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대학에서 물리학과 교수와 학생이 실랑이 를 벌였다. 기압계로 고층건물의 높이를 재는 방법을 묻는 시험문제에 학생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기압계에 줄을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려 그 길이를 재면된다" 고 대답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교수의 출제 의도는 기압이 높이에 따라 달라지 므로 기압차를 이용해 건물높이를 계산해 보라는 것이었기에 답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중재를 맡은 다른 교수가 학생에게 6분의 시간을 다시 줄테니 물리학 지식을 이용한 답을 써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학생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압계를 아래로 떨어뜨려 낙하 시간을 잰 뒤 '건물높이=1/2(중력가속도 x 낙하시간의 제곱)'의 공 식에 따라 높이를 구하는 답안을 작성했다. 교수는 이 답안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면서 " 또 다른 방법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학생은 "옥상에서 바닥까지 닿는 긴 줄에 기압계를 매달아 시계추 처럼 움직이게 한 뒤 그 진동의 주기를 측정하면 건물 높이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라는 대답 외에도 다섯가지 답을 제시해 교수를 놀라게 했다. 그 학생은 바로 1922년 새로운 원자모델을 만들어 양자역학의 성립 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 이다. 획일화된 답을 거부했던 그가 당시 생각해낸 답 중에 스스로 가장 만족한 것은 '기압계를 건물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 다."였다. 훗날 그가 과학계에 남긴 위대한 업적은 이와 같은 창의 적 사고의 산물이었다. 』 일하던 중 좋은생각을 뒤적이다 읽은 글이다. 톡톡 튀는 창의적 발상. 참으로 학생다운 생각이다. 글쓴이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수없겠지만 글의 말미에 말하듯 창의성을 강조하는 듯한 글인 것 같다. 그래 학생은 그래야지 하면서 문득 든 생각. 만약 닐스 보어가 물리학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않은 채 같은 답안을 작성해 우겨댔다면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건축이란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학생다운 건축. 창의성이 외관을 타고흐르며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건축. 좋다. 보기좋다. 건축을 모르는 이가 봐도 무언가 있어보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문제는 그래봤자 잘 안된다는 거였다지만, (잡지에 실리는 건축물의 '사진'에 대한 '벤치마킹'을 거부한 오직 순수히 내 머리 속에서만 나온 그런 건축을 하고싶다는 시건방진 생각에 기인해서인지 그닥 볼품없는 설계를 해왔고, 군대를 다녀와서 '모방을 통한 변형'역시 배움의 일부임을 납득하고 '사진'을 보고 이것저것 시도해보았건만 실은 건축적 소양이 부족해 서인지 썩 마음에 드는 설계를 하지 못했다.) 글을 읽고 나니 아, 지난 2년하고도 반년동안 겉멋만 들었구나. 못난 얼굴에다 쳐바를 화장술만 익히려 들었구나.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실무를 접하며 지극히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공간의 배치, 하물며 창호의 크기와 간격결정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접했던 실무의 내용 중에 굉장히 지엽적이고 큰 틀을 맞추는데 에 있어서는 너무 디테일한 부분을 다룬 시간도 많았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에 회의적인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딴 세세한 부분까지 다 생각하면서 어떻게 전체의 틀을 잡냐.. 내 생각을 집어넣을 부분이 없잖아.. 결국 박스로 올라가버리겠네..' 그래 맞다. 내 생각처럼 되버리면 내 그릇이 그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기본이 되는 조건을을 만족시키면서 건축을 하는 이의 의도가 공간과 건축적 장치로써 건축물에 묻어나야 그 것이 정말 실력이지 않겠나. 한참을 새어나간 이야기에서 닐스보어의 일화에 대해 다시 언급하 자면 그와 같이 기반이 되는 지식을 충분히 갖춘 다음 창의성을 논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그저 창의성만으로 승부하려 드는 것은 초등학교에서나 해봄직한 일인 듯 하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건축은 공간을 다룬다. 주거공간이건 공공 공간이건 삶을 담는 그릇이고, 그릇에 담긴 삶은 그릇이라는 틀에 맞추어져 변해간다. 드럼통만한 그릇을 만들어도 요구르트 한병분량의 삶을 부으면 넘쳐버리게 될수도 있다. 그릇 내부의 형태에 따라 삶은 담긴다. 그릇을 휘감는 용을 새겨넣든 다이아몬드를 수백개 박아넣든 그건 알아서 할 일이다. 독특하고 톡톡 튀는 건축이 못난 건축은 아니다. 속빈 강정 꼴의 건축이 못난 건축이다. '학생의 욕심'이라는 영혼은 소중히 간직한 채 영혼이 제대로 발딛고 설수 있게끔 해주는 내 뼈와 살들을 채워나가도록 하자. 아, 결국은 뻔한 이야기지만, 와닿는게 많았던 시간들. 겉으로 이해하는 척 하고 있었으나 뼈속까지 느끼지 못했던 말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잊고 있었던 사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대학에서 물리학과 교수와 학생이 실랑이
를 벌였다.
