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은 영락없이 인간 세상을 빼닮았다. 위로는 거대한 첨탑들이 늘어서 있고, 아래로는 갱들이 활개를 치는 가운데 시민과 죄수가 계통없이 섞여서 산다. 고담의 시민들은 모두 평화를 원하지만, 정작 그런 시민들로 구성된 고담에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고담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모순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비 덴트는 고담의 모순을 고스란히 담은 인물이다. 정의를 절대적으로 추구했으나 그 한계를 깨닫고 돌아선다. 이제 그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은 확률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이 대의를 지키기 위해 사랑까지 포기했다고 생각한 순간 - 조커의 거짓말에 속아 하비 덴트를 구하게 된 것이었지만 하비 덴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철저하게 확률에 의지한 살인자로 변하게 된 것이다.
정의를 지킨다는 것은 항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사랑을 지킬 것이냐 대의를 지킬 것이냐, 사로잡은 악당을 죽일 것이냐 살릴 것이냐와 같은,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히고 고민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정의를 지키되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에 관한 미묘한 차이도 정의가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인데, 하비 덴트가 돌아선 이유가 바로 배트맨식 정의가 지닌 이런 한계 때문이다. 배트맨과 하비 덴트의 지향점은 끝내 일치하지 못했고 이는 배트맨 - 하비 덴트 연합의 분열로, 정의의 마지막 패배로 이어진다.
이처럼 는 배트맨 - 하비 덴트 연합의 분열을 통해 일차원적 정의의 등잔 밑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너의 정의가 모두를 이롭게 했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부분은 가, 평면적 정의와 그것의 승리에만 관심이 있는 기존의 영웅 신화들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에 내포된 모순과 한계를 들추어내는데 관심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는 상영 90분 이전과 이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90분 이전까지 는 영웅담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악당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배트맨이 악당을 잡고 하비 덴트가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악당들을 조종하던 조커를 잡고 배트맨과 하비 덴트는 모든 악을 소탕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는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마치 재생이 끝난 필름을 되감기 하듯, 결정된 모든 것을 뒤집는다. 배트맨의 승리는 곧 조커의 승리로 이어지고, 영웅 배트맨은 극악무도한 배트맨이 된다. 배트맨의 정의가 하비 덴트의 정의로, 시민들의 정의로 이어지던 커넥션이 사라졌다. 하비 덴트와 시민들은 일제히 배트맨을 원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졌던 정의는 '그러므로' 지켜지지 못한다. 영웅 신화는 완벽히 해체된다.
영화의 끝에서 배트맨은, 정의는 마침내 승리하리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 스스로 도망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배트맨의 이러한 결단에 고든은 도망자가 된 배트맨을 어둠 속에서 악에 맞서 싸우는 어둠의 기사 '다크 나이트'라 부른다. 의 이러한 엔딩은 '너의 정의는 모두를 이롭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상영시간 내내 고민한 끝에 내린 대답이다. '언젠가는 모두를 이롭게 하리라 믿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대답. 배트맨은 비로소 정의를 당연한 것이 아닌, 믿고 싸워야 할 것으로 인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모두에게도 옳게 적용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개인의 신념이란 항상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스스로에게 되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신념은 바로 선다. 단 한 번의 명쾌한 대답으로 만족될 리가 없다. 는 이 과정을 성실히 좇아 최선의 대답을 내놓았다. 결국 는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관해 성찰하는 영화다.
다크 나이트
※ 스포일러 있음.
고담은 영락없이 인간 세상을 빼닮았다. 위로는 거대한 첨탑들이 늘어서 있고, 아래로는 갱들이 활개를 치는 가운데 시민과 죄수가 계통없이 섞여서 산다. 고담의 시민들은 모두 평화를 원하지만, 정작 그런 시민들로 구성된 고담에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고담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모순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비 덴트는 고담의 모순을 고스란히 담은 인물이다. 정의를 절대적으로 추구했으나 그 한계를 깨닫고 돌아선다. 이제 그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은 확률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이 대의를 지키기 위해 사랑까지 포기했다고 생각한 순간 - 조커의 거짓말에 속아 하비 덴트를 구하게 된 것이었지만 하비 덴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철저하게 확률에 의지한 살인자로 변하게 된 것이다.
정의를 지킨다는 것은 항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사랑을 지킬 것이냐 대의를 지킬 것이냐, 사로잡은 악당을 죽일 것이냐 살릴 것이냐와 같은,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히고 고민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정의를 지키되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에 관한 미묘한 차이도 정의가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인데, 하비 덴트가 돌아선 이유가 바로 배트맨식 정의가 지닌 이런 한계 때문이다. 배트맨과 하비 덴트의 지향점은 끝내 일치하지 못했고 이는 배트맨 - 하비 덴트 연합의 분열로, 정의의 마지막 패배로 이어진다.
이처럼 는 배트맨 - 하비 덴트 연합의 분열을 통해 일차원적 정의의 등잔 밑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너의 정의가 모두를 이롭게 했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부분은 가, 평면적 정의와 그것의 승리에만 관심이 있는 기존의 영웅 신화들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에 내포된 모순과 한계를 들추어내는데 관심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는 상영 90분 이전과 이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90분 이전까지 는 영웅담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악당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배트맨이 악당을 잡고 하비 덴트가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악당들을 조종하던 조커를 잡고 배트맨과 하비 덴트는 모든 악을 소탕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는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마치 재생이 끝난 필름을 되감기 하듯, 결정된 모든 것을 뒤집는다. 배트맨의 승리는 곧 조커의 승리로 이어지고, 영웅 배트맨은 극악무도한 배트맨이 된다. 배트맨의 정의가 하비 덴트의 정의로, 시민들의 정의로 이어지던 커넥션이 사라졌다. 하비 덴트와 시민들은 일제히 배트맨을 원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졌던 정의는 '그러므로' 지켜지지 못한다. 영웅 신화는 완벽히 해체된다.
영화의 끝에서 배트맨은, 정의는 마침내 승리하리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 스스로 도망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배트맨의 이러한 결단에 고든은 도망자가 된 배트맨을 어둠 속에서 악에 맞서 싸우는 어둠의 기사 '다크 나이트'라 부른다. 의 이러한 엔딩은 '너의 정의는 모두를 이롭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상영시간 내내 고민한 끝에 내린 대답이다. '언젠가는 모두를 이롭게 하리라 믿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대답. 배트맨은 비로소 정의를 당연한 것이 아닌, 믿고 싸워야 할 것으로 인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모두에게도 옳게 적용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개인의 신념이란 항상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스스로에게 되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신념은 바로 선다. 단 한 번의 명쾌한 대답으로 만족될 리가 없다. 는 이 과정을 성실히 좇아 최선의 대답을 내놓았다. 결국 는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관해 성찰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