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백차승...하지만 그는 아름답다.

김대흥200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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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얘기를 백차승 선수가 지난해 국내언론사(일요신문)와의 인터뷰에서 밝혔

 

는데 그 기사내용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Q.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1998년으로 돌아가 보자. 9월 12일 일본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만과의 준결승에서 선발 등판했다가 오른쪽 팔꿈치 통증

으로 자진해서 경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이 일로 대한야구협회로부터 영구 제명

이란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기사를 검색해 보니까 미국 진출을 위해 팔을 아끼

려고 일부러 공을 던지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A. (한참을 생각하다가) 당시 한 스포츠신문의 미확인 보도로 인해 난 &#-9;배신자&#-9;

로 내몰렸다. 대만과의 준결승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정말 팔꿈치가 너무

아팠다. 일본전에서도 통증이 있었는데 안티프라민을 바르면서까지 통증을 참고

던졌다. 그러나 대만전은 그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 그래서 감독님께 통증이 심

해 더 이상 던질 수 없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나더라 1루를 맡으라고 하시더라.

팔이 아파서 공을 못 던지겠다는 선수에게 1루를 보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래서 못하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마운드에서 내려온 이후 팀이

역전패를 당했다. 나때문에 진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을 갖고 귀국을 했다. 그런

데 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었고 거기에 내가 불려나가게 됐다. 우리가 대만에

진 이유가 내가 감독의 지시를 어기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팀 분위기가 엉

망이 됐고 이게 팀 전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서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상벌위원 중 한 분이 모 스포츠신문

기사를 내보이면서 &#-9;아버지가 일본에 와서 더 이상 던지지 말라고 했다는데 사실

이냐&#-9;고 물었다. 그 기사에 그렇게 나왔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일본에 오질

않았고 나에게 던지라 말라 말한 적이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그분들은 내 말보다

그 기사를 더 믿는 눈치였다.
그 이후 상벌위원회에선 날 한국 야구계에서 더이상 뛸수 없게끔 영구 제명을 시

켰다.

Q. 그런 사연이 숨어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학생 야구였고 국제친선 대회였는

데 영구 제명을 시킨 건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A. 정말 내가 이해 못하는 부분이다. 팔이 아파서 더 이상 던지지 못하겠다고 말

한 게 그리 잘못한 건가. 그렇다면 팔이 부러지거나 말거나 감독의 지시라면 무

조건 공을 던져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해서 지면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건가. 너무 너무 화가 났고 감독님에 대해 실망했다. 제자의 앞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만약 내가 미국으로 가지 못했다면 난 야구를 접어야 할 판

이었다. 어떻게 그런 상황이 나오게 됐고 그런 상황을 묵인하셨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그 기사를 쓴 기자도 너무 무책임했다. 우리 아버지가 일본에 왔는

지 안 왔는지 직접 확인이라도 해봤나. 어떻게 아버지가 일본까지 와서 미국 가

야하니까 팔을 아끼라고 말할 수 있겠나.

Q. 98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을 때도 팔이 좋지 않았다고 들었다

.

A. 한국에서부터 팔꿈치 인대가 좋지 않았는데 예상대로 시애틀에서의 신체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 시애틀 측에선 계약을 맺기 전이라 날 그냥 한국으로 돌려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애틀은 129만 달러를 주고 계약을 강행했다. 그후로

오랫동안 제대로 된 공을 던지지 못했다. 정말 너무나 던지고 싶었고 그럴 수 있

도록 피나는 훈련을 했는데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 남은 인대마저 다

나갔고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할 때 상벌위원회 분들이 생각났다.

내가 미국<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 height="1" src="http://manlu.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 wmode="transparent" invokeurls="false" autostart="false" id="bootstrappermanlutistorycom1389549" allowscriptaccess="never" enablecontextmenu="false" flashvars="&callbackId=manlutistorycom1389549&host=http://manlu.tistory.com&embedCodeSrc=http%3A%2F%2Fmanlu.tistory.com%2Fplugin%2FCallBack_bootstrapper%3F%26src%3Dhttp%3A%2F%2Fcfs.tistory.com%2Fblog%2Fplugins%2FCallBack%2Fcallback%26id%3D138%26callbackId%3Dmanlutistorycom1389549%26destDocId%3Dcallbacknestmanlutistorycom1389549%26host%3Dhttp%3A%2F%2Fmanlu.tistory.com%26float%3Dleft" swliveconnect="true"> 와서 팔꿈치 인대가 다 나가서 수술하는 걸 안다면 날 영구제명시킨

사람들이 어떤 심정일까 하고 그 대회에서 정말 아파서 못 던진 게 사실로 드러

난 거 아닌가.