기압계로 고층건물의 높이를 재는 방법을 묻는 시험문제에 학생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기압계에 줄을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려 그
길이를 재면된다" 고 대답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교수의 출제 의도는 기압이 높이에 따라 달라지
므로 기압차를 이용해 건물높이를 계산해 보라는 것이었기에 답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중재를 맡은 다른 교수가 학생에게 6분의 시간을 다시 줄테니
물리학 지식을 이용한 답을 써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학생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압계를 아래로 떨어뜨려 낙하
시간을 잰 뒤 '건물높이=1/2(중력가속도 x 낙하시간의 제곱)'의 공
식에 따라 높이를 구하는 답안을 작성했다. 교수는 이 답안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면서 " 또 다른 방법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학생은 "옥상에서 바닥까지 닿는 긴 줄에 기압계를 매달아 시계추
처럼 움직이게 한 뒤 그 진동의 주기를 측정하면 건물 높이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라는 대답 외에도 다섯가지 답을 제시해
교수를 놀라게 했다.
그 학생은 바로 1922년 새로운 원자모델을 만들어 양자역학의 성립
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
이다.
획일화된 답을 거부했던 그가 당시 생각해낸 답 중에 스스로 가장
만족한 것은 '기압계를 건물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
다."였다. 훗날 그가 과학계에 남긴 위대한 업적은 이와 같은 창의
적 사고의 산물이었다. 』
일하던 중 좋은생각을 뒤적이다 읽은 글이다.
톡톡 튀는 창의적 발상. 참으로 학생다운 생각이다.
글쓴이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수없겠지만 글의 말미에
말하듯 창의성을 강조하는 듯한 글인 것 같다.
그래 학생은 그래야지 하면서 문득 든 생각.
만약 닐스 보어가 물리학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않은 채
같은 답안을 작성해 우겨댔다면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건축이란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학생다운 건축.
창의성이 외관을 타고흐르며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건축.
좋다. 보기좋다. 건축을 모르는 이가 봐도 무언가 있어보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문제는 그래봤자 잘 안된다는 거였다지만,
(잡지에 실리는 건축물의 '사진'에 대한 '벤치마킹'을 거부한 오직
순수히 내 머리 속에서만 나온 그런 건축을 하고싶다는 시건방진
생각에 기인해서인지 그닥 볼품없는 설계를 해왔고,
군대를 다녀와서 '모방을 통한 변형'역시 배움의 일부임을 납득하고
'사진'을 보고 이것저것 시도해보았건만 실은 건축적 소양이 부족해
서인지 썩 마음에 드는 설계를 하지 못했다.)
글을 읽고 나니 아, 지난 2년하고도 반년동안 겉멋만 들었구나.
못난 얼굴에다 쳐바를 화장술만 익히려 들었구나.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실무를 접하며 지극히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공간의 배치, 하물며 창호의 크기와 간격결정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접했던 실무의 내용 중에 굉장히 지엽적이고 큰 틀을 맞추는데
에 있어서는 너무 디테일한 부분을 다룬 시간도 많았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에 회의적인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딴 세세한 부분까지 다 생각하면서 어떻게 전체의 틀을 잡냐..
내 생각을 집어넣을 부분이 없잖아.. 결국 박스로 올라가버리겠네..'
그래 맞다.
내 생각처럼 되버리면 내 그릇이 그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기본이 되는 조건을을 만족시키면서 건축을 하는 이의
의도가 공간과 건축적 장치로써 건축물에 묻어나야 그 것이 정말
실력이지 않겠나.
한참을 새어나간 이야기에서 닐스보어의 일화에 대해 다시 언급하
자면 그와 같이 기반이 되는 지식을 충분히 갖춘 다음 창의성을
논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그저 창의성만으로 승부하려
드는 것은 초등학교에서나 해봄직한 일인 듯 하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건축은 공간을 다룬다.
주거공간이건 공공 공간이건 삶을 담는 그릇이고, 그릇에 담긴
삶은 그릇이라는 틀에 맞추어져 변해간다.
드럼통만한 그릇을 만들어도 요구르트 한병분량의 삶을 부으면
넘쳐버리게 될수도 있다.
그릇 내부의 형태에 따라 삶은 담긴다.
그릇을 휘감는 용을 새겨넣든 다이아몬드를 수백개 박아넣든
그건 알아서 할 일이다.
독특하고 톡톡 튀는 건축이 못난 건축은 아니다.
속빈 강정 꼴의 건축이 못난 건축이다.
'학생의 욕심'이라는 영혼은 소중히 간직한 채
영혼이 제대로 발딛고 설수 있게끔 해주는
내 뼈와 살들을 채워나가도록 하자.
아, 결국은 뻔한 이야기지만, 와닿는게 많았던 시간들.
겉으로 이해하는 척 하고 있었으나 뼈속까지 느끼지 못했던 말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