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말세와 재림에 대한 신앙은 참으로 중요하다. 말세와 재림에 대한 신앙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잘 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 삶의 의미와 목적부분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재림 신앙은 내일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며 내세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현세에 대한 문제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재림 신앙이 없으면 이 땅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허무하다. 솔로몬이 노래 하듯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이 땅에서의 사람의 일생이 너무나도 짧다. 이 땅에서의 사람의 하는 일들이 무엇 하나 건질 것이 없다. 부귀 영화 라고 하는 것이 다 헛되고 부패하여 인생만사 일장춘몽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그 한 가지는 이 땅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는 것과 다른 한 가지는 이 땅에서의 삶을 죽기 아니면 살기로 꽉 붙잡고 사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는 방향이 방탕함과 술취함이다.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식이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사람으로서 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 속에 헤아릴 수 없는 가능성과 운수가 작용하여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마음을 방해하고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놓은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태도다. 삶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방탕함으로 하루하루를 죽이고 살고 있다. 삶의 이유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무조건 항복하고 시간만 소비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술 외에는 삶의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가 없고 위로 받을 데가 없다고 한다. 그것도 잠시라 술을 깨고 나면 또 다시 보고 싶지 않고 맞닥뜨릴 용기도 없는 모진 현실이 그대로 버티고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또 술을 찾게 된다.
이렇게 방탕함과 술취함에 자기 자신을 내어줌으로 삶을 거의 놓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반대로 삶을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부지런히 산다. 이 땅에서의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든 연장하려고 건강과 장수에 최대한 노력한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더 모으고 어떻게든 오래 버티려고 안간힘을 다 쓰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 생활의 염려다. 늘 끙끙 앓으면서 사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선 사람들이 술 취하는 것으로 삶의 현실을 잊으려고 한다면 지금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함으로 삶의 현실을 잊으려고 한다. 일하는 동안은 죽음의 현실과 허무한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갖은 염려를 다 해가면서까지 혼자 이 땅에서의 무거운 인생의 짐을 다 지고가야 하니 고달픈 일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지극히 모범적인 성실한 삶을 살기 때문에 겉으로는 좋게 보일 수 있으나 쉼이 없고 마치 전쟁터가 나가듯이 아침에 일어난다.
우리도 불신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마음이 둔하여지게 된다. 마음이 둔하여진다는 것은 말세와 재림이 마치 없는 듯이 생각하고 전혀 기다리거나 사모하지 않는 신앙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현실에 너무 쉽게 항복하거나 도망가지도 말고 죽이 아니면 살기로 너무 매달리거나 싸우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 놓치지도 말고 너무 붙잡지도 않는 적당한 선이다. 적당히 라고 해서 대충대충 하는 듯 마는 듯 때우라는 뜻은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붙잡고 열심히 살기는 사는데 언젠가는 놓아야 될 시한부의 삶이라는 것을 알고 놓을 준비도 하고 살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하여서 이 땅에서의 삶이 다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수한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다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 땅의 삶이 전부 다인 것처럼 목숨 걸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삶을 적당한 선에서 평가하고 때로는 삶의 현실에 너무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여유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말세와 재림신앙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말세와 재림에 대한 신앙은 참으로 중요하다. 말세와 재림에 대한 신앙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잘 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 삶의 의미와 목적부분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재림 신앙은 내일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며 내세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현세에 대한 문제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재림 신앙이 없으면 이 땅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허무하다. 솔로몬이 노래 하듯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이 땅에서의 사람의 일생이 너무나도 짧다. 이 땅에서의 사람의 하는 일들이 무엇 하나 건질 것이 없다. 부귀 영화 라고 하는 것이 다 헛되고 부패하여 인생만사 일장춘몽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그 한 가지는 이 땅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는 것과 다른 한 가지는 이 땅에서의 삶을 죽기 아니면 살기로 꽉 붙잡고 사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는 방향이 방탕함과 술취함이다.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식이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사람으로서 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 속에 헤아릴 수 없는 가능성과 운수가 작용하여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마음을 방해하고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놓은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태도다. 삶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방탕함으로 하루하루를 죽이고 살고 있다. 삶의 이유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무조건 항복하고 시간만 소비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술 외에는 삶의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가 없고 위로 받을 데가 없다고 한다. 그것도 잠시라 술을 깨고 나면 또 다시 보고 싶지 않고 맞닥뜨릴 용기도 없는 모진 현실이 그대로 버티고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또 술을 찾게 된다.
이렇게 방탕함과 술취함에 자기 자신을 내어줌으로 삶을 거의 놓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반대로 삶을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부지런히 산다. 이 땅에서의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든 연장하려고 건강과 장수에 최대한 노력한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더 모으고 어떻게든 오래 버티려고 안간힘을 다 쓰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 생활의 염려다. 늘 끙끙 앓으면서 사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선 사람들이 술 취하는 것으로 삶의 현실을 잊으려고 한다면 지금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함으로 삶의 현실을 잊으려고 한다. 일하는 동안은 죽음의 현실과 허무한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갖은 염려를 다 해가면서까지 혼자 이 땅에서의 무거운 인생의 짐을 다 지고가야 하니 고달픈 일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지극히 모범적인 성실한 삶을 살기 때문에 겉으로는 좋게 보일 수 있으나 쉼이 없고 마치 전쟁터가 나가듯이 아침에 일어난다.
우리도 불신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마음이 둔하여지게 된다. 마음이 둔하여진다는 것은 말세와 재림이 마치 없는 듯이 생각하고 전혀 기다리거나 사모하지 않는 신앙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현실에 너무 쉽게 항복하거나 도망가지도 말고 죽이 아니면 살기로 너무 매달리거나 싸우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 놓치지도 말고 너무 붙잡지도 않는 적당한 선이다. 적당히 라고 해서 대충대충 하는 듯 마는 듯 때우라는 뜻은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붙잡고 열심히 살기는 사는데 언젠가는 놓아야 될 시한부의 삶이라는 것을 알고 놓을 준비도 하고 살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하여서 이 땅에서의 삶이 다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수한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다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 땅의 삶이 전부 다인 것처럼 목숨 걸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삶을 적당한 선에서 평가하고 때로는 삶의 현실에 너무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여유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