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클래지콰이 (DJ클래지, 호란, 알렉스) 글 : 안인용 (한겨레 신문 매거진 팀 기자)
새로운 듯 익숙하고 낯선 듯 따뜻한. 이것이 '클래지콰이 스타일'
'클래지콰이 프로젝트'는 2004년 1집 데뷔 당시, 매우 '핫'하고 무척 '쿨'한 '일렉트로닉+모던 보이&걸'이었다. 일렉트로닉과 라운지를 표방한 이들의 음악은 느슨해져 있던 우리 대중음악에 신선한 자극제가 됐고 많은 이들의 음악적·문화적 트렌드 촉수는 이들의 음악을 향했다. 우리에게도 일본과 유럽이 부럽지 않은, 적어도 음악 트렌드에 있어서는 동시대적 뮤지션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들었다.
2집과 3집까지 오면서 그 기대는 조금씩 작아진 것 같지만, 어쨌든 이들이 우리 대중음악의 폭을 넓혔다는 것만은 눈으로 확인했다. 그 어떤 밴드나 그룹보다 빠른 시간 안에 빠른 속도로, 음악적으로나 활동의 폭으로나,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클래지콰이'를 만나 이들의 결성 얘기부터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려놓게 해준 1집 얘기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캐나다에 있는 것을 다 접고 한국에 왔다. 이런 도박은 마지막일 것 같다."
안인용 :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1집 [Instant Pig]가 91위에 올랐다. 소감은?
호란 : '100대 명반' 목록을 인터넷에서 봤다. 91위라는 숫자도 의미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게 놀라웠다.
DJ클래지(김성훈) : 매우 감사드린다. 우리 앨범이 명반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다. 늘 남의 앨범을 보면서 명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다른 분들이 우리 앨범을 명반이라고 해준다면 감사할 일이다.
안인용 : 시계를 돌려서 1집이 나오기 전, 결성 당시에 대해 얘기를 해달라.
DJ클래지 : 캐나다에서 그래픽 회사를 다니면서 웹사이트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서 '클래지콰이 닷컴'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습작을 만들어 올렸다. 개인적인 작업이었다. 역시 캐나다 이민자였던 '크리스티나'는 음대를 다니던 시절 졸업 작품을 만들 때 소개받은 친구의 후배다. 그 때 처음 만나서 졸업 작품을 위한 작업을 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자기 동생도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데려온 친구가 '알렉스'다. 캐나다에서 '클래지콰이'로 음악활동을 한 적은 없다. 이 친구들과 함께 개인 작업을 해서 올렸을 뿐이다.
그리고 '알렉스'와 함께 한국에 나와서 '플럭서스' 대표님을 만나 계약을 하고 한국에서 함께 활동할 여자 가수를 찾았다. '크리스티나'는 캐나다에서 이미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고 가수를 직업으로 선택하기에 망설임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할 여자 가수를 찾다가 '호란'을 만났다. '호란'이 지금은 단아한 이미지이지만, 그 때 당시에는 대단했다. 강한 인상 때문에 이 친구와 뭔가를 함께 하면 될 것 같았다. 한국에 나와 아군이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군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처음 만나 작업실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으싸으싸' 했다.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크리스티나'는 녹음에는 참여하지만 함께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호란 : 나는 당시 '플럭서스' 대표님과 알고 지내면서 음반 얘기가 오가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클래지콰이'가 어떻겠느냐고 해서 합류하게 됐다. 그 때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폭탄 머리 가발을 쓰고 있었다.
안인용 : '클래지콰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클래지콰이'에 프로젝트가 붙는 것은 한시적이라는 뜻인가?
DJ클래지 : 그 이름은 졸업 작품 때도 썼다.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신서사이저를 처음 사고 집에서 작업을 할 때 곡 작업을 하다가 '클라지큐'라는 곡을 만들었다. 클래식의 불어 어원과도 비슷한 이름이었고 예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자미로콰이'를 좋아했고, 어머니가 성악을 하셔서 클래식이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잠시였지만 재즈를 공부하기도 해서 섞어 합성어를 만들어낸 게 '클래지콰이'가 됐다. '프로젝트'는 웹사이트를 운영할 때 그게 '클래지콰이 웹 익스페리멘털 프로젝트'였고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를 좋아하기도 해서 붙여졌다.
