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년 1월 13일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은퇴할 때, 그는 전세계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그는 미국 NBA 농구는 물론 세계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소속팀의 6번 우승을 비롯하여, 5번의 최우수선수상, 12번의 올스타전 출장 등 15 년 동안 NBA 선수로 활동하면서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숫자들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공중을 날아다닌다' 하여 '에어 조던'이라 불렸던 마이클 조던은 덩크슛의 천재로 잘 알려져 있다. 경기장에서 그의 앞을 가로막을 철벽 수비는 없다. 왜냐하면 공중을 날아다니며 수비를 하는 농구 선수는 이 세상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제공권)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있다. 그런데 농구 선수들 중에는 조던보다 키가 훨씬 큰 장대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 장대들의 철벽 수비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조던은 장대의 철벽 수비를 뚫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장대 선수들이 앞을 가로 막았을 때 그의 뇌리를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하늘은 비어 있다. 비어 있는 하늘을 공략하자.'
조던의 이러한 생각은 사실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논리였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느냐, 아니면 어렵다고 포기하느냐의 두 가지 선택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마이클 조던은 실천 쪽을 택하였다. 자신을 마크하는 장대 선수들의 제공권을 빼앗기 위해 그는 매일 열심히 점프 연습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점프를 하여 공중에 떠오른 상태에서의 유연한 몸동작이었다. 이중 점프를 해서 아무리 높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큰 장대 선수가 그 액션을 보고 같이 뛰어오른다면 그 수비망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공중에서 다시 한 번 액션을 바꾸는 절묘한 동작이 중요한 것이다. 수비 선수의 방어 동작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공중에서 액션에 변화를 주어야만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마이클 조던의 키는 1미터 91센티미터였다. 조던은 농구를 계속하기 위해 미국 대학농구의 최강팀이 소속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1학년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대학농구 시즌 첫 경기에 출전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전통적인 불문율을 깨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 동안 '1학년 신입생은 시즌 첫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규칙을 깨고 감독이 조던을 경기에 내보냈던 것이다.
"조던! 내일 경기에 나가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연습을 쉬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두거라."
첫 경기가 열리기 전날 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농구 감독은 덩크슛 연습을 하고 있는 조던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조던으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감독은 그 동안 조던이 혼자 열심히 덩크슛 연습을 하던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던 것이다. 조던은 연습벌레였다.
첫 경기에 출전한 마이클 조던은 상대팀의 수비가 막강한 데 놀랐다. 2백 13센티미터나 되는 선수가 두 명이나 막아서며 조던에게 빈정거렸다.
"야, 이 일학년 애숭이야! 대학 농구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
상대팀의 장대 선수들은 조던이 공격을 할 때마다 철벽처럼 막아섰다. 공격은 몇 번이나 두절되었다.
이때 마이클 조던은 남몰래 연습을 해두었던 덩크슛을 써먹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점프를 하였고, 공중에서 재빠르고 유연하게 몸을 놀리며 공을 정확히 바구니 안에 꽂아 넣었다.
관중들은 열광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골대에서 무려 6미터나 떨어진 거리에서 바구니를 향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마이클 조던의 몸은, 마치 공과 한 몸이 된 듯 날렵하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겨냥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터지는 관중의 환호를 듣고 그는 자신의 덩크슛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이클 조던이 농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전혀 뜻밖애도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고교 시절 조던에게는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고교 농구 선수들과 함께 걸어가는데 그 여학생이 자기 옆에 있는 농구 선수를 보고 너무 반가워하더라는 것이다. 그 여학생은 열성적인 농구 팬이었다.
"나도 농구 선수가 되어 저 여자 애를 깜짝 놀라게 해주어야지."
조던은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농구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른 농구 선수들보다 뒤늦게 농구공을 손에 잡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고교 시절에는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던은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너무 농구 연습에 몰두하다가 수업을 자꾸 빼먹는 바람에 퇴학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또한 주전 선수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다른 선수의 옷가방이나 들고 다니는 수치스런 모욕을 당하면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한 마디로 고교 시절에 그는 별 볼일 없는 선수에 불과하였다.
