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한가로운 빛을 받으며 2004년 대학 신입생의 모습으로 다시금 덕수궁 안으로 들어섰다. 미대생이라는 멋진 명찰을 달고 동기들과 교수님과 함께 방문 했던 그 때의 설레는 마음으로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전시중인 'LATIN AMERICAN ART' 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미술관 조명 탓인지 내 시야로 흙냄새를 머금은 토속적인 색감이 가득 들어찼다.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민중예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됐다. 무엇보다 앞에서 말했듯이 프리다 칼로, 그녀만의 독창적인 여성성의 한 부분을 직접 느끼게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숨이 차올랐다. 그녀의 일대기를 서술한 책에서 '나의 탄생'이란 그림을 보고서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던 지난날이 떠올라서 일게다. 그 유명한 그림이 이번 전시에 속해있지 않더라도 나에게 만큼은 쉽게 찾아오지 못할 기회임에는 틀림없었다.
시대를 겪어오면서 변화하는 미술을 대변하는 작가들의 붓질을 느끼다보면 어느 샌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당장이라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그들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라틴 특유의 열정적인 느낌을 표현하듯 다소 굵고 묵직하며 거친 터치들이 그들의 삶과 영혼을 지켜주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선과 면을 분할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들의 존재를 찾고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인체 묘사를 그려내려 한 것일까, '보이는 대로 그린다.' 는 프리다 칼로, 역시 자화상을 통해 존재로 향하는 내면의 세계에서 깊은 고통의 성찰을 하려했다. 고통이란게 실질적으로는 아픔을 승화시킨 것이나, 나는 고통 속에서 희열을 느꼈던 그녀라 여긴다. 그 누가 그토록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 했겠는가! 직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그녀가 보여주고 싶었던 이상을 지금의 내가 물론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계기로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는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하고자 했던 이념의 모든 면에 나만의 색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조금씩 조금 씩 서로 다른 색을 섞어가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색’만들기는 계속 되고 있다. 예술 안에서 여러 갈래의 길이 나있는 미로 속에 갇혀 있다 한들 길이 막힌 길까지도 경험으로 삼으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은 내 인생에서도 중요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서유럽의 식민지로 착취당했던 라틴아메리카도 그 안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듯이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 수 록 더욱더 화려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화면을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그린 듯 한 원근감과 구도는 서투른 느낌을 자아내며 눈에 확 들어오는 라인은 불분명한 존재에 확실한 쐐기를 박으려는 듯 다양한 인종의 혼혈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거 칠은 붓놀림은 초현실주에서 상징성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구성주의에서 경제의 산업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한 단계 나아가 그들만의 조형적인 옵아트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하늘빛을 닮은 에메랄드 빛 의 푸른 색 이 뜨겁고도 잔혹하며 선정적인 붉은 계통의 색들과 오묘하게 어울렸다는 점이다. 원색의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하는 색들의 조화를 느끼게 된다면 그들의 감성에 완전히 빠져들게 될 것이다.
토막 난 나무나 생선처럼 토막 내어도 될 듯한(매우 비현실적인 표현이지만) 인체표현을 보고 있자면 인종의 다양성을 실질적으로 깨닫게 된다. 온전치 못한 인간을 보여주듯 마디 없이 끝이 뾰족한 손가락은 배경으로 많이 그려진 식물과도 유사했다. 명암의 차이가 눈에 선명한 그림에서 나를 향해 포즈를 취한 여성과 남성들은 각자 자신들의 문화를 보여 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럼에 나 또한 1층과 2층 사이를 오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예전의 나는 나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주로 그렸더랬다. 평소에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나만이 아는 표정을 익살스럽게 그려내곤 했는데 불완전하고 미성숙 했던 시기였기에 채우지 못한 무언가를 그림으로써 표현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색감하나에도 여러 단계로 나뉠 수 있다는 생각하나로 같은 색에서 같은 명암을 찾고 당연시 됐던 색의 조합으로만 희열의 순간에 도달하고자 했던 어린 나를 위로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써 나를 찾고자하는 동기부여는 된 셈이니 앞으로의 작업에 작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관
덕수궁 미술관 'LATIN AMERICAN ART' 전시관람.