알렉스 : 프로젝트적인 음악을 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뭔가를 달성하면 헤어지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안인용 : 인터넷을 통해 MP3 파일로 음악을 알려 나가던 시절에는 개인적인 작업에 피드백이 왔다는 점에 어떤 희열을 느꼈을 것 같은데?
DJ클래지 : 계약을 하기 전까지 '클래지콰이 닷컴'을 1년 반 정도 운영하면서 버전만 3가지를 만들었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10명이 글을 남겼는데, 어느 순간 하루에 20명이 글을 남기더라. 그 때 댓글을 달아준 사람들 닉네임도 다 기억이 난다. MP3 파일을 올려 놓은 외국 사이트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들도 있었다.
알렉스 : 그 때는 밤을 새우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누가 글을 남겼나 보고 그랬다. 재미있었다.(웃음) 그 때 ('DJ클래지'와 이구동성으로) '방랑자'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카페에는 없는 것 같다.
안인용 : 3명 모두 어떤 10대를 보냈는지 궁금하다. 그 당시의 취향이나 그런 것들 중 지금의 음악적 활동과 연결고리가 될 만한 것들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알렉스 : '클래지콰이'로 데뷔하기 전에 학교에 다니면서 일을 많이 했다. 주방에서도 일을 했었고 회사도 다녔다. 사람들을 대하면서 일을 많이 해서인지 지금 일을 시작하면서 적응이 빨랐다. 항상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노래하면서 파를 썰고, 접시 닦으면서 노래하고, 그래서 형님한테 조용히 하라고 혼나기도 했다. 나중에 죽을 때, 돌연사가 아니라면 침대 위에서 노래를 하다가 생을 마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 'DJ클래지'가 "형이랑 한국 가서 가수 할래?"라고 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회사 사장님도 만나고 하면서 캐나다에 있는 것을 다 접고 큰 모험을 하면서 한국에 왔다. 이런 도박은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DJ클래지 :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하숙 하던 사촌 형의 영향으로 기타를 배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음악을 했던 것은 교회에서가 전부였다. 캐나다에 가서 고등학교 때 학교 빅밴드에서 피아노를 친 게 재즈에 가깝게 됐던 계기였던 것 같다. 악보를 보기 보다는 뭔가를 만들어 치는 것을 좋아했다. 재즈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넘어오게 된 것은 일종의 타협이었다. 재즈를 하기에는 부족했고 뛰어난 연주자도 아니었다. 색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렉트로닉을 시작했다. 이후 '자미로콰이'나 '피치카토 파이브' 같은 시부야계 등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자극을 받았다.
호란 : 나는 인생이 입시에 달린 것처럼 공부만 하면서 10대를 보냈다. 팝 문화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문화적으로 억압돼 있었다. 그래서 그 반작용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무척 컸다. 먼저 음악 동아리를 선택했고 거기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비틀즈'를 듣기 시작한 것부터 대학 때였다. 그 때부터 음악을 잡식했다. 록이나 메탈, 알앤비, 포크 등 여러 음악을 들었다. 목마른 만큼 욕구가 컸다. 너무 빨리 들어서 지금 내 음악적 취향이 깊이 자리 잡았는지 자신이 없을 때도 있고, 지금 내 취향이 진짜 내 것인지 의구심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래서 더 유연성이 있는 것 같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계속 내 것을 찾아가고 싶다.
방송을 통해 만나는 '클래지콰이'와 인터뷰를 위해 만난 '클래지콰이'는 제법 다른 모습이다. 3명 각자가 '원샷'을 받을 때와 3명이 나란히 앉아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도 다르다. 방송에서는 '알렉스'의 미소와 '호란'의 카리스마로 기억되지만, 음악 얘기가 주가 되는 인터뷰에서는 'DJ클래지'의 목소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이들을 한마디로 정의하려고 애써봤지만 뾰족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A라고 하기에는 완전한 A라기보다 A'에 가깝고, B라고 하기에는 C를 빼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번쩍이는 커다란 하나의 간판보다 각자 자기 이름표를 달고 유연하게 활동한다는 게 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클래지콰이 스타일' 아닐까.
