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준비 때문에..영어학원 다닌다고..전공공부 해야된다고..과외도 하는데..봉사활동도..
이런저런 핑계 때문에 친형이 책을 썼는데도 주위 사람들한테 홍보하는게 전부였구나.
시골에서 나고자란 3남매가 서울에서 뿔뿔히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데,
같이 살 형편이 안되서 흩어져 고시원이다 기숙사등지에서 머물고 있다고.
서로가 바쁘다고 한달에 한번 보기도 힘이 들구나.
각박한 객지생활도 어느덧 8년이 다 되어가고.
때론 부모님께 응석도 부리고 싶고,집에서 해 주는 따뜻한 밥 한그릇이 그리울 때도
많았지만 객지생활 하는 사람이 어찌 나 혼자 뿐이겠나.
여튼...이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쓰는 글..
형은 해외 로스쿨 명문대 4곳에 합격했는데 미국 로스쿨이 돈이 좀 들어가나요..
우리 집이 형 미국 보낼 형편 안되는건 당연하고 그래서 책도 냈다네요.
책 팔아서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출판사가 93% 가지고 형이 7% 가질 수 있다네요.
(음..좀 불쌍해 보여야 되는데..흠..)
열심히 응원 해 주고 싶습니다.
형이니까..가족이니까....힘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건 고작 이런 글 밖에 안되니까..
형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을 조금 기재할게요
해외 명문 로스쿨 4관왕
박희정씨 합격기 [중앙일보] "30군데 NGO 활동 높게 평가 받아”
경북 안동의 산골 소년이 세계적인 명문 로스쿨 4곳에 동시 합격했다. 과외나 학원은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는 박희정(30)씨는 최근 아이비리그인 코넬대를 비롯해 런던정경대, 사립 명문 USC, 비엔나대 등에서 입학 러브콜을 받았다.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erprise)가 되겠다는 꿈이 에너지를 충전시켜 줬기 때문이다. 런던정경대 로스쿨 입학을 위해 22일 영국으로 떠나는 박씨를 만났다.
◆“영어 점수·인터뷰 없이 OK”=올 2월 건국대 법대를 졸업한 박씨가 해외 로스쿨을 선택한 것은 인권·평화를 국제통상법에 접목시키는 ‘퓨전학문’을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씨가 합격한 대학 4곳은 토플 107점이 되지 않으면 응시할 수 없지만 그가 제출한 것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세이·학업계획서가 전부였다고 한다. 하지만 4곳 모두 영어 점수와 인터뷰를 요구하지 않은 채 서류전형만으로 그를 우수 그룹(Talented group)으로 합격시켰다.
박씨는 “해외 명문대들은 시험 점수만으로 당락을 결정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학교에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외부 활동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 합격 비결”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고 입학을 허락했다는 얘기다.
그는 “법대생들이 사법고시에 매달리는 동안 인권·평화 등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며 나만의 이력을 쌓은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2007년 2월 한국 대학생 중 처음으로 로아시아(Lawasia)국제법률토론대회에 대학생 대표로 참가했다. 논문 공모전에서 8차례 당선됐다. 또 입양단체와 인권평화 단체 등 30군데 이상의 NGO에서 활동했다. 2003년 글로벌평화연구회를 만들어 환경·인권·경제정의 등 전문 영역별 연구를 하고 있다.
◆토익 330점이 980점 되기까지=그가 대학에 입학해 처음 치른 토익 점수는 330점. 혹시나 하고 다시 본 시험도 320점을 받았다. 안동에서 고교까지 다니면서 영어 내신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그는 “경상도 출신이라 사투리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영어에 재주가 없는 건지 좌절했었다”고 털어놨다.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에서 통역 봉사를 한 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국내에 들어온 입양아와 한국인 부모가 만나는 자리에 통역을 하러 나갔는데 영어가 서툴러 대화를 제대로 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씨는 자신의 영어 공부법을 ‘불도저식’이라고 표현했다. 9개월 동안 영어 공부만 한 적도 있었다. 박씨는 “한국어 방송은 아예 보지도 않고, 한국말을 할까봐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가 고프면 영어로 ‘I am dying with hunger’라고 생각했다. 거리를 지날 때 보는 자동차번호·간판도 영어로 바꿔 읽었다.
