 물론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그 무엇들에 밀려, 그냥 사무실 책꽂이에 꽂혀 있기만 했다.
그러다 2주 전쯤 또 다른 어떤 강연에 갔는데 강연을 들으러 온 동생 하나가 이 책을 들고 있는 거다. 어머머, 웬일이니? 이 책이 요즘 유행인가? 무슨 처세술 책도 아니고 요즘 뜨고 있는 경제학 책도 아니고 16세기 인문학 서적이 유행을 탈 리는 없을 텐데.
동생에게 어쩌다 이 책을 읽게 됐냐고 물었다. 그 동생의 대답. "요즘 명박이가 하는 짓거리가 하도 답답해서. 그 짓거리에 동조하고 알아서 기는 무리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그 속이 궁금해서 알아 보려고."
아이고, 정말 고민이 많았구나 싶었다. 나처럼 누가 좋다니까 얼레벌레 충동구매한 건 아니었구나. 그렇지. 사람들이 다 나같으면 이 세상이 굴러가겠어? ㅡㅡ;;
난 아직 책장을 펼쳐보지도 않았지만,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 괜시리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나중에 다 읽고 이야기나 나눠보자" 하고 그 동생과 헤어졌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을 읽기 전 알고 있던 사전정보(홍세화씨가 소개했던)는 라 보에티가 1500년대 사람이고 열여덟의 나이에 이 논문을 썼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난 30대 후반이 되도록 내 생각 하나 제대로 정리하기 어렵구만, 열여덟에 세기의 논문을 썼단 말야? 젠장, 역시 천재는 따로 있군.'
헌데 읽어보니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닌 거다. 그냥 논문이 아니더란 거지. 16세기면 중세 르네상스 시대겠구만, 이때 벌써 이런 생각을 했단 말야? 그것도 열여덟에?
물론, 라 보에티의 텍스트 자체가 매우 놀랍다거나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라 보에티의 이 짤막한 논문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체제는 그것이 1인지배체제든 집단지배체제든 인간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로 절대 용인될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피지배집단은 자발적으로 지배자에게 복종한다. 복종이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인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어리석은 결과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물론 라 보에티가 이데올로기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교육과 습관으로 내면화된다. 또한 지배자는 피지배집단이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이성(이것 역시 라 보에티가 사용한 개념은 아니다.)을 마비시키는 유희를 인민들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떡밥을 나눠먹는 신하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지배자가 존재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지배자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들 사이에 신뢰는 없으며 언제 자신을 제거할 것인가, 하는 공포와 긴장만이 있을 뿐이다. 하기에 전제군주는 외롭다. 지배자가 다수의 인민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절대적으로 뛰어나다거나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인민들이 그에 대한 복종을 거둘 때 지배자는 무력해지고, 결국 쓰러진다."
아무튼, 계몽주의를 지나 부르주아 혁명, 사회주의 혁명까지도 지난 세기의 역사가 돼 버린 지금, 라 보에티의 이 짧은 논문은 그다지 충격적인 텍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씌여진 시기는 1548년이다. 전제군주가 있었고, 종교와 절대군주가, 가톨릭과 신교가 칼부림을 하며 지배권쟁탈전을 벌이던 시기였단 말이다.
이 시기에 라 보에티는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이게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이라고 사회시간에 배운 것 같군. ㅡㅡ;;) 인민의 개념을 끌어오고 그 본성을 자유라 보았다. 그리고 인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체제(그것이 1인군주제든 종교에 의한 집단지배체제든)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체제임을 밝히고, 그 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은 교육과 습관, 유희로 내면화된 인민의 자발적 복종이라 역설한 것이다.
이 책은 255쪽이라는 짧은 분량 중 1/5은 주석이고, 1/2은 라 보에티의 논문에 대한 해설과 참고자료다. 라 보에티의 글은 채 100쪽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글 속에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과 프랑스혁명, 20세기 사회주의혁명의 사상적 고갱이가 다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게도,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주장들이 담겨 있다.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여전히, 16세기 라 보에티의 혁명적 진전을 거스르며, 인민을 지배할 독재자를 찾고 있는 수구들을 떠올렸다. 아, 지금까지 수구들이 그리워했던 것은 1960년대 박정희시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들은 지금 16세기 이전으로 중세시대의 논의로, 500년 전으로 가고 있는 거다. 정말, 미쳤구나~!
현재적 시점에서 라 보에티를 읽으려면 그의 텍스트 자체뿐 아니라 역사를 알아야 한다. 나처럼 인문학적 지식이 전무한 인간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역자는 라 보에티를 읽는 현재적 시점을 보론으로 달아두었다. 그것이 라 보에티의 텍스트 만큼의 분량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보론들을 다 읽고 나서 라 보에티의 글을 다시 읽으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 온다. 그리고 16세기의 열여덟 소년(?) 라 보에티가 21세기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폭군에게 허리를 굽히는 짓거리를 그만둔다면, 인민은 조만간 압제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따라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들은 인민이다."
