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스 2집 'DEUXISM'(1993.12)'하여가'가 등장하기 전 1993년 초반, 듀스는 '나를 돌아봐'의 히트로 주목 받는 인기 댄스그룹이었다. 1994년 그들은 본격적인 음악적 역량을 선보인 2집 'DEUXISM'과 리믹스 앨범 'RYTHME LIGHT BEAT BLACK'을 선보였다. 남성적이고 힘 있는 힙합 음악을 선보인 듀스는 특유의 저음 비트로 록보다는 힙합 음악을 선호하는 음악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모았다.
1994년 이전의 가요계의 힙합진영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현진영과 신예 댄스그룹이었던 듀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993년 현진영은 3집이 실패한 이후 대마초 사건으로 가요계에서 이탈하고 서태지와 아이들도 1994년 3집을 통해 로커로 돌아서면서 힙합 진영은 듀스의 독무대로 변하였다.
1994년 여름 본격적인 3집 활동이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이현도가 작곡한 '너 하나만을 위해'는 다시 인기 드라마 '종합병원'을 통해 스타가 된 구본승이 불러 대히트가 되는 등, 듀스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거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이 주류 방송과 언론을 통해 공격 당하면서 듀스는 자신의 독무대가 된 힙합 진영에 홀로 남아 대표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물론 듀스의 성공에는 완성도도 있는 다양한 힙합음악을 전면에 선보인 2집과 리믹스 앨범의 큰 성공이 있었다.
이때부터 듀스와 그들의 팬들은 듀스가 이전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현진영과 달리 가요적이지 않은 정통적인 흑인풍 힙합을 선보였다면서 듀스를 서태지와 아이들과 차별화시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5년의 솔리드 2집의 대히틑 듀스를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본토 감성의 R&B와 힙합으로 정상에 오른 솔리드 미국에서 자란 교표 2세로 구성된 솔리드는 정통적인 R&B, 힙합, 하우스 음악이 담긴 1집을 1993년에 선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의 태풍으로 인해 전쟁상태에 있던 1993년의 가요계는 여유있게 솔리드의 정통적인 R&B와 힙합음악을 들어줄 만한 상태가 아니였다. 여기에 소속사의 홍보력 부재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솔리드 1집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교실 이데아'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태풍이 한풀 꺽이고 서태지와 아이들 대신 듀스가 힙합을 장악하였으며 김건모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누른 최고의 인기가수로 선전되는 가요계는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게 되었다.
한국대중음악사 中
듀스 2집 'DEUXISM'(1993.12)'하여가'가 등장하기 전 1993년 초반, 듀스는 '나를 돌아봐'의 히트로 주목 받는 인기 댄스그룹이었다. 1994년 그들은 본격적인 음악적 역량을 선보인 2집 'DEUXISM'과 리믹스 앨범 'RYTHME LIGHT BEAT BLACK'을 선보였다. 남성적이고 힘 있는 힙합 음악을 선보인 듀스는 특유의 저음 비트로 록보다는 힙합 음악을 선호하는 음악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모았다.
1994년 이전의 가요계의 힙합진영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현진영과 신예 댄스그룹이었던 듀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993년 현진영은 3집이 실패한 이후 대마초 사건으로 가요계에서 이탈하고 서태지와 아이들도 1994년 3집을 통해 로커로 돌아서면서 힙합 진영은 듀스의 독무대로 변하였다.
1994년 여름 본격적인 3집 활동이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이현도가 작곡한 '너 하나만을 위해'는 다시 인기 드라마 '종합병원'을 통해 스타가 된 구본승이 불러 대히트가 되는 등, 듀스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거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이 주류 방송과 언론을 통해 공격 당하면서 듀스는 자신의 독무대가 된 힙합 진영에 홀로 남아 대표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물론 듀스의 성공에는 완성도도 있는 다양한 힙합음악을 전면에 선보인 2집과 리믹스 앨범의 큰 성공이 있었다.
이때부터 듀스와 그들의 팬들은 듀스가 이전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현진영과 달리 가요적이지 않은 정통적인 흑인풍 힙합을 선보였다면서 듀스를 서태지와 아이들과 차별화시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5년의 솔리드 2집의 대히틑 듀스를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본토 감성의 R&B와 힙합으로 정상에 오른 솔리드 미국에서 자란 교표 2세로 구성된 솔리드는 정통적인 R&B, 힙합, 하우스 음악이 담긴 1집을 1993년에 선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의 태풍으로 인해 전쟁상태에 있던 1993년의 가요계는 여유있게 솔리드의 정통적인 R&B와 힙합음악을 들어줄 만한 상태가 아니였다. 여기에 소속사의 홍보력 부재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솔리드 1집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교실 이데아'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태풍이 한풀 꺽이고 서태지와 아이들 대신 듀스가 힙합을 장악하였으며 김건모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누른 최고의 인기가수로 선전되는 가요계는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