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안쪽 - 서해안 염전에서::)염전은 갯가의 평야다. 바깥은 바다 쪽으로 펼쳐지고 안쪽은 야 산에 기댄 마을에 닿는다. 염전은 폭양에 바래지며 해풍에 쓸리 운다. 염전의 생산방식은 기다림과 졸여짐이다. 염전은 하늘과 태양과 바람과 바다에 모든 생산의 바탕을 내 맡긴 채 광활하고 아득하다. 염전은 속수무책의 평야인 것이다.
염전은 바다를 밀어낸 인공의 들이고, 수산업과 농업의 사이에 끼어있는 완충의 평야다. 염전은 잡거나 기르지 않고, 캐거나 따지 않는다. 염전은 기다리는 들이다. 온 들판에 펼쳐놓은 바닷물이 마르고 졸여져서, 그 원소의 응어리 안으로 고요해질 때까지 염부는 속수무책으로 기다린다.
염전은 바다를 원료로 하지만 바다로 나아가지 않고, 넓은 밭을 펼쳐놓지만 심거나 가꾸지 않는다. 염부는 생명을 기르지 않지만, 시간은 염전의 생산을 길러준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염전 은 수산업도 아니고 농업도 아니다. 염전은 산업자원부 산하에 등록되는 광업이다. 소금은 식량이 아니라 광물질인데, 기다림의결정체인 이 광물질이 모든 식량을 인간이 넘길 수 있고 인간이 친화할 수 있는 먹이로 바꾸어준다.
염부들은 기다림의 구조 안으로 물을 끌어와서 펼쳐놓고, 그 기 다림을 바닥을 훑어서 시간의 앙금을 거둔다. 폭양 아래서 염전 바닥을 훑는 염부들의 노동은 모든 일차산업의 생산노동들 중에 서 가장 단순한 원초성의 풍경을 이룬다. 안강망 어선을 몰고 연안어장으로 나가는 어부들이나 농기계로 모를 심고 벼를 거두는 농부들과는 달리 염부들은 매우 단순한 생산도구 만을 지닌다. 염 부는 다만 고무래로 밀고 곰배로 긁고 삽으로 퍼 담는다. 염전노동의 이 단순성은 소금이 인간의 노동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 에서 저절로 빚어지는 결정체이기 때문일 터인데, 이 노동의 단 순성은 소금의 원초성과 닮아있다. 염부의 노동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전개되고, 소금은 먹이의 질료를 시간의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서 거기에 시간의 맛과 무늬를 새겨 넣는다. 젓갈과 김치의 맛은 소금이 매개하는 시간의 맛이다. 염전은 생산의 가 장 순결한 밑바닥이고 소금은 모든 맛의 발생과 작동의 원리이다. 그리고 이 단순성과 원초성의 작동범위는 먹이와 시간 속으로 광활하다.
바다 쪽으로 긴 뚝방이 뻗어나가고, 억새풀 우거진 뚝방 길 위로 듬성듬성 들어선 소금창고들이 시야 속에서 멀어져간다. 염전은 서해의 특징적 풍광이었다. 서해안 여러 염전의 소금창고들이 어째서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지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지만, 서해안의 소금창고들은 하나의 완성된 양식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완연한 질감을 갖는 건축물이란 흔치않다.
소금창고는 지상의 모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헐겁고 남루해 보인다. 소금창고들은 멀리 떨어져서 군집을 이루지 않고, 시선의 방향으로 소멸하는 개별성을 이룬다. 소금창고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의도를 들어내지 않는다. 오직 실용적일 뿐인 이 건축물은 어떠한 장식적 구조도 없이 필요한 선과 면 몇 개만으로 이 세상의 시공과 경계하고 있는데, 이 경계는 불려갈 듯이 위태로워 보인다. 소금창고는 이 위태로운 경계 위에서 햇볕과 바람에 풍화되는데, 검은 콜타르를 칠한 목재들은 색이 바 래어지고 목질이 뒤틀리면서 풍화되는 것들의 속살의 결을 들어 낸다. 소금창고는 역학구조를 이루는 선과 면을 공간 속에 녹여 서 사실성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풍화된다. 바닷물은 풍화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소금의 사실성을 이루고 소금창고는 풍화되어서 사실성의 멍에를 벗는다. 염전은 시간이 기르는 밭인데, 그 풍화의 끝은 신생이거나 소멸이다.
