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원티드

최용진200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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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여름이 절반이나 남았지만) 올 여름 가장 좋았던 블록버스터는 단연 [원티드]였다!

  [쿵푸팬더]에겐 약간 미안하지만...

 

 

  [원티드]의 미흡한 스토리를 거론하며 영화를 깎아내리는 평론가들에게 원펀치 쓰리 강냉이를 날려주고 싶다. 이 영화는 아주 놀라울 만큼의 미덕이 많은 영화이다. 물론 [원티드]가 최고의 영화는 아니다. 엄밀히 말해 최고의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론 기대 이상의 영화였고, 스토리 때문에 폄하되는 측면에 다소 섭섭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니 읽는 분들은 이 점을 감안하여 다소 호들갑스럽게 칭찬을 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하면서 글을 봐주길 바란다. 그럼 차례로 열거해보겠다.

 

 

  1. '제임스 맥어보이'라는 배우의 발견

 

  이 배우가 드디어 사고칠 줄 알았다! [나니아 연대기]에선 도저히 사람처럼 생기지도 않았던 땅꼬마가 [스트리트 킹]을 거쳐 점점 사람으로 변신하더니 [원티드]에선 이른바 포스 작렬!! 매력을 마구 발산하신다. 그것도 모건 프리먼,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멋진 배우들 사이에서 말이다. 언뜻 떠올려봐도 졸리 누님과 같이 공연한 배우 중에 그녀의 카리스마와 매력에 찌그러지지 않은 배우를 손꼽기란 쉽지 않은데, 제임스 맥어보이는 묻히기는 커녕 되려 졸리 누님을 압도하는 빛을 발한다. 존재감이 없는 웨슬리로도, 힘과 분노를 뿜어내는 킬러로도, 유약하고 멋모르는 소년으로도, 당당히 아버지를 딛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내는 성장남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연기력을 과시한다.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우러져 있고, 그의 작은 체구엔 금방이라도 만개할 듯한 포텐셜이 꿈틀댄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쓴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너무나 매력적인 배우이다. [원티드] 한 편만으로 제임스 맥어보이에게 완전 매료되고 말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검색하여 아무런 Result가 없는 것을 한탄하는 초반 장면을 볼 때만 해도 그저 존재감 없는 캐릭터엔 이 배우가 딱이겠거니 했다. 폭스(졸리)에게 납치되어 끌려가는 장면을 보면서는 이 배우 역시 영화 내내 졸리 누님한테 끌려다니겠거니 했다. 그런데 단계별 훈련을 거치며 킬러로 거듭나는 장면에서 맥어보이 또한 폭발적인 힘을 가진 배우의 면모를 서서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가 잡은 총에서 불이 뿜고 몸에서 피가 튀길 때마다 그의 벌개진 얼굴에선 파워와 아드레날린이 뿜어져나왔다.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슬픔이 표현될 때는 한없이 여린 꼬마 아이처럼 유약했다. 복수를 결심하며 계획을 짜는 장면에선 분노 속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영리함이 돋보였다. 자기 삶을 개척하고 자아를 찾겠다는 (인상적인) '총알 테이크 백 시퀀스'(나는 이렇게 명명하겠다. 달리 좋은 표현이 없다.)에선 시원스럽고도 선한 인상이 풍겨났다. 한마디로 근간의 블록버스터 중에 이렇게 완벽한 캐스팅은 본 적이 없다.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배트맨비긴즈]의 크리스천 베일도 맥어보이에는 어림 없다. [스파이더맨]의 토비 맥과이어 정도면 필적할 만 하겠다.

 

 

  2. 액션 시퀀스의 절묘함  

 

  액션 시퀀스에 CG가 얼마나 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의 액션씬은 실로 물리적이고 통쾌하다. 창의적인 콘티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이는 비단 액션 시퀀스 뿐 아니라 영화 전체에 해당하는 얘기겠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총알 시네루의 장면보다도 카체이싱이나 마샬아츠의 콘티가 더욱 인상적이다. 거기에 근사한 촬영, 절묘한 컷의 분배, 배우들의 연기가 보태져 보는 이의 심장을 마구 두드려댄다.