조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1982 년 그는 대학 1학년생으로 대학 농구 시즌 첫 경기에 출전하여 덩크슛의 묘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유명 선수로 만들어준 것은 대학 최고의 스타였던 조지타운 대학의 패트릭 유잉과 대결에서의 승리였다.
대학생으로 시즌 첫 경기에 출전한 조던은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대학 최강팀이자 패트릭 유잉이 속한 조지타운 대학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조던은 이 결승전에서 마지막 승리의 골을 장식하는 행운을 안았다. 당시 결승전에서 남은 시간은 불과 32초였다. 그때 상황은 조던이 속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이 61대 62로 한 점 뒤지고 있었다.
그때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코치가 작전타임을 요청하였다. 그는 조던을 지적하며 말하였다.
"이제 우리가 공격할 순서다. 공격 시간을 최대한 끌다가 마지막에 가서 네가 슛을 넣어라. 이 상황에서 상대팀의 철벽 수비를 뚫을 수 있는 것은 너의 덩크슛뿐이야."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남은 시간은 불과 10여 초였다. 그 순간 작전대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선수는 조던에게 공을 던졌고, 그는 제비처럼 몸을 날려 덩크슛을 쏘았다. 관중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역전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1984 년에 마이클 조던은 LA 올림픽 대표선수로 출전하여 미국 농구팀에게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는 곧 NBA의 시카고 불스팀에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불스팀은 당시 성적이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들어간 이후 불스팀은 NBA 농구의 최강팀으로 떠올랐다. 23번이란 등번호를 단 그는 불스팀에게 처음으로 NBA 챔피언십 3연패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
이때부터 조던은 '에어 조던'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 별명을 딴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란 농구화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는 운동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맨으로서도 찬란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운동화는 나이키사의 신상품 중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조던의 에이전트인 데이비드 폴크는 그를 간판스타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에이전트사인 IMG의 아성에 필적할만한 FAME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것은 바로 '원 맨 비즈니스'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각종 회사들은 조던의 이미지를 상품화한 향수. 내의. 스포츠 드링크 등을 내놓아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한편 그는 영화에도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하였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조던 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1백억 달러로 평가하였다. '1인 산업'의 개념으로 볼 때 이것은 대단한 가치를 창출해낸 셈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오늘날 신화적인 농구 황제로 떠오르기까지는 숱한 고난도 뒤따랐다. 1993 년 사랑하던 아버지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너무 충격을 받고 잠시 농구 코트를 떠난 적도 있었다. 그때 그는 은퇴선언을 한 후 엉뚱하게도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내 마이너리그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2 년 후 농구 코트로 복귀하여 다시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신문기자들이 조던에게 왜 갑자기 은퇴선언을 하고 야구 선수가 되었고, 또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단순하게 대답하였다.
"그때 나는 단지 야구가 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농구 코트로 다시 돌아온 것 역시 농구를 사랑했기 때문이고요."
마이클 조던의 이와 같은 단순한 말에는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 그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다. 그리고 그 단순성은 자신의 열정을 고집스럽게 불태우도록 만드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장벽이 앞을 가로막으면 하늘로 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덩크슛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듯이, 그러한 단순함의 논리 속에는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곳을 노려라!'
이러한 논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그 어떠한 일에 적용해도 제대로 맞을 것이다. 그것은 병법에서 '상대의 허점을 공격하라'는 말과도 통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즉각 실천에 옮기는 데 있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은 '1인 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단 스타가 되면 그들에게는 인기도에 따라 수입도 올라가게 되어 있다. 요즘과 같은 비디오 시대에는 스타들의 천국이라 할 만큼 그들의 브랜드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1인 산업'의 개념이 이제는 인기 스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벤처기업의 대두와 함께 일반인에게도 그 도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대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 혼자서도 얼마든지 사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1인 회사'를 차릴 수 있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자신의 집필실 벽에 그림 없는 액자를 걸어놓고 감상을 즐겼다. 누가 이상하게 여겨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 백지 상태의 액자 속에 유명 화가의 그림이 들어있다고 생각해 보게. 나는 그러면 정말 내가 생각하고 있던 유명 화가의 그림이 보인다네. 그러니 나중에는 빈 그림 액자 하나로 이 세상 모든 명화를 다 감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 발자크, 그는 이러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20 년 동안 90편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것도 모두 수준 있는 작품이었다.