이제 경기만, 남양만의 염전은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소래염전, 오이도염전, 군자염전, 시흥염전, 마도염전은 모두 대규모 공단이나 간척지로 바뀌었고 중국산 소금과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학소금을 당해낼 수 없는 작은 염전들은 왕새우 양식장으로 바뀌었다. 남양만의 염전은 경기도 서신면 매화리, 백미리의 바닷가에 겨우 남아있다. 시화방조제와 화옹방조제 구간을 운 좋게 벗어난 오목한 해안선에 바래어져가는 서해의 풍경은 살아있다.
이 염전들은 밭을 12단계로 펼쳐놓고 물을 이동시킨다. 뚝방 너 머에서 퍼 올린 바닷물을 저수지에 가두어놓고 한 단계씩 낮은 밭으로 물을 옮겨간다. 한 단계의 밭을 ‘배미’라고 부른다. 12단계의 배미들은 3㎝씩의 차이로 층이 진다. 염부는 한 배미 마 다 4~5일 씩을 기다려야한다. 기다림의 들판은 가장자리가 보이 지않는데, 이 광활한 평면구도 전체는 36㎝의 경사를 이룬다. 더디고 흔적 없는 기다림이다.
햇볕이 증발시킨 물기를 바람이 걷어가면서 소금은 엉긴다. 소금은 시간을 건너오는 바다의 배후처럼 염전 바닥으로 온다. 바람 은 습기를 걷어가되, 물을 흔들지는 말아야한다. 북서풍을 따라 서 오는 소금은 굵은 입자가 단단하고 동풍을 따라서 오는 소금 은 밀가루처럼 곱다. 남동풍을 따라서 오는 소금은 습해서 무겁 고남서풍을 따라서 오는 소금은 거칠고 건조하고 푸석거린다. 늙은 염부들은 바람을 저 자신의 숨결처럼 세밀히 이해하고 있다. 잔잔한 남서풍을 따라서 오는 소금이 무릇 짠 맛의 으뜸이다. 남서풍은 흔한 바람이 아니다.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남서풍에 실려 오는 소금은 바다 전체를 한 톨의 결정체 안에 응축하는 향기에도달하고, 모든 맛에 스미고 모든 맛을 다스리는 삼투력과 통솔 력을 갖는다. 염전은 인공구조물이지만 이제 천연기념물의 표정 으로 서신면 바닷가에서 말라가고 졸여진다.
빛·바람 머금은 ‘세월’을 퍼 담는다
염전은 바다를 밀어낸 인공의 들이고, 수산업과 농업의 사이에 끼어있는 완충의 평야다. 염전은 잡거나 기르지 않고, 캐거나 따지 않는다. 염전은 기다리는 들이다. 온 들판에 펼쳐놓은 바닷물이 마르고 졸여져서, 그 원소의 응어리 안으로 고요해질 때까지 염부는 속수무책으로 기다린다.
염전은 바다를 원료로 하지만 바다로 나아가지 않고, 넓은 밭을 펼쳐놓지만 심거나 가꾸지 않는다. 염부는 생명을 기르지 않지만, 시간은 염전의 생산을 길러준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염전 은 수산업도 아니고 농업도 아니다. 염전은 산업자원부 산하에 등록되는 광업이다. 소금은 식량이 아니라 광물질인데, 기다림의결정체인 이 광물질이 모든 식량을 인간이 넘길 수 있고 인간이 친화할 수 있는 먹이로 바꾸어준다.
염부들은 기다림의 구조 안으로 물을 끌어와서 펼쳐놓고, 그 기 다림을 바닥을 훑어서 시간의 앙금을 거둔다. 폭양 아래서 염전 바닥을 훑는 염부들의 노동은 모든 일차산업의 생산노동들 중에 서 가장 단순한 원초성의 풍경을 이룬다. 안강망 어선을 몰고 연안어장으로 나가는 어부들이나 농기계로 모를 심고 벼를 거두는 농부들과는 달리 염부들은 매우 단순한 생산도구 만을 지닌다. 염 부는 다만 고무래로 밀고 곰배로 긁고 삽으로 퍼 담는다. 염전노동의 이 단순성은 소금이 인간의 노동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 에서 저절로 빚어지는 결정체이기 때문일 터인데, 이 노동의 단 순성은 소금의 원초성과 닮아있다. 염부의 노동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전개되고, 소금은 먹이의 질료를 시간의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서 거기에 시간의 맛과 무늬를 새겨 넣는다. 젓갈과 김치의 맛은 소금이 매개하는 시간의 맛이다. 염전은 생산의 가 장 순결한 밑바닥이고 소금은 모든 맛의 발생과 작동의 원리이다. 그리고 이 단순성과 원초성의 작동범위는 먹이와 시간 속으로 광활하다.
