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바탕은 백의민족의 순결성과,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韓민족의 민족성을 표상하고 태극은 "음"과 "양"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우주 만물이 생성하고 발전하는 대자연의 영원한 진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창조와 발전을 의미하며, 4괘는 태극 속에서 음과 양이 질적 변화와 양적성장의 선회운동을 거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 건(乾) : 천(天, 하늘) 춘(春, 봄) 동(東) 인(仁) 부(父) 금(金) 정의를 뜻한다. 왼쪽 상단에 있다.
• 곤(坤) : 지(地, 땅) 하(夏, 여름) 서(西) 의(義) 모(母) 토(土) 풍요를 뜻한다. 오른쪽 하단에 있다.
• 감(坎) : 월(月, 달) 동(冬, 겨울) 북(北) 지(智) 중녀(女) 수(水) 생명력을 뜻한다. 오른쪽 상단에 있다.
• 리(離) : 일(日, 해) 추(秋, 가을) 남(南) 예(禮) 중남[子] 화(火) 지혜를 뜻한다. 왼쪽 하단에 있다.
건은 태양(太陽)으로서 양이 가장 성한 방위에, 곤은 태음(太陰)으로 음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어 있으며 감은 소양(少陽)으로 음에 뿌리를 두고 자라나는 모습을, 이는 소음(少陰)으로 양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다. 건은 이로, 이는 곤으로 성장하며, 곤은 감으로, 감은 건으로 성장하여 무궁한 순환발전을 수행한다. 즉 음양이 생성, 발전하는 창조적인 우주관을 담고 있다. 태극기 전체로는 평화·단일·창조·광명·무궁을 상징한다.
◈ '태극기(太極旗)'라는 말의 유래
'조선국기'가 '태극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부터였다.
18세기 말엽 조선왕조는 관리들의 당파 싸움과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나라꼴이 허약해기기 시작하였다. 이런 기회를 노려오던 일본은 마침내 1910년 조선왕조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이에 격분한 애국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으로 일본에 맞섰다.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독립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여, 이날 참여한 모든 국민들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손에 '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고, '기' 제작을 하였는데, 그때만 해도 '조선국기'로 부르던 국기 이름을 일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을 하면서부터 새롭게 퍼지기 시작했다.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독립기념관 소장 - 1981년 기증받음
'태극기(太極旗)'는
1883년(고종 20)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고,
1948년부터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이다.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을 계기로 한·일 간에 강화도조약 체결이 논의되는 동안 일본측은 "운요호에는 엄연히 일본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砲擊)을 가하였느냐?"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조정의 인사들은 국기가 무슨 의미와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국기 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하게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태극기의 효시에 대하여 종래에는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 겸 수신사(修信使)인 박영효(朴泳孝)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선박 메이지마루[明治丸]를 타고 도일할 때, 박영효가 태극사괘(太極四卦)를 창안하고 도안한 것이 정설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발행된 일간신문《시사신보》에서 고종이 직접 도안을 하고 색깔까지 지정하였다는 보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중국 청나라의 마건충(馬建忠)이 청나라의 국기를 본받아 조선의 국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자, 이에 분개한 고종이 청나라의 국기를 따르지 않고 청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진 태극원과 사괘를 그려 국기로 정한다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태극기를 그리는 역할을 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과 건곤리감(乾坤離坎)의 4괘로 이루어져 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우주만물이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발전하는 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의 조합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다. 그 중 건은 우주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은 땅을, 감은 물을, 이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 후 널리 보급되었으나 도형의 통일성이 없어서 사괘와 태극양의(太極兩儀)의 위치를 혼동하여 사용해오다가 1948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국기의 도안과 규격이 통일되었다.
태극기가 상징하는 의미와 유래
◈ 태극기(太極旗)의 의미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을 상징하고 그 주권과 국위를 나타내는 표지이다.
흰색바탕은 백의민족의 순결성과,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韓민족의 민족성을 표상하고 태극은 "음"과 "양"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우주 만물이 생성하고 발전하는 대자연의 영원한 진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창조와 발전을 의미하며, 4괘는 태극 속에서 음과 양이 질적 변화와 양적성장의 선회운동을 거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 건(乾) : 천(天, 하늘) 춘(春, 봄) 동(東) 인(仁) 부(父) 금(金) 정의를 뜻한다. 왼쪽 상단에 있다.
• 곤(坤) : 지(地, 땅) 하(夏, 여름) 서(西) 의(義) 모(母) 토(土) 풍요를 뜻한다. 오른쪽 하단에 있다.
• 감(坎) : 월(月, 달) 동(冬, 겨울) 북(北) 지(智) 중녀(女) 수(水) 생명력을 뜻한다. 오른쪽 상단에 있다.
• 리(離) : 일(日, 해) 추(秋, 가을) 남(南) 예(禮) 중남[子] 화(火) 지혜를 뜻한다. 왼쪽 하단에 있다.
건은 태양(太陽)으로서 양이 가장 성한 방위에, 곤은 태음(太陰)으로 음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어 있으며 감은 소양(少陽)으로 음에 뿌리를 두고 자라나는 모습을, 이는 소음(少陰)으로 양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다. 건은 이로, 이는 곤으로 성장하며, 곤은 감으로, 감은 건으로 성장하여 무궁한 순환발전을 수행한다. 즉 음양이 생성, 발전하는 창조적인 우주관을 담고 있다. 태극기 전체로는 평화·단일·창조·광명·무궁을 상징한다.
◈ '태극기(太極旗)'라는 말의 유래
'조선국기'가 '태극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부터였다.
18세기 말엽 조선왕조는 관리들의 당파 싸움과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나라꼴이 허약해기기 시작하였다. 이런 기회를 노려오던 일본은 마침내 1910년 조선왕조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이에 격분한 애국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으로 일본에 맞섰다.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독립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여, 이날 참여한 모든 국민들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손에 '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고, '기' 제작을 하였는데, 그때만 해도 '조선국기'로 부르던 국기 이름을 일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을 하면서부터 새롭게 퍼지기 시작했다.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독립기념관 소장 - 1981년 기증받음
'태극기(太極旗)'는
1883년(고종 20)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고,
1948년부터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이다.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을 계기로 한·일 간에 강화도조약 체결이 논의되는 동안 일본측은 "운요호에는 엄연히 일본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砲擊)을 가하였느냐?"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조정의 인사들은 국기가 무슨 의미와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국기 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하게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태극기의 효시에 대하여 종래에는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 겸 수신사(修信使)인 박영효(朴泳孝)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선박 메이지마루[明治丸]를 타고 도일할 때, 박영효가 태극사괘(太極四卦)를 창안하고 도안한 것이 정설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발행된 일간신문《시사신보》에서 고종이 직접 도안을 하고 색깔까지 지정하였다는 보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중국 청나라의 마건충(馬建忠)이 청나라의 국기를 본받아 조선의 국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자, 이에 분개한 고종이 청나라의 국기를 따르지 않고 청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진 태극원과 사괘를 그려 국기로 정한다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태극기를 그리는 역할을 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과 건곤리감(乾坤離坎)의 4괘로 이루어져 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우주만물이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발전하는 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의 조합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다. 그 중 건은 우주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은 땅을, 감은 물을, 이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 후 널리 보급되었으나 도형의 통일성이 없어서 사괘와 태극양의(太極兩儀)의 위치를 혼동하여 사용해오다가 1948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국기의 도안과 규격이 통일되었다.
태극기의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