발자크는 한밤중에 집필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늘 나무 책상에서 글을 썼다. 그 책상 위에는 펜과 잉크와 원고지만 있었다. 그리고 그 한 쪽에 작은 노트가 있었다. 그것은 글을 쓰다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을 메모해 두기 위한 것이었다. 사전이나 다른 참고 문헌 같은 것도 없이 그는 일사천리로 글을 써나갔다. 글을 쓸 때는 오직 상상력만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였던 것이다.
요즘 벤처 기업가는 컴퓨터 한 대만 가지고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발자크가 상상력을 무기로 그 많은 소설을 써냈 듯이 벤처 기업가들은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무기로 고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비어 있는 땅은 개발할 것이 많은 법이다. 마찬가지로 비어 있는 곳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의외로 얻을 것이 많이 있다.
비어 있는 곳은 다른 사람의 발길이 잘 닫지 않는 땅이다. 허술한 곳은 약점이 많은 곳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황무지로 먼저 달려가 그곳에 건물을 세운다. 이처럼 사업을 하려면 남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물론 비어 있는 곳이나 허술한 곳은 그만큼 난점과 약점이 많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그 난점과 약점만 해결하면 그러한 곳이 오히려 개척하기 더 쉬운 법이다. 아이디어는 바로 난점과 약점을 해결하는 바로 그 과정 속에 들어 있다.
* 모험이 동반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없다. 모험은 또한 위험을 동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모험 속에는 또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곳을 노려라
비어 있는 곳을 노려라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1999 년 1월 13일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은퇴할 때, 그는 전세계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그는 미국 NBA 농구는 물론 세계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소속팀의 6번 우승을 비롯하여, 5번의 최우수선수상, 12번의 올스타전 출장 등 15 년 동안 NBA 선수로 활동하면서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숫자들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공중을 날아다닌다' 하여 '에어 조던'이라 불렸던 마이클 조던은 덩크슛의 천재로 잘 알려져 있다. 경기장에서 그의 앞을 가로막을 철벽 수비는 없다. 왜냐하면 공중을 날아다니며 수비를 하는 농구 선수는 이 세상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제공권)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있다. 그런데 농구 선수들 중에는 조던보다 키가 훨씬 큰 장대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 장대들의 철벽 수비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조던은 장대의 철벽 수비를 뚫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장대 선수들이 앞을 가로 막았을 때 그의 뇌리를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하늘은 비어 있다. 비어 있는 하늘을 공략하자.'
조던의 이러한 생각은 사실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논리였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느냐, 아니면 어렵다고 포기하느냐의 두 가지 선택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마이클 조던은 실천 쪽을 택하였다. 자신을 마크하는 장대 선수들의 제공권을 빼앗기 위해 그는 매일 열심히 점프 연습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점프를 하여 공중에 떠오른 상태에서의 유연한 몸동작이었다. 이중 점프를 해서 아무리 높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큰 장대 선수가 그 액션을 보고 같이 뛰어오른다면 그 수비망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공중에서 다시 한 번 액션을 바꾸는 절묘한 동작이 중요한 것이다. 수비 선수의 방어 동작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공중에서 액션에 변화를 주어야만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마이클 조던의 키는 1미터 91센티미터였다. 조던은 농구를 계속하기 위해 미국 대학농구의 최강팀이 소속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1학년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대학농구 시즌 첫 경기에 출전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전통적인 불문율을 깨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 동안 '1학년 신입생은 시즌 첫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규칙을 깨고 감독이 조던을 경기에 내보냈던 것이다.