영어 말하기 연습을 위해 비디오방 단골손님이 됐다. 화면 자막을 청테이프로 가리고 배우들이 하는 말을 따라 했다. 소리를 지르듯 큰 목소리로 배우의 표정·몸짓을 흉내 냈다.
하루는 밖에서 듣고 있던 비디오방 주인이 너무 잘한다며 자녀들의 과외를 부탁하기도 했단다. 쓰기 연습도 ‘불도저식’이다. 영어 발음이 들리든 않든 무조건 받아 적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땐 영어 초급자처럼 한글 발음을 달아 영어사전에서 비슷한 발음을 찾으며 공부했다. 박씨는 2002년 토익 980점을 받았다.
◆“소처럼 천천히 책 읽기”=안동에 사는 박씨의 부모는 농사를 짓는다. 박씨는 “학업과 농사일을 병행하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했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공부하고 시간 관리하는 법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그는 “소처럼 천천히 책을 읽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독서노트에 메모를 했다”고 말했다. “메모 양이 워낙 많아 그걸 모아 논문을 쓴 적도 있다”고 한다.
박씨는 “여행을 가면 정해진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떠나기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지칠 여유도 없이 움직인다”며 “공부도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철저히 관리해야 원하는 결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스스로 머리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는 훈련을 많이 했다”며 “머리가 멍해질 때마다 머리·손 등 신체 일부를 흔들어 집중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는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는 자기 암시도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형을.위해.부족한.내가.해줄수.있는.일.
형에 대한 우애도..사랑이려나..ㅡㅡㅋ
이 글을 형이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형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글을 적게 되네.
대학원 준비 때문에..영어학원 다닌다고..전공공부 해야된다고..과외도 하는데..봉사활동도..
이런저런 핑계 때문에 친형이 책을 썼는데도 주위 사람들한테 홍보하는게 전부였구나.
시골에서 나고자란 3남매가 서울에서 뿔뿔히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데,
같이 살 형편이 안되서 흩어져 고시원이다 기숙사등지에서 머물고 있다고.
서로가 바쁘다고 한달에 한번 보기도 힘이 들구나.
각박한 객지생활도 어느덧 8년이 다 되어가고.
때론 부모님께 응석도 부리고 싶고,집에서 해 주는 따뜻한 밥 한그릇이 그리울 때도
많았지만 객지생활 하는 사람이 어찌 나 혼자 뿐이겠나.
여튼...이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쓰는 글..
형은 해외 로스쿨 명문대 4곳에 합격했는데 미국 로스쿨이 돈이 좀 들어가나요..
우리 집이 형 미국 보낼 형편 안되는건 당연하고 그래서 책도 냈다네요.
책 팔아서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출판사가 93% 가지고 형이 7% 가질 수 있다네요.
(음..좀 불쌍해 보여야 되는데..흠..)
열심히 응원 해 주고 싶습니다.
형이니까..가족이니까....힘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건 고작 이런 글 밖에 안되니까..