- 우리는 누구인가 -
한 낮의 한가로운 빛을 받으며 2004년 대학 신입생의 모습으로 다시금 덕수궁 안으로 들어섰다. 미대생이라는 멋진 명찰을 달고 동기들과 교수님과 함께 방문 했던 그 때의 설레는 마음으로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전시중인 'LATIN AMERICAN ART' 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미술관 조명 탓인지 내 시야로 흙냄새를 머금은 토속적인 색감이 가득 들어찼다.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민중예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됐다. 무엇보다 앞에서 말했듯이 프리다 칼로, 그녀만의 독창적인 여성성의 한 부분을 직접 느끼게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숨이 차올랐다. 그녀의 일대기를 서술한 책에서 '나의 탄생'이란 그림을 보고서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던 지난날이 떠올라서 일게다. 그 유명한 그림이 이번 전시에 속해있지 않더라도 나에게 만큼은 쉽게 찾아오지 못할 기회임에는 틀림없었다.
시대를 겪어오면서 변화하는 미술을 대변하는 작가들의 붓질을 느끼다보면 어느 샌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당장이라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그들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라틴 특유의 열정적인 느낌을 표현하듯 다소 굵고 묵직하며 거친 터치들이 그들의 삶과 영혼을 지켜주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선과 면을 분할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들의 존재를 찾고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인체 묘사를 그려내려 한 것일까, '보이는 대로 그린다.' 는 프리다 칼로, 역시 자화상을 통해 존재로 향하는 내면의 세계에서 깊은 고통의 성찰을 하려했다. 고통이란게 실질적으로는 아픔을 승화시킨 것이나, 나는 고통 속에서 희열을 느꼈던 그녀라 여긴다. 그 누가 그토록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 했겠는가! 직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그녀가 보여주고 싶었던 이상을 지금의 내가 물론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계기로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는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하고자 했던 이념의 모든 면에 나만의 색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조금씩 조금 씩 서로 다른 색을 섞어가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색’만들기는 계속 되고 있다. 예술 안에서 여러 갈래의 길이 나있는 미로 속에 갇혀 있다 한들 길이 막힌 길까지도 경험으로 삼으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은 내 인생에서도 중요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서유럽의 식민지로 착취당했던 라틴아메리카도 그 안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듯이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 수 록 더욱더 화려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화면을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그린 듯 한 원근감과 구도는 서투른 느낌을 자아내며 눈에 확 들어오는 라인은 불분명한 존재에 확실한 쐐기를 박으려는 듯 다양한 인종의 혼혈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거 칠은 붓놀림은 초현실주에서 상징성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구성주의에서 경제의 산업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한 단계 나아가 그들만의 조형적인 옵아트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하늘빛을 닮은 에메랄드 빛 의 푸른 색 이 뜨겁고도 잔혹하며 선정적인 붉은 계통의 색들과 오묘하게 어울렸다는 점이다. 원색의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하는 색들의 조화를 느끼게 된다면 그들의 감성에 완전히 빠져들게 될 것이다.
토막 난 나무나 생선처럼 토막 내어도 될 듯한(매우 비현실적인 표현이지만) 인체표현을 보고 있자면 인종의 다양성을 실질적으로 깨닫게 된다. 온전치 못한 인간을 보여주듯 마디 없이 끝이 뾰족한 손가락은 배경으로 많이 그려진 식물과도 유사했다. 명암의 차이가 눈에 선명한 그림에서 나를 향해 포즈를 취한 여성과 남성들은 각자 자신들의 문화를 보여 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럼에 나 또한 1층과 2층 사이를 오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예전의 나는 나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주로 그렸더랬다. 평소에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나만이 아는 표정을 익살스럽게 그려내곤 했는데 불완전하고 미성숙 했던 시기였기에 채우지 못한 무언가를 그림으로써 표현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색감하나에도 여러 단계로 나뉠 수 있다는 생각하나로 같은 색에서 같은 명암을 찾고 당연시 됐던 색의 조합으로만 희열의 순간에 도달하고자 했던 어린 나를 위로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써 나를 찾고자하는 동기부여는 된 셈이니 앞으로의 작업에 작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