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나라

정성훈2008.09.10
조회485

 

KBS특별기획드라마 바람의나라!

 

원작만화의 영화를 그대로 이어갈지 주목된다.

 

또한 온라인게임으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던 그 바람의나라.

 

주몽에이은 또하나의 신화가 나올지....주목된다!

 

출연진: 무훌-송일국 연-최정원 유리왕-정진영 도진-박건형

 

           고구려 - 이종원 오윤아 김재욱 장태성 김상호 박상욱

 

                       김명수...

 

           부여국 - 대소왕-한진희 사구-박정학 탁록-손병호

 

           제가회의 - 명진-김규철 배극-정성모 상가-김병기

 

제작진: 연출-강일수(해신,태조왕건)

 

           극본-정진옥,박진우

 

           원작-김진(바람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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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배경 -

 

무휼(고구려3대제왕) : 휘(諱)는 무휼(無恤). 유리왕(琉璃王)의

셋째 아들. 어머니는 송양(松讓)의 딸. 14년(유리왕 33) 태자

(太子)로 책봉되어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아보다가 유리왕이

죽은 뒤 즉위하였다.

22년(대무신왕 5) 동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帶素王)을 죽이고,

고구려에 병합(倂合)하였다.

또 26년(대무신왕 9) 개마국(蓋馬國)을 쳐서 이를 병합하여 국토를 살수(薩水) 이북까지 확대하였다.

한편 을두지(乙豆智)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사(國事)를 맡겼는데, 28년 한(漢)나라의 요동 태수(遼東太守)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그의 지략(智略)으로 이를 물리쳤다.

32년 왕자(王子) 호동(好童)을 시켜 한사군(漢四郡) 중에서 아직

남아 있는 낙랑군(樂浪郡)을 정벌하게 하였으며, 37년 재차 공략

(攻略)하였다.

왕의 시호(諡號)가 대무신왕인 것은 재위 중에 주위의 많은 나라를

공략하여 무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왕의 능(陵)은 대수촌원(大獸村

原)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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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무신왕`무휼`의 차비(次妃)연은 갈사왕의 손녀였습니다.

갈사국은 금와왕의 아들이자 대소의 동생중 한명이 망해가는 나라에서 떨어져 나가 세운 소국으로 고구려에 정치적으로 접근하려는지 손녀를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의 두번째 비(次妃)로 보냅니다.

 

그러나 이분의 이름은 역사에 없습니다.

다만 대무신왕과 갈사왕의 손녀에게서 왕자 호동이 탄생합니다.

무휼과 갈사왕의 손녀의 결혼은 정략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아래는 역사 기록.

 

여름 4월 부여가 왕제를 세워 왕을 삼고 갈사수曷思水 가에 도읍하였다.

왕은 금와왕의 계자季子인데, 사기에는 그 이름이 잃어버려 전하지 않는다. 처음 대소가 살해되자, 더불어 따르던 2백여 인이 달아나 압록곡鴨綠谷에 이르러 해두왕海頭王이 사냥나온 것을 보고 이를 죽이고 그 백성을 빼앗아 갈사수(지금 미상) 가에 이르러 도읍하니, 이가 갈사왕曷思王이다.

해두왕도 또한 동이東夷의 작은 부족이 왕을 자칭한 것이다. (≪동사강목≫ 1하 신라 남해왕 19년, 고구려 대무신왕 5년, 백제 시조 40년, 왕망 지황 3 : A. D. 22)

 

겨울 10월 고구려 왕이 아들 호동을 죽였다.

고구려 왕의 원비가 아들 해우解憂를 낳으니, 그는 성품이 모질고 사나왔다.

처음 왕이 갈사왕曷思王의 손녀를 맞아들여 차비次妃로 삼아서 호동을 낳으니, 얼굴이 미려하므로 왕이 사랑하여 호동이라 이름하였다.

원비가 맏이(嫡)를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왕에게 참소하기를,

“호동이 첩에게 무례한 일을 하고자 합니다.” 하였으나,

왕이 믿지 않았다.

원비는 장차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울며 고하기를, “대왕께서는 자세히 살펴보소서. 만약 사실이 아니면 첩이 마땅히 복죄伏罪하겠습니다.” 하니, 이에 왕이 의심하여 장차 죄주려 하였다.

어떤 사람이 호동에게 이르기를, “어찌하여 스스로 해명하지 않는가?” 하였다.

호동이 말하기를, “이는 어머니의 잘못을 드러나게 하여 아버지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효도라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마침내 칼로 배를 찔러 죽었다.

김부식이 이르기를, “왕이 참소를 믿고 인자하지 못했던 것은 족히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호동도 죄가 없을 수 없다.

순舜은 작은 매질은 받고 큰 매질에는 달아나 아버지를 불의에 빠뜨리지 않게 하였는데, 호동은 이렇게 하지 않고 죽지 않을 자리에서 죽었으니, 작게 삼갈 것을 고집하여 큰 의리에 어두웠던 것이라 할 만하다.

그 신생申生에게나 비유할까?” 하였다.(≪동사강목≫ 1하 신라 유리왕 9년, 고구려 대무신왕 15년, 백제 다루왕 5년, 동한 광무 건무 8 : A. D. 32)


가을 8월 갈사왕(曷思王)이 나라를 들어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처음 갈사왕이 도망하여 나라를 세웠으나 미약하여 떨치지 못하고 고구려는 날로 강대하여지매, 그 손자 도두都頭가 나라를 들어 항복하니, 고구려는 도두를 우태于台로 삼았다. 갈사는 모두 3세, 47년 만에 망하였다.(≪동사강목≫ 1하 신라 탈해왕 12년, 고구려 태조왕 16년, 백제 다루왕 41년, 동한 명제 영평 11 : A. D.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