안인용 : 1집에 대해서는 '새롭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DJ클래지 : 예상을 했다기 보다 바랬는데 그 바램 이상이 나왔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첫 방송을 했는데, 그 이후 음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1집이 거의 1년 정도 차트에 올라있었다. 1집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도 있었고 나쁜 평가도 있었다. "이건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PM)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거기에 수긍이 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클래지콰이'만의 색깔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2집과 3집을 거치면서 변화를 줬다. 1집 때는 관심을 많이 받은 만큼 안티도 많았다. 오기가 나기도 했다.
호란 : 당시에는 칭찬이 남기는 임팩트보다는 부정적인 얘기가 더 많이 걸렸다. 그래서 고민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안인용 : '클래지콰이'만의 색깔이라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 '클래지콰이'의 음악은, 특히 1집에서 비트와 멜로디의 연결고리가 매우 좋은데 그 점에 특히 신경을 쓰는 편인가?
DJ클래지 : 색깔은 전체를 놓고 봐야할 것 같다. 우리만의 색깔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호란'의 목소리에서, 멜로디의 해석에서, 고르는 소리에서도 드러난다. 이번에 3.5집 작업을 하면서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했는데, 'FPM'이나 '몬도그로소'나 모두 음악을 고르는 것부터 프로그램을 해나가는 것까지 모두 다르더라. '클래지콰이' 역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그게 '클래지콰이' 풍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트와 멜로디는 계산을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드는 편이다. 비트는 스타일에 집중하면서 만들 때도 있지만, 멜로디는 즉석에서 만들기도 한다.
안인용 : 1집 수록곡은 대부분 개인 작업을 하면서 미리 만들었던 곡들인가?
DJ클래지 : 1집을 준비한 기간만 1년 반이었고, 준비했던 곡만 30곡 정도였다. '스테핑 아웃'처럼 인터넷에 공개했던 음원들을 다시 앨범에 수록했다. 그 과정이 수월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정반대였다. 오히려 시행착오가 더 많았다. 개인작업이 아니라 앨범이라는 프로에 대한 부담감이 반작용을 일으켜서 때로는 좋지 않은 결과도 많았다. '애프터 러브'는 버전만 7~8개였다. 죽을 뻔했다. 개인작업으로 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깔끔해져서 아쉽기도 했다. 조금 더 거칠어지고 싶기도 했지만, 개인작업 하던 시절 그 느낌을 다시 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때의 장비와 환경 때문에 그 때만의 색깔이 나온 게 아닐까.
안인용 : '알렉스'와 '호란'은 '가수=가창'의 공식을 깨고 새로운 보컬을 보여줬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호란 : 아직까지도 가창력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웃음) 가수라고 꼭 고음을 지르기보다 분위기에 맞는 소리를 내서 전체적인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클래지콰이' 음악 안에서 보컬이 가장 예쁘게 맞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게 '클래지콰이' 음악의 색깔이다. 아직 보컬로 완성됐다고 하기 쑥스럽지만, '클래지콰이'로 활동하면서 스스로 자기 소리를 찾아간 것 같다. 만약 다른 길을 갔다면 다른 보컬을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만나서 이런 소리를 찾고 이렇게 접근해나가고 있다.
알렉스 : 똑같은 데 장단점이 다 있는 것 같다. 음악과 조화롭게 노래를 부른다는 게, 목소리가 좋다고도 할 수 있지만 노래를 너무 얌전하게 부르는 게 아니냐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클래지콰이'에서 나는 노래를 훌륭하게 잘하는 보컬이라기보다 아군 같은 악기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담백하게 노래만 불러 봐라" 라고 하면 그런 톤으로 담아내는 연습을 1집 때 많이 했다.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안인용 : 정규 앨범 다음에는 늘 리믹스 앨범이 나갔다. 리믹스 앨범을 들으면 '클래지콰이'가 지금보다 더 센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DJ클래지 : 아직 DJ라고 하기에는 쑥쓰러움이 있다. 이런 음악을 하면 보통 디제잉을 한다고 해서 어느 날부터 'DJ클래지'가 됐고, 이런 음악하면 리믹스 앨범을 낸다고 해서 냈다. 그래서 1집 때부터 쭉 내왔다. 요즘에는 조금 더 센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3집 때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최근에는 더 헤비한 것들이 들린다. 이번 3.5집에는 신곡이 더 많다. 이번에는 '러브모드'만 내가 리믹스를 했다. 3집을 듣고 3.5집은 아마 이럴 거야 라고 상상했다면 아마 그게 맞을 거다. (웃음)
안인용 : '클래지콰이'의 등장 이후 우리 대중음악이 조금 넓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DJ클래지 : 우리가 많은 일렉트로닉 밴드 등장에 일조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다. 또 활동 포맷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듣는다. 우리 이후 프로듀서와 가수가 있는 포맷이 많이 등장했다. 나는 방송 활동을 정말 싫어한다. 음악을 만드는 작업만 좋아한다. 그렇지만 '호란'과 '알렉스'는 이미지적이었고, 방송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알렉스'와 '호란'의 방송 활동에 대찬성은 아니다. 음악만 했으면 좋겠지만, 다재 다능한 친구니까. 둘이 너무 잘해줬다. 음악만으로 승부하기에는 음악시장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호란 : 'DJ클래지'가 있기 때문에 '알렉스'와 내가 이름을 알릴 수도 있는 거다. 그게 바로 시너지 효과라는 게 아닐까.