자발적 복종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지음ㅣ박설호 옮김 ㅣ울력, 2004
지배와 복종, 그 안에 감춰진 인간의 자주적 본성
지난 달 홍세화씨 강연을 듣고 그 양반이 추천하길래 바로 인터넷서점에서 충동구매를 한 것도 벌써 몇 주 전 일이다. 물론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그 무엇들에 밀려, 그냥 사무실 책꽂이에 꽂혀 있기만 했다.
그러다 2주 전쯤 또 다른 어떤 강연에 갔는데 강연을 들으러 온 동생 하나가 이 책을 들고 있는 거다. 어머머, 웬일이니? 이 책이 요즘 유행인가? 무슨 처세술 책도 아니고 요즘 뜨고 있는 경제학 책도 아니고 16세기 인문학 서적이 유행을 탈 리는 없을 텐데.
동생에게 어쩌다 이 책을 읽게 됐냐고 물었다. 그 동생의 대답. "요즘 명박이가 하는 짓거리가 하도 답답해서. 그 짓거리에 동조하고 알아서 기는 무리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그 속이 궁금해서 알아 보려고."
아이고, 정말 고민이 많았구나 싶었다. 나처럼 누가 좋다니까 얼레벌레 충동구매한 건 아니었구나. 그렇지. 사람들이 다 나같으면 이 세상이 굴러가겠어? ㅡㅡ;;
난 아직 책장을 펼쳐보지도 않았지만,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 괜시리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나중에 다 읽고 이야기나 나눠보자" 하고 그 동생과 헤어졌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을 읽기 전 알고 있던 사전정보(홍세화씨가 소개했던)는 라 보에티가 1500년대 사람이고 열여덟의 나이에 이 논문을 썼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난 30대 후반이 되도록 내 생각 하나 제대로 정리하기 어렵구만, 열여덟에 세기의 논문을 썼단 말야? 젠장, 역시 천재는 따로 있군.'
헌데 읽어보니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닌 거다. 그냥 논문이 아니더란 거지. 16세기면 중세 르네상스 시대겠구만, 이때 벌써 이런 생각을 했단 말야? 그것도 열여덟에?
물론, 라 보에티의 텍스트 자체가 매우 놀랍다거나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라 보에티의 이 짤막한 논문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체제는 그것이 1인지배체제든 집단지배체제든 인간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로 절대 용인될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피지배집단은 자발적으로 지배자에게 복종한다. 복종이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인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어리석은 결과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물론 라 보에티가 이데올로기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교육과 습관으로 내면화된다. 또한 지배자는 피지배집단이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이성(이것 역시 라 보에티가 사용한 개념은 아니다.)을 마비시키는 유희를 인민들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떡밥을 나눠먹는 신하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지배자가 존재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지배자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들 사이에 신뢰는 없으며 언제 자신을 제거할 것인가, 하는 공포와 긴장만이 있을 뿐이다. 하기에 전제군주는 외롭다. 지배자가 다수의 인민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절대적으로 뛰어나다거나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인민들이 그에 대한 복종을 거둘 때 지배자는 무력해지고, 결국 쓰러진다."
아무튼, 계몽주의를 지나 부르주아 혁명, 사회주의 혁명까지도 지난 세기의 역사가 돼 버린 지금, 라 보에티의 이 짧은 논문은 그다지 충격적인 텍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씌여진 시기는 1548년이다. 전제군주가 있었고, 종교와 절대군주가, 가톨릭과 신교가 칼부림을 하며 지배권쟁탈전을 벌이던 시기였단 말이다.
이 시기에 라 보에티는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이게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이라고 사회시간에 배운 것 같군. ㅡㅡ;;) 인민의 개념을 끌어오고 그 본성을 자유라 보았다. 그리고 인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체제(그것이 1인군주제든 종교에 의한 집단지배체제든)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체제임을 밝히고, 그 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은 교육과 습관, 유희로 내면화된 인민의 자발적 복종이라 역설한 것이다.
이 책은 255쪽이라는 짧은 분량 중 1/5은 주석이고, 1/2은 라 보에티의 논문에 대한 해설과 참고자료다. 라 보에티의 글은 채 100쪽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글 속에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과 프랑스혁명, 20세기 사회주의혁명의 사상적 고갱이가 다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게도,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주장들이 담겨 있다.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여전히, 16세기 라 보에티의 혁명적 진전을 거스르며, 인민을 지배할 독재자를 찾고 있는 수구들을 떠올렸다. 아, 지금까지 수구들이 그리워했던 것은 1960년대 박정희시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들은 지금 16세기 이전으로 중세시대의 논의로, 500년 전으로 가고 있는 거다. 정말, 미쳤구나~!
현재적 시점에서 라 보에티를 읽으려면 그의 텍스트 자체뿐 아니라 역사를 알아야 한다. 나처럼 인문학적 지식이 전무한 인간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역자는 라 보에티를 읽는 현재적 시점을 보론으로 달아두었다. 그것이 라 보에티의 텍스트 만큼의 분량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보론들을 다 읽고 나서 라 보에티의 글을 다시 읽으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 온다. 그리고 16세기의 열여덟 소년(?) 라 보에티가 21세기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폭군에게 허리를 굽히는 짓거리를 그만둔다면, 인민은 조만간 압제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따라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들은 인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