Q. 입단 계약 후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바로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이듬해 6월

이 돼서야 미국으로 들어갔다. 무슨 사연이 있었나.

A. 난 참 운이 없는 놈이다. 우여곡절 끝에 입단 계약을맺고 출국해 스프링캠프

에 합류하려 했지만 이번에 비자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내가 시애틀과 입단 계약

을 맺은 사실까지 알면서도 미국영사가 계속 퇴짜를 놨다. 결국 스프링캠프에 참

가하지도 못했고 6월까지 기다리다가 시애틀 구단측에서 변호까지 선임해 일을

처리한 덕분에 가까스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3개월짜리 조건부 비자

였다. 6월 25일이 출국일이었는데 결코 잊지 못한다 그 날짜를.

Q. 요즘 국적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9;제2의 유승준&#-9;이란 말로 비난하는 사람

들도 있는데 사실 여부를 밝혀달라.

A. 너무나 어렵게 미국에 들어왔다. 다시 돌아가서 또 다시 비자를 거절당하면

미국에 올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 남을 경우 제명된 상태라 공을 던질 수조차 없

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미국에 남기로 한 것이다. 인터넷 보니까

내가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국적을 바꿨다고 하는데 만약 병역 면제를 받으려 했

다면 팔꿈치 수술만으로도 면제 대상이 되는 것으로 안다. 또 국제 대회에 참가

해서 정정당당히 면제 혜택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과연 나한테까지

오겠나 싶었다. &#-9;배신자&#-9; 백차승을 국가대표로 뽑아 줄 감독이 있을까 의문이 들

었다. 솔직히 두렵고 용기가 안 났지만 욕 먹을 각오를 하고 국적을 포기했다.
98년에 날 &#-9;배신자&#-9;로 내몬 그 스포츠신문에서 또 다시 내가 병역 기피를 위해

미국으로 도주했다고 썼더라. 난 야구만을 생각했을 뿐이다. 미국이란 큰 무대에

서 야구를 하고 싶었고 야구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곳도 이곳이다.

Q. 미국 시민권자와의 결혼을 통해 시민권을 얻었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인가.

A. 그 부분에 대해선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나에 대해 어떤 얘기가 나도

는지 알고 있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닌것 같다. 좀 더 내 상황이 안정된 이후에

밝히겠다. 미안하지만 기다려달라

Q. 그래도 궁금하다. 워낙 이 부분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많기 때문이다.

A. 이 얘기만 하겠다. 내가 미국 시민권을 딸 때 나 말고도 미국시민권을 받으려

는 사람들이 70-80명 정도 됐다. 그들은 시민권을 받아 들고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했는데 난 가슴으로 울었다. 오랜 고민끝에 선택한 길이었지만 막상 미국 시

민권자가 된다는 게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야구를 할 필요

가 있을까 갈등이 있었지만 7년동안 젊음을 바친 미국 무대에서 꼭 성공하고 싶

었고 주어진 기회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Q. 미국 시민권을 딴 후 생활이 달라졌나.

A.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만약 외국 사람이 한국으로 귀화했다고해서 우리가 그

들을 한국인으로 보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민권만 가졌을뿐 난 영원히

한국 사람이고 그들 눈에는 용병일 뿐이다.

백차승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되뇌었다. &#-9;미국이란 이 넓은 땅덩어리가 나한테

는 철창 없는 감옥&#-9;이었다고.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지난 8년간의 세월을 훑어

내려간 그는 <일요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심경 고백을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씌어진 &#-9;매국노&#-9;란 굴레가 없어지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백차승은 대한민국을 판 적도, 매도한 적도 없다.

그보다 더한 인간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을 매도하며 대한민국 땅에서 떳떳히 살고 있고,

아직도 그는 죄인처럼 묵묵히 타국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

만약,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나역시 그랬을 것이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