안인용 : 3.5집을 기점으로 음악적으로 달라질 계획은 없나?
DJ클래지 : 해봐야 알 것 같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가고 싶다. '알렉스', '호란'이 계속 노래를 불러 줄 거고. 가끔은 연주곡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음악이라는 것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인용 : '클래지콰이'로서의 욕심과 개인 활동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뭔가?
호란 : 공연을 했을 때 실망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클래지콰이'에 더 잘 어울리는 보컬이 됐으면 좋겠다. 1집과 2집, 3집을 할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보컬로서 계속해서 내가 가진 진짜 색깔을 찾고 싶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꼭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진지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노래했으면 좋겠다.
알렉스 : '클래지콰이'는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관심있게 봐줬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음악 활동보다 다른 데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음악만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은데 속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만약 내 뿌리인 음악을 제대로 못하면 속상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지만, 다른 매체에서 얼굴을 비춰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도 내 뿌리가 노래라는 것을 알면 나를 찾아줄 곳은 공연장이고, 내 목소리가 담겨있는 음악을 찾아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금은 도전해보고 싶다.
장소 : 논현동 플럭서스 스튜디오 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
100대 명반 선정 앨범 : 클래지콰이의 [Instant Pig]
100대 명반 선정 앨범 : 클래지콰이의 [Instant Pig]
대담 : 클래지콰이 (DJ클래지, 호란, 알렉스)
글 : 안인용 (한겨레 신문 매거진 팀 기자)
새로운 듯 익숙하고 낯선 듯 따뜻한. 이것이 '클래지콰이 스타일'
'클래지콰이 프로젝트'는 2004년 1집 데뷔 당시, 매우 '핫'하고 무척 '쿨'한 '일렉트로닉+모던 보이&걸'이었다. 일렉트로닉과 라운지를 표방한 이들의 음악은 느슨해져 있던 우리 대중음악에 신선한 자극제가 됐고 많은 이들의 음악적·문화적 트렌드 촉수는 이들의 음악을 향했다. 우리에게도 일본과 유럽이 부럽지 않은, 적어도 음악 트렌드에 있어서는 동시대적 뮤지션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들었다.
2집과 3집까지 오면서 그 기대는 조금씩 작아진 것 같지만, 어쨌든 이들이 우리 대중음악의 폭을 넓혔다는 것만은 눈으로 확인했다. 그 어떤 밴드나 그룹보다 빠른 시간 안에 빠른 속도로, 음악적으로나 활동의 폭으로나,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클래지콰이'를 만나 이들의 결성 얘기부터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려놓게 해준 1집 얘기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캐나다에 있는 것을 다 접고 한국에 왔다. 이런 도박은 마지막일 것 같다."
안인용 :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1집 [Instant Pig]가 91위에 올랐다. 소감은?
호란 : '100대 명반' 목록을 인터넷에서 봤다. 91위라는 숫자도 의미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게 놀라웠다.
DJ클래지(김성훈) : 매우 감사드린다. 우리 앨범이 명반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다. 늘 남의 앨범을 보면서 명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다른 분들이 우리 앨범을 명반이라고 해준다면 감사할 일이다.
안인용 : 시계를 돌려서 1집이 나오기 전, 결성 당시에 대해 얘기를 해달라.
