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통'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독특한 이미지의 광고다. 흑인과 백인과 동양인이 함께 나란히 웃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입고 있는 화려한 색채의 옷이 강하게 눈길을 끈다. 그 다음 눈길이 가는 곳은 그 광고의 한 귀퉁이에 아주 조그맣게 박혀 있는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UNITED COLORS OF BENETTON)'이란 글씨다. 이 광고 하나로 이탈리아의 의류기업 베네통은 전세계의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1955 년 루치아노 베네통은 편물공장에 다니는 여동생 줄리아나와 함께 스웨터를 만들어 팔면서부터 '베네통'의 역사를 짜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여동생 줄리아나의 능숙한 편물 솜씨와, 그 솜씨로 만든 스웨터를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팔아 보겠다는 그 자신의 용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1935 년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의 폰차노 마을에서 태어난 루치아노는 나이 열 살 때 세 명의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1945 년에 아버지가 몹쓸 병에 걸려 세상을 뜨고만 것이다.
그때부터 루치아노는 학교에 다니며 신문 배달을 하였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거리의 조그만 길모퉁이에 있는 양복점 점원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아버지는 의사 아들을 갖고 싶어했지만, 그는 양복점 점원이 되면서부터 새로운 인생을 걷게 되었다.
루치아노는 어려서부터 늘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발상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항상 남들과 다른 독특한 생각을 하였으며, 좀더 색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살고 싶어하였다.
양복점에 다니던 어느 날 루치아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나비넥타이를 매고 출근하였다. 하얀 바탕에 노랑과 파랑의 줄무늬가 있는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넥타이였다. 어찌 보면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너 그거 어디서 난 넥타이냐?"
양복점 주인이 물었다.
"이거요? 제가 집에서 한번 만들어본 것입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만들었냐?"
"부엌에 자투리 천 조각이 있길래..."
"뭐야? 그럼 행주로 넥타이를 만들었단 말이야?"
양복점 주인은 기절할 듯 놀라 그만 한 손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왜요? 멋있지 않아요?"
"그래, 뭐 나쁘지는 않다. 참신해 보이기는 해. 그러나 우리 가게 안에서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너는 이 양복점 점원이지 서커스단의 광대가 아니란 말이야."
이렇게 양복점 주인에게 야단을 맞았으면서도 루치아노는 결코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거울을 들여다봐도, 그 나비넥타이를 맨 모습이 주인의 말처럼 결코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
"누가 뭐라도 루치아노, 네 취미는 가히 혁명적이다."
친구들도 농담 삼아 이렇게 칭찬해 주었다.
이처럼 루치아노는 어려서부터 남들과는 다른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하였으며,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만큼 파격적인 행동과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복점에서 일을 하다 보니 루치아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는다는 것을 마치 자신이 발가벗고 다니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루치아노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숨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튀는 색깔의 옷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품질도 좋고 값도 싸며, 사람들 사이에 번쩍 뜨이는 과감한 색깔의 스웨터를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1955 년의 어느 날 루치아노가 여동생 줄리아나와 함께 스웨터를 만들어 팔겠다고 하자, 늘 조심성이 많은 그의 어머니는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잘하면 집안 망하는 꼴 보겠다. 돈도 없이 어떻게 시작하겠다는 거니?"
"처음에는 조금씩 만들어 팔면 돼요."
루치아노는 자신의 결심을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콘서티나'라는 악기를 팔고, 남동생 질베르토의 하나밖에 없는 자전거도 팔았다. 그러자 식구들은 돈이 될만한 것을 다 내놓았다. 그 돈으로 편물기계를 한 대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베네통'이란 회사는 첫 출발을 시작하였다. 처음 기계 한 대를 놓고 '트레졸리' 스웨터를 만들기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나자, 루치아노는 1주일에 평균 20벌의 옷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되었다.
장사가 잘 되자 여동생 줄리아나는 그때까지 다니고 있던 편물공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집에서 스웨터 만드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옷이 잘 팔려나가자 너무 신바람이 나서 하루에 14벌씩 만들 때도 있었다. 그렇게 1 년이 지난 후에는 기계를 한 대 더 들여놓는 등 하루가 다르게 사업이 번창해 나갔다.
이때 루치아노에게는 새로운 착상이 떠올랐다. 그는 늘 옷이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스웨터의 경우 이미 정해진 색깔의 실로 짜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색상이 단조롭고 무늬도 화려하거나 다양하게 꾸밀 수가 없었다. 그는 이때 염색을 하지 않은 실로 스웨터를 짜고 나서 마음에 맞는 색상과 무늬로 '후염색'을 하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이 후염색의 개발로 루치아노는 다양한 종류의 스웨터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의류업계로 볼 때도 후염색법은 가히 혁명적인 발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적중하였다. 특히 옷은 유행에 민감한데, 후염색법으로 색상에 다양한 변화를 줌으로써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리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베네통'에서 만든 옷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패션의 첨단이라 일컫는 프랑스로 진출할 수 있었고 점차 유럽 전역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루치아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의 제일 가는 기업들도 불황이라며 움츠리고 있을 때 대형 공장을 짓겠다고 공언하였다.
