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PD들, 언론자유는 어디에”

이강율2008.08.28
조회71

[2008년 8월, 시사프로그램 현주소를 말한다]

 

자기검열에 정치 아이템 기피 우려…상식없는 검찰 수사까지

시사교양 PD들에게 ‘어려운’ 시기가 닥쳤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룬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가 하면, 프로그램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현장 PD들 사이에서는 “시사 프로그램 만들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른바 ‘보수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정권의 ‘방송 장악’ 논란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방송 제작 현장에서 시사교양 PD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1#. ‘PD수첩’ 사태로 ‘MBC 스페셜’ 광우병 방송연기

지난 25일 오후 MBC 시사교양국에서는 시사회가 열렸다. 영국 광우병 사례와 광우병에 대처하는 영국 정부의 정책을 다룬 (연출 장형원)의 방송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시사교양국장을 비롯해 시사교양국 CP들이 모였다.

방송이 나가기 전 방송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시사를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보통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내부에서 이견이 있는 경우 진행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광우병 방송의 무기한 연기가 결정됐다.

광우병 편은 촛불 정국 전인 4월 중순경 준비돼 2주간의 영국 현지 취재를 거쳐 지난 달 18일 방송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광우병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논란이 확산되자 8월 말로 한 차례 방송이 연기됐다. 이미 광우병 방송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광우병편이 또 다시 논란의 소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시사교양국 내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25일 MBC 시사교양국장과 CP들은 사태가 정리된 이후 광우병 편을 방송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담당 PD 역시 방송 연기 결정을 받아들였다. 장형원 PD는 “PD 입장에서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방송이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 문제에 집중돼야 할 힘을 소모적으로 분산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일들로 PD 스스로 자기고민에 빠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내부 압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내외부의 직접적인 압력보다는 주변의 상황들이 PD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자기검열을 강화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설명이다.

2#. KBS ‘소비자고발’ 황토팩 방송 검찰수사 박차

KBS ‘황토팩’ 방송 역시 최근 제작진의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방송된 황토팩 편은 중금속 검출 논란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으로 파장이 커지자 황토팩 제조 회사인 참토원 측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KBS와 제작진을 검찰에 고소했고 지난 2월부터 담당 PD는 물론이고 CP가 수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무관한 황토팩 수사는 그러나 최근 수사나 예능 PD 비리 의혹 수사 등과 맞물려 일부에서는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영돈 PD는 “검찰이 황토팩 수사를 정치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면서 “황토팩 수사는 이나 언론장악 우려 등과는 상관없이 팩트 대 팩트로 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방송된 프로그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우려되면 아이템 선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검찰 수사 자체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황토팩 방송을 연출한 안성진 PD 역시 “검찰 수사 자체가 PD를 위축시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3#. 청와대 전화 한통에 프로그램 삭제

정치적으로 민감한 프로그램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5월엔 광우병 관련 내용을 다룬 EBS ‘17년 후’ 편 방송에 대해 감사원에서 파견된 청와대 직원이 EBS 감사실로 전화를 걸어 해당 방송에 대한 내용을 확인했고, 경영진이 방송 중단을 결정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그 후 ‘17년 후’를 제작한 김진혁 PD는 이 사실을 사내 게시판을 통해 알렸고, 지난 1일 정기인사에서 다른 부서로 발령 나면서 ‘보복성 인사’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MBC 광우병편의 김은희 작가는 방송 직전 “청와대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김 작가는 8월호에서 “방송 전 청와대 모 인사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며 “쇠고기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치공세’, ‘선동’ 운운 등의 단어를 썼다.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요컨대 정치공세, 선동하는 무리를 비난하는 걸로 제작진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대신하려 했던 모양이다”고 밝혔다.

4#. 시사교양 PD들 ‘수난시대’

시사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PD들이 이른바 ‘센’ 아이템들을 제작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광우병 편을 방송했던 PD에 대해 어떠한 인사조치가 내려졌는지 목격한 상황에서 시사교양 PD들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 있는 시사교양 PD들에게는 이러한 사례들이 늘어날 경우 자연스럽게 시사 프로그램의 제작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MBC의 한 시사교양 PD는 광우병 방송이 연기된 것에 대해 “방송에 흠결이 있는 것이 아닌데 시기적으로 조율한다는 것 자체가 제작자로서는 압박이 되는 것”이라며 “시기나 상황 상 민감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템을 누가 제작하려고 하겠나. 그런 것들을 다들 피하려고 한다면 시사 프로그램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아이템 선정에서 받는 압박도 크다. KBS 의 김효진 PD는 “현재 인사상의 불이익이나 검찰 수사 등으로 인한 부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상황들을 보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아이템을 선정할 때 굉장히 방어적이고 위축될 수 있다”며 “되도록 무리수를 두지 않는 아이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법원의 비상식적인 판결, 보수언론의 PD저널리즘 때리기, 정부기관들의 제작진에 대한 직접적 접촉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거대담론이나 앞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정책, 정권의 방향성 등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데 조심스러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월 한반도 대운하 관련 방송을 하기도 했던 임경식 MBC PD 역시 “이러한 일이 계속 진행되다 보면 PD 스스로 방송 내용과 시기 등의 판단을 하게 될 수 있다”며 “위에서 뭐라고 하기 전에 PD 스스로 이런 분위기에서는 창작을 할 수 없으니 그런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낙하산 사장 논란 속에 새 사장이 임명된 KBS의 경우 그동안 현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여준 시사프로그램들을 폐지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서 공격해온 이나 등이 ‘폐지 1순위’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 PD들은 앞으로 건과 같은 사안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진표 KBS PD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문제가 될 만한 주제에 대해서는 피해가려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며 “앞으로 4~5년간 시사프로그램에는 정말 힘든 시기가 올 것”이라고 걱정 섞인 전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