DJ클래지 : 캐나다에서 그래픽 회사를 다니면서 웹사이트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서 '클래지콰이 닷컴'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습작을 만들어 올렸다. 개인적인 작업이었다. 역시 캐나다 이민자였던 '크리스티나'는 음대를 다니던 시절 졸업 작품을 만들 때 소개받은 친구의 후배다. 그 때 처음 만나서 졸업 작품을 위한 작업을 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자기 동생도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데려온 친구가 '알렉스'다. 캐나다에서 '클래지콰이'로 음악활동을 한 적은 없다. 이 친구들과 함께 개인 작업을 해서 올렸을 뿐이다.
그리고 '알렉스'와 함께 한국에 나와서 '플럭서스' 대표님을 만나 계약을 하고 한국에서 함께 활동할 여자 가수를 찾았다. '크리스티나'는 캐나다에서 이미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고 가수를 직업으로 선택하기에 망설임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할 여자 가수를 찾다가 '호란'을 만났다. '호란'이 지금은 단아한 이미지이지만, 그 때 당시에는 대단했다. 강한 인상 때문에 이 친구와 뭔가를 함께 하면 될 것 같았다. 한국에 나와 아군이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군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처음 만나 작업실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으싸으싸' 했다.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크리스티나'는 녹음에는 참여하지만 함께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DJ클래지 : 계약을 하기 전까지 '클래지콰이 닷컴'을 1년 반 정도 운영하면서 버전만 3가지를 만들었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10명이 글을 남겼는데, 어느 순간 하루에 20명이 글을 남기더라. 그 때 댓글을 달아준 사람들 닉네임도 다 기억이 난다. MP3 파일을 올려 놓은 외국 사이트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들도 있었다.
방송을 통해 만나는 '클래지콰이'와 인터뷰를 위해 만난 '클래지콰이'는 제법 다른 모습이다. 3명 각자가 '원샷'을 받을 때와 3명이 나란히 앉아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도 다르다. 방송에서는 '알렉스'의 미소와 '호란'의 카리스마로 기억되지만, 음악 얘기가 주가 되는 인터뷰에서는 'DJ클래지'의 목소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이들을 한마디로 정의하려고 애써봤지만 뾰족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A라고 하기에는 완전한 A라기보다 A'에 가깝고, B라고 하기에는 C를 빼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번쩍이는 커다란 하나의 간판보다 각자 자기 이름표를 달고 유연하게 활동한다는 게 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클래지콰이 스타일' 아닐까.
![100대 명반 선정 앨범 : 클래지콰이의 [Instant Pig]](https://images.hangame.co.kr/naver/music/today/100dae/clazzy_002_1.jpg)
알렉스 : '클래지콰이'는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관심있게 봐줬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음악 활동보다 다른 데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음악만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은데 속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만약 내 뿌리인 음악을 제대로 못하면 속상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지만, 다른 매체에서 얼굴을 비춰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도 내 뿌리가 노래라는 것을 알면 나를 찾아줄 곳은 공연장이고, 내 목소리가 담겨있는 음악을 찾아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금은 도전해보고 싶다.
호란 : 나는 당시 '플럭서스' 대표님과 알고 지내면서 음반 얘기가 오가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클래지콰이'가 어떻겠느냐고 해서 합류하게 됐다. 그 때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폭탄 머리 가발을 쓰고 있었다.
안인용 : '클래지콰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클래지콰이'에 프로젝트가 붙는 것은 한시적이라는 뜻인가?
DJ클래지 : 그 이름은 졸업 작품 때도 썼다.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신서사이저를 처음 사고 집에서 작업을 할 때 곡 작업을 하다가 '클라지큐'라는 곡을 만들었다. 클래식의 불어 어원과도 비슷한 이름이었고 예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자미로콰이'를 좋아했고, 어머니가 성악을 하셔서 클래식이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잠시였지만 재즈를 공부하기도 해서 섞어 합성어를 만들어낸 게 '클래지콰이'가 됐다. '프로젝트'는 웹사이트를 운영할 때 그게 '클래지콰이 웹 익스페리멘털 프로젝트'였고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를 좋아하기도 해서 붙여졌다.
알렉스 : 프로젝트적인 음악을 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뭔가를 달성하면 헤어지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안인용 : 인터넷을 통해 MP3 파일로 음악을 알려 나가던 시절에는 개인적인 작업에 피드백이 왔다는 점에 어떤 희열을 느꼈을 것 같은데?
알렉스 : 그 때는 밤을 새우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누가 글을 남겼나 보고 그랬다. 재미있었다.(웃음) 그 때 ('DJ클래지'와 이구동성으로) '방랑자'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카페에는 없는 것 같다.