공장을 지을 때도 루치아노다운 발상이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옷 만드는 공장을 마치 우주선 모양으로 설계하여 지은 것이다. 어떤 건축가들은 그 공장을 보고 주위 환경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만큼 튄다는 이야기였다.
베네통 공장은 우주선처럼 생긴 건물을 세 날개로 구성하여 건축되었다. 그래서 각 날개에 사무실, 니트공장, 그리고 세척. 마무리. 염색을 하는 공장을 입주시켰다. 이와 함께 각 날개는 나사 모양으로 연결되고, 날개로 둘러싸인 중심부에는 지면보다 약간 높게 흙을 쌓아 아담한 정원을 꾸몄다.
이처럼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유명한 루치아노 베네통은 드디어 전세계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바로 광고 전략이었다. 아무리 질 좋고 값싸고 다양한 디자인과 색깔의 옷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그 제품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다.
루치아노는 새로운 '베네통' 광고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올리비에에 있는 토스카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그리고 세계 여러 인종과 국적이 다른 어린이 모델 40여 명을 뽑았으며, 그들에게 베네통 옷을 갈아 입힌 다음 촬영에 들어갔다. 그의 기업철학은 쉽게 말해 '세계 사람에게 베네통의 옷을 입히는 것' 이었다. 즉 베네통을 통하여 인종평등주의와 민주주의의 테마를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광고 문안은 광고 제작회사 '엘도라도'에서 만들었다.
'베네통 올 더 컬러스 인 더 월드!'
이 간단한 문구 속에 베네통의 기업 철학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루치아노는 이 광고로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였다. 1985 년에 처음 나온 이 광고는 전세계의 패션계와 광고업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광고가 프랑스 유수의 산업광고 전문지 "스트라테지"의 광고 그랑프리를 수상하게 된 것이다.
"베네통 광고에서는 새로운 철학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이와 같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뒤부터 베네통의 광고는 연속적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파격미를 보여주었다. 흑인 여인의 젖을 빠는 백인 아기가 나오기도 하고, 신부와 수녀가 입을 맞추는 모습도 등장하였다. 이러한 광고의 아이디어는 루치아노 베네통의 자유로운 실험 정신에서 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1955 년 무일푼으로 시작한 '베네통'은 이제 전세계에 6천여 개의 매장을 가진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 회사는 세계 최대의 양모 구매회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 마디로 양모를 재료로 만드는 의류 회사로는 세계 최대의 기업이라는 이야기다.
루치아노 베네통은 그 스스로가 튀는 옷을 즐겨 입었다. 그리고 베네통에서 생산되는 옷 역시 눈에 번쩍 뜨일 정도로 화려한 색상이다. 단순한 색상의 옷보다 화려한 색상의 옷이 유리한 것은 디자인의 큰 변화 없이 색깔만으로도 다양한 모습의 옷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화려한 색상의 옷은 그것을 입는 사람들의 자기 드러내기 심리를 대신 표현해 주며, 그런 옷을 많은 사람들이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자연스럽게 돈 안 들이고 베네통 광고까지 되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섬머셋 몸은 한때 자신의 소설이 잘 팔리지 않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광고를 해도 책은 잘 팔려나가지 않았다. 생각다 못한 그는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구혼광고를 내는 것이었다.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며, 온화하고 센티멘털한 성격의 백만장자임. 현재 서점에서 판매중인 W. S. 몸의 최근작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과 똑같은, 젊고 아름다운 소녀와 결혼하기를 희망함'
이 광고가 나가고 얼마 안 되어 런던의 서점에서는 몸의 소설을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팔려나갔다.
베네통의 광고 전략과 몸의 기발한 광고는 일맥상통한다. 자신이 자기 작품을 위해 뛰는 것이 그렇고, 또한 그 기발함에서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두 사람 다 광고는 튀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루치아노 베네통이 '후염색법'을 발명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틀을 깨는 자유로운 상상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일단 벗어나야 한다.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방법을 찾는 제1단계는 기존의 방법을 변용하는 것이다. 앞뒤를 바꾸거나 안팎을 뒤집어본다. 거꾸로 세워보고, 옆으로 뉘어본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제2단계로 아예 기존의 방법을 백지화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고정관념의 해체는 새로운 생각을 낳는다
튀는 광고로 세상을 정복하라 - 베네통의 루치아노 베네통
'베네통'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독특한 이미지의 광고다.
