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집권전에 우리나라가 무슨 아프리카 오지 나라처럼 못사는 나라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82달러 정도 대만이 90달러 근처
일본이 500달러 세계 최부국 미국이 3000달러였던 시절이다.
이건 동남아 수준의 가난이지 아프리카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우리나라의 경이적인 소득증가의 진실은?
그가 죽기전 1979년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636달러였다
그가 처음 집권했을때 82달러에 비하면 무려 20배가 넘게 증가했다
얼핏 보면 대단한 성과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환율의 역할이 결정적이였다.
60년 12월까지 달러 당 65원이었던 환율이 집권시기인 61년 130원으로 두 배 올랐다.
또 박정희가 죽을 때 환율이 485원이었는데 74년부터 6년간 지속되
어온 이 환율이 두 달 후인 80년 1월에는 20% 상승한 580원이었고 연말에는 700원에 육박하였다.
다시 말해 박정희는 집권 직전 2배의 환율 상승으로 저평가 된 국민소득액(82$)에서 출발하여 환율상승 전에 죽는 바람에(485원의 환율이 6년간 유지됨) 고평가된 국민소득액(1,636$)을 유지한 상태에서 죽었다.
즉 박정희는 집권과 종료시 환율변동을 잘 타는 바람에 외형상 성장률이 엄청나게 증폭되었던 것이다.
1969년 박정희가 집권한지 9년 째 국민소득은 210달러였고 그가 죽기 전인 1979년 국민소득은 1630달러 가량이였다.
그러나 똑같은 시기 대만의 1969년 국민소득은 345달러였고 1979년 대만의 국민소득은 1920달러였다.
한국 대만 일본 1969년 210 345 1670 1970년 249 389 1984 1971년 286 443 2189 1972년 316 522 2855 1973년 394 695 3836 1974년 540 920 4206 1975년 592 964 4475 1976년 799 1132 4976 1977년 1009 1301 6069 1978년 1399 1577 8457 1979년 1636 1920 8736
또 두번째 그의 경제성장률
박정희가 평균 9%에 가까운 경제성률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절은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고성장을 하던 시기다.
중국이 9.6%의 성장률
대만이 10%정도의 성장률
싱가포르 홍콩도 9%의 성장률을 올렸다.
어느나라나 급성장하는 시기가 있고
그 시기가 지나면 저성장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지금의 개도국들도 대부분 8%의 고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60년대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거침없는 이 주장은 과연 편협한 정치적 이념 등이 섞이지 않은 과학적 타당성을 확보한 것일까? 그는 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가 궁금하다. 독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동아시아 네 마리 용도 결코 우리나라에 뒤지지 않는 높은 경제성장을 하고 있었다.
일본은 1955년부터 15년간 연평균 15.1%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함으로서 당시 세계가 놀랐으며, 이후 세계경제대국 2위에 도약, 서구에서 일본을 벤치마킹하자는 열기가 일어난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동경의 기적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음. 2000년 아시아 개발은행 자료에 의하면 1965년부터 1980년까지 동아시아 주요국의 연평균 GNP 증가율은 싱가포르가 10.1%로 가장 높았고 대만이 9.8%, 한국 9.5% 그리고 홍콩 8.6%의 순서로 되어 있다. 같은 기간 동안 위 국가들의 실질경제성장률은 일본 10.4%이고 싱가포르는 8.5%, 대만 7.5%, 한국 6.8%, 홍콩은 6.2%로 되어 있다]
또한 몇몇의 사람들은 전쟁터의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주장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
그러나 경제성장은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시동을 걸었다. 성장률이 57년에 7.6%, 58년 5.5%, 59년 3.9% 등을 기록하여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섰던 것이다. 매년 50% 안팎으로 오르던 물가도 57년부터는 한 자리수로 안정되었다. 이승만정권이 붕괴되던 60년에는 성장률이 1.2%에 그쳤지만, 4ㆍ19혁명으로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군사정권이 선전했던 61년에는 다시 5.9%로 뛰어올랐다. 또한 물가 역시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완벽하게 은폐되고 말았다.
박정희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다" -경제학자 최용식, 《경제역적들아 들어라》의 저자
박정희의 재평가
내
내가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게,
반민족주의자,독재자를 우리나라 최고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거다.