안인용 : 3명 모두 어떤 10대를 보냈는지 궁금하다. 그 당시의 취향이나 그런 것들 중 지금의 음악적 활동과 연결고리가 될 만한 것들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알렉스 : '클래지콰이'로 데뷔하기 전에 학교에 다니면서 일을 많이 했다. 주방에서도 일을 했었고 회사도 다녔다. 사람들을 대하면서 일을 많이 해서인지 지금 일을 시작하면서 적응이 빨랐다. 항상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노래하면서 파를 썰고, 접시 닦으면서 노래하고, 그래서 형님한테 조용히 하라고 혼나기도 했다. 나중에 죽을 때, 돌연사가 아니라면 침대 위에서 노래를 하다가 생을 마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 'DJ클래지'가 "형이랑 한국 가서 가수 할래?"라고 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회사 사장님도 만나고 하면서 캐나다에 있는 것을 다 접고 큰 모험을 하면서 한국에 왔다. 이런 도박은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DJ클래지 :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하숙 하던 사촌 형의 영향으로 기타를 배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음악을 했던 것은 교회에서가 전부였다. 캐나다에 가서 고등학교 때 학교 빅밴드에서 피아노를 친 게 재즈에 가깝게 됐던 계기였던 것 같다. 악보를 보기 보다는 뭔가를 만들어 치는 것을 좋아했다. 재즈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넘어오게 된 것은 일종의 타협이었다. 재즈를 하기에는 부족했고 뛰어난 연주자도 아니었다. 색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렉트로닉을 시작했다. 이후 '자미로콰이'나 '피치카토 파이브' 같은 시부야계 등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자극을 받았다.
호란 : 나는 인생이 입시에 달린 것처럼 공부만 하면서 10대를 보냈다. 팝 문화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문화적으로 억압돼 있었다. 그래서 그 반작용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무척 컸다. 먼저 음악 동아리를 선택했고 거기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비틀즈'를 듣기 시작한 것부터 대학 때였다. 그 때부터 음악을 잡식했다. 록이나 메탈, 알앤비, 포크 등 여러 음악을 들었다. 목마른 만큼 욕구가 컸다. 너무 빨리 들어서 지금 내 음악적 취향이 깊이 자리 잡았는지 자신이 없을 때도 있고, 지금 내 취향이 진짜 내 것인지 의구심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래서 더 유연성이 있는 것 같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계속 내 것을 찾아가고 싶다.
안인용 : 1집에 대해서는 '새롭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DJ클래지 : 예상을 했다기 보다 바랬는데 그 바램 이상이 나왔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첫 방송을 했는데, 그 이후 음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1집이 거의 1년 정도 차트에 올라있었다. 1집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도 있었고 나쁜 평가도 있었다. "이건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PM)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거기에 수긍이 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클래지콰이'만의 색깔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2집과 3집을 거치면서 변화를 줬다. 1집 때는 관심을 많이 받은 만큼 안티도 많았다. 오기가 나기도 했다.
호란 : 당시에는 칭찬이 남기는 임팩트보다는 부정적인 얘기가 더 많이 걸렸다. 그래서 고민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안인용 : '클래지콰이'만의 색깔이라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 '클래지콰이'의 음악은, 특히 1집에서 비트와 멜로디의 연결고리가 매우 좋은데 그 점에 특히 신경을 쓰는 편인가?
DJ클래지 : 색깔은 전체를 놓고 봐야할 것 같다. 우리만의 색깔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호란'의 목소리에서, 멜로디의 해석에서, 고르는 소리에서도 드러난다. 이번에 3.5집 작업을 하면서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했는데, 'FPM'이나 '몬도그로소'나 모두 음악을 고르는 것부터 프로그램을 해나가는 것까지 모두 다르더라. '클래지콰이' 역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그게 '클래지콰이' 풍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트와 멜로디는 계산을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드는 편이다. 비트는 스타일에 집중하면서 만들 때도 있지만, 멜로디는 즉석에서 만들기도 한다.
안인용 : 1집 수록곡은 대부분 개인 작업을 하면서 미리 만들었던 곡들인가?