"조던! 내일 경기에 나가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연습을 쉬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두거라."
첫 경기가 열리기 전날 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농구 감독은 덩크슛 연습을 하고 있는 조던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조던으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감독은 그 동안 조던이 혼자 열심히 덩크슛 연습을 하던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던 것이다. 조던은 연습벌레였다.
첫 경기에 출전한 마이클 조던은 상대팀의 수비가 막강한 데 놀랐다. 2백 13센티미터나 되는 선수가 두 명이나 막아서며 조던에게 빈정거렸다.
"야, 이 일학년 애숭이야! 대학 농구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
상대팀의 장대 선수들은 조던이 공격을 할 때마다 철벽처럼 막아섰다. 공격은 몇 번이나 두절되었다.
이때 마이클 조던은 남몰래 연습을 해두었던 덩크슛을 써먹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점프를 하였고, 공중에서 재빠르고 유연하게 몸을 놀리며 공을 정확히 바구니 안에 꽂아 넣었다.
관중들은 열광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골대에서 무려 6미터나 떨어진 거리에서 바구니를 향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마이클 조던의 몸은, 마치 공과 한 몸이 된 듯 날렵하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겨냥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터지는 관중의 환호를 듣고 그는 자신의 덩크슛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이클 조던이 농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전혀 뜻밖애도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고교 시절 조던에게는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고교 농구 선수들과 함께 걸어가는데 그 여학생이 자기 옆에 있는 농구 선수를 보고 너무 반가워하더라는 것이다. 그 여학생은 열성적인 농구 팬이었다.
"나도 농구 선수가 되어 저 여자 애를 깜짝 놀라게 해주어야지."
조던은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농구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른 농구 선수들보다 뒤늦게 농구공을 손에 잡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고교 시절에는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던은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너무 농구 연습에 몰두하다가 수업을 자꾸 빼먹는 바람에 퇴학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또한 주전 선수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다른 선수의 옷가방이나 들고 다니는 수치스런 모욕을 당하면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한 마디로 고교 시절에 그는 별 볼일 없는 선수에 불과하였다.
조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1982 년 그는 대학 1학년생으로 대학 농구 시즌 첫 경기에 출전하여 덩크슛의 묘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유명 선수로 만들어준 것은 대학 최고의 스타였던 조지타운 대학의 패트릭 유잉과 대결에서의 승리였다.
대학생으로 시즌 첫 경기에 출전한 조던은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대학 최강팀이자 패트릭 유잉이 속한 조지타운 대학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조던은 이 결승전에서 마지막 승리의 골을 장식하는 행운을 안았다. 당시 결승전에서 남은 시간은 불과 32초였다. 그때 상황은 조던이 속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이 61대 62로 한 점 뒤지고 있었다.
그때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코치가 작전타임을 요청하였다. 그는 조던을 지적하며 말하였다.
"이제 우리가 공격할 순서다. 공격 시간을 최대한 끌다가 마지막에 가서 네가 슛을 넣어라. 이 상황에서 상대팀의 철벽 수비를 뚫을 수 있는 것은 너의 덩크슛뿐이야."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남은 시간은 불과 10여 초였다. 그 순간 작전대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선수는 조던에게 공을 던졌고, 그는 제비처럼 몸을 날려 덩크슛을 쏘았다. 관중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역전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1984 년에 마이클 조던은 LA 올림픽 대표선수로 출전하여 미국 농구팀에게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는 곧 NBA의 시카고 불스팀에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불스팀은 당시 성적이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들어간 이후 불스팀은 NBA 농구의 최강팀으로 떠올랐다. 23번이란 등번호를 단 그는 불스팀에게 처음으로 NBA 챔피언십 3연패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
이때부터 조던은 '에어 조던'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 별명을 딴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란 농구화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는 운동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맨으로서도 찬란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운동화는 나이키사의 신상품 중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조던의 에이전트인 데이비드 폴크는 그를 간판스타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에이전트사인 IMG의 아성에 필적할만한 FAME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것은 바로 '원 맨 비즈니스'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각종 회사들은 조던의 이미지를 상품화한 향수. 내의. 스포츠 드링크 등을 내놓아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한편 그는 영화에도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하였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조던 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1백억 달러로 평가하였다. '1인 산업'의 개념으로 볼 때 이것은 대단한 가치를 창출해낸 셈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오늘날 신화적인 농구 황제로 떠오르기까지는 숱한 고난도 뒤따랐다. 1993 년 사랑하던 아버지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너무 충격을 받고 잠시 농구 코트를 떠난 적도 있었다. 그때 그는 은퇴선언을 한 후 엉뚱하게도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내 마이너리그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2 년 후 농구 코트로 복귀하여 다시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신문기자들이 조던에게 왜 갑자기 은퇴선언을 하고 야구 선수가 되었고, 또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단순하게 대답하였다.