 

  그러나 더욱 칭찬하고 싶은 점은 감독이 원하는 의도에 액션 씬들을 정확히 부합시킨 성과라고 하겠다. 총알 테이크 백 시퀀스가 그렇다. 극의 시작과 마무리에 두 번 등장하는 이 시퀀스는 영화에서 각각 다른 의미의 기능을 수반한다. 처음엔 시각을 자극하고 극에 몰입을 돕는 시원스런 장면으로 쓰인다. 인물이 총을 맞은 시점에서 롤백하여 총알이 다시 결합되고 총구로 들어가며 그것을 쏜 사람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희생자를 먼저 보여주고 그것을 쏜 사람이 누군지를 나중에 밝히는 이 지혜로운 장면은 희생자가 아버지로 오인되는 인물이고, 그것을 쏜 사람이 진짜 아버지임을 드러내는 암시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극의 마지막에도 반복되는데 이 때는 조금 다른 기능으로 사용된다. 바로 극의 주제에 부합하는 용도로 쓰이는데, 자신을 규정하고 옭아매던 모든 요소들을 총알이 롤백하면서 뚫고 지나간다. 전과 같은 획일화된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총알에 깃들어있으며, 그 총알이 복수의 상대, 직장 상사의 도너츠, 바람난 애인의 음료수 캔 등을 지나 웨슬리 본인의 총구로 들어올 때면 관객들도 이 영화의 주제가 단 한번의 시퀀스에 절묘하게 요약되어 있음에 감탄하게 된다. 창의적인 액션 시퀀스가 영화를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3. 메이저 장르에서 보이는 풋풋한 마이너 성향

 

  [원티드]의 진정한 미덕은 바로 이 세번째 논지에 있다.

 

  메이저 장르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블록버스터에서는 볼 수 없는 풋풋한 마이너 장르의 요소들이 숨겨져있다. 일단 다른 블록버스터처럼 요란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고나서 한참이 지나도 그 흔한 타이틀 로고 조차 뜨지 않는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딘가 무심코 스치고 지나가겠거니 하고 예상했는데, 역시 영화가 꽤 흐르고 나서야 수배전단 상단에 'WANTED'라고 은근슬쩍 비추고 넘어가버린다. 이것은 그저 재미있는 장난에 불과하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건 영화가 앞으로 그런 성향을 다분이 내포하고 있음을 알리는 선전포고와도 같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획일화된 시스템 내부에 묻혀있는 현대인을 다소 과장되게 그려내는 단편 영화(내지는 애니메이션)처럼 느껴진다. 장르 영화에서 왠만하면 지켜야 할 15분 법칙(15분 안에 첫번째 플롯 포인트를 가져가야 한다는 법칙-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선 필수이다.)도 무시한 채, 영화는 주인공 웨슬리의 무의미해보인 삶에 카메라를 밀착시킨다. 나중에 킬러가 되는 웨슬리의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주기 위해 뚝심있고 세심하게 묘사하는 도입은 자체로도 칭찬 받을만 하거니와, 그 표현 방식이 마이너적인 요소를 가득 담고 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줘도 좋을 듯싶다.