바다 쪽으로 긴 뚝방이 뻗어나가고, 억새풀 우거진 뚝방 길 위로 듬성듬성 들어선 소금창고들이 시야 속에서 멀어져간다. 염전은 서해의 특징적 풍광이었다. 서해안 여러 염전의 소금창고들이 어째서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지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지만, 서해안의 소금창고들은 하나의 완성된 양식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완연한 질감을 갖는 건축물이란 흔치않다.
소금창고는 지상의 모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헐겁고 남루해 보인다. 소금창고들은 멀리 떨어져서 군집을 이루지 않고, 시선의 방향으로 소멸하는 개별성을 이룬다. 소금창고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의도를 들어내지 않는다. 오직 실용적일 뿐인 이 건축물은 어떠한 장식적 구조도 없이 필요한 선과 면 몇 개만으로 이 세상의 시공과 경계하고 있는데, 이 경계는 불려갈 듯이 위태로워 보인다. 소금창고는 이 위태로운 경계 위에서 햇볕과 바람에 풍화되는데, 검은 콜타르를 칠한 목재들은 색이 바 래어지고 목질이 뒤틀리면서 풍화되는 것들의 속살의 결을 들어 낸다. 소금창고는 역학구조를 이루는 선과 면을 공간 속에 녹여 서 사실성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풍화된다. 바닷물은 풍화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소금의 사실성을 이루고 소금창고는 풍화되어서 사실성의 멍에를 벗는다. 염전은 시간이 기르는 밭인데, 그 풍화의 끝은 신생이거나 소멸이다.
이제 경기만, 남양만의 염전은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소래염전, 오이도염전, 군자염전, 시흥염전, 마도염전은 모두 대규모 공단이나 간척지로 바뀌었고 중국산 소금과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학소금을 당해낼 수 없는 작은 염전들은 왕새우 양식장으로 바뀌었다. 남양만의 염전은 경기도 서신면 매화리, 백미리의 바닷가에 겨우 남아있다. 시화방조제와 화옹방조제 구간을 운 좋게 벗어난 오목한 해안선에 바래어져가는 서해의 풍경은 살아있다.
이 염전들은 밭을 12단계로 펼쳐놓고 물을 이동시킨다. 뚝방 너 머에서 퍼 올린 바닷물을 저수지에 가두어놓고 한 단계씩 낮은 밭으로 물을 옮겨간다. 한 단계의 밭을 ‘배미’라고 부른다. 12단계의 배미들은 3㎝씩의 차이로 층이 진다. 염부는 한 배미 마 다 4~5일 씩을 기다려야한다. 기다림의 들판은 가장자리가 보이 지않는데, 이 광활한 평면구도 전체는 36㎝의 경사를 이룬다. 더디고 흔적 없는 기다림이다.
햇볕이 증발시킨 물기를 바람이 걷어가면서 소금은 엉긴다. 소금은 시간을 건너오는 바다의 배후처럼 염전 바닥으로 온다. 바람 은 습기를 걷어가되, 물을 흔들지는 말아야한다. 북서풍을 따라 서 오는 소금은 굵은 입자가 단단하고 동풍을 따라서 오는 소금 은 밀가루처럼 곱다. 남동풍을 따라서 오는 소금은 습해서 무겁 고남서풍을 따라서 오는 소금은 거칠고 건조하고 푸석거린다. 늙은 염부들은 바람을 저 자신의 숨결처럼 세밀히 이해하고 있다. 잔잔한 남서풍을 따라서 오는 소금이 무릇 짠 맛의 으뜸이다. 남서풍은 흔한 바람이 아니다.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남서풍에 실려 오는 소금은 바다 전체를 한 톨의 결정체 안에 응축하는 향기에도달하고, 모든 맛에 스미고 모든 맛을 다스리는 삼투력과 통솔 력을 갖는다. 염전은 인공구조물이지만 이제 천연기념물의 표정 으로 서신면 바닷가에서 말라가고 졸여진다.