흑인과 백인과 동양인이 함께 나란히 웃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입고 있는 화려한 색채의 옷이 강하게 눈길을 끈다.
그 다음 눈길이 가는 곳은 그 광고의 한 귀퉁이에 아주 조그맣게 박혀 있는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UNITED COLORS OF BENETTON)'이란 글씨다.
이 광고 하나로 이탈리아의 의류기업 베네통은 전세계의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1955 년 루치아노 베네통은 편물공장에 다니는 여동생 줄리아나와 함께 스웨터를 만들어 팔면서부터 '베네통'의 역사를 짜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여동생 줄리아나의 능숙한 편물 솜씨와, 그 솜씨로 만든 스웨터를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팔아 보겠다는 그 자신의 용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1935 년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의 폰차노 마을에서 태어난 루치아노는 나이 열 살 때 세 명의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1945 년에 아버지가 몹쓸 병에 걸려 세상을 뜨고만 것이다.
그때부터 루치아노는 학교에 다니며 신문 배달을 하였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거리의 조그만 길모퉁이에 있는 양복점 점원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아버지는 의사 아들을 갖고 싶어했지만, 그는 양복점 점원이 되면서부터 새로운 인생을 걷게 되었다.
루치아노는 어려서부터 늘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발상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항상 남들과 다른 독특한 생각을 하였으며, 좀더 색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살고 싶어하였다.
양복점에 다니던 어느 날 루치아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나비넥타이를 매고 출근하였다.
하얀 바탕에 노랑과 파랑의 줄무늬가 있는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넥타이였다.
어찌 보면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너 그거 어디서 난 넥타이냐?"
양복점 주인이 물었다.
"이거요? 제가 집에서 한번 만들어본 것입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만들었냐?"
"부엌에 자투리 천 조각이 있길래..."
"뭐야? 그럼 행주로 넥타이를 만들었단 말이야?"
양복점 주인은 기절할 듯 놀라 그만 한 손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왜요? 멋있지 않아요?"
"그래, 뭐 나쁘지는 않다. 참신해 보이기는 해. 그러나 우리 가게 안에서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너는 이 양복점 점원이지 서커스단의 광대가 아니란 말이야."
이렇게 양복점 주인에게 야단을 맞았으면서도 루치아노는 결코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거울을 들여다봐도, 그 나비넥타이를 맨 모습이 주인의 말처럼 결코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
"누가 뭐라도 루치아노, 네 취미는 가히 혁명적이다."
친구들도 농담 삼아 이렇게 칭찬해 주었다.
이처럼 루치아노는 어려서부터 남들과는 다른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하였으며,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만큼 파격적인 행동과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복점에서 일을 하다 보니 루치아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는다는 것을 마치 자신이 발가벗고 다니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루치아노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숨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튀는 색깔의 옷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품질도 좋고 값도 싸며, 사람들 사이에 번쩍 뜨이는 과감한 색깔의 스웨터를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1955 년의 어느 날 루치아노가 여동생 줄리아나와 함께 스웨터를 만들어 팔겠다고 하자, 늘 조심성이 많은 그의 어머니는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잘하면 집안 망하는 꼴 보겠다. 돈도 없이 어떻게 시작하겠다는 거니?"
"처음에는 조금씩 만들어 팔면 돼요."
루치아노는 자신의 결심을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콘서티나'라는 악기를 팔고, 남동생 질베르토의 하나밖에 없는 자전거도 팔았다.
그러자 식구들은 돈이 될만한 것을 다 내놓았다.
그 돈으로 편물기계를 한 대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베네통'이란 회사는 첫 출발을 시작하였다.
처음 기계 한 대를 놓고 '트레졸리' 스웨터를 만들기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나자, 루치아노는 1주일에 평균 20벌의 옷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되었다.
장사가 잘 되자 여동생 줄리아나는 그때까지 다니고 있던 편물공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집에서 스웨터 만드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옷이 잘 팔려나가자 너무 신바람이 나서 하루에 14벌씩 만들 때도 있었다.
그렇게 1 년이 지난 후에는 기계를 한 대 더 들여놓는 등 하루가 다르게 사업이 번창해 나갔다.
이때 루치아노에게는 새로운 착상이 떠올랐다.
그는 늘 옷이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스웨터의 경우 이미 정해진 색깔의 실로 짜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색상이 단조롭고 무늬도 화려하거나 다양하게 꾸밀 수가 없었다.
그는 이때 염색을 하지 않은 실로 스웨터를 짜고 나서 마음에 맞는 색상과 무늬로 '후염색'을 하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이 후염색의 개발로 루치아노는 다양한 종류의 스웨터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의류업계로 볼 때도 후염색법은 가히 혁명적인 발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적중하였다.