형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을 조금 기재할게요
해외 명문 로스쿨 4관왕
박희정씨 합격기 [중앙일보] "30군데 NGO 활동 높게 평가 받아”
경북 안동의 산골 소년이 세계적인 명문 로스쿨 4곳에 동시 합격했다. 과외나 학원은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는 박희정(30)씨는 최근 아이비리그인 코넬대를 비롯해 런던정경대, 사립 명문 USC, 비엔나대 등에서 입학 러브콜을 받았다.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erprise)가 되겠다는 꿈이 에너지를 충전시켜 줬기 때문이다. 런던정경대 로스쿨 입학을 위해 22일 영국으로 떠나는 박씨를 만났다.◆“영어 점수·인터뷰 없이 OK”=올 2월 건국대 법대를 졸업한 박씨가 해외 로스쿨을 선택한 것은 인권·평화를 국제통상법에 접목시키는 ‘퓨전학문’을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씨가 합격한 대학 4곳은 토플 107점이 되지 않으면 응시할 수 없지만 그가 제출한 것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세이·학업계획서가 전부였다고 한다. 하지만 4곳 모두 영어 점수와 인터뷰를 요구하지 않은 채 서류전형만으로 그를 우수 그룹(Talented group)으로 합격시켰다.
박씨는 “해외 명문대들은 시험 점수만으로 당락을 결정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학교에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외부 활동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 합격 비결”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고 입학을 허락했다는 얘기다.
그는 “법대생들이 사법고시에 매달리는 동안 인권·평화 등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며 나만의 이력을 쌓은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2007년 2월 한국 대학생 중 처음으로 로아시아(Lawasia)국제법률토론대회에 대학생 대표로 참가했다. 논문 공모전에서 8차례 당선됐다. 또 입양단체와 인권평화 단체 등 30군데 이상의 NGO에서 활동했다. 2003년 글로벌평화연구회를 만들어 환경·인권·경제정의 등 전문 영역별 연구를 하고 있다.
◆토익 330점이 980점 되기까지=그가 대학에 입학해 처음 치른 토익 점수는 330점. 혹시나 하고 다시 본 시험도 320점을 받았다. 안동에서 고교까지 다니면서 영어 내신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그는 “경상도 출신이라 사투리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영어에 재주가 없는 건지 좌절했었다”고 털어놨다.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에서 통역 봉사를 한 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국내에 들어온 입양아와 한국인 부모가 만나는 자리에 통역을 하러 나갔는데 영어가 서툴러 대화를 제대로 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씨는 자신의 영어 공부법을 ‘불도저식’이라고 표현했다. 9개월 동안 영어 공부만 한 적도 있었다. 박씨는 “한국어 방송은 아예 보지도 않고, 한국말을 할까봐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가 고프면 영어로 ‘I am dying with hunger’라고 생각했다. 거리를 지날 때 보는 자동차번호·간판도 영어로 바꿔 읽었다.
영어 말하기 연습을 위해 비디오방 단골손님이 됐다. 화면 자막을 청테이프로 가리고 배우들이 하는 말을 따라 했다. 소리를 지르듯 큰 목소리로 배우의 표정·몸짓을 흉내 냈다.
하루는 밖에서 듣고 있던 비디오방 주인이 너무 잘한다며 자녀들의 과외를 부탁하기도 했단다. 쓰기 연습도 ‘불도저식’이다. 영어 발음이 들리든 않든 무조건 받아 적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땐 영어 초급자처럼 한글 발음을 달아 영어사전에서 비슷한 발음을 찾으며 공부했다. 박씨는 2002년 토익 980점을 받았다.
◆“소처럼 천천히 책 읽기”=안동에 사는 박씨의 부모는 농사를 짓는다. 박씨는 “학업과 농사일을 병행하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했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공부하고 시간 관리하는 법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그는 “소처럼 천천히 책을 읽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독서노트에 메모를 했다”고 말했다. “메모 양이 워낙 많아 그걸 모아 논문을 쓴 적도 있다”고 한다.
박씨는 “여행을 가면 정해진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떠나기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지칠 여유도 없이 움직인다”며 “공부도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철저히 관리해야 원하는 결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스스로 머리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는 훈련을 많이 했다”며 “머리가 멍해질 때마다 머리·손 등 신체 일부를 흔들어 집중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는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는 자기 암시도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글=박정현 기자,사진=정치호 기자
<내 꿈에 국경은 없다. 박 희 정 >
....여기까지 읽으신 분 있으면..
당신이 더 대단하신 분입니다.
정말.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