그들이 친일파에다 독재자를 우리나라 최고 대통령이라고 받드
는 이유는 단 하나다 '경제'를 살렸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그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경제성장도 허구가 대부분이며 부풀련진게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집권전에 우리나라가 무슨 아프리카 오지 나라처럼 못사는 나라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82달러 정도 대만이 90달러 근처
일본이 500달러 세계 최부국 미국이 3000달러였던 시절이다.
이건 동남아 수준의 가난이지 아프리카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우리나라의 경이적인 소득증가의 진실은?
그가 죽기전 1979년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636달러였다
그가 처음 집권했을때 82달러에 비하면 무려 20배가 넘게 증가했다
얼핏 보면 대단한 성과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환율의 역할이 결정적이였다.
60년 12월까지 달러 당 65원이었던 환율이 집권시기인 61년 130원으로 두 배 올랐다.
또 박정희가 죽을 때 환율이 485원이었는데 74년부터 6년간 지속되
어온 이 환율이 두 달 후인 80년 1월에는 20% 상승한 580원이었고 연말에는 700원에 육박하였다.
다시 말해 박정희는 집권 직전 2배의 환율 상승으로 저평가 된 국민소득액(82$)에서 출발하여 환율상승 전에 죽는 바람에(485원의 환율이 6년간 유지됨) 고평가된 국민소득액(1,636$)을 유지한 상태에서 죽었다.
즉 박정희는 집권과 종료시 환율변동을 잘 타는 바람에 외형상 성장률이 엄청나게 증폭되었던 것이다.
1969년 박정희가 집권한지 9년 째 국민소득은 210달러였고 그가 죽기 전인 1979년 국민소득은 1630달러 가량이였다.
그러나 똑같은 시기 대만의 1969년 국민소득은 345달러였고 1979년 대만의 국민소득은 1920달러였다.
한국 대만 일본
1969년 210 345 1670
1970년 249 389 1984
1971년 286 443 2189
1972년 316 522 2855
1973년 394 695 3836
1974년 540 920 4206
1975년 592 964 4475
1976년 799 1132 4976
1977년 1009 1301 6069
1978년 1399 1577 8457
1979년 1636 1920 8736
또 두번째 그의 경제성장률
박정희가 평균 9%에 가까운 경제성률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절은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고성장을 하던 시기다.
중국이 9.6%의 성장률
대만이 10%정도의 성장률
싱가포르 홍콩도 9%의 성장률을 올렸다.
어느나라나 급성장하는 시기가 있고
그 시기가 지나면 저성장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지금의 개도국들도 대부분 8%의 고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60년대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거침없는 이 주장은 과연 편협한 정치적 이념 등이 섞이지 않은 과학적 타당성을 확보한 것일까?
그는 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가 궁금하다. 독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동아시아 네 마리 용도 결코 우리나라에 뒤지지 않는 높은 경제성장을 하고 있었다.
일본은 1955년부터 15년간 연평균 15.1%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함으로서 당시 세계가 놀랐으며, 이후 세계경제대국 2위에 도약, 서구에서 일본을 벤치마킹하자는 열기가 일어난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동경의 기적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음. 2000년 아시아 개발은행 자료에 의하면 1965년부터 1980년까지 동아시아 주요국의 연평균 GNP 증가율은 싱가포르가 10.1%로 가장 높았고 대만이 9.8%, 한국 9.5% 그리고 홍콩 8.6%의 순서로 되어 있다. 같은 기간 동안 위 국가들의 실질경제성장률은 일본 10.4%이고 싱가포르는 8.5%, 대만 7.5%, 한국 6.8%, 홍콩은 6.2%로 되어 있다]
또한 몇몇의 사람들은 전쟁터의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주장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
그러나 경제성장은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시동을 걸었다.
성장률이 57년에 7.6%, 58년 5.5%, 59년 3.9% 등을 기록하여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섰던 것이다. 매년 50% 안팎으로 오르던 물가도 57년부터는 한 자리수로 안정되었다.
이승만정권이 붕괴되던 60년에는 성장률이 1.2%에 그쳤지만, 4ㆍ19혁명으로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군사정권이 선전했던 61년에는 다시 5.9%로 뛰어올랐다. 또한 물가 역시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완벽하게 은폐되고 말았다.
박정희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다"
-경제학자 최용식, 《경제역적들아 들어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