 

  시종일관 앙증맞고 창의적인 유머를 잃지 않는 점도 논지와 일맥상통하는 장점이다. 광고 감독 출신 답게 산뜻하고 시각적으로 즐거운 유머를 곳곳에 삽입해 놓았는데, 이를테면 바람난 애인의 상대인 직장 동료의 얼굴을 키보드로 강타할 때 자판이 튕겨져 나와 'FUCK YOU' (그것도 마지막 'U'는 그 친구의 뽑인 치아이다!)를 형성한다든지, 주인공의 위기 의식이 마트의 상품 홍보 카피문구에 절묘하게 부합되어 도드라진다는 식의 유머는 시각적인 즐거움과 동시에 다소 매니아적인 취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블록버스터의 닳고 닳은 클리셰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기존에 볼 수 없던 마이너풍의 즐거움을 관람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블록버스터 치고는 다분히 진중한 주제의식도 이 영화가 지닌 마이너 성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지나친 비약일 수 있기 때문에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겠다. 최근 블록버스터의 성향을 보면 그리 흔한 일은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팀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둘 다), 이안의 [헐크]등 그 예는 얼마든지 있다.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장르 영화 중엔 가장 진중한 담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혈의누] 같은 영화도 있다. [원티드] 역시 (개인적인 견해로는) 열거한 이들 영화에 뒤쳐지지 않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장르 영화로는 드물게 ([살인의 추억]처럼) 카메라를 직접 쳐다보면서 주제를 던지는 화법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크게 의의를 둘 수 있는 부분이 아님은 자명하지만 어쨌든 예사롭지 않은 기법을 많이 쓰고 있다는 방증엔 도움이 된다. 영화는 2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끊임 없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언급한 총알 테이크 백 시퀀스에 이르러서 다분히 시각적이고 영화적인 기법으로 훌륭히 요약되고 있다.  

 

  영화의 핵심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를 되짚는 장면도 충분히 흥미롭다. 웨슬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직장으로 대표되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찾으려 해보기도 하고, 아버지에게서 찾으려고도 한다. 자신의 성향에 대한 탐구도 하고, 다양한 각도로 자신의 정체성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 본다. 그러나 어쨌든 이 모든 것에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면은 없으며 이 모든 고찰을 토대로 내가 있게 됨을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영화의 소재로 쓰인 방직 공장과 운명의 실은 흥미로운 메타포이다. 방직 공장에서 만들어진 천은 획일적인 시스템을 의미한다. 날틀의 정확한 움직임이 있어야만 제대로 천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실의 정확한 얼개가 뒤틀려서 올이 제 순서에 맞지 않게 짜여진 부분이 암호로 사용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획일적인 시스템을 벗어나고픈 주인공의 욕구에 걸맞는 아이콘으로 작용한다. 운명의 실이 가득 짜여진 방에 위치한 웨슬리의 모습은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직장에 있을 때와 별 다를 바가 없다. 기껏 도망쳐 나와서 또 비슷한 상황에 놓여진다. 거기에 웨슬리의 비극이 숨겨져있다. 킬러로 거듭나는 것 같더니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잔인한 운명의 실타래에 얽매이고 혼란을 겪는다. 그래도 두 번 실수는 없는 법, 영화의 후반부는 웨슬리가 처한 다분히 공간에 얽힌 실수를 바로 잡는 장면을 경쾌하게 담고 있다. 마치 천에서 삐져나온 올처럼 그는 집단이 가져오는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카니발을 추구한다.

 

 

  [원티드]는 스토리가 미흡한 영화일 수도 있다. 분명 슬로언(모건 프리먼)이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여러 번 꼰다고 꼬았는데 별 재미가 없는 복선등은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러나 스토리 상에서도 장점은 있다. 웨슬리가 킬러로 재탄생하기 위해 단계별로 학습해 나가는 장면은 마치 아이언맨이 최적의 성능을 내기 위해 실험을 거듭하는 장면처럼 흥미롭다. 슬로언이 아버지의 방에서부터 자신을 찾으라고 웨슬리에게 꾸며준 가짜 방에서 속았다가 나중에 진짜 아버지의 방을 발견하고 나서 진정한 결심을 하게 된다는 설정도 역시 재미있는 부분이다.

 

  단점이 있어도 장점이 그것들을 충분히 가려준다. 서두에 말했듯, 최고의 영화는 아니어도 [원티드]는 칭찬 받아 마땅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