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목적은 완전히 대립하는 두 관점, 즉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세계관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다.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을 이 두 범주로 나누었다.) 두 관점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공평하게 조사할 것이며 대립하는 두 논변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세계관을 갖고 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둘 중 하나의 가정을 하고 있다. 즉, 우주가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이고 이 세상에서의 삶은 우연적인 일이라는 견해를 갖거나, 아니면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주를 초월하여 실재하는 지성적인 존재를 가정한다. 세계관은 우리의 유래(어디서 왔는가), 정체성(누구인가), 목적(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가), 동기(무엇에 이끌려 사는가), 운명(어디로 가는가)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관점은 유사 이래 줄곧 존재해 왔다. 바로 영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혹은 '과학적' 세계관이다. 우리가 만약 프로이트의 유물론을 수용한다면, 스스로를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혹은 회의론자로 부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이스의 세계관에도 여러 표현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관들은 옳거나 그른 답이 없는, 단지 철학적인 고찰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만일 한 사람이 옳다면 다른 한 사람은 반드시 틀려야 한다. 둘다 맞을 수는 없다. 만일 루이스의 영적세계관이 참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기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사에 있었던 속임수 중 가장 잔인한 속임수가 된다. 이때 유일한 대안은, 프로이트의 충고대로 우리가 이 우주안에 홀로 존재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대면하도록 '철'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영적 세계관이 참이라면 모든 다른 진리는 그 의미가 퇴색해 버릴 것이다.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면] 루이스 vs 프로이트 - 프롤로그 요약
이 책의 목적은 완전히 대립하는 두 관점, 즉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세계관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다.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을 이 두 범주로 나누었다.) 두 관점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공평하게 조사할 것이며 대립하는
두 논변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세계관을 갖고 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둘 중 하나의 가정을 하고 있다.
즉, 우주가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이고 이 세상에서의 삶은 우연적인 일이라는 견해를 갖거나,
아니면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주를 초월하여 실재하는 지성적인 존재를 가정한다.
세계관은 우리의 유래(어디서 왔는가), 정체성(누구인가), 목적(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가),
동기(무엇에 이끌려 사는가), 운명(어디로 가는가)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관점은 유사 이래 줄곧 존재해 왔다. 바로 영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혹은 '과학적' 세계관이다.
우리가 만약 프로이트의 유물론을 수용한다면, 스스로를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혹은 회의론자로 부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이스의 세계관에도 여러 표현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관들은 옳거나 그른 답이 없는, 단지 철학적인 고찰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만일 한 사람이 옳다면 다른 한 사람은 반드시 틀려야 한다.
둘다 맞을 수는 없다.
만일 루이스의 영적세계관이 참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기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사에 있었던 속임수 중
가장 잔인한 속임수가 된다. 이때 유일한 대안은, 프로이트의 충고대로 우리가 이 우주안에 홀로 존재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대면하도록 '철'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영적 세계관이 참이라면 모든 다른 진리는 그 의미가 퇴색해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