"그때 나는 단지 야구가 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농구 코트로 다시 돌아온 것 역시 농구를 사랑했기 때문이고요."
마이클 조던의 이와 같은 단순한 말에는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 그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다. 그리고 그 단순성은 자신의 열정을 고집스럽게 불태우도록 만드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장벽이 앞을 가로막으면 하늘로 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덩크슛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듯이, 그러한 단순함의 논리 속에는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곳을 노려라!'
이러한 논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그 어떠한 일에 적용해도 제대로 맞을 것이다. 그것은 병법에서 '상대의 허점을 공격하라'는 말과도 통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즉각 실천에 옮기는 데 있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은 '1인 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단 스타가 되면 그들에게는 인기도에 따라 수입도 올라가게 되어 있다. 요즘과 같은 비디오 시대에는 스타들의 천국이라 할 만큼 그들의 브랜드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1인 산업'의 개념이 이제는 인기 스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벤처기업의 대두와 함께 일반인에게도 그 도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대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 혼자서도 얼마든지 사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1인 회사'를 차릴 수 있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자신의 집필실 벽에 그림 없는 액자를 걸어놓고 감상을 즐겼다. 누가 이상하게 여겨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 백지 상태의 액자 속에 유명 화가의 그림이 들어있다고 생각해 보게. 나는 그러면 정말 내가 생각하고 있던 유명 화가의 그림이 보인다네. 그러니 나중에는 빈 그림 액자 하나로 이 세상 모든 명화를 다 감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 발자크, 그는 이러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20 년 동안 90편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것도 모두 수준 있는 작품이었다.
발자크는 한밤중에 집필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늘 나무 책상에서 글을 썼다. 그 책상 위에는 펜과 잉크와 원고지만 있었다. 그리고 그 한 쪽에 작은 노트가 있었다. 그것은 글을 쓰다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을 메모해 두기 위한 것이었다. 사전이나 다른 참고 문헌 같은 것도 없이 그는 일사천리로 글을 써나갔다. 글을 쓸 때는 오직 상상력만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였던 것이다.
요즘 벤처 기업가는 컴퓨터 한 대만 가지고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발자크가 상상력을 무기로 그 많은 소설을 써냈 듯이 벤처 기업가들은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무기로 고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비어 있는 땅은 개발할 것이 많은 법이다. 마찬가지로 비어 있는 곳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의외로 얻을 것이 많이 있다.
비어 있는 곳은 다른 사람의 발길이 잘 닫지 않는 땅이다. 허술한 곳은 약점이 많은 곳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황무지로 먼저 달려가 그곳에 건물을 세운다. 이처럼 사업을 하려면 남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물론 비어 있는 곳이나 허술한 곳은 그만큼 난점과 약점이 많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그 난점과 약점만 해결하면 그러한 곳이 오히려 개척하기 더 쉬운 법이다. 아이디어는 바로 난점과 약점을 해결하는 바로 그 과정 속에 들어 있다.
* 모험이 동반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없다. 모험은 또한 위험을 동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모험 속에는 또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