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하다,

김지미2008.09.07
조회66


 

 

헤어진 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남자의 미니홈피에도 개점휴업 간판이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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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컴퓨터만 켜면 제일 먼저 찾아가던 곳이었지만,
이젠 가봤자 속상하기나 하구, 슬프기나 하구,
그게 아니면 남들이 보기엔 유치하기만 할 시련의 푸념이나 하게 될 게 뻔했다.
너무 힘들다, 슬프다, 가슴이 아프다..
정말이지 남들처럼 그런 말 따위는 쓰고싶지 않았다.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래서 헤어진 후, 남자는 단 한번 미니홈피에 들러
그저 사진들을 비공개로 돌리고 인사말 정도만 바꾸어 놓았다.
'영원히 둘이서' 라는 말은 이제 너무 어울리지 않으므로
남자의 바뀐 인사말은 이것이었다.
'시간은 흐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남자가 자기 홈피에 접속했을 때
남자는 방명록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이름을 발견했다.
그것은 헤어진 그녀의 이름.. 남겨진 메세지는 이런 것이었다.


- 인사말 바뀌었네. 시간은 흐른다.. 좋은 말이네. 잘 지내지?


겨우 괜찮은 척하고 있는데,
불쑥 찾아와서는 이따위 메세지나 남기는 마치 테러같은 행동.
남자는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래서 아주 긴 답장을 썼다.

- 그래.. 시간은 흐르지..
근데 시간이 얼마나 상대적인진 너도 알고 있지? 비행길 탔는데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는 거 같애.
양쪽에는 덩치큰 남자 둘이 앉아서 둘다 내 팔걸이까지 차지해 버렸어.
난 중간에 껴서 다리도 못편 채로 이러고도 10시간을 더 날아가야 돼.
잠을 자볼까 했지만 그럴 수도 없어.
엄청난 소리로 한 명은 코를 골고 또 다른 한 명은 이를 갈고 있거든.
비행기가 꽉차서 자리를 바꿀 수도 없어. 기차처럼 중간에 내릴 수도 없지.
헤드폰을 쓰고 영화를 볼까 생각도 했지만 짜증이 나서 영화의 내용이 보이지도 않아.
이제 좀 시간이 지났나 싶어, 시계를 보면 겨우 5분 지났구,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일어나면 겨우 30분 지났어.
인사말이 마음에 든다구? 잘 지내냐구? 나 이렇게 지낸다.
나한테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어. 넌.. 이런게 궁금했냐..?


몇 번이고 고쳐쓴 남자의 글은 하지만 곧 지워졌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그렇게 혼자서 화내고 삭히는 동안
덕분에 힘든 밤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대신 남자는 그녀의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 무심한듯한 짧은 답장을 남겼다.
다만 의문문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 난 잘 지낸다. 너도.. 잘 지내라.


그리고 남자가 미니홈피에 걸어놓은 노래 하나.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고 현명해지면
지금은 너무 아픈 말들도 그때는 의미없이
가을바람처럼 내곁을 스쳐가겠지?
시간마져 희미해진 그 먼날,
사람들이 내게 너를 아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웃으면서 대답하겠지.
내 친구 중 하나였다고, 슬픔은 내 눈가에서 사라지겠지.
내가 더 나이를 먹고 현명해진 그때쯤엔,
When I'm old and wise~





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