DJ클래지 : 1집을 준비한 기간만 1년 반이었고, 준비했던 곡만 30곡 정도였다. '스테핑 아웃'처럼 인터넷에 공개했던 음원들을 다시 앨범에 수록했다. 그 과정이 수월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정반대였다. 오히려 시행착오가 더 많았다. 개인작업이 아니라 앨범이라는 프로에 대한 부담감이 반작용을 일으켜서 때로는 좋지 않은 결과도 많았다. '애프터 러브'는 버전만 7~8개였다. 죽을 뻔했다. 개인작업으로 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깔끔해져서 아쉽기도 했다. 조금 더 거칠어지고 싶기도 했지만, 개인작업 하던 시절 그 느낌을 다시 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때의 장비와 환경 때문에 그 때만의 색깔이 나온 게 아닐까.
안인용 : '알렉스'와 '호란'은 '가수=가창'의 공식을 깨고 새로운 보컬을 보여줬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호란 : 아직까지도 가창력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웃음) 가수라고 꼭 고음을 지르기보다 분위기에 맞는 소리를 내서 전체적인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클래지콰이' 음악 안에서 보컬이 가장 예쁘게 맞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게 '클래지콰이' 음악의 색깔이다. 아직 보컬로 완성됐다고 하기 쑥스럽지만, '클래지콰이'로 활동하면서 스스로 자기 소리를 찾아간 것 같다. 만약 다른 길을 갔다면 다른 보컬을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만나서 이런 소리를 찾고 이렇게 접근해나가고 있다.
알렉스 : 똑같은 데 장단점이 다 있는 것 같다. 음악과 조화롭게 노래를 부른다는 게, 목소리가 좋다고도 할 수 있지만 노래를 너무 얌전하게 부르는 게 아니냐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클래지콰이'에서 나는 노래를 훌륭하게 잘하는 보컬이라기보다 아군 같은 악기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담백하게 노래만 불러 봐라" 라고 하면 그런 톤으로 담아내는 연습을 1집 때 많이 했다.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안인용 : 정규 앨범 다음에는 늘 리믹스 앨범이 나갔다. 리믹스 앨범을 들으면 '클래지콰이'가 지금보다 더 센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DJ클래지 : 아직 DJ라고 하기에는 쑥쓰러움이 있다. 이런 음악을 하면 보통 디제잉을 한다고 해서 어느 날부터 'DJ클래지'가 됐고, 이런 음악하면 리믹스 앨범을 낸다고 해서 냈다. 그래서 1집 때부터 쭉 내왔다. 요즘에는 조금 더 센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3집 때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최근에는 더 헤비한 것들이 들린다. 이번 3.5집에는 신곡이 더 많다. 이번에는 '러브모드'만 내가 리믹스를 했다. 3집을 듣고 3.5집은 아마 이럴 거야 라고 상상했다면 아마 그게 맞을 거다. (웃음)
안인용 : '클래지콰이'의 등장 이후 우리 대중음악이 조금 넓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DJ클래지 : 우리가 많은 일렉트로닉 밴드 등장에 일조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다. 또 활동 포맷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듣는다. 우리 이후 프로듀서와 가수가 있는 포맷이 많이 등장했다. 나는 방송 활동을 정말 싫어한다. 음악을 만드는 작업만 좋아한다. 그렇지만 '호란'과 '알렉스'는 이미지적이었고, 방송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알렉스'와 '호란'의 방송 활동에 대찬성은 아니다. 음악만 했으면 좋겠지만, 다재 다능한 친구니까. 둘이 너무 잘해줬다. 음악만으로 승부하기에는 음악시장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호란 : 'DJ클래지'가 있기 때문에 '알렉스'와 내가 이름을 알릴 수도 있는 거다. 그게 바로 시너지 효과라는 게 아닐까.
안인용 : 3.5집을 기점으로 음악적으로 달라질 계획은 없나?
DJ클래지 : 해봐야 알 것 같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가고 싶다. '알렉스', '호란'이 계속 노래를 불러 줄 거고. 가끔은 연주곡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음악이라는 것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인용 : '클래지콰이'로서의 욕심과 개인 활동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뭔가?
호란 : 공연을 했을 때 실망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클래지콰이'에 더 잘 어울리는 보컬이 됐으면 좋겠다. 1집과 2집, 3집을 할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보컬로서 계속해서 내가 가진 진짜 색깔을 찾고 싶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꼭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진지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노래했으면 좋겠다.
장소 : 논현동 플럭서스 스튜디오
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