특히 옷은 유행에 민감한데, 후염색법으로 색상에 다양한 변화를 줌으로써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리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베네통'에서 만든 옷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패션의 첨단이라 일컫는 프랑스로 진출할 수 있었고 점차 유럽 전역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루치아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의 제일 가는 기업들도 불황이라며 움츠리고 있을 때 대형 공장을 짓겠다고 공언하였다.
공장을 지을 때도 루치아노다운 발상이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옷 만드는 공장을 마치 우주선 모양으로 설계하여 지은 것이다.
어떤 건축가들은 그 공장을 보고 주위 환경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만큼 튄다는 이야기였다.
베네통 공장은 우주선처럼 생긴 건물을 세 날개로 구성하여 건축되었다.
그래서 각 날개에 사무실, 니트공장, 그리고 세척. 마무리. 염색을 하는 공장을 입주시켰다.
이와 함께 각 날개는 나사 모양으로 연결되고, 날개로 둘러싸인 중심부에는 지면보다 약간 높게 흙을 쌓아 아담한 정원을 꾸몄다.
이처럼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유명한 루치아노 베네통은 드디어 전세계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바로 광고 전략이었다.
아무리 질 좋고 값싸고 다양한 디자인과 색깔의 옷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그 제품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다.
루치아노는 새로운 '베네통' 광고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올리비에에 있는 토스카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그리고 세계 여러 인종과 국적이 다른 어린이 모델 40여 명을 뽑았으며, 그들에게 베네통 옷을 갈아 입힌 다음 촬영에 들어갔다.
그의 기업철학은 쉽게 말해 '세계 사람에게 베네통의 옷을 입히는 것' 이었다.
즉 베네통을 통하여 인종평등주의와 민주주의의 테마를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광고 문안은 광고 제작회사 '엘도라도'에서 만들었다.
'베네통 올 더 컬러스 인 더 월드!'
이 간단한 문구 속에 베네통의 기업 철학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루치아노는 이 광고로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였다.
1985 년에 처음 나온 이 광고는 전세계의 패션계와 광고업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광고가 프랑스 유수의 산업광고 전문지 "스트라테지"의 광고 그랑프리를 수상하게 된 것이다.
"베네통 광고에서는 새로운 철학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이와 같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뒤부터 베네통의 광고는 연속적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파격미를 보여주었다.
흑인 여인의 젖을 빠는 백인 아기가 나오기도 하고, 신부와 수녀가 입을 맞추는 모습도 등장하였다.
이러한 광고의 아이디어는 루치아노 베네통의 자유로운 실험 정신에서 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1955 년 무일푼으로 시작한 '베네통'은 이제 전세계에 6천여 개의 매장을 가진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 회사는 세계 최대의 양모 구매회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 마디로 양모를 재료로 만드는 의류 회사로는 세계 최대의 기업이라는 이야기다.
루치아노 베네통은 그 스스로가 튀는 옷을 즐겨 입었다.
그리고 베네통에서 생산되는 옷 역시 눈에 번쩍 뜨일 정도로 화려한 색상이다.
단순한 색상의 옷보다 화려한 색상의 옷이 유리한 것은 디자인의 큰 변화 없이 색깔만으로도 다양한 모습의 옷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화려한 색상의 옷은 그것을 입는 사람들의 자기 드러내기 심리를 대신 표현해 주며, 그런 옷을 많은 사람들이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자연스럽게 돈 안 들이고 베네통 광고까지 되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섬머셋 몸은 한때 자신의 소설이 잘 팔리지 않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광고를 해도 책은 잘 팔려나가지 않았다.
생각다 못한 그는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구혼광고를 내는 것이었다.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며, 온화하고 센티멘털한 성격의 백만장자임. 현재 서점에서 판매중인 W. S. 몸의 최근작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과 똑같은, 젊고 아름다운 소녀와 결혼하기를 희망함'
이 광고가 나가고 얼마 안 되어 런던의 서점에서는 몸의 소설을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팔려나갔다.
베네통의 광고 전략과 몸의 기발한 광고는 일맥상통한다.
자신이 자기 작품을 위해 뛰는 것이 그렇고, 또한 그 기발함에서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두 사람 다 광고는 튀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루치아노 베네통이 '후염색법'을 발명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틀을 깨는 자유로운 상상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일단 벗어나야 한다.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방법을 찾는 제1단계는 기존의 방법을 변용하는 것이다.
앞뒤를 바꾸거나 안팎을 뒤집어본다.
거꾸로 세워보고, 옆으로 뉘어본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제2단계로 아예 기존의 방법을 백지화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 고정관념의 해체는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움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